0살부터 슈퍼스타 153화
“그래. 다음에 또 코인노래방 가자.”
“아, 코인노래방 하니까, 서준이가 찍었던 한 걸음, 너튜브 조회 수 엄청 나왔더라. 댓글도 외국어로 적혀 있고.”
미나의 말에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도 나왔다. 이 정도로 세계에 퍼진 공익 광고도 없으리라.
“백호 소방 안전 체험관에도 사람들 엄청 간대.”
“아, 나도 기사 봤어.”
“체험 시설도 엄청 다양해졌다더라.”
백호 소방 안전 체험관으로 옮겨진 ‘한 걸음’의 세트장은 새롭게 단장해 여름방학 중간에 개방되었다.
연기 체험관과 연계해 ‘한 걸음’처럼 7번 방에서 탈출하는 코스와 막혀 있는 입구와 비상구 앞에서 숨겨진 휴지와 생수를 찾는 코스, 그리고 손잡이 온도로 탈출할 방을 찾는 코스가 나눠서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걸음’에서 본 것과 거의 똑같이 체험할 수 있어서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 특히 서준의 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체험이었다.
너튜브에도 ‘한 걸음’과 비슷하게 편집해서 올라오는 영상이 많이 업로드되었다.
서준도 ‘한 걸음’의 세트장이 그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외국인도 잔뜩 온다며?”
“응. 엄청 온대.”
“역시 우리 서준이!”
지윤의 말에 다들 빵 터졌다. 실컷 웃던 지후가 서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예술중학교라면 시험 보지 않아?”
“응. 필기시험은 없고, 연기해야 한대.”
“서준이야 당연히 합격하겠네!”
“여울 예술중이라…… 이사 갈 집은 정해졌어?”
“아직. 엄마 아빠가 찾고 있긴 한데, 괜찮은 집이 없나 봐.”
“이사 가면 초대해 줘!”
“맞아. 다 같이 놀러 가자.”
“그래. 다들 놀러 와.”
친구들의 말에 서준도 웃으며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사를 가기로 정해지자, 서은혜와 이민준은 여름방학부터 바빠졌다.
부부는 여울 예술중학교와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여긴 별로지?”
“응.”
공인중개사의 뒤에서 서은혜와 이민준이 속닥거렸다.
넓고 깨끗하고 입지도 좋았다. 보안도 괜찮았지만…… 뭔가 기분이 구렸다. 말끔하지 않은 기분 탓인지, 첫인상부터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지?”
이 이상한 기분은 집을 결정하는 데 부부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고민하는 서은혜와 이민준의 지갑 속에 든 서준의 쪽지가 반짝였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작은 새의 그림과 함께, 서준의 사랑이 잔뜩 담긴 쪽지라 부부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선/제작)점쟁이 새의 쪽지-중하급]
쪽지의 소유자에게 어울리는 집을 판별해 줍니다.
좋은 집이라면 좋은 느낌이, 나쁜 집이라면 꺼림칙한 느낌이 듭니다.
사용법 : 새 그림을 그린 종이를 소유합니다.
사용기한 : 2개월
이 새는, 아주 용한 점쟁이의 새로 점쟁이가 새점을 치는 데 도움을 줬다. 특히, 이사 터를 잘 맞히기로 소문이 나서 여러 사람의 집터를 점쳐주고 제법 유복한 집안으로 만든 적이 있는 점쟁이였다.
‘새로 이사 갈 곳도 지금처럼 좋은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서준과 부부의 바람이 듬뿍 담긴 쪽지는 이곳이 좋지 않은 곳임을 부부에게 알려주었다.
“여기도 별로인가요?”
부부의 표정으로 그 사실을 알아챈 공인중개사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른 집을 소개하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글렀다. 깨끗하고 넓고 싸게 나온 집이었지만, 이 집은 위층의 층간소음으로 내놓은 집이었다. 언제 이 집이 팔릴까, 공인중개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서준의 능력과 함께 여울 예술중학교 근처를 맴돌던 부부는 9월 말, 좋은 아파트를 찾았다.
넓고 깨끗하고 가격은 조금 나갔지만 이해가 됐다. 무엇보다도 이 집에 첫발을 내디딜 때, 확 몰려오던 따스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신기하네.”
그 바람만으로도 부부는 이 집의 첫인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쪽지에 그려진 작은 새도 이 집에 만족했다.
하지만 기분은 기분이었다. 깐깐한 부부는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특히 서준의 방과 연습실이 될 두 개의 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긴 책상이랑 책장을 놓으면 되겠다.”
“침대는 이쪽에 놓고. 햇살도 참 좋네.”
서준의 방,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확 트인 풍경이, 아들의 마음에도 쏙 들었으면 좋겠다고 부부는 생각했다.
“여기로 할게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부부의 모습에 공인중개사도 따라 미소를 지으며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젊은 부부인데 집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 * *
“서준아. 좋은 집 찾았어.”
엄마의 말에 갈비찜을 먹던 서준이 물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뿌듯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좋은 집인지 자랑하고 싶었다.
“창밖이 확 트여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집도 넓고 기운도 좋은 거 같아.”
기운.
그 말에 서준이 에헤헤 웃었다. 점쟁이 새의 능력이 확실한 집을 고른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서준이었다.
“그럼 언제 이사 가?”
“지금 살고 계신 분이 이사 간 다음에 도배도 새로 하고 서준이 연습실도 공사해야 하니까, 11월 말쯤?”
“그렇구나.”
“서준이 연습실에 넣고 싶은 거 있으면 천천히 생각해 봐.”
“넣고 싶은 거…….”
살살 녹는 갈빗살을 입에 넣고 곰곰이 생각하던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카메라랑 모니터?”
“그건 당연히 설치해야지.”
아빠의 말에 서준과 서은혜가 웃었다.
“작은 냉장고도 넣자. 음료수나 간단한 간식 같은 거도 넣어 놓게.”
“그래. 집중하고 싶을 때는 계속 연습실에 있고 싶을 거 아니야.”
“연습실 벽지도 집중 잘되게…… 음, 코코아엔터에 있는 연습실처럼 꾸밀까?”
“그것 좋겠다. 익숙한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게 더 좋겠지.”
어째, 자신보다 신이 난 것 같은 엄마 아빠의 모습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엄마 아빠의 대화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서준이는 뭘 넣고 싶어?”
“음…….”
엄마 아빠의 반짝이는 눈에 서준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대본을 넣을 수 있는 책장? 그건 당연한 거고. 모니터와 카메라만 있으면 만족하는 서준이었다.
그때, 서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리첼 힐의 저택에 있던 영화관이었다.
‘그렇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서준이 입을 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귀를 쫑긋 세웠다.
“영화 볼 수 있는 스크린?”
“그것도 좋겠다! 우리끼리 단란하게 볼 수도 있고.”
“방음 장치를 하면 큰 소리로 볼 수도 있겠네!”
“의자는 옮길 수 있는 거로, 폭신폭신한 걸 찾아서 쓰면 서준이가 연습할 때는 한쪽에 치워놔도 되고. 서준이가 대본 읽을 때, 거기 앉아서 읽어도 되겠다!”
“좋아. 프로젝트 빔을 사야겠어.”
“제일 좋은 거로 사!”
신이 난 엄마 아빠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
긴장되면서도 떨리는 단어였다.
* * *
10월.
전국 예술중학교의 원서 접수가 시작되었다.
서준도 여울 예술중학교 홈페이지에서 프린트한 원서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이름과 초등학교 이름, 전화번호를 적어넣었다.
“전공, 연기.”
서준이 열심히 원서를 쓰는 사이, 서은혜와 이민준은 어느 학교로 갈 건지 정할 때는 보지 않았던, 입학 전형을 살펴보았다.
커리큘럼이 중요했지, 입학 전형은 학교를 고르고 난 다음 생각해도 늦지 않았었다.
“실기랑 면접을 보는구나.”
“2분 이내의 자유 연기라…… 우리 서준이라면 잘할 거야.”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서은혜와 이민준이 속닥거렸다. 하지만 서준의 좋은 감각은 그 말을 그대로 서준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서준도 자신 있었다.
“원서 다 썼어.”
“그래. 잘했어. 접수는 우편으로 할까? 방문 접수로 할까?”
세 가족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학교도 둘러볼 겸 방문 접수는 어때?”
“평일이니까, 내가 갈게.”
“……나도 가고 싶어.”
평일이면 몬스터사로 출근해야 하는 이민준의 말에 서준과 서은혜가 웃었다.
이민준은 아들이 다닐 학교에 가 보고 싶었다. 어떤 학교에서 서준이 3년을 보낼지, 궁금했다.
“그럼 아빠도 같이 가자.”
“그래. 학교 둘러보고 접수하고, 어디서 놀다가 오자.”
“쌀쌀하니까, 영화나 보고 올까?”
“찬성!”
서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 * *
여울 예술중학교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우리 학교는 아닌가 봐요.”
“그러게요.”
접수된 입학 원서들을 살펴보고 있던 교직원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쌓여 있는 원서를 바라보았다.
“어디 접수했다고 기사 뜬 학교 없어요?”
“아직 접수를 안 한 건지, 학교에서 입 다물고 있는 건지…… 뜬 기사는 없어요.”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고 있던 교직원의 말에 다들 입을 열었다.
“아예 일반 중학교에 갈 생각인가?”
“그러면 촬영하기 힘들 텐데 말이에요.”
“우리 학교만큼 잘되어 있는 곳도 없는데…….”
아쉬움 가득한 원서 접수실의 문이 열렸다. 수험생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접수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원서 접수하면 되나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접수를 맡은 교직원이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입학 원서를 꺼냈다. 간혹 원서에 틀린 부분이 있기에 원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던 교직원은 원서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
“저기…….”
“네, 아, 네. 죄송합니다.”
교직원은 입학 원서와 함께 프린트된 수험증을 잘라서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휴대폰으로 안내가 갈 거예요. 실기 날에 와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여자가 접수실을 나가자, 접수하던 교직원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은 교직원의 모습에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 달려왔다.
“왜, 왜 그래?”
“괜찮아요?”
“이…… 이…….”
“이? 이가 아파요?”
“이서준이요!”
……?
이서준? 여기서 웬 이서준?
너무 놀라 주저앉아 버렸던 교직원이 벌떡 일어나 방금 접수된 입학 원서를 들어 올렸다. 모두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서준이 우리 학교에 왔어요!”
입학 원서에 붙여진 증명사진과 이름이 유난히도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원서를 확인한 사람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두 번 세 번 확인해 봐도 적힌 이름과 사진은 바뀌지 않았다.
* * *
엄마 아빠와 함께 여울 예중을 둘러보고 온 서준은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학생들이 공연할 수 있는 넓은 무대가 있고, 연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연습실이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서준아, 자유 연기 뭐 할 거야?”
“아직 안 정했어. 지금 찾아보려고.”
여울 예중의 실기는 2분 이내의 자유 연기.
수험생이 직접 창작한 대사도 괜찮았고, 널리 알려진 대본의 대사를 해도 괜찮았다.
홀로 연기하는 독백 연기도 가능했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형식의 연기도 가능했다. 물론, 대화 형식은 대사를 받아줄 상대역이 없으니, 어설프게 연기하면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보일 터였다.
“점수도 좋지 않겠지.”
2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서준은 대본이 잔뜩 꼽혀 있는 책장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모아온 보물 상자 같은 책꽂이에, 저도 모르게 헤죽 웃음이 나왔다. 바라만 바도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뭘 할까?”
많은 대본 앞에서 서준은 어떤 역을 할까 고민했다. 일단, 자신이 했던 배역은 빼기로 했다. 너무 쉽기도 하고, 같은 연기를 또 보여주는 건 재미가 없었다.
“일단 외국 작품은 빼고.”
한국 작품들의 대본을 앞에 둔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성인 배우가 했던 어른 역을 고를까, 아니면 아역 배우가 했던 어린이 역을 고를까.
‘어른 역은 별로겠지?’
그럼, 재수사 카메오로 나갔던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아이가 좋을까, 아니면 슬픔에 가득 잠긴 아이가 좋을까.
고민에 잠긴 서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며 대본의 제목을 읽어내려갔다.
제목만 읽어도 어떤 캐릭터들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한 대본이 서준의 눈에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