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32화 (13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32화

[2월, 세기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LA 시간으로 오후 5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월요일 오전 10시, OCM에서 방송되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 세계 언론, 이서준 배우의 수상, 아주 낙관적!]

-월요일 오전…… 10시…… (메모)

-시간 보면 점심시간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오오오! 이건 봐야지!

-하루 남음!

-시작까지 3시간 남았는데, OCM 벌써 시작했음ㅋ

-지금 오전 7시ㅎㅎ

-……? 영화객 님이 왜 여기 나오세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날이 왔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박영진입니다.]

[영화평론가, 양시은입니다.]

[……너튜버 영화객입니다.]

휴대폰 화면 가득 상기된 얼굴의 MC들이 보였다. 진행을 맡은 박영진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아카데미 시상식 해설을 맡았던 양시은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듯한데, 홀로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소리 없이 외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너튜버 영화객이었다.

시상식이 시작되기 3시간 전, 머리 손질을 받고 있던 서준은, 휴대폰으로 한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보고 있었다.

화면 오른쪽, 아직 레드카펫도 시작하지 않은 아카데미 시상식장 입구를 비추는 작은 화면이 휑하기도 했지만 세 사람이 떠들어대는 오디오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여기 영화객 님은 그레이 바이니 월드 투어의 첫 여행자로 뉴스에도 몇 번 나왔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 중 정말로 ‘첫 여행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기록’이 남겨져 있는 첫 여행자는 전 세계에서 영화객 님이 최초거든요.]

[저도 티켓의 비밀까지는 알긴 했는데 월드 투어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박영진과 양시은의 말에 영화객이 어색하게 웃었다. 라이브와 녹화 방송으로 익숙한 영화객이었지만 이런 촬영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도 생각보다 많았고 조명도 뜨거웠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인 배우가 노미네이트됐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이서준 배우가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하던데, 두 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네.]

박영진의 물음에 양시은과 영화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호함에 박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죠?]

[만약 후보에 이서준 배우 빼고 전원이 백인이었다면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투표자들의 생각에 ‘인종’이라는 생각이 박여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아무래도 이서준 배우에게 향할 표가 적을 테죠.]

[후보들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건, 투표자들의 생각에서 ‘인종’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옅어졌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올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정한 시상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양시은과 영화객은 찰떡같은 호흡으로 대답했다.

[공정한 시상식이라면 이서준 배우가 받을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인가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세계 여행 트렌드를 바꾸었습니다. 물론, 기념 티켓이라는 마케팅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그 모든 시작은, 그레이 바이니였습니다. 만약 다른 배우가 그레이 바이니를 연기했다면 과연 우리는 월드 투어 기념 티켓을 모았을까요? 아니요. 우린 이서준 배우가 연기한 그레이 바이니를 보고, 감동하고, 울고 기뻐했습니다.]

영화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양시은이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연기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모두가 동의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역할은 이 배우. 다른 배우는 대체하지 못할 분위기, 연기력, 자연스러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레이 바이니는 이서준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역이었습니다. 대체할 수 있는 배우가 한 명도 떠오르질 않죠. 그 사실만으로도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영화객과 양시은의 칭찬에 서준이 실실 웃었다.

두 사람의 예상과 대부분의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전 세계 언론이 떠들어댔다. 골든글로브 수상보다,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보다 쉽고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서준 리의 수상은 십중팔구로 정해져 있었다.

준비를 모두 끝낸 서준은 소파에 앉아, 방송을 보며 웨일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차를 기다렸다. 골든글로브와 마찬가지로 캐서린, 폴과 함께 갈 예정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제시카 킴 배우를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제시카 킴 배우는 미국 드라마로 데뷔했습니다. 작은 단역부터…….]

그사이 방송은 계속됐다. 박영진이 질문하면 양시은과 영화객이 차례로 대답했다.

“서준아. 차 왔어.”

“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일어났다. 텅 빈 차 안에 서준이 올랐다. 이제 캐서린과 폴이 있는 곳에 들러 그들을 픽업해 갈 차례였다.

[골든글로브 후보보다는 아카데미 후보가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게 많이 변했다는 증거죠.]

[그것도 아마 올해가 처음이자 끝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말이에요.]

박영진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전 세계 언론도 이런 기적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평이 많았다. 한국의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서준 배우가 연기를 계속하면 또 이런 날이 오겠죠. 이런 날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면 아마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겁니다.]

영화객의 말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텅 비어 있던 레드카펫 주위로 기자들과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해지는 가운데, 레드카펫 위로 첫 번째 배우가 등장했다.

[제시카 킴입니다!]

박영진의 말에 양시은과 영화객, 그리고 시청자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던 작은 화면이 커다랗게 변했다.

아름다운 파란 드레스를 입은 제시카 킴은 쏟아지는 플래시에 어색한 얼굴이었지만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정말로 기쁘다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미소에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객과 양시은은 신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시카 킴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습니다. 영화 ‘라스트’의 조연으로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너튜브의 영상도 아주 감동적이었죠!]

그렇게 한 명 한 명 배우들이 나타날 때마다 설명이 이어졌다. 올해 영화부터 배우가 출연했던 유명한 영화까지. 두 영화광이 풀어놓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뒷이야기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레드카펫 위로 한 배우가 등장하자, 팬들의 환호성과 함께,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밀란 첼런! 밀란 첼런 배우입니다!]

[이 배우의 사연은 정말 절절합니다. 전 3년 전에 이 배우가 노미네이트되고 상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때 아카데미의 무시무시함을 절절히 느꼈죠! 그래서 이번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올해 개봉한 영화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죠!]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밀란 첼런은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에 3년 전의 울분이, 한 걸음에 지금의 기쁨이, 모든 감정이 레드카펫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기자들도, 팬들도, 카메라도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 밀란 첼런을 바라보았다.

“밀란 첼런 배우, 노미네이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그때였다. 레드카펫 끝에서 함성이 터졌다. 배우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던 팬들의 함성이었지만 유별나게 컸다. 밀란 첼런과 그를 인터뷰하던 리포터, 카메라들이 그쪽을 향했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박영진과 양시은, 영화객도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죠?]

[……어? 준? 준이라는데요?!]

[서준? 이서준 배우요?!]

[이서준 배우가 왔나요!?]

세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란 첼런도 기다리던 배우였지만, 이 배우에 비할까!

새벽같이 일어나 방송을 준비하고, 해도 뜨지 않은 오전 7시에 방송을 시작한 것도 모두 이 배우를 보기 위해서였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진행하던 세 사람도 활짝 문이 열린, 새까만 차를 바라보았다.

꺄아아악!!

환호성과 함께 서준 리와 캐서린 밀러, 폴 오든이 차에서 내렸다.

밀란 첼런은 두 눈을 깜빡였다. 노미네이트된 이후로, 아카데미에 대해 찾아봤다. 언론에서 이리저리 떠들어대는 통에, 변화의 시작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서준 리와 전 세계 광고.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태풍으로 변하는 것처럼 서준 리의 존재가, 연기가, 영화가 크든 작든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했다.

밀란 첼런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내려다보았다. 꿈에 그리던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이었다. 씨익 웃은 밀란 첼런이 발걸음을 옮겼다.

환호를 보내고 있는 팬들에게 인사와 잠시 사진을 찍는 시간을 보내며 앞 배우의 인터뷰를 기다리던 서준과 아이들의 앞에 밀란 첼런이 나타났다. 서준과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앞 순서가 밀란 첼런이었구나!’

언론이 이리저리 떠드는 통에 밀란 첼런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서준이 활짝 웃으며, 드디어 레드카펫 위에 서게 된 배우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더 서클, 재밌게 봤어요.”

“나도 영화 잘 봤단다.”

서준 리와 밀란 첼런의 대화에 모두 숨을 죽였다.

번쩍이는 플래시만이 간간이 터졌다. 밀란 첼런과 인사를 나눈 캐서린과 폴은 두 남우주연상 후보들을 만남을 바라보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며시 뒷걸음질 쳤다. 인기척에 민감한 서준이 그런 두 사람의 배려에 미소를 지었다.

“같이 가실래요?”

“나야 좋지.”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동양인 배우, 서준 리와 흑인 배우 밀란 첼런이 함께 레드카펫 위를 걸어갔다.

함께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했다. 기자들은 숨도 쉬지 않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두 배우를 비췄다.

[이거! 이거 아주 뜻깊은 장면 아닌가요?!]

[이런 모습을 아카데미에서 보게 될 줄이야!]

한국 방송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방송에서 두 배우의 모습을 주목했다.

순식간에 레드카펫의 사진이 업로드되고, 기사가 뜨고 반응이 왔다.

“고맙구나.”

“네?”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가던 중, 들려오는 밀란 첼런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밀란 첼런은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서준 리의 영향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게 병아리 눈물만큼의 영향이어도 감사의 말은 꼭 전하고 싶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단다.”

“저도요! 다음에 꼭 같이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으마.”

밀란 첼런과 서준은 인사를 하고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자리를 향하던 서준은, 열심히 두 팔을 휘젓고 있는 배우를 보았다. 시끄러울까 봐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환한 얼굴로 팔만 휘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 고개를 갸웃하며 배우의 정체를 확인하던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서준 배우!”

제시카 킴이었다. 두 뺨이 상기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오는 반가움에 서준도 활짝 웃었다. 들려오는 한국어가 반가웠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어를 참 잘했다.

드레스를 입고 움직이기는 불편할 것 같아, 서준이 제시카 킴에게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서준의 모습에 제시카 킴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노미네이트 축하드려요!”

“이서준 배우도 축하해요! 꼭 수상하길 바랄게요!”

서준 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카메라가, 서준 리와 제시카 킴이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는 장면을 찍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인사를 나누는 서준 리와 제시카 킴!]

[이런 모습은 처음! 노미네이트된 두 동양인 배우!]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와!! 신기함ㅋ 서준이랑 제시카 킴이 만났어!

-게다가 둘 다 노미네이트!!

-세상에. 내가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밀란 첼런에 제시카 킴이라니, 화제의 인물은 전부 만났네요! 이런 장소에서 한국어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 이제 시간이 다 되었네요!]

[네. 참석한 배우들도 모두 자신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곧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되겠습니다. 모두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그리고 LA 시간으로 오후 5시.

길이길이 남을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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