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42화 (14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42화

“튤 나트라의 인내심은 100년 동안 다 닳아 없어졌고, 그림자를 사용하는 그 남자를 보자마자 한 가닥 남아 있던 끈마저 끊어졌지.”

“……어째서?”

“그 남자가 사용했던 그림자가 ‘나트라’만의 것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나트라의 그림자는 ‘계승’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계승?”

맥이 고개를 갸웃했다. 맥의 발밑에 있던 새까만 그림자가 몸을 움츠렸다. 파트너의 그런 움직임이 맥에게까지 전해졌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그림자에 씨앗을 심는 거야. 그 씨앗이 발아해야 아랫사람이 그림자를 사용할 수 있어. ‘계승’을 하고 나면 윗사람의 그림자는 약해져. 그래서 보통 가족이나 사제지간 같은 아주 친한 사이에만 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튤 나트라는 생각한 거야.”

벨 나트라는 새까만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 납치범들이 내 아들에게 계승할 이유가 없으니, 저 그림자를 쓰는 남자가 납치범이구나.”

“…….”

“저 남자를 잡아, 내 아들을 찾아야겠다.”

맥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렇게 싸움이 격렬해졌다. 벨 나트라는 떠올렸다.

“남자와 싸우다 보니 알게 됐지. 그 남자는 두 후보자보다 뛰어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걸 보고 나트라인들은 ‘강제 계승’을 떠올렸어.”

“……강제 계승?”

“……약한 그림자를 잡아먹는 거야. 전부. ‘강제 계승’ 당한 그림자의 주인은 앓다가 숨을 거둬. 두 후보자 사이에 싸움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강제 계승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남자가 너무 강했어. 1 더하기 1은 2일 텐데…… 3, 4 정도로 보였거든. 그래서 우리는 생각한 거야.”

튤 나트라는 이성을 잃었다.

“그 아이가 강제 계승 당해버렸구나……. 내 아들은…… 내 동생은 이제 이 세상에 없구나.”

하고.

그 날, 그때를 떠올리는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벨 나트라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똑똑히 들렸다. 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 넌 살아 있지. 설마, 그림자에 자아가 생길 줄이야.”

“자아?”

“원래 나트라인들의 그림자는 무기야. 생각도 의지도 없는 그저, 검이나 총 같은. 그런데 네 그림자는 어때?”

맥이 발아래를 보았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나트라인과는 상관없이,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린윙이 가르쳐 준 그림자 연극을 하며 놀고 있는 그림자를 벨 나트라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림자에 자아가 생겨서 죽기 직전 납치범의 몸에서 탈출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트라인, 네 그림자에 들어간 거야.”

맥은 자신이 성인이 되자, 보육원 원장님이 해주신 말을 떠올렸다. 사고를 당해 죽어 있었다던 맥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울고 있었다던 아기 맥.

‘두 후보자보다 뛰어난 그림자. 전승하지 않았는데 쓸 수 있었던 그림자. 그리고 자아가 있는 그림자.’

맥은 자신의 파트너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던 그림자가 그 시선에 움찔거렸다.

납치범들의 그림자이자, 이제는 맥의 그림자가 된 새까만 그림자를 노려보던 벨 나트라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림자에 자아가 생긴다는 건, 동화책에서나 나오던 옛날이야기였거든. 나도 그때 공원에서 네 그림자를 보고 도서관을 뒤진 끝에 알아낸 거야. 오늘 전투에서 확신이 들었고.”

오해와 오해가 겹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이성을 잃었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성을 잃은 튤 나트라는 이상웜홀을 일으켰지.”

이상웜홀을 만든 나트라조차도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최강, 최악의 무기. 지구 전역에 생겨난 이상웜홀은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사라졌다.

“튤 나트라는 100년을 기다려 알게 된 사실에 이성을 잃고 날뛰다가 쓰러졌어. 그사이 쉐도우맨이 공격했고 나트라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 얼마 후, 나트라 행성, 얼음사막에서 한 아이를 발견했어.”

아이.

맥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애가…….”

“그래. 진 나트라야. 곰 인형을 껴안고 있는 아주 귀여운 아이였지. 창백한 안색으로 죽어가던 아이를 누군가 발견했고, 나트라인이 아니었던 아이는 왕에게 보내졌어. 아들을 잃은 충격에 빠져 있던 튤 나트라는, 그 아이를 제 아들로 삼았어. 그 아이는 기억을 잃었고, 기억하는 건 오직,”

벨 나트라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오직, ‘윌리엄’뿐이었어.”

“윌리엄…….”

맥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윌리엄.

“그 이후 아이는 왕의 아들로서 자랐지. 아버지는 진을 애지중지했어. 바쁜 와중에도 찾아가고 나트라인이 아닌데도 그림자를 계승하고 그림자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줬지. 나도 진을 좋아했어. 똑똑하고 착하고 성실한 아이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벨 나트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진은 그림자를 아주 잘 다뤘어. 나도 그 나이에는 그렇게 못 했어. 진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당연하지. 그때의 진은 아직 아이였을 뿐이었는 걸. 다 큰 후보자들하고 차이는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그게 독이었지. 진이 두각을 나타낼수록 적이 많아졌어.”

“……왜 윌리엄을 후보자로 만들었지?”

윌리엄.

맥의 말에 벨 나트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가 맥에게 윌리엄인 것처럼 자신에게는 진이었다.

“튤 나트라의 양자니까. 왕의 자녀는 자동으로 후보자에 올라가게 되어 있어. 후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파양해야 하는데, 진은 거부했어.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으니까.”

화사하게 웃던 꼬마를, 맥은 기억했다.

날 선 비웃음 소리와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던 꼬마를, 관람객들은 기억했다.

“그래서 나는…….”

벨 나트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굳게 주먹을 쥔 벨 나트라의 두 손이 떨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진을 지구로 돌려보내기로 했어.”

“뭐?”

“멍청했어. 지구에 얼마나 많은 나라가 있는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여기 두면 알아서 가족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게다가 진이 그때보다 엄청 커버렸다는 걸 신경 쓰지 못했어.”

단일행성, 단일국가인 나트라. 게다가 나트라에는 타임스톤이 있었다. 신체의 시간은 그들에게 고려해야 할 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구는 달랐다.

“그래서…….”

맥은 저수지에 홀로 있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래. 그때 그곳에 진이 홀로 있었던 이유야. 그 똑똑한 녀석은 금세 알았겠지.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글쎄.

맥은 그때의 아이를 떠올렸다.

‘가족이 오기로 했어요.’

그렇게 말한 아이는, 정말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그저 조금 기다리면 오겠지. 누나는 언제 오나? 생각하는 듯, 담담했다.

아이는 벨 나트라가 돌아올 것이라는 걸 믿고, 그렇게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맥이 입을 열었다.

“왜 돌아왔지?”

“……내 동생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지구를 떠나려던 벨 나트라를 멈추게 했다. 허겁지겁 진에게로 돌아오게 했다.

‘결국, 늦었지만…….’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진 나트라를 떠올린 벨 나트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트라 시간으로 5년 사이, 진 나트라는 어둠에 잠겨가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동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벨 나트라는 맥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도 자신의 동생이었다. 레드본이라는 남자를 구하려고 몇 날 며칠을 자지도 못하고 초췌한 얼굴. 귀여운 진 나트라와는 천지 차이였다. 벨 나트라의 눈이 찌푸려졌다.

“너도 내 동생이긴 한데 좀 징그럽게 많이 자랐다.”

“……뭐?”

“네 이름은 뮐 나트라야. 아버지가 열심히 고민하면서 지어준 이름이지.”

“……뮐 나트라.”

맥은 제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뮐 나트라. 어색하면서도 신기하고, 가슴이 뛰는, 없는 줄 알았던, 버린 줄만 알았던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그런데도 맥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맥과 그의 가족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벨 나트라가 레드 타임스톤을 사용하자, 레드본의 몸이 1년 1개월 전으로 돌아갔다. 독을 치료하고, 멀쩡해진 레드본과 함께, 레드본에게 독을 먹였던 스파이들과 조직을 잡아내고, 끝내 그 무리까지 완전히 처치했다.

“고마워. 여기까지 안 도와줘도 되는데.”

“내 동생 일이니까.”

진 나트라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벨 나트라의 시선은 맥, 뮐 나트라를 향하고 있었다. 맥은 그 시선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혈혈단신으로 살았던 세월. 처음으로 가족이란 걸 갖게 되었지만, 그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존재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제 돌아가 볼게. 생각보다 레드스톤이 작아서 다른 곳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이것도 들고 가. 우린 이제 필요 없어.”

그린윙이 타임스톤이 담긴 주머니를 던졌다. 1년짜리도 되지 않는 자잘한 크기였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벨 나트라가 웃었다.

“구해줘서 고맙다. 벨 나트라.”

“별말씀을.”

1개월 더 젊어진 레드본과 악수를 한 벨 나트라가 쉐도우맨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다음에 보자. 뮐.”

“…….”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맥은 가족의 인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고민이 가득한 동생의 얼굴에, 벨 나트라는 쓴웃음을 짓고는 비행선에 올랐다.

“다음에 아버지랑 진이랑 함께 가족모임이라도 갖자!”

벨 나트라의 우주선이 하늘로 사라졌다.

쉐도우맨이 사라지는 우주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건강해진 레드본이 쉐도우맨의 어깨를 두드렸고, 그린윙이 쉐도우맨의 그림자와 놀기 시작했다. 다른 히어로들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쉐도우맨이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같은 하루의 끝이었다.

새까만 화면에 엔딩크레딧이 천천히 올라갔다.

영화관의 불은 켜지지 않았고, 관람객들은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쿠키 영상을 기다렸다.

박성원도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상영관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이번 쿠키 영상은 다른 영화의 예고편이다, 쉐도우맨3의 예고편이다, 말이 많았지만, 박성원은, 관람객들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위로 올라가던 엔딩크레딧이 멈추었다.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둥-

둥-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음악이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박성원은 꼼짝달싹도 못 하고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둥둥-

진 나트라의 OST였다.

어두운 방 안, 커다란 창문으로 달빛이 비쳤다.

카메라가 달빛을 따라 천천히 움직여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비췄다.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남자의 얼굴에 놀라기도 전에, 침대 기둥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소년이 보였다.

“아버지.”

침대에 누워 있는 창백한 남자를 보던 소년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남자의 손을 잡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소년이 남자의 손을 꼭 잡았다. 말없이, 항상 다정하게 잡아주었던 손이었다. 동시에 소년의 생을 불행하게 만든 손이기도 했다.

“저도 당신의 행복을 모조리 망가뜨리고 싶어요.”

소년의 손에 잡힌, 튤 나트라의 손가락이 꿈틀댔다. 그 움직임을 느낀 소년은, 마지막 미련을 떨쳐 버리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아무것도 스며들지 않은 단호하고도 차가운 눈동자였다.

“그러니, 내게 전부 주세요.”

소년이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잡고 있던 두 사람의 손이 힘없이 풀려났다.

소년, 진 나트라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진 나트라의 의지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당신의 나라도.”

벽에 걸려 있던 나트라의 국기가 새까만 그림자에 삼켜졌다.

“당신의 자리도.”

왕의 침실이 어둡고 깊은 그림자에 천천히 잠겨갔다.

“당신의 힘도.”

침대의 사방에서 잠식해 오던 검은 그림자가 침대 위에 누워 있던 튤 나트라를 향해 다가갔다.

포위하듯 다가오는 진 나트라의 그림자에 튤 나트라의 그림자가 마지막 저항을 하듯 꿈틀댔다.

“전부.”

검은 그림자가 튤 나트라를 덮쳤다.

둥!

둥!

화면은 기이하게 꿈틀대는 그림자와 진 나트라의 뒷모습을 비추다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