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49화
“레디, 액션!”
아이들은 불이 난 곳에서 가장 먼 1번 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 진이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앗, 뜨거!”
뜨거운 온도에 소리를 질렀다. 나 진은 손을 허공에서 휘휘 젓다가 생수를 손바닥 위에 부었다. 잔뜩 일그러진 나 진의 얼굴에 김주경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손잡이가 뜨거워서.”
그 말에 김한석은 무언가 떠올렸다. 아빠와 함께 봤던 액션 영화.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끼쳐왔다.
“형, 형. 뜨거우면 안 돼요. 공기가 들어가면 폭발한대요!”
김한석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뭐?”
“문 열면 공기가 들어가서 폭발한대요. 영화에서 봤어요! 안에 불이 났을지도 몰라요!”
김한석의 말에 나 진과 김주경은 1번 방문 앞에서 물러섰다. 연기는 저쪽에서 나고 있을 텐데…… 여기에 불이 났을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1번 방문을 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방에 가자.”
김주경의 말에 나 진과 김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진은 1번 방과는 떨어진 3번 방의 문 앞에 섰다. 손등으로 살짝 닿은 손잡이는 뜨겁지 않았다. 차가웠다.
“괜찮아?”
“응.”
나 진은 굳게 닫혀 있던 노래방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침을 꼴깍 삼켰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축축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방은 괜찮을까? 폭발이라니, 무서운 말이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 진의 손이 떨렸다.
초등학생 나 진은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엄마 아빠를 만나기 위해, 굳세게 다짐했어도, 또 다른 무서움 앞에서는 다시금 평범해져 버렸다. 그런 나 진을 이번에는 두 아이가 도왔다.
젖은 휴지로 입을 막고 있던 김한석이 나 진을 바라보았다. 덜덜 떨리는 나 진의 손이 보였다. 대본에 뭐라고 되어 있던데, 지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빛나던 형의 눈동자만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번엔 내가……!’
김한석은 손을 뻗어 나 진의 손을 잡았다.
“같이 열어요. 형.”
김주경이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래. 진아.”
“……그래.”
손 위로 느껴지는 체온에 나 진은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무서워도 지금까지 열심히 움직였다. 친구들과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나 진의 눈빛이 다시금 짙게 변했다. 믿음직한 나 진의 얼굴에 아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3번 방의 문이 활짝 열렸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갑작스러운 출동으로 인해, 늦게나마 합류해 함께 촬영한 소방관이 얼떨떨한 얼굴로, 아역 배우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는 스태프들과 구름의 직원들이 뿌듯한 얼굴로 서준의 사인지를 들고 있었다.
“어, 진짜 이서준 배우입니까?”
“네. 이번 공익 광고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나올지도요?”
기획팀장이 웃었다.
“아직 소방청 시사가 남았거든요.”
그쪽이 갑이라서 결정권은 그쪽에 있거든요. 뒷말은 삼켰지만, 알아들은 소방관이 환하게 웃었다.
“소방청에서도 단번에 승낙할 겁니다.”
기획팀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주 후, 소방청 회의실.
광고 제작사 구름에서 제작한 공익 광고 영상을 시청하기 위해, 담당자들과 고위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웹 드라마라고요? 그게 홍보가 될는지?”
“그냥 평소대로 재능 기부할 연예인을 구해서 촬영하지 그랬습니까?”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토해냈다. 구름의 기획팀장과 소방청 홍보 담당자가 히죽 웃었다. 절대 거절 못 할 패를 들고 있는 을의 입장이 이렇게 즐거울 줄은 몰랐다.
홍보담당자가 기획팀장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도 저한텐 알려주지 그러셨습니까? 사인받고 싶었는데!’
‘코코아엔터에서 꼭 비밀로 해달라길래…… 출연이 무산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서준에게서 받은 사인지를 액자에 넣어놓은 기획팀장이 속삭였다.
그사이, 불만을 토해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불만을 토해내도 이미 결과물은 만들어졌다. 영상을 보고 나서 반대하기로 한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대충 상황을 살피던 홍보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공익 광고 영상을 시청하시겠습니다. 이번 공익 광고는 TV 광고용과 너튜브 업로드용으로 나뉩니다. 그럼 먼저 TV 광고용 영상부터 시청하겠습니다.”
홍보 담당자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영상이 나타났다. 작은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세 명의 아이가 보였다. 불만을 토해내던 공무원이 부하 직원에게 물었다.
“어린이 대상이라고 했나?”
“네. 그래서 아역 배우 세 명을 섭외했답니다.”
“혹시 내가 아는 아역 배ㅇ……?”
출연자를 물으려던 공무원이 눈을 부릅떴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남자아이의 얼굴.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얼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영상을 보며 경악했다.
“저…… 저…….”
“진짜로?”
단단한 방패를 세우듯 팔짱을 끼고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팔짱을 풀고 상체를 쭉 내밀었다. 몇몇은 자신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상을 보는 소방청 관계자들의 모습에 기획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몇 번의 영상 재생 후,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구름의 공익 광고로 채택되었다.
* * *
“한 번에 통과! 수정 없음!”
“와아아아!!!”
소방청 시사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온 기획팀장이 말했다. 직원들은 진심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광고의 경우 한 번에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드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아니, 광고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규격이 없는 창작 분야의 갑이 있는 곳은 거의 그랬다.
수정과 수정과 수정의 연속.
그리고 끝내는 ‘맨 처음 게 낫다’는 클라이언트의 말에 해탈하는 게 구름 직원들의 일상이었다.
7번의 수정 후 넋이 나간 김지현이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회사 이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아니라, 구른다 할 때, 구름이 아닐까요?”
“……맞는 것 같다.”
벌써 6번이나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왔던 기획팀장이 초췌한 얼굴로 동의했다.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수정 없이 통과라니!
직원들은 진심으로 환호성을 보냈다. 기획팀장이 후후 웃었다. 아직 기쁜 소식이 남아 있었다.
“사장님이 오늘 일찍 퇴근하래!”
“사장님 최고!”
두 번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던 일 마무리하고 퇴근합시다!”
“네에!”
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일을 끝냈다. 소방청 공익 광고의 수정을 위해서 넉넉하게 기간을 잡아놨는데, 수정할 일이 없어졌으니 직원들이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컴퓨터를 끈 직원들이 재빨리 짐을 챙겼다.
띠링-
희희낙락한 얼굴로 짐을 챙기던 기획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알림음이었다.
“응? 문ㅈ……”
띠링-
띠링-
띠링-
전화벨 소리도 아니고 울려대는 휴대폰에 기획팀장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 문자를 확인한 기획팀장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띠링-
띠링-
띠링-
문자 알림음이 마치 전화벨 소리처럼 연속으로 이어졌다. 짐을 모두 챙긴 김지현이 얼어 있는 기획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누구 전화에요?”
“빨리 받아야 하지 않아요?”
멍한 얼굴의 기획팀장이 직원들에게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KBC 방송국…….]
[반갑습니다. MBS입니다…….]
[SBC방송국입니다…….]
[TVM입니다…….]
직원들이 문자를 읽은 와중에도 문자는 계속 도착했다.
[이서준 배우의 광고가…….]
[꼭 저희 채널에서…….]
직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알았지?”
김지현의 말에 직원들과 기획팀장은 일제히 멋들어진 소방청 건물을 떠올렸다. 아마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각자 알고 있는 방송계 사람들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울리는 문자 알림에 기획팀장이 마른세수를 했다.
공익 광고를 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선 방송국에서 공익 광고 타임을 사야 했다. 법으로 방송국마다 공익 광고를 내보내야 하는 비율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상업 광고 타임보다야 싸긴 했다.
“이제부터 사러 갈 생각이었는데…….”
정해진 예산이 있으므로 지상파 삼사 중 한 군데를 골라 문의할 예정이었다.
보통 KBC에 먼저 문의하고는 했던 구름이었다. 그걸 아는지, 타 방송사에서 보내는 문자가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KBC도 안심하지 않고 줄기차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가 돈을 줘야 하는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 우리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아마 직접 주지는 못해도, 뭔가 비슷할 정도의 대가를 주지 않을까?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 광고제작사, 구름의 직원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계속 울리는 문자 알림에 기획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상태로는 퇴근 못 하겠는데?”
대충 예상했던 직원들은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았다.
침울해하면서도 짐을 푸는 직원들의 모습에 기획팀장은 사장님께 보너스를 건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서준과 서은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방송국 전부요?”
“응.”
“지상파뿐만이 아니라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구름에서 전해진 소식에 코코아엔터도 기겁했다.
여기저기서 욕심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계약한 방송사들의 목록에 2팀은 할 말을 잃었다.
“……거의 전부?”
“세상에.”
눈만 깜빡이던 서준이 시선을 내려 다시 한번 종이를 읽었다.
[KBC, SBC, MBC, TVM, OCM, 종편, 케이블…….]
목록을 읽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이렇게 많이 나와도 돼요?”
“뭐, 광고란 게 이 채널에도 나오고 다른 채널에도 나오기는 하는데…… 이 정도로 뿌리진 않지. 돈이 많이 드니까.”
“공익 광고면 예산이 적지 않아요? 이렇게 많이 사면 돈이 모자랄 텐데……”
서준의 걱정에 안다호가 웃었다.
“다들 엄청 싼 가격에 해준다고 난리야.”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가격이라서, 구름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쏟아지는 할인 이외의 대가에 겁을 집어먹기도 했다. 구름의 사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저희가 잘나서 된 거면 제일 좋은 걸 고르면 됩니다만, 저희 회사가 아니라 이서준 배우를 보고 제안하는 거라서 말입니다.’
결국, 코코아엔터의 의견을 묻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코코아엔터도 고심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많이 들으면 질리게 마련이었고, 아무리 ‘이서준’이라도 모든 채널에 쉴 새 없이 나온다면 분명 지겨워할 사람들이 나올 터였다.
‘이미지 소비도 있고……’
그러한 이유로, 코코아엔터는 다른 공익 광고가 방송되는 빈도수보다는 적게, 하지만 최대한 여러 방송국의 광고 타임을 구매할 것을 제안했다.
방송국도 동의했다. 누구 하나가 독점하는 것보다는 다들 입을 맞춰 다른 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문제가 된 건 재생 시간이 긴 너튜브 업로드용 영상이었다. 광고로 내보내기엔 긴 시간대였지만, 영상을 본 방송국 놈들, 아니, 사람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며 기획팀장이 허허롭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결국, 끈질긴 방송국 놈들은 너튜브용 영상을 방송하는 대가로, 앞뒤로 붙을 광고료 대부분을 소방청에 기부하기로 했다.
‘끼워팔기로 파는 다른 광고료는 방송국이 다 먹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끝난 협상을 떠올리던 안다호에게 서은혜가 물었다.
“다호 씨. 그럼 첫 광고는 언제 방송되나요?”
“KBC2 채널에서 방송된답니다. 이번 주 일요일 오후 7시에요. 그리고 8시 40분에 너튜브용 영상이 나옵니다.”
“그때 봐야겠다.”
“응!”
서준과 서은혜가 지인들에게 광고에 대해 알려주는 동안, 각 방송국에서도 보도자료를 뿌리기 시작했다.
[배우 나 진, 소방청 공익 광고 출연!]
[배우 나 진(이서준), 공익 광고 출연!]
[배우 이서준, KBC2 채널 일요일 오후 7시 첫 광고!]
-나 진이 나오다니! 연극 이후로 활동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222 엄청 기다렸음!
=? 이서준 아님? 이서준 활동 많이 했는데?
=속닥)컨셉놀이야
=아…… ㅈㅅ
-그래서 나 진이라는 거야, 이서준이라는 거야?ㅋ
-ㅋㅋ예명도 유명하고 본명도 유명한 배우
-KBC 신난 거 봐라. 무슨 드라마 홍보하는 줄
[배우 나 진(이서준)의 광고, MBS 월요일 10시!]
[배우 이서준(나 진), SBC 화요일 9시!]
-……그냥 시간표 주세요. 알아서 찾아볼게요.
=222 주세요 시간표.
-소방청 공익 광고면 소방청 너튜브에 뜸?
=아직 안 뜬 듯
=빨리 떴으면!
[KBC 편성표 변경! 10분짜리 단편 영상은?]
-??? 공익 광고가 10분이라고?
=공익 영상 아님?
=공익 영상이란 게 뭐야?
=나도 모름. 짧으면 광고, 길면 영상 아닐까?
-근데 10분이면 서준이가 연기했다는 거지? 기대된다!
=ㄴㄴ 나 진
=나 진이나 이서준이나 ㅎ
-이거 조감독이 김수한이야!
=김수한?
=나 진 첫 팬!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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