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46화 (14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46화

코코아엔터와 광고제작사, 구름의 회의가 끝나고 안다호가 서준에게 연락했다.

“나 진으로 출연료 받기로 했어. 대본 수정은 없고, 나오는 아역 배우들의 배역 이름은 본명으로 하기로 했다던데…….”

-전 나 진으로 해야겠네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었다.

“이서준으로 해도 상관없대.”

-나 진으로 신청서 냈으니까, 나 진으로 할래요.

“그래, 그럼. 그리고 촬영 전까지 연기에 익숙해져 달라고 하더라. 오디션도 백호 소방 안전 체험관에서 볼 거래.”

-백호 소방안전체험관요?

의문이 가득한 서준의 목소리에 안다호가 설명했다.

“소방청에서 만든 안전 체험관이야. 거기서 지진 체험, 태풍 체험, 연기 피난 체험을 할 수 있대.”

그러고 보니,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같이 그런 곳에 간 기억이 있었다.

기계 위에서 심하게 흔들리던 지진 체험, 바람이 엄청 불던 태풍 체험,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 비상구로 향하는 연기 피난 체험.

휴대폰으로 통화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3학년 때, 학교에서 간 적 있어요. 이름은 다르지만요.

“이번에 새로 만든 곳이래. 서준이가 간 곳은 옛날 체험관인가 보다.”

-학교 피난 체험으로 익숙해졌다고 했는데, 연기 피난 체험실은 또 달라서 저도 애들도 엄청 놀랐어요. 근데 거기서 오디션을 봐요?

‘보통은 사무실에서 볼 텐데…… 어둡고 연기로 가득해서 연기하기 힘들지 않을까?’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답했다.

“연기력도 보긴 하는데, 아무래도 촬영장에서 패닉을 일으키면 안 되니까, 여기서 보고 침착한 아역 배우들에게 가산점을 준다더라고.”

-그건 그렇겠네요.

막상 촬영장에서 가짜 연기를 보고 놀라서 울거나, 갇혀 있다는 생각에 꼼짝달싹도 못 하게 된다면 촬영을 이어나가기 힘들 터였다.

안다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시간 날 때, 백호 체험관에 갈 생각인데, 어때?”

-좋아요. 저도 가 보고 싶어요.

서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 상대는 보지도 못하는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을 보며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광고제작사 ‘구름’이 바빠졌다.

이번 광고의 감독을 맡은 박종우와 함께, 백호 소방 안전 체험관에서 오디션을 끝내고 결정된 아역 배우들에게 대본을 보냈다.

제작팀에서는 광고를 촬영할 세트장을 만들고, 기획팀은 협조해 줄 가까운 소방서를 섭외했다.

바쁜 와중에도 구름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배우가 출연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소방청에 이서준 출연한다고 이야기해야 되지 않아요?”

“그러게요. 슬슬 말해야 하지 않아요?”

모두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말 못 해.”

“……이서준이 나온다고 말 못 한다고요? 왜요?”

“맞아요. 예산이 엄청 늘어날 텐데요?”

“높으신 분들이 오니까.”

팀장의 말에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이해했어요.”

“그 한마디로 다들 이해시키다니. 팀장님, 요약 잘하시네요.”

“이서준이 온다고 하면, 높으신 분들이 총출동하겠네요.”

“어쩌면 소방청이 끝이 아닐 수도 있고요.”

서준이 나타난다면 시의원부터 국회의원까지, 여기저기서 인지도 상승용, 선거 홍보용 사진을 찍으러 올 수도 있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라면 끼어들 명분도 없지만, 공익 광고 촬영이라니, 얼마나 적당한 명분인가.

그들에게 시달리는 서준을 상상하던 직원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정말 말 안 해도 될까요?”

“코코아엔터랑 그렇게 계약했어. 소방청 광고 시사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만약에 소방청에 알려줬다가 이서준이 공익 광고 안 찍으면 우리가 책임져야 할걸. 이서준이 출연할 수도 있었던 공익 광고를 걷어찼다고 기사까지 나겠지. 우리만 엄청 까일 거야.”

하나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 팀장의 예언에 직원들이 몸서리를 쳤다.

“그러니까 다들 촬영 끝날 때까지는 입 다물고 있어.”

“넵!”

“슬슬 배우들에게 촬영 날짜 알려주고.”

“네에!”

“근데 감독님한테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서준 배우가 출연한다는 거요.”

김지현의 말에 팀장이 멈칫거렸다.

“……아직 안 알려드렸나?”

“……네.”

“얼른 알려드려.”

“넵!”

김지현이 얼른 바나나톡을 보냈다.

* * *

“내가…… 그 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종우 형. 이거 좀 먹으면서 마셔요. 오늘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구시렁구시렁 대던 박종우가 흐흐흑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낮부터 박종우와 술을 마시고 있던 김수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술인 종우 형이 이 정도 술에 취할 리는 없으니, 가벼운 술기운을 빌려 눌러두었던 마음을 겨우 내보내는 것이리라.

그 억울하고 답답한 박종우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많고 많은 시나리오 중 흥행할 것 같은 좋은 시나리오를 사서 여기저기 발품 팔아서 투자받아놨더니, 손 놓고 있던 제작사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감독을 바꿔버렸다.

박종우의 항의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남은 건 제작사에서 적선하듯 던져준 시나리오 값뿐이었다.

“우리가 다 해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놨는데…… 그 새끼들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흐느끼던 박종우는 바닥에 드러눕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종우 형 집이라서 다행이지. 김수한이 한숨을 쉬었다.

“근데, 이제 진짜 어쩌냐…….”

속이 쓰렸다. 대학생 영화제 때,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도움을 줬던 종우 형이었다.

그 보답으로 김수한도 이번 박종우의 작품을 도와주었다.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갈 날만 기다리며, 그렇게 몇 달을 고생했고, 그게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군대 가기 전에 작품 하나 하고 가나, 싶었더니…….”

글렀다.

쓰려 오는 속에, 김수한은 다시 한번 맥주를 들이마셨다.

바톡!

박종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수한이 박종우를 흔들었다.

“형. 바톡 왔어요.”

“어어?”

“바톡이요.”

“어어…… 폰 좀…….”

김수한은 허공을 휘젓는 박종우의 손에 휴대폰을 올려주었다. 박종우는 흔들리는 시야로 바나나톡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감독님. 광고제작사 구름입니다.

>A역 배우가 정해져서 알려드립니다.

광고제작사.

그 글자에 박종우가 정신을 차렸다.

“누구예요?”

“광고 회사.”

“아, 거기요.”

박종우와 김수한이 영화 투자금을 만들기 위해 계약했던 광고제작사, 구름.

이 일 이외에도 투자금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영화도 뺏긴 마당에 투자금이 뭔 소용이냐 싶었지만, 계약까지 해서 엎기도 힘들었고, 두 사람 다 맡은 일을 별 이유 없이 엎을 성격도 아니었다.

‘영화 대신 이거나 열심히 찍어야겠다.’

“수한아, 나 찬물 좀.”

“네.”

김수한이 건네준 찬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박종우가 답장을 보냈다.,

<아, 배우가 정해져 있다던 역이요.

박종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치킨을 씹어먹고 있던 김수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아니, 우리 쪽 못지않게 배우 쪽도 엄청 어둡구나 싶어서.”

“뭔 소리에요?”

“공익 광고를 찍는데, 낙하산이 있어.”

“낙하산이요?”

“어. 오디션도 안 봤어. 누군진 몰라도 연기가 참 기대된다, 기대돼.”

비아냥거리는 박종우의 앞으로, 김수한은 조용히 치킨과 맥주를 밀어주었다. 박종우의 작품을 가져간 감독은 제작사 사장의 조카였다. 낙하산이라는 단어에 이를 가는 박종우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바톡-

박종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바나나톡 알림에도 박종우는 계속 맥주만 들이켰다.

“안 봐요?”

“뭐, 누구누구 배우가 내정됐다는 거겠지.”

“그래도 봐요. 누군지 알아야 대비를 하죠.”

“……그래.”

박종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켜며 문자를 확인했다. 맥주를 들이마시던 박종우의 눈이 바나나톡의 메시지를 읽을수록 점점 커지더니,

푸흑-!

맥주를 뿜었다.

“아, 형!”

김수한이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 세례를 받은 치킨이 차갑게 죽어가고 있었다.

“아직 몇 개 먹지도 못했는데!”

김수한은 얼른 위에 있는 치킨을 들어내고 아래에 깔린 치킨을 살폈다. 다행히 밑에 있던 치킨은 무사했다.

“수, 한아…….”

“바닥도 엉망이잖아요! 얼른 닦아요!”

“김…… 수한…….”

휴지로 바닥을 닦고 있던 김수한이 박종우의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새하얗게 질린 안색의 박종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고 있었다.

“……네?”

“이거 좀 읽어봐. 내가 술이 많이 약해졌나 봐. 헛것이 보여.”

“……? 네.”

박종우의 휴대폰을 받으며 김수한이 말했다.

“술 약해진 것 같긴 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형.”

“일단, 좀 읽어봐.”

박종우의 재촉에 어깨를 으쓱인 김수한이 바나나톡 메시지를 읽었다.

>감독님. 광고제작사 구름입니다.

>A역 배우가 정해져서 알려드립니다.

<아, 배우가 정해져 있다던 역이요.

>네. 늦게 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A역은 나 진 배우가 하기로 정해졌습니다. 이서준 배우요.

>그럼 촬영 날 뵙겠습니다.

김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나 술 별로 안 마신 것 같은데, 왜 헛것이 보이지? 눈을 비빈 김수한이 다시 바나나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형, 나도 헛것이 보이나 봐요.”

“그렇지? 왜 배우 이름이 이서준으로 보이냐?”

“……형도 그렇게 보여요?”

새하얀 안색의 박종우와 김수한이 서로를 쳐다봤다. 마주친 두 사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 자자, 잠시만.”

박종우가 손을 떨며 휴대폰을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광고제작사, 구름이었다.

김수한도 뜻밖의 곳에서 만나게 된 최애 배우의 이름에 숨도 쉬지 않고 박종우만 바라보았다.

1초가 10년 같았던 연결음이 끊기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예. 팀장님. 바톡 메시지를 봤는데…… A역 배우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는 박종우의 얼굴이 다양하게 변해갔다. 의심이 가득했던 얼굴,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하는 얼굴, 그리고 끝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김수한은 그런 박종우의 표정은 처음 보았다. 이번 시나리오를 발견했을 때도, 투자를 받게 되었을 때도 이렇게 기쁘고 감격한 얼굴이 아니었다.

“종우 형, 진짜? 진짜로 이서준이에요?”

“그래!”

“와씨! 진짜요?”

“계약까지 다 끝냈대! 내가 이서준이랑 촬영하다니!”

박종우가 눈물을 글썽였다.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기뻐하던 김수한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웃었다.

“뭐, 배우 쪽도 엄청 어둡구나, 싶어요?”

“억.”

김수한의 말에 무슨 말이지? 생각하던 박종우가 숨을 멈췄다. 그제야, 제가 술을 마시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낙하산? 누가 낙하산이라고요? 서준이가 들으면 실망하겠어요. 형.”

“아니, 야! 내가 이럴 줄 알았냐!?”

“서준이 연기가 그렇게 기대가 된다니, 서준이에게 알려주고 싶네요. 아참, 저도 촬영 같이 하죠? 확 말해버릴까 보다.”

“내가 잘못했어!”

박종우의 말에 김수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수한은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치킨 2마리를 요구했다. 박종우는 얼른 양념 하나, 후라이드 하나를 시켰다.

치킨이 배달 오는 동안, 박종우와 김수한은 계속 바나나톡 메시지만 보고 있었다.

“이거 꿈은 아니겠지?”

봐도 봐도 메시지는 바뀌지 않았다.

박종우가 마냥 기뻐하고 있을 때, 김수한은 나 진을 떠올렸다. 이서준을 떠올렸다.

화면 밖까지 전해지는 연기력. 전 세계가 인정한 그 대단한 배우의 연기를 우리가 찍어야 했다. 그걸 깨닫자, 기쁨으로 떨리던 심장이,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뛰기 시작했다.

“종우 형.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요?”

“어?”

“우리가 이서준의 연기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요?”

김수한의 떨리는 목소리에, 박종우는 그제야 자신이 ‘이서준’의 연기를 찍어야 한다는 걸 정말로 실감할 수 있었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