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37화
세 번째 게임이 끝나고 트로피가 숨겨진 곳의 힌트가 알려졌다.
얼른 트로피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가방을 소중히 안고 있던 범인 박영진은 복도를 걸어가던 중,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정훈과 눈이 마주쳤다.
“!”
박영진은 정훈과 마주치자마자 등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정훈의 품에 가방이 없었다면 말이다. 박영진을 발견하고 도망가려고 했던 정훈도 박영진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영진이 형이 왜 그 가방을?”
“정훈이 넌…… 왜?”
서로 소중히 안고 있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색도 모양도 크기도 똑같은 가방.
“……!”
두 사람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든 상자를 열고 뽁뽁이로 둘둘 만 무언가를 꺼냈다. 트로피, 똑같이 생긴 오스카 트로피가 두 개였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몰랐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힌트가 달랐거든요! 난 책꽂이에 올려뒀는데! 아오, 제작진, 진짜! 진짜 트로피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아오!!”
정훈이 난리를 치는 사이, 박영진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그 인기척도 기분 탓이 아니란 소리였다.
“정훈이 너, 누가 따라다니는 거 못 느꼈어? 나는 계속 뭐가 따라다니는 거 같았거든.”
“어? 형도 그랬어요? 저도요. 근데 엄청 빨리 숨는지 못 찾겠더라고요. 보이는 건 스태프뿐이고.”
박영진과 정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스파이인가?”
“……그런가 봐요.”
* * *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이 전부 끝나고 트로피와 범인을 찾는 시간이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오스카 트로피와 범인을 찾아주세요. 범인에 대한 힌트는 건물 내에 있습니다. 1시간 후, 1층 로비에 있는 이런 탁자에 오스카 트로피를 올려주시고…….”
전피디가 [W]마크가 붙여진 탁자를 가리켰다.
“여기에 범인의 이름을 써주시면 됩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전피디가 봉투를 건넸다. 아카데미 시상식 때, 수상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봉투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럼, 레이스 스타트!”
[01:00:00]
[00:59:59]
새빨간 전자시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박영진과 정훈을 뺀 6명의 멤버가 서로를 경계하며 흩어지려고 했다. 박영진이 입을 열었다.
“너희 전부 범인이지?”
“뭐, 뭐? 형, 무슨 소리야?”
“그러게. 범인은 한 명 아니야?”
박영진의 말에 멤버들은 서로 아닌 척하다가 지금까지의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다들 너무 당황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나 트로피 있어.”
박영진이 가까운 곳에 숨겨 놓았던 가방을 꺼내왔다. 정훈도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오스카 트로피의 등장에 6명의 멤버가 화들짝 놀랐다.
“저걸 왜 형이 들고 있어?”
“잠깐,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던 트로피가 가짜라는 소리야!?”
가짜!
그 말에 멤버 중 몇몇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쭈그려 앉았다.
“미친! 사무실에서 트로피 보고 울 뻔했다고!”
“가짜…… 가짜였어! 다행이다!”
“하긴, 뭘 믿고 이런 데 진짜 트로피를 맡기겠어.”
진심으로 안심하는 멤버들을 보며 박영진이 말을 이었다.
“근데 너희 누가 있는 거 못 느꼈어?”
그 말에 6명의 멤버가 몸을 움찔 떨었다. 트로피를 숨기고 있을 때면 인기척을 느끼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오빠도 느꼈어요?”
“누나도요?”
“그렇다니까. 우리 말고 누군가가 더 있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그 스파이인 것 같아.”
스파이.
워킹맨 멤버들의 눈이 번뜩였다.
“아마 게임의 힌트로 나온 건, 진짜 트로피의 위치일 거예요.”
“그럼 이렇게 4명은 트로피를 찾고 이렇게 4명은 스파이를 찾자.”
“스파이는 누구일 것 같아요?”
“서준이가 나왔으니까, 서준이 지인일 것 같아요. 이지석 배우, 박도훈 배우, 김종호 배우…… 왜 쳐다봐요?”
멤버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정훈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서준 군이랑 친해?”
“내적 친분이 엄청나죠! 저 새싹부터 3기입니다!”
“후후후. 3기? 난 1기라고! 3기면 뭐야. 재수사 카메오랑 연극 봄이랑, 팬미팅했을 때…… 잠깐. 여기?”
‘윌리엄’을 보고 팬카페 [새싹부터]에 가입한 1기 팬, 최소희가 뿌듯해하며 말을 잇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왜?”
다들 최소희를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은하수 센터잖아! 어린이 연극 봄 공연한 곳!”
“어, 어. 그러네?”
“서준이 특집이라서 여기로 온 줄 알았는데, 게스트가 봄에 나왔던 아역배우인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잠깐 누가 나왔지?”
“이다진 배우, 최소영 배우…….”
최소희가 한 명, 한 명 손을 꼽아가며 이름을 댔다. 그 엄청난 덕력에 멤버들은 할 말을 잃었다.
“……다 알고 있어?”
“그럼요. 팸플릿하고 연극을 몇 번이나 봤는데요! 아, 물론 DVD로요. 공연 내려가고 알았거든요.”
“그럼 누가 가능성이 큰 같아?”
“이다진 배우가 요번에 영화 찍는다던데…….”
“영화 홍보하러 나왔구나!”
최소희의 말에 멤버들의 눈이 번쩍였다.
“50분 남았습니다.”
“빨리 가자!!”
전 피디의 말에 워킹맨 멤버들이 연습실을 나섰다.
잠시 후, 멤버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자, 서준이 입을 열었다.
“다들 추리 잘하네요.”
“하다가 삐끗했는데요. 게다가 눈도 안 좋고. 여기 서준 군이 딱 있는데.”
작가들과 함께 앉아 있던 서준이 메인 작가의 말에 웃었다. 서준은 멤버들이 촬영 장소로 꾸며진 연습실에 들어올 때부터 작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럼 서준 군도 마지막 미션을 골라야죠?”
“네.”
전피디의 말에 서준이 조금 전까지 멤버들이 서 있던 곳 옆에 준비되어 있던,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전민재 피디가 서준의 앞에 8장의 미션지를 내려놓았다.
“마지막 미션입니다. 선택해 주세요.”
서준이 신중히 8개의 미션지를 바라보았다. 전 피디님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 미션도 두 번째 미션도 오늘 정한 고난도 미션이었다.
신중히 미션지를 보던 서준이 하나의 종이를 뒤집었다.
[워킹맨 멤버들과 단체 촬영.]
어떻게 골라도 이걸. 이라는 제작진들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첫 번째 미션도 두 번째 미션도 성공했지만 세 번째 미션은 성공하기 어려울 터였다.
“이것도 좋네요. 설마 슈퍼스타 이서준이, 음, 똥손일 줄이야.”
“그러게요. 어떻게 10개 중에 어려운 거 3개를 딱 고르죠?”
“서준이가 운이 없는 편이네요.”
스태프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안다호가 슬며시 웃었다.
‘운이란 건 상대적인 거고, 서준이는 운이 좋은 편이지.’
이번에도 행운은 서준에게로 향했다. 미션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서준의 얼굴은 밝아졌다. 정말 재미있어서 신이 난 얼굴이었다. 미션의 승패보다는 서준의 흥미에 행운이 반응한 것 같았다.
“8명의 맴버들과 서준군이 한 컷에 들어가면 됩니다. 카메라는 어떤 카메라도 상관없습니다.”
“얼굴이 보여야 해요?”
“최소한 4명의 얼굴이 찍혀야 합니다. 서준 군의 얼굴은 꼭 들어가 있어야 하고요.”
“엄청 어렵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준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제작진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번에도 성공한다고?
미션을 받은 서준은 카메라맨과 함께 연습실을 나왔다.
서준은 제자리에 우뚝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로 갔을까? 서준은 능력을 발동했다.
[(선)샌드피쉬의 진동감지-하급이 발동됩니다.]
[(선)샌드피쉬의 진동감지-하급]
모래를 먹고 사는 사막 물고기입니다.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생명체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했습니다.
탐색 시간이 길면 길수록, 상대방의 움직임을 자세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사막 몬스터계의 최하위종, 샌드피쉬는 공격 기술도 없었다. 오로지 회피, 도망. 그래서 서준은 이 능력을 선택했다. 이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피해 다녔다. 그런데 이제 멤버들을 쫓게 될 줄이야.
10초의 시간이 지나고 서준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짧은 탐색 시간에 보이는 것은 흐릿한 점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의 생김새는 나오지 않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보였다.
‘멤버와 카메라맨, 스태프……’
조금 전과는 달리, 망설임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점들에, 서준이 히죽 웃었다.
워킹맨 멤버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하급 몬스터처럼 보물을 숨기고 자신을 숨기기에 급했던 멤버들이 적을 알아차리고 공격태세를 보였다.
‘이건 무리를 지었다는 이야기야.’
하급몬스터들이 모여 무리를 지어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공격하는 일은 질릴 정도로 겪어봤다. 그리고 그런 하급 몬스터들의 상대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따로따로 공격해서 파괴하거나, 아니면 아예 함정을 파서 기다리거나.
“아까 몰래, 아니,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대놓고 듣긴 했지만 다들 열심히 움직이고 있나 봐요.”
서준은 카메라 건너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좀 예능 카메라에 익숙해진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어요?”
“45분이요.”
“충분하네요.”
서준은 먼저 숨겨둔 트로피를 확인하러 갔다. 숨겨진 오스카 트로피를 관리하고 있던 2팀 직원이 서준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서준도 손을 흔들었다.
“트로피는 아직 못 찾은 것 같아요.”
진동감지를 이용해 멤버들의 위치를 확인한 서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들의 말대로 재미있었다. 뭔가 쫓고 쫓기는 상황이 몬스터로 살았을 때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전생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야생성이 울렁울렁거리는 것도 같고. 흥분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미션이 단체 촬영이었으니까, 멤버들을 한곳에 모아야 할 것 같아요.”
미션이 없었다면 진동감지로 추격해서 각개격파했겠지만, 미션이 미션인지라 함정을 파야 할 것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사냥본능에 서준이 헤헤 웃었다.
* * *
“저기다!”
정훈이 카메라맨을 발견했다.
“야! 이태훈! 게스트 담당 카메라맨! 이태훈!”
운이 좋았다. 게스트는 못 봤지만, 게스트 담당 카메라맨의 뒷모습을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것이었다. 스파이 체포조 4명이 그 뒷모습을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아오! 진짜 빠르네!”
“되게 잘 빠져나가네.”
멤버들이 숨을 훅훅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점점 내려가고 있죠?”
“아무래도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쉬우니까, 내려가나 봐.”
“그럼 밑에 먼저 가 있을까요?”
“그건 좀. 중간에 올라오면 어떻게 해. 밑에 애들 있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던 정훈의 시선이 멈추었다. 밑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형! 이쪽! 밑으로 내려가요!”
정훈의 말에 다들 움직였다. 그렇게 소리를 듣고, 카메라맨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추적 끝에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너무 시기적절한 추격에, 박영진은 불안해졌다.
“우리 왠지 유인당하는 것 같지 않아?”
“유인이요?”
“묘하게 잡힐 듯 말 듯 한 기분이거든. 아까는 확실하게 숨더니 지금은 뒷모습이 슬쩍슬쩍 보이고.”
“에이. 스파이가 왜 유인을 하겠어요. 게다가 한 명인 것 같은데, 우리가 이겨요.”
“너 아직 학생인 애랑 싸우려고?”
“아니! 게임 이야기지! 게임!”
“왜 계속 찝찝하지…….”
박영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카메라맨의 뒤를 쫓아 내려간 곳은 오프닝 촬영을 했던 로비였다. 스파이 체포 조가 로비를 서성거리는 트로피 수색 조를 발견했다.
“어. 소희 누나. 트로피 찾으러 간 거 아니었어요?”
“너희가 스파이 쫓아서 내려오는 것 같아서.”
“합동해서 잡으려고…… 했는데 없네?”
은하수 센터 로비에, 8명의 멤버가 모였다. 1층 로비에 모인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했다.
아마 모든 일의 열쇠는 이서준이 들고 있을 터였다.
워킹맨 멤버들이 대화하는 사이, 숨어 있던 서준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멤버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서준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카메라맨도 뒤따랐다. 간간이 뒤를 돌아보며 멤버들과의 거리를 좁히던 서준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보았다.
[(선)엘프의 기초호흡이 발동됩니다.]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알림음이 울렸다. 서준의 몸에서 선기가 뿜어져 나왔다.
미약한 인기척이라도 사람의 고개를 돌리게 하는데, 그 강렬한 아우라는 멤버들과 제작진의 시선을 강제로 잡아끌었다. 모두 고개를 돌려 그곳을 볼 수밖에 없었다.
워킹맨 멤버들의 눈에, 그곳에 서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게스트 담당 카메라맨, 이태훈이 카메라 렌즈를 ‘누군가’와 멤버들 쪽으로 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슈퍼스타의 아우라를 잔뜩 뽑아내는 서준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김치!”
얼빠진 워킹맨들을 배경 삼아, 서준은 카메라를 향해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00:00:03]
[00:00:02]
[00:00:01]
[00:00:00]
붉은 전자시계가 0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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