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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47화 (1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47화

공익 광고 출연이 정해지고, 서준은 알맞은 능력을 찾기 위해 생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연기에 어울리는 능력을 찾았을 테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아이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하고 바랐다.

“첫 생에도 사고로 죽었으니까.”

화재 사고는 아니었지만, 불의의 사고는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다 큰 어른이었던 첫 생의 그도 아쉽고 또 분했다. 하물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은 얼마나 아쉽고, 또 부모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엄마 아빠도 그렇겠지.’

서준의 눈가가 천천히 달아올랐다. 엄마 아빠가 엉엉 우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맺혔다.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지만, 아이라도 대피할 수 있는 사고라면, 당황하지 않고 대피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크흥. 훌쩍인 서준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종족을 기억해 냈다.

“물론 전부 통하진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100% 통하는 최상급 능력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중하급 능력이라도 서준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모스족.”

모스족의 책장 앞에 선 서준이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모스족은 문자가 없었다. 오직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모스족의 역사. 그것은 모스족의 기억력을 점점 자극했고 하나의 능력이 되게 했다.

모스의 기억 능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진처럼 똑같이 기억하는 기억법, 흉터처럼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법, 평소 생활에 영향을 주기까지 하는 세뇌 수준의 기억법.

물론 그건 악의 도서관에 있었다.

서준은 그중 하나를 골랐다.

“이거다.”

[(선)모스족의 연상기억-중하급]

모스족의 연상기억법입니다.

발동 조건에 따라 기억이 떠오릅니다.

발동 조건 :

연상기억법. 일상생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고 특정 사물이나 단어, 생각으로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기억법이었다.

“발동 조건. 화재, 연기, 비상벨.”

[(선)모스족의 연상기억-중하급]

모스족의 연상기억법입니다.

발동 조건에 따라 기억이 떠오릅니다.

발동 조건 : 화재, 연기, 비상벨.

이마 한가운데에 새겨진 능력의 문양을 매만지던 서준이 웃었다.

이제 [(선)모스족의 연상기억]의 능력이 통한 아이들은 ‘화재, 연기, 비상벨’ 중 하나와 관련이 된다면 저절로 공익 광고나 서준의 연기를 떠올릴 것이었다.

“방법만 알고 있어도 대피할 수 있을 거야.”

중하급 능력이라 광고를 보는 사람 중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서준은 기도했다.

부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능력이 효과가 있기를.

* * *

촬영장.

세트장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확인하고 있던 김수한에게 B 역을 연기할 아역 배우, 김한석의 보호자가 다가왔다.

“저기…….”

“네?”

“혹시 김수한 감독님 아니세요?”

“어…… 네. 맞습니다.”

얼빠져 있던 김수한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보호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영화제 수상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영화제 수상 때, 기사랑 사진 엄청 떴었잖아요. 게다가 나 진 배우의 첫 팬이시고.”

“아. 그랬었죠.”

볼을 긁적이는 김수한을 보며 스태프들과 C 역 아역 배우, 김주경의 보호자들이 휴대폰을 검색했다.

맞네. 김수한 감독! 나 진 첫 팬!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는 소리에 박중우 감독이 낄낄 웃었다.

“저기…….”

“네.”

김한석의 보호자가 목소리를 죽였다.

“혹시 감독님 작품 구상하시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아하.

본론은 이거였나 보다. 김수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지.’

나 진의 첫 팬으로 알려졌을 때는 그저 부럽다는 반응이었지만, 김수한이 감독으로서, 작년 영화제 때 수상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셋 중 하나였다.

첫째는, 나 진, 그러니까 이서준과 한 번 연이 있었던 만큼 김수한의 작품에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과 제작배급사.

둘째는 위와 같은 이유로, 서준이 출연할 수도 있는 작품에 함께 출연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

셋째는 김수한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나 진을 알아본 김수한 감독이 선택한 아역 배우’라는 타이틀을 노리는 아역 배우들과 보호자들.

셋째는 대학생 영화제 때 떴던 기사 때문이었다.

[나 진을 알아본 김수한 감독이 선택한 아역 배우는 과연 누구?]라는 제목으로 잔뜩 어그로를 끌었던 기사.

‘내 영화엔 아역 배우는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내용과 상관없이 기사의 조회 수는 엄청났었다. <나 진을 알아본 김수한 감독의 작품에 나온 아역 배우의 잠재력은 이서준 배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라는 결말로 댓글은 욕뿐이었지만 말이다.

‘이쪽은 세 번째겠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호자에게 김수한이 말했다.

“작품은 아직 구상한 게 없습니다.”

“그럼 출연할 아역 배우가 필요하다면 연락해 주세요. 저희 한석이가 연기를 잘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김한석의 보호자가 명함을 건네고 가자, 끼어들 타이밍을 보고 있던 김주경의 보호자도 얼른 김수한에게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인기 많네. 김수한 감독님.”

“……형. 서준이한테 말해버린다? 낙하산?”

“치, 치킨 사 줄까?”

박중우에게서 치킨 두 마리를 뜯어낸, 김수한이 자신을 가리키며 무어라무어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보호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진짜가 등장할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때, 세트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던 기획팀장이 휴대폰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전화를 받는 모습이 박중우와 김수한의 눈에 들어왔다.

“……왔다.”

촬영장 밖으로 나가는 기획팀장의 뒷모습에, 서준의 출연을 아는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을 내리눌렀다.

* * *

안다호의 연락을 받은 광고제작사, 구름의 기획팀장이 서준과 안다호를 반겼다.

기획팀장은 인사를 하는 중에도 슈퍼스타, 이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인받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은 채, 기획팀장은 두 사람을 촬영장 안으로 안내했다.

“이쪽은 감독이신 박중우 감독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자 어찌할 줄 몰라 하던 박중우 감독이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독립영화제에서 몇 번 입상을 한 경력이 전부인 박중우가 스타, 그것도 슈퍼스타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솔직히 여기 처음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구름에서 서준의 출연을 아는 직원들도 뭐 도울 일이 없을까 하는 핑계를 대고 촬영장을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는 마당이었다.

아니. 한 사람이 있었다. 직접 그 연기를 들었던 한 사람. 박중우의 옆에 서 있는 김수한이었다.

김수한은 뻘쭘하게 서 있었다. 서준에게 나 진의 첫 팬이 자신이라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수한은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같이 촬영하게 된 게 정말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좀 그런가?’

어색하게 서 있는 김수한을 박중우가 소개하려던 찰나,

“어. 수한이 형이죠?”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설마 최애 배우가 자신을 알아볼 줄은 몰랐던 김수한과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도 익숙한 얼굴에 놀랐던 참이었다. 영화감독이 됐다는 소식에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공익 광고 촬영장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참, 신기한 인연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영화제 수상 때 찍은 사진 봤어요. 금상 수상 축하드려요.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서준의 말에 김수한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이 뻐근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내 최애 배우가 날 기억하고 있어! 상 타길 정말 잘했다.

“고마워.”

“에헤헤헤.”

기획팀장이 두 아역 배우를 소개했다. A 역이 누구일까 속닥거리던 5학년 김한석와 6학년 김주경은 서준이 촬영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입을 쩌억 벌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같이 왔던 보호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공익 광고라서 이력서에 한 줄이나 넣을 겸 왔더니 생각지도 못한 보물이 있었다.

‘김수한 감독님을 본 것도 엄청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서준이라니!’

서준과 함께했던 어린이 연극 ‘봄’의 아역 배우들은 성공의 크기를 떠나서 여전히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늘 촬영은 그보다 부족하긴 해도, 아이들의 연기 생활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안녕?”

서준의 인사에 얼어붙어 있던 두 아이가 얼른 입을 열었다.

“안녕! 난 김주경이라고 해. 6학년이고.”

“나도 6학년이야. 잘 부탁해.”

“안녕하세요! 전 5학년, 김한석이라고 해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두 아역배우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서준이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서준과 안다호는 동시에 생각했다.

‘나보다 어린 배우랑 촬영하는 건 처음인데?’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존경하는 듯한 김한석의 눈빛에 서준은 뭔가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꼈다.

“동선 확인하겠습니다!”

김수한의 말에 서준의 출연으로 들떠있던 촬영장이 점점 가라앉았다.

실내촬영장 한가운데에는 구름 제작팀에서 만든 세트장이 있었는데, 배경은 요즘 아이들이 잘 가는 코인노래방이었다.

코인노래방은 방이 많아서 복잡한 데다가, 여기저기서 노랫소리가 들려서 큰 소리를 못들을 수 있는, 사고가 난다면 꽤 위험한 곳이었다.

아역 배우들과 보호자 앞에 선 박중우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연기는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백호 소방안전체험관에서 쓰는 제품을 받아왔습니다. 냄새가 불쾌할 수도 있지만 걱정 안 해도 돼요.”

“네!”

아이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럼 들어가자.”

김수한은 아이들을 세트장으로 데려갔다.

“처음 시작은 이 방에서 하는 거야.”

“네.”

서준과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한쪽 벽이 뻥 뚫린 코인노래방 7번 방은 마치 드라마 촬영장 같았다. 뻥 뚫린 곳 너머에는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있었다.

김수한과 함께 동선을 확인한 아이들은, 이번에는 동선과 함께 대사를 맞추었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연기도 피어올랐다.

리허설이 끝나고 아이들이 잠시 쉬는 사이, 카메라로 찍은 리허설 장면을 돌려보고 있던 박중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네? 뭐가요?”

흐뭇한 얼굴로 모니터 속 서준을 바라보던 김수한이 물었다.

“각오했던 것보다 찍기 쉽달까? 연기는 잘하는데 그레이 바이니나 진 나트라 같은 박력이 없달까?”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옆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기획팀장이 동의했다. 스태프들과 보호자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 안의 아이들은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 코인노래방을 벗어나기 위해 궁리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연기하고 있지만, 서준의 연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인상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한껏 긴장하고 왔던 박중우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게 다 감독놀음이었나?”

“아니에요. 중우 형.”

“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중에 동의하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서준의 매니저 안다호와 나 진의 첫 팬인 김수한이었다. 김수한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서준이의 연기를 직접 보면 그런 소리를 못해요. 형. 진 나트라와 그레이 바이니랑 지금은 경우가 달라요. 이건 공익 광고고 저기 있는 세 아이가 맡은 역은 평범한 아이들이잖아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과거를 가진 빌런도 아니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닌 그냥 초등학생이요.”

김수한이 눈을 반짝였다.

“오히려 대단하지 않아요? 그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도 있는데 온전히 작품을 위해서 형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존재감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이요.”

김수한의 말에 박중우와 사람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두 아역 배우와 재잘대고 있는 서준은 그저 평범한 6학년 아이로 보였다.

안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서준이를 잘 모르는 모양이네.’

평범한 아이로 만족할 서준이 아니었다. 대본 속의 캐릭터성은 부수지 않으면서도 특별함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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