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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44화 (14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44화

비상벨 소리에 재잘재잘 떠들고 있던 6학년 3반 아이들도 입을 멈추고, 복도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도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은 빠르게 아이들을 살폈다.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와 함께 방송이 들려왔다.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부터 대피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다행이다. 대피 훈련이었나 봐.”

“그러게. 깜짝 놀랐어.”

실제 상황이 아니란 것에 안심하면서, 서준과 친구들은 다음 방송을 기다렸다.

[3층 과학실에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3층 과학실 쪽 복도와 계단은 피해주시고, 도서실 쪽 복도와 계단을 이용해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3층 과학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머릿속에 3층 과학실의 위치가 떠올랐다.

“3층 과학실. 애들아, 얼른 나가자.”

“네.”

담임선생님의 말에 서준과 친구들은 복도로 나갔다. 앞반 학생들도, 뒷반 6학년들도 우르르 나와 줄을 서고 있었다.

1분도 안 돼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복도로 나와 2줄로 섰다.

반에서 제일 키가 커, 줄 맨 끝에 선 서준이 앞으로 보았다.

두 줄로 나란히 선 반 친구 중에는 없는 사람이 없었다. 옆에 선 지오가 서준이에게 속삭였다.

“4교시 수학이었는데 잘됐다!”

“어쩐지. 대피 훈련 때문에 수학 숙제가 없었구나.”

1년에 두 번씩 하는 대피 훈련에 익숙해진 고학년들은 재잘재잘대면서도 능숙하게 줄을 섰다.

옆 반 아이 중 화장실에 간 아이가 있는 모양인지, 옆 반 담임선생님이 서준의 담임선생님에게 인솔을 부탁했다.

“앞에 친구, 뒤에 친구가 잘 있는지 보고.”

“네!”

“없는 사람?”

“다 있어요!”

“그럼 내려가자.”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움직였다. 가지고 있는 손수건이나 소매로 입을 막고 허리를 숙이고 계단으로 향했다.

서준이 반뿐만이 아니라 옆 반도, 아래층의 반들도 모두 질서정연하게, 그러나 재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와 운동장으로 내려왔다.

고층에 있는 고학년들이 내려오자, 각 학년부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체크했고 나오지 못한 아이가 없는지 살폈다.

“1학년 우네.”

지후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1학년 아이들이 서 있는 쪽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소리와 갑작스러운 이동에 놀란 모양인지 1학년들이 울고 있었다.

1, 2층에 교실이 있어서 빨리 대피했을 텐데도, 줄도 엉망이었고 다른 학년 선생님들까지 모여 아이들을 달래며 줄을 세우고 있었다.

“1학년은 미리 말해주는데도 우네.”

“아직 어리잖아.”

“너희도 엄청 울었으면서.”

지오의 말에 미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반은 서준이 빼고는 다 울었잖아.”

다들 머쓱한 듯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다 서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학년인 1학년, 2학년은 며칠 전에 미리 대피훈련을 한다고 부모님께 알려주고, 하루 전에도 설명하고, 훈련 당일에도 설명하고, 영상도 보고, 반에 다 같이 모여 이동했다.

그런데도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와 갑작스러운 상황이 무서워 아이들은 엉엉 울었다.

그 때문에 대피훈련을 하는데 1학년은 아직 어리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비상상황이 어린아이들을 피해 일어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묻혔다.

“3학년 때는 대피 훈련 하는 날에 알려줘서 깜짝 놀랐어.”

“응. 익숙해져서 울진 않았지만 말이야.”

서준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화장실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오는 선생님이 보였다.

4학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는 걸 보니 4학년인 것 같았다. 서준과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난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4학년부터는 이제 안 알려준다고 했지.”

미나의 말에 지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난 진짜 안 알려줄지는 몰랐어.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갔다가 비상벨 울려서 얼마나 놀랐다고. 방송이 화장실까지 들려서 다행이지. 선생님도 금세 오셨고.”

“나도 지오가 없어서 깜짝 놀랐다니까.”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시지.”

선생님들은 인원수를 세고, 또 세고 난 후, 비상벨이 멈추었다. 일부러 숨어 있는 학생은 없었다. 1학년 때부터 선생님들이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진짜, 일부러 숨어서 안 나오면 반성문 100장일까?”

“그럴걸? 매년 학부모 동의서 쓰잖아. 거기 반성문 100장 적혀 있었어.”

“매일 한 장씩 적으면 학년 끝날 때까지 다 적을 수 있을걸.”

서준의 말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에 한 장씩 반성문이라니. 말만 들어도 괴로웠다.

“그럼 스탠드로 이동하자.”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움직였다. 아이들이 스탠드에 앉는 사이, 운동장으로 소방차가 들어왔다.

빨갛고 커다란 소방차의 실물에 울고 있던 1학년 아이들도 눈물을 멈추고 와아, 함성을 질렀다.

그 모습이 귀여워 서준과 친구들이 미소를 지었다.

소방차에서 내린 소방관들은 아이들에게 화재 시 피난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소화기 사용법, 응급처치법 등을 알려주었다.

직접 해보고 싶다는 아이 중 몇 명을 뽑아 함께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학년 아이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는 모습을 보던 서준이 시선을 돌렸다. 귀담아듣는 아이들도 있었고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지시 아래 별 탈 없이 운동장까지 내려온 걸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학교 애들은 학교에 불났을 때 잘 피할 것 같지?”

서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 안 나는 게 가장 좋을 테지만, 사고라는 건 갑자기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지후가 입을 열었다.

“학교야 그렇겠지만, 애들이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학원도 가고, 놀러도 가고.”

“그래도 비상벨 소리에 놀라서 못 움직이지는 않겠지.”

“대피 훈련을 6년째 하니까, 비상벨 소리만 들리면 몸이 알아서 움직일 것 같긴 해.”

지오의 말에 서준과 친구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순서인 소방관들의 화재 진압 시연으로 매실초등학교 1학기 대피 훈련이 모두 끝났다.

* * *

소방청의 광고 입찰 공고가 떴다.

[입찰 명 : “어린이 화재 대피 요령, 공익 광고 제작”, 공고기관 : 소방청]

광고 제작사 ‘구름’의 회의실.

소방청에 제출할 제안서를 제작하기 위해 기획팀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로 했다.

[어린이 대상 ‘화재 대피 요령 공익 광고’]

화이트보드에 적힌 주제에 다들 고민에 잠겼다.

화재 대피 요령 공익 광고.

모두의 머릿속에 1. 불이야 소리치기, 2. 비상벨 누르기 같은 눈에 띄는 커다란 자막과 어색한 연기를 하는 모델들이 나오는 평범한 광고가 떠올랐다. 똑같은 광고를 떠올리고 있던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대상은 어린이인 점을 유의하고 어떤 광고를 만들었으면 좋겠어?”

“일단……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겠네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소방청 마스코트는 어때?”

다들 마스코트는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소방청 마스코트를 쓴다면 낙찰될 확률이 높긴 하겠지만, 광고 효과는 떨어질 거예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니까요.”

“할 거면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가 좋죠. 초통령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요즘 애들은 텔레비전을 안 본다는 거예요. 아마 소방청에서도 텔레비전뿐만이 아니라 SNS나 너튜브 같은 곳에도 올릴 생각일 거예요. TV 광고라는 틀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팀 직원들이 열심히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김지현이 입을 열었다.

딸이 이번 광고의 대상이 되는 만큼 딸에게 잘 먹힐 것을 떠올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만화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유명한 연예인을 쓰거나, 아니면 아예 아이들이 감정 이입하기 쉬운 광고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정이입?”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아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거든요. 어린이 드라마라고 하죠?”

어린이 드라마.

회의실에 있는 직원들도 어렸을 때 봤던 어린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마법사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였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고, 초등학교에서의 생활이 나오고, 유치하긴 해도 또래에게는 인기였다.

아마 직원 중에도 드라마에 흠뻑 빠져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아이가 있었을 터였다.

화재 대피 요령을 어린이 드라마로? 모두 생각에 잠겼다. 김지현이 말을 이었다.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큼 보다 쉽게 아이들이 화재 대피 요령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드라마를 보고 아이들이 주인공 흉내를 낸다면 저절로 대피 훈련도 되겠고, 실제로 불이 나면 주인공이 했던 것을 하나하나 떠올릴 수도 있겠죠.”

“아이디어는 좋은데…….”

기획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광곤데 드라마로 만들자고?”

“5분에서 1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중 중요한 장면을 편집해서 광고로 쓰고, 광고의 풀 영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소방청 너튜브를 찾게 되겠죠. 그렇게 소방청 홍보도 되고요. 게다가 소방청 교육 영상으로 쓸 수도 있어요.”

김지현의 말에 다들 웹 드라마 쪽으로 마음이 향하고 있었다. 기획팀장도 웹 드라마 쪽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단번에 채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관공서는 보수적이라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기획팀장의 신음과 함께, 광고 제작사 ‘구름’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몇 주 후.

광고 제작사 ‘구름’의 회의실.

구름의 직원들이 모여 소방청에서 보낸 공문을 읽어 내려갔다.

보고 또 봐도 거짓말 같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이 공문 한 장으로 보답받은 기분이었다.

“……진짜 이게 되네요?”

“……? 지현 씨가 제안한 거잖아?”

놀란 팀장과 직원들의 시선에 김지현이 볼을 긁적였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팀장님 말대로 보수적인 관공서니까요. 공익 광고와 웹 드라마라서 절대 안 될 줄 알았는데…….”

“아는 사람 말로는 영상을 교육 영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았대. 지현 씨 말대로 아이들이 흥미도 느낄 것 같고. 소방청 쪽에서도 평범한 공익 광고는 안된다는 의견이 많았다더라고. 타이밍이 좋았지.”

기획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잘하면 다른 관공서 광고도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예 웹 드라마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언젠가 TV 드라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파도처럼요.”

신입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파도’는 이서준이 출연했던 드라마 ‘내의원’의 제작사였다.

“거긴 내의원 만든 뒤로 엄청 유명해져서 일 엄청 들어온다더라고.”

기획팀장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3년이나 지났는데도요?”

“이서준이랑 친한 감독하고 작가가 있으니까, 또 이서준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도 있지. 게다가 파도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거의 KBC 편성 확정이거든. 제작만 하면 지상파 입성이라니, 대본이 몰릴 만도 하지. 게다가 그렇게 편성된 드라마도 제법 시청률이 잘 나왔고.”

“진짜 계 탔네요. 파도는.”

“우리도 이서준 배우가 왔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엄청 볼 것 같은데. 우리 회사도 엄청 유명해지겠죠?”

이번 공익 광고에 출연할 아역 배우를 뽑기 위해, 오디션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던 직원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호쾌하게 웃던 기획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이 오면 우리야 좋지만, 출연료가 문제지. 기업 광고도 아니고 관공서 광고라서 그렇게 큰돈은 못 써.”

아, 출연료.

이서준에게 얼마를 줘야 할까? 그 짐작도 되지 않는 금액에 직원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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