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45화
짧아도 드라마인 만큼 경력 있는 아역 배우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구름의 오디션 공지는 아역 배우 전문 소속사와 연기학원에 전해졌다.
단 한 군데만 빼고.
* * *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 전담팀인 2팀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침에 출근하면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이서준의 기사와 댓글을 확인한다.
“쉐도우맨3에 대한 기대 글이 많네요.”
“차기작 기다린다는 팬들도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미지도 좋고, 할리우드 배우라는 이름이 무겁게 다가오는 탓인지, 좋은 기사들뿐이라서 마음 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다음 할 일은 전날 들어온 대본과 시놉시스를 프린트하는 것이다. 인쇄기가 빠르게 작동하고, 직원들은 인쇄된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한다. 그다음, 직접 서준에게 설명할 안다호 팀장을 중심으로 회의가 시작된다.
“이 제작사는 꾸준히 보내네요.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지가 언젠데…….”
“이거 괜찮지 않아요?”
“저도 읽어볼게요.”
미리 작성해 둔 블랙리스트의 감독과 작가, 제작사 등 작품에 영향을 주는 인물들의 시놉시스를 골라낸 뒤, 읽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만 빼고는 점수를 매겨, 안다호 팀장 편으로, 서준에게 보낼 상자에 담는다.
들어오는 작품이 많은 만큼 이 일이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다음은 광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서준인 만큼, 광고 한 편만으로 전 세계의 시장을 노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하루 사이에 들어오는 출연 제안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것도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쏟아졌다.
문제는 유명해진 만큼 광고도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아예 나쁘지 않은 대본과 시놉시스만 골라내던 안다호 팀장과 2팀 직원들도 여기서는 아주 신중해진다.
제품과 회사에 대해 검색해, 후기와 기사들을 확인한다.
“여기 발암물질 나왔답니다.”
직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저 패딩이 서준의 광고로 전 세계에 팔려 나갔으면……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졌을 거다. 서준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아주 조그마한 불똥이라도 튀었을지 모른다. 서준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게 큰 불똥이 됐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냥 광고는 안 찍고 드라마랑 영화만 찍어도 좋을 것 같아요.”
2팀 직원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오늘도 2팀 직원들의 날카로운 눈을 통과하는 광고 출연 제안서는 적었고, 서준에게 선택당한 제안서는 아예 없었다.
그렇게 전날 들어온 모든 메일과 우편을 정리하고 나면 다음은 인터넷 서핑을 할 시간이었다.
배우들과 제작사들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이트부터 카페나 블로그까지, 다들 입을 다물고 [오디션]을 검색했다.
[광고 오디션]
[연극 오디션]
[독립영화 오디션]
간간이 올라오는 기사와 게시글을 확인하면서, 오디션을 찾고 있었다. 오디션 글보다는 오디션에 나갔다는 후기와 연기학원 홍보 글이 많긴 했지만 말이다.
“여기 오디션 공고 있어요!”
직원이 반색하며 게시글을 클릭했다. 오디션 공고만 올라오는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소방청 공익 광고네요. 있어요, 팀장님?”
회사 메일함을 살피던 안다호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소방청의 ‘ㅅ’ 자도 없었다.
“없습니다.”
“그럼 프린트할게요.”
오디션 공고를 발견한 직원이 프린터기를 작동시켰다. 지잉 소리와 함께 여러 장의 종이가 인쇄되어 나왔다. 2팀 직원들이 하나씩 나눠 읽었다.
[소방청 공익 광고 오디션 공고]
[나이 제한 : 12~13세(초5~초6)]
[제작사 : 구름]
광고제작사, 구름. 블랙리스트에는 없고. 오디션 날짜는 주말.
직원들은 익숙하게 공고를 확인했다.
“나이 제한도 딱 서준이 나이인데 어째서 안 왔을까요?”
“뭐, 출연료 때문이겠죠.”
서준이 골든글로브상과 오스카상을 받고 난 후, 미국 언론에서 ‘서준 리의 출연료’를 계산한 적이 있었다.
제작비 1,000억 미만을 저예산 영화라고 부르는 할리우드에서의 서준 리의 출연료는 한국을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좀…….”
“한국이랑 미국이랑 상황이 다르니까, 출연료도 다르게 잡을 텐데 말입니다.”
2팀 직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할 수도 없는 출연료에 겁을 먹고, 아예 제안을 보내지 않는 곳이 종종 있었다.
물론 아주 적었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서준이 출연했다고 하면, VOD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충분히 이득을 낼 수도 있을 테니까.
‘그 덕분에 서준이 출연하면 늘어날 투자금에, 막무가내로 대본과 시놉시스를 던지는 곳도 늘었지만 말이야.’
서준이 출연하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 나불나불 무계획 같은 계획을 늘어놓는 곳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이건 공익 광고라서 따로 수익을 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안 보낸 모양입니다.”
“재능기부 강요 안 해서 좋긴 하네요.”
그 말에 모두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무슨 협회에서 재능기부를 강요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안다호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오디션 공고를 보면 항상 그때의 일이 떠오르고는 했다.
흥행만 노리던 차기작 리스트가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른 작품을 선택했던 자신의 배우.
“서준이가 이 오디션을 선택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 연극 ‘봄’ 같은 상황이 오는 건 사양입니다.”
“맞아요. 2팀이 있는 이유가 서준이를 서포터하는 건데, 서준이가 직접 오디션 공고를 찾다니, 본말전도죠.”
그 이후, 2팀 직원들은 어떤 오디션 공고라도, 어떤 시놉시스라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다.
그중에도 물론 사기꾼 냄새가 풀풀 나는 오디션도 있었지만, 그걸 골라내는 게 2팀의 일이었다.
“그럼 확인해 봅시다.”
안다호의 말에 직원들이 잡담을 멈추고 오디션 공고를 확인했다.
“제대로 만들 것 같다는 점에서 플러스.”
“일단 소방청 공익 광고라는 점에서 플러스. 따로 확인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광고인데 재생 시간이 5분에서 10분. 웹드라마 같네요.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플러스.”
“공고에 시놉시스가 없습니다. 이건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작사에 메일 보낼게요.”
“제작사에서 시놉시스나 대본을 보내는 대로, 서준이에게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직원 하나가 광고 제작사 구름에 메일을 보내는 사이, 2팀 직원들은 다시 오디션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 * *
평소와 같이, 안다호가 가져온 박스에서 대본과 시놉시스를 꺼내 제목을 훑던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오.”
맨 밑에 깔렸던 종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별 세 개 짜리였다.
“소방청 공익 광고네요.”
“왜? 관심 있어?”
“네. 저번 주에 학교에서 대피 훈련 했거든요.”
“아. 그랬지.”
서준은 오디션 공고와 시놉시스를 읽으며 말했다.
“그 이후에 관심이 생겨서 좀 알아봤어요. 학교 말고 다른 곳에서 대피하는 방법 같은 거요. 근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더라고요.”
“문제?”
“옥상으로 대피해야 하는데 옥상 문이 잠겨 있거나, 비상벨이 고장 나서 수시로 울리는 곳도 있고, 비상문이 잠겨 있어서 비상시에 사용을 못 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위험하다고 옥상 문을 잠그는 경우도 있지.”
“게다가 우리 학교가 특별히 매년 2번씩 하는 거지. 다른 학교는 별로 안 한다고 들었거든요.”
안다호는 매실초등학교의 재난 훈련을 떠올렸다.
서준이 입학하기 몇 년 전에 부임했던 교장 선생님이 만든 대피 훈련. 1,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른 난이도의 대피 훈련은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진짜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사고가 나야 알겠지만, 초등학교에 사고가 나면 안 되지.’
모르는 편이 나은 것도 있었다. 비상벨이 울리면 당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터였다.
“이거 괜찮네요.”
서준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던 안다호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럼 이거 할래?”
“네. 하고 싶어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은 안다호는 공고를 살폈다. 이 오디션은 예산이 적고, 다른 수익을 낼 수 없는 공익 광고라서 비용을 고려해, 서준의 출연을 꺼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준이가 하고 싶다니 하게 해야지.’
배우 이서준의 매니저, 안다호가 씨익 웃었다. 재능기부라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한 번 하면 여기저기서 해달라고 할 터였다.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지.’
“서준아. 출연료는 상관없지?”
“네.”
“그럼 그 이름 좀 쓸까?”
그 이름?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나 진이요?”
“응. 이게 공익 광고라서 제작비가 그렇게 많지 않을 거거든. 상까지 받은 이서준보다는 어린이 연극 출연 경험만 있는 나 진의 출연료가 적당할 거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럴까요?”
이서준과 나 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지만 좋은 방법이었다.
* * *
회의실 책상 위로 오디션 신청서가 쌓였다. 이제부터 서류 심사를 해야 하는 기획팀 직원들은 애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일단 시놉시스를 보내긴 했는데……. 진짜로 신청서가 왔으면 어떻게 하죠?”
코코아엔터에서 메일이 왔던 그 날 이후, 구름의 직원들은 이서준이 이번 광고에 출연하면 얼마나 줘야 할까, 고민하거나 예전에 떴던 예측 기사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상상 이상의 금액에 항상 도달하는 결론은,
“재능기부는 안 될까요?”
재능기부였다.
“공익 광고니까, 아예 안 되지도 않을 텐데요.”
“그걸 우리 쪽에서 제안하면, 강요가 돼버릴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다들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뭐, 재능기부든 출연료든 일단 이서준의 신청서가 들어와야겠지. 신청서가 없으면 그냥 김칫국 마신 거고.”
기획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류 심사 시작합시다!”
“네.”
조용한 회의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와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나이대에 아역 배우가 많네요. 경력도 두 작품은 기본이고요.”
“이서준 때문에 아역 배우 붐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많습니다. 이서준처럼 어렸을 때부터 시키려는 사람들이 많죠.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구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한 신청서를 발견한 기획팀장이 멈추었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가까이 앉아 있던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고 기획팀장이 바라보던 신청서를 보았다. 그 직원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옆에 있던 김지현이 두 사람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쭉 빼, 신청서를 보았다.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름, 나 진, 나이, 13세.”
이름이나 나이는 별다를 게 없었다. 세상엔 동명이인이 많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이 작품이 들어가면, 가리키는 사람은 딱 하나였다.
“이력, 어린이…… 연극…… 봄……?”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김지현에게로 모였다. 멍하니 신청서를 바라보던 팀장과 직원, 김지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네?”
“……뭐라구요?”
되묻는 직원들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 직원과 팀장이 허허 웃기 시작했다.
“아, 하하하. 팀장님 눈도 나빠지셨나 봐요. 같이 안경 맞추실래요?”
“……그런가 봐. 헛것이 보이네. 한약이라도 지어 먹어야 하나?”
세 사람의 허허로운 웃음소리가 짧게 끝나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벌떡 일어나 팀장에게로 향했다.
“진짜요!? 진짜 이서준이에요!?”
“나 진. 나 진, 이서준 예명 아니에요?”
“아니, 예명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보낼 거면 이서준으로 보내지 왜 나 진으로 보내?”
“누가 장난친 거 아니에요?”
“……! 그러네!”
그나마 가장 확률이 높은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견을 낸 직원이 휴대폰을 들었다.
“이서준 소속사에 전화해 볼게요.”
“여기 전화번호 있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요.”
“아하.”
인터넷 검색창에 이서준 소속사를 치자, 코코아엔터의 홈페이지와 전화번호가 떴다.
연결음이 울렸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이어가던 직원의 표정이 점점 아리송하게 변했다. 사무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전화를 끊은 직원이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짜 이서준이래요.”
“……대박! 이서준이 우리 광고에 출연하다니!”
좋아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팀장은 생각에 잠겼다.
“근데 굳이 이서준이 아니라, 나 진으로 신청서를 냈다는 말은, 이서준과 나 진을 따로 생각하라는 건가?”
“이력에 어린이 연극 ‘봄’만 적은 걸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 진의 출연료는…….”
“코코아엔터와 이야기를 나눠봐야 알겠지만, 이서준보다 적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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