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41화
“역시 사람이 많네.”
박성원은 후우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어셈블 2가 개봉하는 날, 첫 상영시간인 만큼 맨 앞자리도 맨 끝자리도 모두 주인이 있었다.
여기저기 신이 난 관객들이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에반 블록의 한국어’였다.
박성원은 휴대폰을 보았다. 며칠 전, 어셈블2 이벤트 이후 인터넷과 박성원이 자주 가는 영화 사이트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이서준 영향력이 대단하긴 해.”
사람들은 이서준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있을까? 궁금해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기자들이 기사를 올렸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기사에, 왜 이제야 알았나 싶을 정도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았다.
[최근 5년 사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급증!]
[내의원을 교재로 삼은 외국인이 다수!]
[어린이 연극 ‘봄’, 아이들의 한국어 교재가 되다!]
[어린이 연극 ‘봄’이 동화책으로!]
-내의원으로 한국어를 배워서 어미가 이상한 외국인 많더라.
-퓨전 사극이라서 다행이지, 정통 사극이었으면ㅋㅋ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연극 ‘봄’ 때문에 한국어 배우는 아이들도 있음
=ㅇㅇ 부모님이 청룡님은 한국어밖에 모른다니까, 번역기 써서 소원 빌었다고ㅋ
-어렸을 때 한국어 접하니까, 따라 하는 경우도 있음
-와, 역시 미디어가 영향력이 크구나.
“봄이 동화책으로 나오는구나. 사야지.”
박성원이 북마크를 하는 사이 상영시간이 가까워졌다.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마린사의 로고와 어셈블 OST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쉐도우맨이 바다로 떨어지던 레드본을 붙잡았다. 급하게 어셈블 기지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지만, 레드본의 상태를 살펴본 레터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어요.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히어로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원인은 중독이었다.
“이건 너무 이상하군요.”
자료를 살펴보던 레터 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저번 달, 레드본의 정기검진 때의 자료입니다. 이게 조금 전 검사한 자료구요. 겨우 한 달 차이인데, 이렇게 증상이 심해지다니…….”
“증상이 심해지다니? 원래 병이 있었다고?”
그린윙의 말에 레터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복귀하면 치료에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중독 기미가 보였거든요. 아마…….”
레터 박사가 목소리를 죽였다.
“기지 내에 있는 스파이의 짓이겠죠.”
“그런데 왜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쉐도우맨이 날을 세웠다.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레터 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땐 괜찮았습니다. 이 독은 1년 정도 몸속에서 묵혀둬야 제 기능을 하거든요. 그만큼 발견하기도 힘들지만, 저는 발견했죠.”
“자자, 자랑은 그 정도 하고, 그래서 해결 방법은?”
“없습니다. 초기에 치료하는 게 해결책이었는데, 어째선지 레드본의 신체는 1년 정도 나이가 먹은 듯하군요. 아무리 천재인 저라도 나이를 되돌릴 순 없죠.”
레터 박사의 말에 히어로들이 침묵했다. 천재인 레터 박사에게 방법이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방법이 없을 터였다.
그때였다.
어셈블 기지가 붉게 물들며,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나트라의 우주선입니다!]
나트라!
쉐도우맨과 히어로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나트라의 우주선에서 통신을 요청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쉐도우맨에게로 향했다. 쉐도우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을 허락하자 모니터 위로 나타난 건…….
-안녕!
밝게 인사하는 벨 나트라였다.
나트라의 우주선을 착륙시킬 수는 없어, 쉐도우맨이 벨 나트라의 우주선으로 향했다.
“안녕. 쉐도우맨.”
“여긴 왜 왔어?”
날카로운 쉐도우맨의 목소리에 벨 나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물어볼 게 있어서. 네 주변에 갑자기 늙거나 젊어진 사람, 없어?”
“……!”
갑자기 늙다니, 그건 레드본의 일이 아닌가. 영상으로 보고 있던 레터 박사가 레드본에 대해 이야기했다. 벨 나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를 전부 뒤져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이네. 레드본이라는 남자를 그렇게 만든 건 ‘타임스톤’이야.”
“타임스톤?”
쉐도우맨과 모니터 속 히어로들이 귀를 기울였다. 레터 박사의 눈이 번쩍였다.
“지구 시간으로 20년 전. 나트라 시간으로는 100년 전. 왕족 납치범들이 훔쳐 달아났던 힘을 가진 돌멩이지. 이렇게 생겼어.”
벨 나트라가 손을 뻗자, 그녀의 손목에 달린 장치에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새파란 보석.
“이건 블루 타임스톤이야. 블루 타임스톤은 신체의 시간을 당기는 힘이 있어. 아마 그대로 놔뒀으면 1년 후의 레드본은 저렇게 쓰러졌을 거야.”
레터 박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치료하지 않고 놔뒀다면 그랬겠죠. 그렇군요. 타임스톤 때문에 레드본의 몸은 1년이 지나버린 겁니다. 시간을 당긴다……. 그러면 정말 치료 방법이 없겠군요.
“방법은 있어.”
벨 나트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타임스톤 중에는 빨간 게 있어. 레드스톤이라고 시간을 되돌리는 돌멩이야. 그걸 찾아서 레드본에게 사용하면 돼. 크기에 따라서 돌아가는 시간이 다르긴 한데…….”
“제일 큰 걸 찾으면 되겠군.”
“제일 큰 건 내 거야. 그게 너희를 돕는 이유고.”
“우리를 도와?”
벨 나트라의 말에 히어로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히어로들의 표정에 벨 나트라가 팔짱을 꼈다.
“레드스톤을 사용하는 방법은 알아? 구분은? 너무 큰 걸 사용했다가 레드본이 어려지면? 아기가 되면? 너희끼리 해결할 수 있어?”
아기가 된 레드본이라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린윙이 입을 열었다.
-그럼 레드본은 어떻게 블루스톤을 사용한 거지?
“타임 스톤에 대해 아는 자들이 있겠지. 타임스톤에 담긴 힘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연구한 자들이.”
-아마도 저번 전투 때, 그 힘에 당했나 봅니다.
레터 박사의 말에 히어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타임스톤에 대해서?
벨 나트라가 웃었다.
“어떻게 나트라인이 100년이 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아하.
히어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쉐도우맨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벨 나트라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좋아. 그럼 잠시 동맹이야.”
“넌 네가 원하는 걸 얻고, 난 내가 원하는 걸 얻고.”
쉐도우맨이 그 손을 맞잡았다. 히어로들과 벨 나트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임스톤.”
박성원은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드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사용자의 생체 시간을 돌리다니, 꼭, 꼭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물건 같았다.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셈블의 정보력으로 보석의 탈을 뒤집어쓴 ‘타임스톤’을 쫓던 히어로들은, ‘타임스톤’의 진정한 힘을 알아채고 연구하던 테러 조직을 습격했다.
먼저 타임스톤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테러 조직의 기지에 숨어들었던 히어로들은 지하 가장 깊은 곳의 풍경에 허, 탄식했다.
[1개월-블루][2개월-블루]……[1년 2개월-블루][1년 3개월-블루]…….
작은 상자에 여러 개의 캡슐이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가장 짧은 게 며칠, 가장 긴 게 1년 3개월.
타임스톤은 테러 조직의 기지 가장 안쪽에서 캡슐로 가공되고 있었다.
단단한 유리캡슐 안에 푸른 액체. 그린윙이 1개월짜리 블루 캡슐을 손에 쥐었다.
“이렇게 팔고 있었나 보네. 저번에 싸웠던 적도 구입한 모양이고.”
-캡슐 재질로 봐선 경구 투입용은 아닙니다. 캡슐을 깨고 그 안의 액체와 접촉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걸 잘못 건드려서 레드본이 늙어버린 모양이군.”
“근데 레드 캡슐은 없네.”
“젊어진다니까 여기저기 팔렸겠지. 일단 타임스톤부터 찾자.”
타임 스톤을 찾기 위해 히어로들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을 적들이 알아챘다. 쏟아지는 적들에 레드본을 구하기 위해 쉐도우맨과 히어로들이 날뛰었다.
“근데 젊어지면 젊어졌지 늙을 이유가 있나?”
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그린윙이 물었다.
-수술해서 치유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선천적인 병 같은 경우에는 젊어져도 그대로이니까요.
“아하.”
모든 전투가 끝나고 타임스톤을 수집하던 그린윙이 벨 나트라의 발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벨. 네 그림자는 되게 얌전하네?”
“벨?”
“왜? 풀네임은 너무 길잖아.”
쉐도우맨의 못마땅한 표정은 무시하고 그린윙이 말을 이었다.
“쉐도우맨의 그림자는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항상 고생이었거든.”
“저놈의 그림자가 오늘도 내 발을 걸었어.”
히어로들의 말에 벨 나트라가 쉐도우맨의 그림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뚫어버릴 듯한 눈빛에 흐느적흐느적하던 그림자가 천천히 바닥에 들러붙어, 그림자인 척했다.
“이제 와서 늦었다. 멍충아.”
그린윙이 낄낄 웃었다.
자신의 파트너, 그림자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벨 나트라의 모습에 쉐도우맨이 입을 열었다.
“레드본이 쓸 건?”
“여기. 이게 딱 1년 1개월짜리야.”
그림자에서 시선을 거둔 벨 나트라가 가공 전인 레드 타임스톤을 보여주었다. 그 영롱한 붉은 빛에 쉐도우맨과 히어로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히어로들은 비행선을 타고 어셈블 기지로 향했다.
비행선 엔진 소리가 작게 들리는 밤.
“나트라의 왕은 후보자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선택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쉐도우맨, 맥이 뒤를 돌아보았다. 벨 나트라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내 아버지, 튤 나트라야.”
“튤 나트라…….”
“그리고 네 아버지이기도 하지.”
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벨 나트라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본 체였다.
“왕의 후보자들은 왕이 정해지면 자신의 힘의 일부를 행성의 핵에 주입하고 나트라의 귀족이 돼. 뭐, 어렸을 때부터 왕의 후보자로 커서 평범한 삶이 안 맞는 후보자들도 있지만, 힘이 약해졌으니까 그저 받아들이는 후보자들이 많았지.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
“행성의 핵에 힘을 주입하지 않고, 달아난 후보자 두 명이 있었어. 그들은 자신을 쫓아오는 왕, 튤 나트라를 위협하기 위해, 튤 나트라의 갓 태어난 아이를 납치했지.”
맥의 눈이 깊어졌다.
“튤 나트라는 가만히 왕좌에 앉아있었어. 뒤쫓지도 못했지. 자기 아이의 목에 칼이 들이밀어졌으니까. 아무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어. 그래서 납치범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 튤 나트라가 믿고 있던 건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 하나뿐이었어.”
맥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잡았다. 벨 나트라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저 목걸이였다.
“우린 그 아이의 손에 펜던트가 닿기만을 기다렸어. 발도 좋아. 어디든, 신체 일부가 닿기만 하면 목걸이가 신호를 보내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신호가 울렸어. 100년이나 걸렸지.”
“그곳이…….”
“그래. 여기, 지구야.”
하늘을 가득 채운 나트라의 함선.
그저, 아들을 찾으러 온 것뿐인데도, 뚜렷한 과학력의 차이는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가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통에, 나트라는 조금씩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지만, 100년 만에 나타난 단서에, 튤 나트라의 이성은 아주, 아주 희미했다.
“그때, 그림자를 사용하는 남자가 나타났어.”
맥은 그게 누군지 알았다. 자신이었다. 쉐도우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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