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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33화 (13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33화

아카데미 시상식 오프닝 무대가 시작되었다.

밴드인가? 솔로 가수? 그룹?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홀로 걸어 나오는 남자가 보였다.

누구? 얼굴은 낯설지만, 손에 들린 악기는 익숙했다. 몇몇이 남자를 알아보고, 속닥거렸다. 순식간에 관객석에 남자의 정체가 알려졌다.

“어! 제이슨이잖아?”

“준! 알고 있었어?”

“아니, 몰랐어!”

아카데미 시상식 오프닝은, 제이슨 무어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무대 위에 나타난 제이슨 무어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했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레이 바이니와는 달랐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제이슨 무어의 연주가 부족할 리가 없었다.

서준과 아이들도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네. 오프닝 무대는 ‘오버 더 레인보우’의 바이올린 감수를 맡았던 제이슨 무어입니다! 스승인 벤자민 모튼 교수와 함께 영화 감수를 맡았죠.]

[벤자민 모튼 교수가 OST ‘오버 더 레인보우’의 작곡을 맡았습니다.]

[영화 시상식에서 클래식 연주를 들을 줄은 몰랐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과 정말 어울리는 오프닝 무대입니다.]

멋진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음악상 수상!]

[오버 더 레인보우 음향 편집상 수상!]

[오버 더 레인보우 주제가상 수상!]

하나하나 호명될 때마다 해설자도 영화객도 박수를 보냈다. 순식간에 오버 더 레인보우가 음악 관련 상을 석권했다.

[밀란 첼런 주연의 더 서클, 각본상 수상!]

[밀란 첼런 주연의 더 서클, 감독상 수상!]

[오버 더 레인보우, 작품상 수상!]

사라 로트 감독은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더 서클’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더 서클의 감독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서준과 아이들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사라 로트 감독은 유쾌하게 웃었다.

“다음에 받으면 되지.”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 위로 올라간 더 서클의 흑인 감독이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도 더 서클의 감독은 열심히 소감을 말했다. 생방송 특성상 소감을 말할 시간은 짧았기에 울음 때문에 시간을 모두 써버릴 수는 없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던 이름들이 끝을 맺었다.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리고, 감독이 울음 반, 웃음 반 뒤섞인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갔다.

곧 축하 무대가 시작되었다.

박수를 치던 사라 로트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좀 아쉽기는 하네.”

“왜요?”

“올해 시상식은 특별하니까.”

사라 로트가 시상식장을 둘러보았다. 아이들도 함께 보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았다.

“인종이라는 거름망을 걷어낸 시상식이 얼마나 특별한데. 오직 실력으로만 평가한다니, 얼마나 꿈 같은 말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실력 이외의 평가요소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하면 불만이 되고, 시상식을 보던 사람들도 의아함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이 이해하는 결과. 영화 ‘더 서클’을 보며 사라 로트 감독도 감탄했다.

나는 못 받을지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되었다. 아마, 올해 시상식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백인인 사라 로트 감독이 받았을지도 몰랐다.

‘그건 또 싫네.’

사라 로트 감독이 웃었다.

“어쩌면 올해 수상자들은 다른 때보다 더 기쁠지도 모르겠어. 정말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거니까.”

“감독님도 대단해요!”

캐서린이 말했다. 서준과 폴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우리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아마 더 서클 감독님하고 몇 표 차이 안 났을 거예요.”

자신을 위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사라 로트 감독과 주변에 앉아 있던 배우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축하 무대가 끝나고, 배우들이 받을 시간이 되었다.

한국인들의 관심이 OCM으로 모였다. 겨울방학임에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은 물론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던 직장인들과 외출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부터 배우들의 수상이 있겠습니다. 먼저 여우조연상입니다.]

박영진의 말과 함께, 화면에 다섯 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시카 킴과 흑인 배우 둘, 백인 배우 둘.

[5명의 후보 중 제시카 킴과 델시 로티가 유력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제시카 킴이 받기를 원하지만, 델시 로티의 수상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정말 매력적인 조연이었습니다. 델시 로티!]

[제시카 킴도 거기에 지지 않았죠. 아마도 몇 표 차로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시은과 영화객이 말을 덧붙였다.

[여우조연상 수상자는(And The Oscar goes to……)!]

MC가 크게 외쳤다. 제시카 킴과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친구들, 그리고 한국의 시청자들은 숨을 죽였다.

[델시 로티!]

MC의 말과 함께 5명의 후보자를 비추던 카메라가 한 명을 비추었다.

흑인 배우였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델시 로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제시카 킴과 세 명의 배우들이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의 아카데미 시상식 중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흑인 배우가, 델시 로티가 수상함으로써 총 10명이 되었습니다. 90여 번의 시상식 중, 흑인 수상자는 겨우 10명!]

[동양인 수상자는 아직 1명이라서…… 씁쓸하네요.]

[이게 현실입니다.]

양시은이 말했다. 영화평론가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이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노미네이트까지 오른 두 배우를, 우리의 배우를 칭찬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델시 로티 수상!]

[제시카 킴, 아깝게 수상 실패!]

[노미네이트로도 충분! 제시카 킴에게 보내는 응원의 댓글!]

-ㅠㅠ델시 로티가 잘하긴 했어ㅠ

-흑인 배우가 수상하는 것도 되게 오랜만 아니야?

-제시카 킴이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백인 배우 놔두고 흑인 배우랑 동양인 배우가 유력했다니, 진짜 좋음ㅎ

남우조연상은 백인 배우가, 여우주연상은 흑인 배우가 수상했다. 이름이 불린 흑인 배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시상식장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여우주연상을 흑인 배우가 받은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입니다!]

[90여 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 중 흑인 배우는 2명, 동양인 배우는 1명입니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소감을 말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자, 이제 우리가 기다리던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박영진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새로운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예상치도 못한 반전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겁니다.]

[예상치도 못한 반전은, 별로 좋을 것 같진 않네요.]

그런 말을 하는 양시은도, 영화객도,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던 시청자들도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역사적인 현장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신기함 반, 역사적인 현장의 주인공인 자신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기쁨 반.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모두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이제 남우주연상을 발표할 때였다.

무대 뒤 화면에 다섯 배우의 얼굴이 차례차례로 떴다.

백인 배우 3명과 밀란 첼런의 얼굴이 나왔다. 커다란 박수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서준 리의 얼굴이 나타났다. 함성과 환호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MC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멋진 시상식에, 제가 수상자를 발표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오늘 시상식의 영상은 오래오래 남을 겁니다! 모두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세요!]

MC의 말에 지금까지보다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멋진 해를 고르라고 하면 올해일 것이고, 가장 공정한 해를 고르라고 하면 올해일 겁니다. 그리고 올해, 가장 훌륭한 연기자를 고르라고 하면 이 배우겠죠.]

캐서린과 폴이 서준의 손을 꽉 잡는 것이 느껴졌다. 골든글로브 때의 불안한 떨림이 아니었다. 너무너무 기뻐서,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짜릿함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서준도 그랬다.

MC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길 바랐다. 그 호명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를 바랐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직업은 많지만, 배우는 더더욱 그랬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면, 결국 시들어버린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첫 생’과 서준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환호를 받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아버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두 손에 들어온 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관객석의 엄마 아빠, 다호 형. 한국에서 보고 있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숙모, 수빈이, 은수, 친구들, 선생님, 감독님, 작가님, 지석이 형, 도훈이 형, 종호 삼촌. 프랑스의 찰스, 뉴욕의 그레이스. 그리고 수많은 팬분.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이렇게 빛나는 배우라는 걸. 스타라는 걸.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저기 반짝이는 트로피가 눈에 보이는 증명 중 하나였다.

[남우주연상 수상자는!(And The Oscar goes to……)]

시상식장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MC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시상식장 어디선가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골든글로브 수상 때에 흘러나왔던 ‘찬란’이었다.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수상자를 깨달았지만, 서준은 그 이상의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라이브야.’

생생한, 제이슨 무어의 연주였다. 아마도 지금 무대 뒤에서 연주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 속 많은 감정이 들어 있었지만, 그중 유난히 뚜렷한 감정이 있었다.

서준은 바이올린 연주 속, 제이슨 무어의 메시지를 똑똑히 전해 받았다.

‘축하한다.’

그 축가의 선율에 눈물이 고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기만 했는데, 바이올린 연주로 축하를 받게 되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이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서준의 눈가가 천천히 붉어지는 사이, 뜸을 들이던 MC가 크게 외쳤다.

[서준 리!(Seojun Lee!)]

아주 커다란 환호성이 들렸다.

남우주연상 수상에 맞추어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어느새 모여서 노트북으로 보고 있던 직장인들도, 점심을 먹으면서 보고 있던 사람들도. 시차에 상관없이 생방송을 보고 있던 전 세계 서준의 팬들도, 모두 함성을 질렀다.

온몸이 짜릿짜릿할 정도의 축하 속에 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떨림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서준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MC가 건네주는 묵직한 아카데미 트로피, 오스카상을 두 손으로 받았다.

오스카 트로피를 든 서준이 마이크 앞에 서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어쩐지 카메라 건너, 환호성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축하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서준은 환하게 웃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서준 리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첫 한국인 수상자로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이서준 배우의 수상 소감 첫마디는 한국어로 시작되었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상은 저뿐만이 아니라 그레이 바이니와 전세계에 있을 그레이가 받는 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모두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하게 되어 정말로 행복합니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준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무대 위에 서 있던 사람이, 바뀌었다. 똑같은 머리스타일, 똑같은 복장, 똑같은 외모인데도 불구하고 바뀌었다.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지지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레이 바이니였다.

그 완벽한 온오프에 다시 한번, 놀람과 감탄의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는 ‘오버 더 레인보우’의 그레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영진과 양시은이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대단합니다! 설마 저 무대에서 한국어를 듣게 될 줄이야!]

[남우주연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서준 배우!]

[이서준 배우와 그레이의 수상 소감이라니, 이 장면은 평생 못 잊을 겁니다!]

월드 투어를 다녀온 만큼, 두 사람보다 더 감정 이입했던 영화객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배우 이서준,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 이서준, 최연소, 첫 한국인 남우주연상 수상자!]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이서준 배우!]

[배우 이서준과 그레이 바이니의 수상 소감!]

-ㅠㅠ서준아 축하해!!

-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어를 듣다니!

-이게 한 번으로 끝나진 않겠지?

=서준이가 다음에도 받을 듯ㅋ

-진짜 연기력 대단.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 수가 있지?

=2222 울었다ㅠㅠ 그레이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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