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43화
영화관 안이 밝아지고 남아 있던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무겁고 무거운 침묵이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온몸에 힘을 주며 스크린을 보고 있던 관객들이, 겨우 긴장을 풀고 힘들게 숨을 뱉어냈다.
“와…….”
“진짜 무섭다…….”
“포스 봐. 누가 봐도 악당인데?”
관객들의 말에 동의하며, 박성원도 소름 돋은 팔을 열심히 매만졌다.
* * *
“어셈블2 리뷰 두 번째 시간, 시작합니다! 어셈블2의 주요 내용이 쉐도우맨3의 떡밥이라서 따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쉐도우맨3 떡밥 이외 어셈블2의 리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지금 뜨는 링크의 영상을 시청해 주세요.”
-처음은 벨 나트라?
“네. 벨 나트라부터 가겠습니다. 예전부터 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만, 그 이유가 밝혀졌네요.”
-버리고 갔다. 진 나트라ㅠ 어떻게 그러냐ㅜ
-내가 다 배신감 느낌ㅠ
-보다가 헉…… 했다.
“네. 진 나트라가 갑자기 지구, 그것도 뜬금없이 센트럴파크에 나타난 이유. 나트라인들 사이에서 괴롭힘 받으며 사는 것보다, 지구인이니까 지구에서 편하게 살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단일 행성 단일 국가인 나트라와는 달리 지구의 나라는 아주 많아서, 벨 나트라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기억 잃은 애한테 집 찾으러 가란 것도 좀.
“근데 이게 나트라라면 조금 이해가 갑니다. 지구인인 윌리엄이 발견됐을 때도 바로 왕에게 알려졌거든요. 벨 나트라는 지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구에 간다 > 왕에게 알려진다 > 부모를 찾는다?
“네. 그렇게 생각했겠죠.”
-근데 벨 나트라는 진이 알아챘을 거라고 했지만…….
-쉐도우맨2 봤는데 그냥 별생각 없이 서 있었음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상 장면에서 벨 나트라를 기다리는 진 나트라가 나왔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안 보였거든요. 그냥 잠시 어디 간 가족을 기다리는 느낌이었죠. 보통 가족이랑 외출했을 때, 잠시 어디 간다고 하면 언젠가 오겠거니, 별생각 없거든요. 오히려 혼자 신나서 돌아다니죠.”
-ㅇㅇ그러다 길잃지ㅎ
“그 정도로 벨 나트라와의 유대감이 있었다는 거죠. 진짜 가족 같은.”
-그래서 더 슬픔ㅠ
-어떻게 버리고 가냐ㅠ
-진은 지금도 모를까?
시청자의 질문에 영화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은, 알지 않을까 싶습니다. 윌리엄에 대해 알게 된 진 나트라는 믿었던 아버지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이 벨 나트라와의 유대감에도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설마 벨도? 하는 미약한 의심이 시작이었겠죠.”
영화객이 말을 이었다.
“벨 나트라가 자신을 지구에 데려간 것, 그곳에서 혼자 기다렸던 것, 벨 나트라가 뒤늦게 도착한 것. 별일이 아니었던 그 일들이 ‘별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진 불쌍해ㅠㅠ
-좀만 더 빨리 돌아왔으면 진실을 몰랐을 텐데.
-ㄴㄴ 그럼 이야기 진행이 안 되지.
“펜던트 떡밥도 풀렸고, 나트라가 침공한 이유도 알았습니다.”
-아들 잃은 부모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상웜홀까지 일으킬 이유가…….
-그게 100년이면 눈 돌아갈 듯. 아들이 살아 있어서 신호를 보냈는데 눈앞에 납치범이 있어. 근데 걔 힘이 너무 강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쟤가 저렇게 강해지려면 ‘아들의 그림자’를 먹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럼 내 아들이 죽었다는 거네? 내 아들은 죽었는데 쟨 살아 있네?
-ㅇㅇ 그래서 돌아버린 듯.
-힘 있는 사람이 미치면 피해가 너무 크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건가…….
“쉐도우맨이 강한 이유도 밝혀졌습니다.”
화면에 A이라고 적힌 사람 그림과 B라고 적힌 사람 그림, 그리고 조그마한 아기 그림이 떴다. 그림 아래에는 그림자까지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싸움에서 이긴 A가 B의 그림자를 흡수했는데, 치명상 때문에 A도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거죠. 그때, 강제 계승으로 성장한 ‘A의 그림자’가 자아를 가지게 되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기 맥에게로 탈출한 겁니다.”
화면 속, ‘A(+B)의 그림자’가 아기 맥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벨 나트라의 말에 따르면 그림자가 자아를 가지는 건, 아주아주 희귀한 일이라서 두 그림자가 동시에 자아를 갖게 될 확률은 낮습니다. 쉐도우맨의 그림자의 자아도 하나밖에 보이지 않고요.”
-그러게. 어쩐지 쉐도우맨의 그림자만 뻘쭘해하는 것도 신기했음.
-쉐도우맨1이랑 2에서 나트라인들은 그냥 무기로 썼는데, 쉐도우맨 그림자만 특이하긴 했어.
-어셈블1에서도 쉐도우맨이 침울해 있을 때, 간간이 감초 역할을 했고 사고도 치고ㅎ
-근데 납치범 그림자라서 좀 찝찝하긴 함.
-! 그 생각은 못 했음! 그림자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진 나트라의 그림자도 원래 튤 나트라의 것이어서…….”
영화객의 말에 채팅창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세상에…… 다 적의 능력이야.
-튤 나트라는 좀 애매하긴 한데…….
-윌리엄의 불행의 원인이라는 건 부정 못 하지.
“그리고 타임스톤이라는 새로운 떡밥도 나타났습니다.”
화면에 붉은 보석과 푸른 보석의 사진이 떴다.
“나트라인들이 100년 넘게 살게 해주는 레드 타임스톤, 블루 타임스톤. 전 이게 아주 중요한 떡밥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되돌린다. 우리는 그 ‘시간’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일 줄 알았는데…….
-? 쉐도우맨2의 진 나트라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해?
-ㅋㅋ쿠키영상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옴?
-포기했음ㅠ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쿠키영상. 진 나트라가 강제 계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벨 나트라가 ‘강제 계승’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부터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상상만 하던 강제 계승과 실제로 보는 강제 계승은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등골이 오싹했다.
“적당히 그림자를 흡수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무시무시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림자가 으적으적 씹어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CG 기술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소오름. 쿠키영상 보고 쫄았다.
-222 진심 무서웠음. 뭔가 꿈틀대는데 화면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
-그것도 CG겠지? 마린사 CG 대단.
-튤 나트라는?
영화객이 반색하며 말했다.
“네! 튤 나트라! 강제 계승 당해버려 쉐도우맨3에 나올지 안 나올지는 불투명하지만, 깜짝 놀랐습니다. 스왈린 애넘이라니! 스왈린 애넘이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다니!”
-5년 만의 차기작이라서 오스카상 받을 만한 영화를 할 줄 알았는데!
-ㅇㅇ 슈퍼히어로 영화라니 상상도 못 했음
-근데 나올까? 강제 계승 엄청 무섭던데?
-쿠키 영상에서 꾀꼬닥한 것 같은데…….
“나오길 빕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데, 쿠키 영상이 전부라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스왈린 애넘과 이서준의 연기라니…… 상상만 해도 기대가 됩니다.”
-기대 중!!!
-쉐도우맨3 나와라!
“이서준 배우의 연기도 여전히 대단했죠. 목소리며 움직임이며 보는 것만으로 싸늘해지더라고요. ‘오버 더 레인보우’를 촬영하고 나서 쿠키 영상을 촬영했을 텐데, 그레이 바이니의 감정선이 단 한 톨도 이어지지 않고, 완벽한 진 나트라를 보여주다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연기력입니다.”
-포스 대단했음. 보다가 무릎꿇을 뻔ㅎ
-쉐도우맨3에 전투 장면 나오려나?
-나올 것 같음. 진 나트라랑 쉐도우맨이랑 싸울 것 같은데 누가 이길까?
-쉐도우맨 = 왕 후보자×2 VS 진 나트라 = 튤 나트라(강제 계승)
-나트라인인 쉐도우맨이 가지고 있던 ‘잠재력’하고 튤 나트라가 100년 동안 살면서 ‘성장한 그림자’하고의 싸움일듯.
-ㅇㅇ 진 나트라는 지구인이라서 ‘잠재력’도 없으니까.
-쉐도우맨 = 왕 후보자×2 + 잠재력 VS 진 나트라 = 튤 나트라(강제 계승) + 100년 성장 / 이렇게?
-정리 잘하네
영화객이 볼을 긁적였다. 몇 년을 함께 리뷰했던 시청자들이 알아서 토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러다 제가 말할 분량도 없어지겠어요.”
-오. ㅈㅅㅈㅅ
-영화 분석이 너무 재미있어서ㅋㅋ
-하세요. 설명!
“……다 해버렸는데요. 모두.”
에휴. 한숨을 쉰 영화객이 말을 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강제 계승한 진 나트라의 명령을 나트라인들이 따라 줄까 말까입니다. 진 나트라 혼자서 지구를 침공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힘들겠죠. 아마 나트라인들까지 동원해야 할 겁니다. 강제 계승으로 후보자 중 가장 강해졌지만, 과연 지구인인 진 나트라의 말을 나트라인들이 들어줄까요?”
-그러게. 지구인을 왕으로 섬길까?
-반란 일으킬 수도 있겠네.
“모든 이야기는 쉐도우맨3에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
[어셈블2에서 밝혀진 쉐도우맨의 과거!]
[쉐도우맨 3를 예고한 쿠키영상!]
[오해와 오해가 겹쳐서 크나큰 불행이!]
[새롭게 나타난 보석, 타임스톤!]
[그레이 바이니→진 나트라, 완벽한 변신!]
[나트라의 왕! 튤 나트라 등장! 배우는 스왈린 애넘!]
-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밝혀지니 놀랍다. 형 쉐도우맨, 동생 진 나트라…… 형제 싸움인가ㅠ
-타임스톤이 뭔가 할 것 같은데?
-이서준 대단. 똑같은 얼굴인데 전혀 달랐음
=솔직히 그레이 바이니도 진 나트라도 어딘가 다 있을 것 같음ㅋ
=ㅇㅇ 이서준 온/오프도 대단하지만 ‘온/온’도 대단하다ㅋ 오버 더 레인보우 엄청 봤는데, 전작의 여운이 전혀 안 느껴짐.
=나도. 설마 내가 그레이랑 똑같은 얼굴을 보면서 오싹하다고 느낄 줄은 몰랐음. 아직도 OST만 들으면 폭풍감동인데ㅎ
-스왈린 애넘! 스왈린 애넘이 히어로무비라니!
=침대에만 누워 있다가 끝나는 거 아님?
=그! 럴지도…….
=그렇게만이라도 나오는 게 어디야.
=ㅇㅇ 라떼는 말이야, 데이비스 가렛보다 유명했음
=지금도 유명함. 같이 연기하고 싶어 하는 배우도 많음. 제작사들도 열심히 섭외하려고 노력하고 있고ㅎ
* * *
“서준아, 스왈린 애넘이라는 배우가 유명해?”
지후의 말에 서준이 충격받은 얼굴로 지후를 바라보았다. 서준의 표정에 친구들이 더 놀랐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그러게. 난 본 적 없는데…….”
지윤과 미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인 서준이 배우라서 다른 아이들보다 영화와 가깝긴 했지만, 옛날 영화까지 찾아보지는 않았다.
표정을 수습한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왈린 애넘의 마지막 작품이 5년 전 영화라고 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8살 때 개봉한 저널리스트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VOD로 소장하고, 대본까지 가지고 있는 서준과 친구들은 달랐다. 그게 좀 아쉽기는 한데, 연기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은 많았다.
지석이 형, 도훈이 형, 종호 삼촌, 지혜 이모, 소영이 누나, 다진이 누나 등, 연예계 지인들로부터 스왈린 애넘이랑 촬영했냐, 부럽다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유명해.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야.”
“서준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라니, 엄청 대단한가 보다.”
서준이 입을 뻥긋거렸다.
스왈린 애넘의 첫 데뷔 작품부터 지금까지 찍었던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어떤 점에서 가장 좋았는지, 어떤 캐릭터가 가장 멋졌는지, 이런 표현이 좋았다, 저런 표현이 좋았다, 이야기할 건 산더미 같았지만,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처럼 연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잘 모르겠지?’
그래서 서준은 쉽게 쉽게 이야기했다.
“스왈린 애넘은 상도 많이 받았고 유명한 영화제에도 많이 갔어. 같이 연기해 보고 싶어 하는 배우도 엄청 많아. 나도 같이 연기하고 싶었어.”
“그렇구나.”
“그러면 쉐도우맨3에선 서준이가 그 배우랑 같이 연기하는 거네?”
“응! 그래서 엄청 좋아!”
서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쿠키 영상을 찍을 때 같이 촬영했지만 그건 너무 짧았다.
‘대사도 나만 했고.’
좀 더 많은 대사를 나누면서 연기하고 싶었다. 대사가 없어도 괜찮았다. 눈빛으로 몸짓으로 좀 더 감정적이고 강렬하게.
‘제발 라이언 감독님이 같이 나오는 장면, 잔뜩 넣어줬으면!’
서준이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을 찾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지윤이 입을 열었다.
“근데 난 서준이가 더 멋진 것 같아. 아마 서준이가 어른이 되면 그 배우보다 더 유명해질걸?”
“맞아. 상도 많이 받고, 영화제도 많이 가고, 배우들이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할 거야.”
“지금 그럴지도 몰라. 서준이 엄청 유명하잖아. 다들 서준이 다음 드라마 기다리고 있던걸.”
친구들의 말에 서준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야기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실 웃는 서준의 모습에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애애애앵!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소리에, 수업 준비를 하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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