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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48화 (14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48화

“촬영 시작합니다!”

김수한의 말에 세트장에서 스태프들이 물러났다.

“노래 부르고 있으면 신호 줄게. 그때부터 시작하면 돼.”

“네!”

김수한의 말에 아이들은 신난 얼굴로 7번 방으로 향했다.

서준과 두 아역 배우는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의자에 앉아 노래방 책을 펴는 김주경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김한석은 어느새 한 손에 탬버린을 들고 있었다.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너무 익숙한 거 아니야?”

“아하하. 저번 주에도 친구랑 갔거든.”

“저두요! 탬버린은 제가 제일 잘해요.”

“그럼 누구부터 부를까?”

“진이 형이요!”

“그래. 네가 먼저 해.”

“오케이.”

서준은 외우고 있는 번호를 눌렀다.

리허설이 끝나고 서준은 아이들에게 촬영 중에는 ‘나 진’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오디션 신청서까지 나 진이라는 이름으로 냈다는 말에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과 아이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이, 세트장 구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 렌즈가 아이들을 비췄다.

김수한이 신호를 보내자,

[(선)모스족의 연상기억이 발동됩니다.]

나 진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냄새요?”

김한석이 킁킁거렸다. 김주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 이상한 냄새가 나.”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나 진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매캐한 냄새가 심해졌다. 나 진이 복도로 몸을 살짝 빼고 복도 끝을 보았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마치,

“연기다.”

나 진의 말에 두 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연기면 불난 거 아니야?”

“불이요?”

“연기만 보이긴 하는데, 불난 것 같아.”

나 진의 말에 두 아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두려움 가득한 표정. 나 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서준의 모습은 그저 두려움만 나타내는 두 아역 배우와는 달랐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손, 급하게 몰아쉬는 숨.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두근두근대는 심장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서준의 연기가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모니터로 보고 있던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 스태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진 나트라도, 그레이도 아닌 그저 화재에 맞닥뜨린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그런 서준의 연기에, 김한석과 김주경도 빨려들기 시작했다. 가짜 연기인 걸 알면서도 매캐한 냄새에 겁이 났다.

“혀, 형…….”

“진아…….”

아이들의 겁먹은 목소리에,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던 나 진이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 진은 떠올렸다. 학교에서 배운 대피방법을.

“일단, 나가야 해.”

나 진은 빠르게 자신과 아이들의 옷차림을 살폈다. 겨울이었다면 옷 소매를 물로 적셔 입을 막았겠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짧은 티셔츠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노래방 안을 살피던 나 진이 휴지를 발견했다.

“휴지. 휴지를 적셔서 입을 막자.”

“휴지…… 너무 적은데…….”

“적어도 막아야 해.”

나 진의 단호한 말에 김한석과 김주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장 되지 않는 휴지를 나누어 사 왔던 물로 적셨다.

“자, 한석아. 한 장 더 해.”

“근데…… 누나는…….”

“누나는 괜찮아.”

김주경이 울먹거리는 김한석에게 휴지 한 장을 건네자, 나 진도 말없이 김주경에게 자신의 휴지 한 장을 건넸다. 김주경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겨우 그것뿐이었지만, 세 아이의 긴장이 풀어졌다.

“나가자. 빨리 나가야 해.”

“응!”

“밖에 나가면 허리를 숙여서 몸을 낮춰야 해. 말도 적게 하는 게 좋다고 했어.”

나 진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7번 방의 문이 열렸다.

“컷! OK!”

연기가 멈추고 촬영장 내의 환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러 대의 선풍기가 연기를 밖으로 내몰았다.

그사이, 아역 배우의 보호자들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보호자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상쾌한 얼굴로 재잘댔다.

“진이 형, 진짜 연기 잘한다.”

“그러게. 진짜 겁먹은 줄 알았어.”

“너희도 잘하더라.”

김한석과 김주경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었다.

“우린 진짜 겁먹었어.”

“형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순간 착각했어요. 진짜 불났나 싶었다구요.”

“맞아. 대사도 까먹을 뻔했어.”

어라? 그러면 안 되는데?

배역이 평범한 초등학생인 만큼 겁내는 연기를 했더니 예상보다 더 몰입했던 모양이었다.

‘근데, 이럴 때 NG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서준의 시선이 박중우 감독에게로 향했다.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이 열심히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말 없는 걸 보면, NG 낼 정도는 아니었나?’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그랬어? 그럼 조금 약하게 할까?”

“그러면 좋죠!”

“알았어.”

좀 더 약하게. 서준이 연기의 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때,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의 실랑이는 이어지고 있었다.

“종우 형. 과한 몰입도 좋지 않아요. 형이 적절히 잘라줘야죠.”

“나도…… 나도 아는데…….”

김수한의 말에 박중우 감독은 이마를 짚었다.

“이서준을 찍는데 이 정도 임팩트도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 다들 저런 배우를 썩힌 감독한테 뭐라고 할걸?”

그 말에 김수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중우의 부담감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서준이 나오는데 그냥저냥 한 영상이라니, 감독의 역량을 의심할 만했다.

“형. 이건 공익 광고라서 괜찮아요.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김수한의 말에 박중우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건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었고, 겨우 몇 분짜리 영상이었다. 그것도 공익 광고.

그저 이서준이 나온다는 점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였다. 그걸 아는데도 박중우 감독이 좀 더 잘, 인상 깊은 장면을 찍고 싶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언제 이서준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냐?”

박중우 감독의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에 김수한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 *

“레디, 액션!”

연기가 퍼지는 복도를 몸을 숙인 아이들이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나 진이 제일 앞에 섰고 김한석과 김주경이 그 뒤를 이었다.

아이들은 코인노래방 입구로 향했다. 항상 자동으로 열리던 문이, 화재 때문에 고장이라도 난 건지 굳게 닫혀 있었다.

“닫혔어!”

코인노래방 입구의 자동문이 닫혔다. 세 아이가 열려고 노력해도 자동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 진과 김한석이 자동문에 매달려 있는 사이, 김주경은 주위를 둘러보다 초록빛을 발견했다.

“비상구! 진아, 한석아! 비상구로 나가자!”

“응!”

김주경은 계산대에 있던 휴지에 물을 들이부어 김한석과 나 진에게 나누어주었다. 두꺼워진 휴지에 안심된 아이들이 잠시 소리 없이 웃고 초록빛이 나오는 쪽으로 향했다.

비상구로 나가서 내려가든가 올라가면 된다. 아이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몸을 숙이고 앞장서던 나 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 뒤를 따르던 김한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형, 안 가요?”

“진아? 왜 그래?”

“……안 돼…….”

떨리는 나 진의 목소리에 김한석과 김주경이 나 진의 옆에 섰다. 뿌연 연기 속, 유일한 희망이었던 비상구는 막혀 있었다. 코인노래방에서 나온 쓰레기와 음료수 상자, 무거워 보이는 상자들.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김한석이 코를 훌쩍였다.

“……치울 수 있을까?”

김주경의 말에, 팔로 눈물을 닦아낸 나 진이 상자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두 아이도 나 진을 도왔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힘을 주었지만, 안에 뭐가 들었는지, 상자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안 움직여…….”

“으흐흥…….”

나 진의 물기 가득한 목소리에, 김한석과 김주경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그때였다.

우지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끝에서 주황색 불빛이 비쳤다. 이리저리 일렁이는 모양새가 마치 불같았다. 아니, 불일 터였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흐으으…….”

두려움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동자에, 나 진이 숨을 몰아쉬었다.

매캐한 연기가 폐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두려움으로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울음이 나올 것 같아, 나 진은 이를 꽉 깨물었다.

진정해야 해. 침착해야 해.

나 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 아빠를 떠올렸다.

주말에 외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다. 방학 때는 바다에 가기로 했다. 나 진은 커서 배우가 되고 싶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여기서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후우…….”

무거운 숨을 뱉어낸 나 진이 김한석과 김주경의 떨리는 손을 꼬옥 붙잡았다. 눈가가 시뻘건 두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 진을 바라보았다.

박중우 감독은 무의식중에 서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모니터 화면 위로 나타난 서준의 얼굴에 모두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믿음직한 슈퍼히어로나 영웅의 얼굴은 아니었다. 떨리는 손, 꽉 다문 입술, 떨리는 눈썹이 나 진의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군데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진의 검은 눈동자.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은, 단단한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나가자.’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동자가,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

멍하니, 서준을 올려보던 김한석과 김주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다른 방법을 찾자.”

나 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두 아이를 진정시켰다. 어느새 김한석과 김주경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나 진의 마음을 이어받아 단단한 눈빛을 갖게 된, 김주경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문도 안 열리고 비상구도 막혔어. 어디로 가지?”

“방으로 돌아가자.”

“방으로요?”

우지끈 소리가 들리고 주황, 빨간 불빛이 춤을 췄다. 그 급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젖은 휴지로 입을 막은 세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 틈을 막자. 연기가 못 들어오게. 창문 쪽에 있으면 소방관 아저씨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도 쉬울 거야.”

“그러자.”

김주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한석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대에 걸레랑 휴지가 많았어. 그거 들고 가자.”

“네!”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컷! OK!”

오케이 소리가 나도 촬영장은 조용했다.

김주경과 김한석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뭔가, 지금까지 했던 연기보다 한 걸음 나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음, 이 상태 그대로 다음 장면을 촬영하고 싶었다.

조용한 아이들의 모습에 보호자들은 침만 삼켰다.

‘이게 이서준과 함께한 아역 배우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이유인가?’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 봐, 보호자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박중우 감독과 김수한도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과몰입이라고 말했던 김수한조차도 서준의 연기를 그저 평범한 광고로 내보낼 마음을 던져 버렸다. 스태프들도 입을 다물고 열심히 제 할 일을 했다.

광고제작사 구름의 직원들은 이걸 광고로 내보내도 되나, 광고로 내보내기엔 아주 멋진 연기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촬영장의 분위기에 안다호는 웃고 말았다.

‘평범한 초등학생 연기를 한다더니…….’

평범하기는 했다. 평범하게 겁먹고 평범하게 두려워하는 나 진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눈빛 연기가 모든 걸 바꿔 버렸다.

평범한 누군가도 위기에는 영웅이 되게 마련이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의 특별함이 모두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응원하게 만들었다.

안다호도 마찬가지였다. 대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연기를 보여준 자신의 배우가 자랑스러웠다.

온갖 생각이 가득한 촬영장에서 홀로 태평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구름에서 준비한 과자를 한 입 베어 물다가, 안다호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 조금 전 멋진 눈빛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서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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