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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36화 (13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36화

워킹맨들이 모두 사무실로 들어가고 스태프들은 오프닝 촬영을 했던 은하수 센터 로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명 같은 기계는 담당 스태프들만 다룰 수 있어 할 일도 없었지만, 간단한 심부름이나 정리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었다.

오프닝을 준비하면서 벌여놓았던 짐들을 다들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서준도 한 손 거들었다.

다른 스태프들과 같이 움직이는, 위화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는 웃고 말았다.

서준이 즐거워하는 게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연기를 아주 잘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누구보다 감정을 숨기고 꾸며내기 편할 테지만 서준의 마음은 의외로 알기 쉬웠다.

좋아하는 걸 할 때면 서준의 분위기가 따끈따끈하고 포근해지고는 했다. 눈도 반짝반짝하고 얼굴색도 밝아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 사이에 숨기 위해, 부피가 큰 패딩으로 체형을 가리고 신발에 깔창도 넣어 키도 키웠다. 검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어서 슬쩍 보면 그냥 스태프 중 한 명 같았다.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데도 서준의 주위는 즐거움의 반짝임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제작진들은 모르는 눈치지만…….’

안다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준에게 익숙한 자신과 서준만 보고 있던 2팀 직원, 서준 담당 카메라맨만이 서준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예능이라 존재감은 드러내야 하는데, 스태프 역을 맡아서 연기는 잘하고 싶으니까, 적당히 약하게 연기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그 ‘적당히 약하게’가 서준의 기준이었다는 점이었다. 계속 서준인 걸 알고 보면 그냥 이서준 같았지만, 시야에서 놓치거나 인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스태프1이었다.

‘더 약하게 하라고 해야겠네.’

지금 말하기에는 서준이 너무 신나 보여, 안다호는 정리가 모두 끝나면 말하기로 했다.

안다호의 생각대로 서준은 스태프 일이 재밌었다. 서준이 실실 웃으며 스케치북을 모아 가지런히 정리했다.

서준은 워킹맨 회의 때부터 들떠 있었다. ‘스태프’로 위장해서 워킹맨들을 속이라는 제작진의 말에 서준은 첫 생이 떠올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스태프라…….’

첫 생의 그는 엑스트라 배우였다. 엑스트라 촬영만 하면서는 생활비를 벌기 힘들었기 때문에, 출연하는 작품의 스태프 일도 했다는 내용이 첫 생의 책에 적혀 있었다. 아마 연기만큼 스태프 일도 오래 했을 터였다.

셀 수도 없는 오래전의 기억과 익숙함이 서준을 들뜨게 하였다.

워킹맨 촬영장에 들어올 때, 서준은 배우 때와는 다른 익숙함이 느껴졌다.

조명도, 지미집도, 카메라도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설치된 조명 기계를 만지고 싶고, 이리저리 이어진 선을 정리하고 싶고, 카메라도 좀 더 좋은 구도에 놓고 싶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것저것 만지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서준은 자신이 게스트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위험한 걸 만지게 놔둘 다호 형도 아니고.’

서준은 얌전히, 스태프인 척 연기하며 작은 일을 거들었다. 간간이 다호 형과 자신의 카메라를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빨리 익숙해지네?’

검은 유성펜을 달라는 작가의 말에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건네준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 회의 때의 제작진과는 달랐다. 그때의 제작진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서준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오늘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놀라면 스파이인 게 들키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다들 서준을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진짜 스태프가 된 것처럼.

‘잘 됐다. 더 속이기 쉽겠어.’

서준은 자신의 ‘스태프 연기’ 때문에 제작진들이 진짜 스태프로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실실 웃었다.

은하수센터 로비의 정리가 끝나고, 안다호가 서준을 불렀다.

“서준아.”

“네?”

짐을 옮기고 능숙하게 손을 탈탈 털던 서준이, 안다호의 부름에 눈을 깜빡였다.

“너 지금 게스트로 온 거야. 스태프로 위장하는 거지, 진짜 스태프가 된 게 아니야.”

“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카메라도 많이 봤는데…….”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면 안 되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예능은 카메라를 줄곧 봐야 했다.

그게 어색해서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스태프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카메라를 봤다.

고개를 갸웃하는 서준에 안다호가 웃었다.

“연기가 너무 강했어.”

“강했어요?”

서준이 눈을 끔뻑거렸다.

서준과 안다호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서준 담당 카메라맨이 그 이상하고도 자연스러운 서준의 합류를 전민재 피디에게 전했다.

촬영 동안의 이야기를 들은 전 피디와 스태프들도 번쩍 고개를 들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검은, 서준의 모자가 눈에 띄었다.

검은 모자!

검은 모자 스태프에게 일을 시켰던 스태프들이 헉,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쟤, 우리 스태프가 아니라 이서준이었지?!

아까 멤버들에게 트로피를 보여줄 때는 이서준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스태프1인 줄 알았다.

마치, 최면에서 벗어난 듯, 다들 충격받은 얼굴로 서준과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의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네 생각보다 연기가 강했어. 다들 널 진짜 스태프라고 생각하더라.”

연기……?

전 피디와 작가, 스태프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년은 이 바닥에서 일한 것 같은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연기였다고?

“아, 그랬구나. 더 약하게 해야겠네요. 이 정도면 괜찮나 싶었는데…… 아니었구나.”

서준의 대답을 들은, 제작진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연기의 온오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어째서 버스킹 때 이서준을 못 알아봤는지 이해가 됐다.

게다가 제작진은 이미 이서준이 스태프로 분장할 걸 알고 있지 않았던가. 물론, 구경만 하는 버스킹 때와는 달리, 제작진은 촬영 준비로 바빴지만 말이다.

‘그래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제작진들은 매니저와 대화하고 있는 배우, 이서준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을 돕는 건 좋은데, 가벼운 소품 같은 거 옮기는 건 괜찮지만, 위험하니까 기계는 만지지 말고. 알았지?”

“네!”

대화만 보면 제 나이대로 보이는 이서준이었지만.

‘이런 연기력이라니…….’

제작진들에게 오스카 최연소 수상자라는 이서준의 수식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전민재 피디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전민재 피디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카메라!”

“네?”

“버스킹 때 아무도 이서준을 못 알아봤어!”

“……!”

화들짝 놀란, 제작진이 영상을 돌려보았다.

다행히도, 서준 담당 카메라에는 ‘이서준’이 확실하게 찍혀 있었다. 간간이 카메라를 보며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하지만 다른 카메라에 찍힌 서준은 애매했다. 제작진들이 모여 있는 쪽,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스태프 중 검은 모자를 쓴 스태프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서준이죠?”

“이서준인 걸 알고 보니, 이서준인 것 같은데……모르고 보면 그냥 스태프인 줄 알겠어요.”

“그러게요. 시청자들이 스태프 얼굴까지 열심히 보지는 않잖아요.”

“앞쪽은 담당 카메라가 찍은 장면만 써야 할 것 같네.”

조연출에게 첫 게임의 진행을 맡기고, 전 피디와 작가들은 머리를 맞댔다.

“근데 이 정도면 멤버들은 거의 못 알아볼 가능성이 크지 않아?”

“그러게요. 진짜 대놓고 얼굴을 보지 않으면 무슨 미션을 줘도 못 알아볼 것 같은데요?”

[워킹맨?!] 제작진의 계획은 이랬다.

이서준을 스태프로 위장하고 멤버들을 속인다. 이서준에게 금세 들킬만한 미션(멤버들에게 말 걸기, 물건 건네기 등)을 준다. 이서준이 멤버들에게 들킨다. 이서준과 멤버들이 함께 게임을 한다.

“꼭꼭 숨기고 있다가 이서준을 찾은 멤버들 리액션 촬영하기도 좋고, 함께 게임 하는 장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체를 들켜야 리액션 촬영을 하든 게임을 하든 할 텐데. 우리 계획엔 이서준이 들키지 않는다는 가정이 없었어요.”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지.”

알고 있었는데도 몰라보고 게스트에게 심부름을 시켰던, 전민재 피디와 작가들이 한숨을 쉬었다.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메인 작가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건 이거대로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게?”

“시청자들까지 속이죠.”

“?”

“이서준판, 윌리를 찾아라. 물론, 이건 지금까지 촬영분으로도 충분해요. 이서준이 나왔는데, 시청자들까지 못 알아보면 큰일이죠. 다음 촬영부터는 연기는 약하게 해달라고 해야겠어요.”

메인 작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윌리를 찾아라, 제법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나도 생각해 봤는데, 미션 난이도를 조절하자.”

“조절이라면…… 더 어렵게요?”

“그래. 지금 미션은 죽어도 안 들킬 것 같거든.”

“그것도 괜찮긴 한데, 전부 어려우면 시청자들이 항의할 걸요?”

“지금 미션에 3개만 더 추가하는 거야. 미션 뽑기는 운이지. 설마 그 많은 쉬운 미션을 놔두고 3개가 걸리겠어.”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제작진의 회의는 짧았다. 전민재 피디가 서준과 안다호를 불렀다.

“이렇게 바꾸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안다호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멤버들만 속여주세요. 시청자들은 서준 군을 잘 볼 수 있어야죠.”

“네. 약하게 할게요.”

전 피디의 말에 서준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멤버들은 속이고, 시청자들은 잘 볼 수 있게.

‘강약조절. 어렵겠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기대되고 떨리는 법. 서준의 볼이 흥분으로 빨갛게 상기됐다.

“피디님. 첫 게임 끝나고 트로피 숨기기 시작했답니다.”

스태프의 말에, 전민재 피디는 작가들이 급하게 만든 미션지 10개를 서준의 앞에 내밀었다.

이 중 7개는 미리 만들어놓은 미션, 3개는 지금 만든 고난도의 미션. 오늘 촬영 동안 서준은 3개의 미션을 성공해야 했다.

“미션에 실패하면 멤버들에게 서준 군에 대한 힌트가 알려집니다.”

“네!”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미션지 10개 중 하나를 선택해 뒤집었다.

[멤버 중 한 명의 담당 카메라에 찍히기]

‘처음부터 고난도 미션이 걸릴 줄은 몰랐는데.’

슈퍼스타 이서준은 보기보다 운이 없는 것 같았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멤버 중 한 명의 담당 카메라에 얼굴을 찍히면 됩니다. 물론, 멤버의 얼굴도 카메라에 나와야 합니다. 한 컷에 서준 군과 멤버의 얼굴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와. 어렵겠네요.”

“어, 미션지 다시 뽑을래요?”

처음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전민재 피디의 말에 제작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해볼게요!”

친구들의 말대로 엄청 재밌을 것 같았다. 목표물을 노리는 서준의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 * *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8명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첫 번째 게임의 1등인 박영진이 얻은 시간은 15분. 사무실을 나온 박영진이 한숨을 쉬었다.

박영진의 품에는 가볍고도 무거운 검은 가방이 안겨 있었다. 박영진은 이제부터 15분 동안 이 가방을 숨겨야 했다.

“내가 범인이라니!”

침울하다 못해 좌절한 표정의 박영진이 아주 소중히 가방을 안았다. 가방 안에 든 건, 트로피와 완충재, 상자뿐이었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조심히 가방을 품에 안은 박영진이 걸음을 옮겼다. 박영진의 담당 카메라맨이 뒤로 걸으면서, 카메라 화면 가득 박영진의 모습을 찍었다.

“제일 안전한 곳. 안전한 곳에 숨기자.”

열심히 트로피를 숨길 곳을 찾던 박영진이, 휙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뭐가 있는 것 같았는데?”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박영진이 고개를 갸웃하고 공연장 좌석 아래에 가방을 숨겼다.

“C14. C14.”

나중에 찾기 쉽게 좌석 번호까지 외우고 얼른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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