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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35화 (13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35화

다음 날, 서은찬은 서준의 전화를 받았다.

“워킹맨?”

-응!

전화를 받은 서은찬이 눈을 끔뻑거렸다. 워킹맨이라면 SBC 예능으로 8명의 멤버와 게스트들이 팀을 이뤄 제작진이 준비한 게임을 차례차례로 클리어하는 예능이었다.

“갑자기?”

어제 내내 고민하던 서준이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결정을 내렸다고? 서은찬의 물음에 서준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재밌대. 게임하는 거 해보고 싶다고 했어. 자기들은 못하니까, 내가 하면 좋을 것 같대.

아하.

서은찬이 볼을 긁적였다.

‘친구라…….’

집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점점 자신만의 세계를 원하면서, 서준은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서은찬도 그랬고, 서은혜도 그랬다. 누구든 학생 때는 누구의 말보다도 친구의 말을 더 믿고 의지하게 마련이었다.

이번 예능 출연을 친구의 말을 듣고 결정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저 한 번 나가는 예능이니까.

‘서준이가 특이하긴 하지.’

아역 배우들이 작품을 고를 때는 부모나 선생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아직 좋은 작품을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달랐다. 그 많은 시나리오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골라내고는 했다.

서은찬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 서준의 작품 선택에 친구들이 영향을 주지 않을까. 친구들의 부탁이나 말에 서준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아니지.’

서준이가 그럴 리가 없었다. 명감독, 명작가의 작품도 본인이 싫다면 하지 않는 아이였다. 2년 전엔 ‘악령’의 감독인, 최대만 감독의 시놉시스도 별로라고 했다.

-삼촌?

서준의 목소리에 서은찬이 정신을 차렸다.

“네 생각은 어때? 하고 싶어?”

복잡한 삼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세 살 조카는 즐겁게 대답했다.

-응. 하고 싶어. 게임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야. 알았어. 일정 정해지는 대로 다호 씨한테 전할게.”

-응!

* * *

시끌벅적한 코인노래방.

그중 한 방을 차지한 아이들이 조용히 통화하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삼촌과 통화한 서준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워킹맨하기로 했어.”

“우리가 추천하긴 했는데, 그렇게 빨리 결정해도 돼?”

“그래. 일이잖아. 다른 방송도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아?”

지후가 과자를 먹으며 물었다. 지오와 미나, 지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가 물어봐서 대답하긴 했는데, 그게 그대로 결정될 줄은 몰랐다.

서준이의 실행력에 감탄해야 하는 건지, 그걸 그대로 승낙하는 소속사를 탓해야 하는 건지.

아이들은 자신들의 추천이, 서준의 출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그걸 알아본 서준이 커다란 몸짓으로, 어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한 번에, 세상근심을 다 끌어안은 듯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일이면 내가 결정하면 되는데, 예능이니까 너희한테 물어보는 거야. 연기할 작품 고르는 건 쉽거든. 하고 싶은 거만 찾으면 되는데…… 예능은 모르겠어. 오히려 너희가 도와줘서 엄청 고마워.”

그런 서준의 모습이 잘 먹혔는지, 안심한 친구들이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야.”

지오가 벌떡 일어났다.

“할 일 다 끝났지? 그럼 놀자! 누가 먼저 부를래?”

“나!”

서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오에게서 마이크를 받은 서준은 동전을 집어넣고 익숙하게 번호를 눌렀다. 노래방 기계 화면으로 노래의 제목과 가수가 떴다.

[스파크-브라운블랙]

서준이 마이크를 잡았다.

“서준이는 브블 노래 엄청 좋아하더라.”

“화이트 노래도 자주 불러.”

“같은 소속사라서 그런가.”

“그럴지도. 근데 참 신기하지 않아?”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서준을 보며, 호응하며 박수를 치던 미나가 웃으며 말했다.

“설마 누가 코인노래방에 할리우드 스타가 있다고 생각하겠어.”

탬버린을 흔들던 지윤도, 머리를 맞대고 다음에 부를 곡을 찾던 지오와 지후도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경호원분들은 알고 있을지도.”

“오늘도 오셨겠지? 근데 누가 경호원인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경호하는 방법도 있대. 일반인 속에 숨어서 경호하는 거.”

“나 다 불렀어. 다음은 누구야?”

“나!”

지오가 벌떡 일어나 서준에게서 마이크를 받았다. 지오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열심히 교대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뭐지?”

워킹맨 촬영을 위해, 촬영장소인 은하수 센터에 발을 디딘 박영진이 눈을 끔벅였다.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봄 햇살을 느끼는 것처럼 들떠 있는 제작진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전 피디. 오늘 게스트 누구야?”

“비밀입니다.”

박영진의 물음에 [워킹맨?!]의 전민재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보통은 살며시 귀띔해 주는데 오늘따라 다들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박영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나둘 워킹맨 멤버들이 도착했다. 다른 멤버들도 이상한 제작진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여자 게스트?”

“남자 게스트인가?”

분명히 게스트 때문일 텐데 평소와 달리, 성별도 특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자 스태프들도, 여자 스태프들도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양하게 좋아하기도 힘들 텐데? 워킹맨들의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물음표가 나타났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촬영 준비는 착착 끝나갔다.

은하수 센터 로비에서 오프닝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워킹맨의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중 제작진과 조금 떨어져서 촬영 상황을 살펴보던 안다호와 코코아엔터 2팀 직원의 눈이 한 사람에게 향하고 있었다.

검은 모자를 쓴 스태프가, 소품을 옮기고 말을 전하고, 이리저리 가벼운 짐을 옮기고 있었다.

몇 년은 여기서 일한 듯, 다른 스태프들의 동선과 부딪히지도 않으면서 잘도 뽈뽈 돌아다니고 있었다.

“팀장님. 서준이가 이런 일 해봤어요?”

“……그럴 리가요.”

안 해봤다고 하기에는 너무 쉽게 제작진들 사이에 빠져들었다. 촬영준비 때문에 바빴던 스태프들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검은 모자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것 좀 들어줄래?”

“네!”

작가들 쪽으로 달려가는 서준의 모습에, 안다호와 2팀 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계나 전선 쪽으로 가면 불러야겠죠?”

“네. 지금은 좀 더 지켜보죠.”

안다호와 2팀 직원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은 소품들 속에서 스케치북을 찾으러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연출이 크게 외쳤다.

“그럼 워킹맨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박영진을 중심으로 [워킹맨?!]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여느 때처럼 소소한 잡담을 나누고, 피디의 게임 설명을 들었다.

“오늘은 추리 특집입니다.”

“추리? 살인사건인가요?”

“도난 사건입니다.”

“잠깐, 게스트는요?”

“오늘 게스트는 영상으로 출연합니다.”

피디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상? 근데 이렇게 다들 들떴다고?

“뭔가 이상한데?”

“그러게요. 또 뭐, 스파이나 히든미션 있나 봐요.”

“너지? 네가 스파이지?”

“아니거든요!”

보통 때처럼 워킹맨들은 서로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자, 오늘 촬영 시간은 짧으니까, 모두 집중 부탁합니다.”

“그러니까. 촬영 시간도 줄었고 뭔가 이상하다니까?”

워킹맨들의 의심 속에서도 피디는 제 할 말만 했다. 게스트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워킹맨에게 주어진 촬영시간은 짧았다. 뽕을 뽑고 말리라! 시청률 폭발을 기대하는 스태프들의 눈이 번쩍였다.

“오늘 탐정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는 슈퍼스타의 트로피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찾아줬으면 한다고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여러분 중에 숨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슈퍼스타? 또 막내 피디가 분장하고 나오겠네.”

“트로피 대신 금배지를 주면 안 돼? 요새 금값이 비싸졌다더라.”

“역시 범인은 얘지? 잡았습니다! 범인!”

시끌벅적한 가운데서도 전피디는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의뢰인을 소개하겠습니다.”

검은 모자의 스태프가 전피디의 말에 리모컨 스위치를 눌렀다. 구석에 설치된 텔레비전이 켜지고, 화면에 책상과 의자가 보였다. 의자가 뒤를 향하는 상태라서 의자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냥 얼굴 보면 안 돼?”

“그러게. 이렇게 준비할 이유가 있나?”

의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오버 더 레인보우’가 들려왔다.

“……?”

가발을 쓰고 등장할 막내 피디의 모습을 기다렸던 워킹맨들이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인지 부조화가 나타났다.

“어, 왜 여기서?”

들리지도 않을 텔레비전 속 상대에게 말을 걸 정도로. 얼어 있는 워킹맨들에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햇살처럼 웃는 진짜 슈퍼스타,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 앉아 있었다.

“뭐야!? 시상식 끝난 지 아직 이주일밖에 안 지났다고!”

“진짜 이서준이야? 누가 분장한 거 아니야?”

“……누나, 저게 분장으로 돼요?”

“안 되지.”

[탐정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 진짜 이서준이다.”

야단법석을 떨던 워킹맨들이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멤버들의 카메라가 워킹맨의 리액션 하나하나를 찍고 있었다. 그중에는 검은 모자를 쓴 스태프를 주시하는 카메라도 있었다.

화면 속 의뢰인, 슈퍼스타 이서준이 우울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실감 나는 표정 연기에 다들 앓는 소리를 냈다.

[어제 한국으로 보냈던 제 트로피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받은 오스카 트로피인데 꼭 찾고 싶어서, 탐정 여러분들에게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꼭 제 트로피를 찾아주세요!]

영상이 끝나고 검은 모자 스태프가 텔레비전을 껐다. 얼빠진 워킹맨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전 피디가 입을 열었다.

“네. 슈퍼스타 이서준 배우의 오스카 트로피가 사라졌습니다. 탐정 여러분이 찾으셔야 하는 게 바로 이 트로피입니다.”

검은 모자의 스태프가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워킹맨들은 설마, 설마 하는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상자가 열리고 반짝이는 금색의 트로피가 보였다. 사람처럼 생긴 트로피, 오스카 트로피였다.

다들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뱉지 못했다. 긴 침묵 속에 박영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워씨. 깜짝이야. 진짜 슈퍼스타를 불렀네.”

그 말을 시작으로 워킹맨들이 입 밖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시상식 재방송을 몇 번이나 봤느니, 자신은 수상할 것을 알았다느니, 평소 같으면 다 촬영하고 편집 때 잘라냈을 피디였지만, 다시 말하자면, 코코아엔터에서 요구한 촬영 시간은 짧았다.

“그럼 이제부터, 오스카 트로피를 훔쳐간 범인을 뽑겠습니다. 범인은 트로피를 잘 숨겨야 합니다.”

“아, 아직 범인 안 뽑았어요?”

“나 범인 아니라니까!”

“……잠깐만. 전 피디. 그 트로피 제작진이 만든 거지?”

박영진의 물음에 다른 워킹맨들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당연하죠. 이런 데 진짜를 쓰겠어요?”

“아니, 슈퍼스타도 막내 피디인 줄 알았는데 진짜가 등장했잖아. 그러니까 트로피도…….”

박영진의 말에 피디와 작가, 스태프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많고 많은 스태프 중 검은 모자의 스태프가 트로피가 든 상자를 들고온 이유가 무엇인가. 저걸 만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잘못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안타깝게도…….”

“안타깝게도?”

“진짜입니다!”

진짜입니다! 진짜입니, 진짜, 진짜……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피디의 목소리에 워킹맨들의 비명이 들렸다.

“제작진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진짜 오스카 트로피라고!?”

“저거 숨기다가 부서지면 어떻게 하려고!? 미쳤어!?”

“지금 완충재를 잔뜩 넣을 겁니다. 게다가 이건 들고 뛰는 게 아니라, 보물찾기니까요. 숨길 때, 찾을 때만 조심하면 괜찮습니다.”

피디의 말에도 워킹맨 멤버들은 아우성을 질렀다.

“전 세계에서 욕이 쏟아질 거야!”

“이렇게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릴 계획은 없었어요!”

워킹맨들이 반발했지만, 피디는 말을 이었다. 이런 대박을 놓칠 순 없었다. 이미 윗선까지 알려졌다.

“1번부터 8번까지의 탐정 사무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범인의 방에는 오스카 트로피가 있습니다. 범인은 진짜 오스카 트로피를 아주 조심히 숨겨주세요.”

워킹맨들은 검은 모자를 쓴 스태프를 따라 8개의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아니면 돼!”

“아까 트로피 너무 약해 보이지 않아요, 형? 살짝 떨어뜨려도 부서질 것 같던데.”

“뭐, 전 피디 말대로, 숨기기만 하는 거라서. 잘 고정만 시킬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죠? 이게 막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보물찾기니까요.”

“범인만 잡으면 되지.”

“그냥 범인이 자백하자. 오스카 트로피를 숨기는 범인이 찾는 탐정보다 더 힘들 거 아냐.”

“그것도 좋겠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촬영을 위해서 다들 열심히 숨길 게 분명했다. 8명의 워킹맨 멤버들은 각자 번호를 정하고 자신이 정한 사무실 문 앞에 섰다.

‘나만 아니어라!’

굳은 얼굴로 문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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