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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30화 (13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30화

조쉬 맥튼은 영화배우였다. 미국에서 꾸준히 활동했고 작년에도 조쉬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했다.

한마디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회원이었다.

매년 하는 일이라서, 별생각 없이 ‘올해도 마음에 드는 작품, 마음에 드는 배우에게 투표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조쉬 맥튼은 투표권을 얻고 난 다음부터 매번 백인 배우를 뽑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백인을 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시상식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지도 않았다. 투표권자의 70% 이상이 백인이었다. 그 때문에 ‘오스카 소 화이트’라는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매번 있는 일이었기에, 올해도 작년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까, 조쉬는 생각했다. 그 광고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가족들과 아침을 먹다가 뉴스를 본 조쉬는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전 세계의 이목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집중시킨 광고.

뉴욕 타임스퀘어는 물론이고 미국 각 주의 쇼핑몰. 다른 나라의 유명지.

어떻게 돈을 뿌리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경악만 나오는 웨일 스튜디오의 광고.

‘이게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스케일이 달랐다.

상황은 광고로 끝나지 않았다.

[배우 서준 리, 오스카 캠페인 시작!]

[오버 더 레인보우, 오스카 레이스 시작!]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서준 리의 오스카 캠페인!]

[과연, 최연소, 첫 동양인 수상자가 나올 것인가!]

오스카상에 도전하겠다는 웨일 스튜디오의 기사가 전 세계에 떴다.

그에 오스카상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도, 없던 사람들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하나둘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중 대부분이 서준 리의 영화를 본 사람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레이 바이니! 그 끝은!?]

[그레이 바이니, 서준 리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그레이가 받았으면!!

-서준 리든, 그레이든 상까지 받고 끝나면 진짜 행복할 듯!

-시상식은 안 보는데 그레이가 너무 좋아서 이번엔 봐야겠음.

=나도ㅋㅋ

관객 참여 영화는 시상식까지 이어졌다.

“조쉬! 투표했어요?”

산책하러 나가는 길에 마주친 이웃이 물었다. 조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이요. 투표 날이 아니거든요.”

“그래요? 저도 이번에 오스카 시상식 보려고요. 영화가 아주 좋았거든요. 누가 받을지 정말 궁금해요!”

그렇게 말한 이웃이 집으로 들어갔다. 조쉬가 마른세수를 했다. 몇 주 전 이웃들과의 바비큐 파티에서 술을 마시면서 올해도 자신이 투표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다들 알고 있었다.

벌써 이런 상황이 다섯 번째였다.

투표할 사람과 영화에 관해 묻지는 않으면서 은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일상생활뿐만이 아니었다. SNS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모두가 그런 관심을 받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적인 관심이었다.

기운이 빠진 조쉬가 현관문을 열었다.

“아빠!”

설마, 그 관심이 가족까지 이어질 줄이야.

여섯 살배기 쌍둥이 딸과 아들이 조쉬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꼬옥 달라붙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아빠가 젤 훌륭한 배우를 뽑는다며!”

“응.”

그래. 그렇게 이야기했다.

“근데 후보에 청룡님도 있다며?”

음. 조쉬가 말을 삼켰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플러스+에 어린이 연극 ‘봄’이 올라온 뒤로, 이 나이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청룡이었다.

“아빠, 아빠. 청룡님이 젤 훌륭하지?”

“청룡님이 상 받지?”

딸과 아들이 달라붙어 재잘재잘 댔다. 조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번 상은 청룡님에게 주는 게 아니라, 그레이 바이니에게 주는 거야.”

그러니까 받을 수 없을지도…… 하고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레이 바이니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이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익숙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집 오디오에서 몇 달 내내 나오고 있는 곡들이 전부 ‘오버 더 레인보우’의 곡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도 정말 좋아!”

“나도 바이올린 배울래!”

아무래도 이 실랑이는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조쉬의 모습과 다른 투표자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방법만 다를 뿐이지 다들 그들이 투표할 배우들과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관심에 투표자들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측까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린사……!”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퍼진 광고와 기사일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릴 만한 일이 벌어졌다.

[골든글로브, 서준 리에게 남우주연상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최연소 수상자 12세 서준 리!]

[두 번째 동양인 수상자! 서준 리!]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서준 리가 상을 받고 말았다. 두 방향으로 나뉘던 세계의 관심이 한 곳으로 쏠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 * *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며, 리처드 보윈이 흐뭇하게 웃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인종차별은 항상 있었다. 논란이 있어도 묻히고 바뀐다면서도 별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변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너무 느려.”

그래서 이쪽에서 그 시간을 당겨주기로 했다. 리처드 보윈이 후후후 웃었다.

“악당 같은 웃음이네요. 부사장님.”

“크흠.”

하지만 페일런 박도 후후후 웃고 말았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마린사와 웨일 스튜디오의 직원들은 다들 킬킬거리며 웃고 있지 않을까.

작전 성공!

뿌듯한 얼굴로 오늘 나온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페일런 박이 입을 열었다.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된 것 같습니다.”

웨일 스튜디오 아니, 마린사가 미국 내 광고로도 충분한 오스카 캠페인을 전 세계로 확장한 이유.

서준 리와 킹즈 에이전시에게는 해외 시상식 때문이라고 전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리처드 보윈은 쯧 혀를 찼다.

“이제 겨우 천칭이 수평을 이룬 거지.”

보통 때라면 하지 않았을, 전 세계 광고를 마린사가 진행한 이유는, 전 세계에 영화나 서준 리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모으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투표자들의 인종에 대한 차별을 조금이라도 막아내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이렇게 단번에 받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쉐도우맨으로 데뷔한 서준 리,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서준의 사진이 보였다.

쉐도우맨, 마린사, 웨일 스튜디오. 거의 모든 기사에 들어가 있는 단어들에 리처드 보윈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주가가 내려갈 일은 없겠구나!

“그러게요. 골든글로브가 오스카보다 수상할 가능성이 크긴 했지만 단번에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 작품에서 받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준의 연기가 심사위원들에게 깊이 남았던 모양입니다.”

서준의 연기를 떠올린 페일런 박이 웃었다.

“뭐, 광고 때문에 준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런 광고로 상을 받게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미국엔 돈 많은 제작사도, 배급사도 많았다. 그 정도 광고료를 지불하고 상을 받을 수 있었다면, 전 세계 광고판은 1년 내내 영화 포스터로 가득했으리라.

“그래도 오스카는 무리겠죠?”

“그렇겠지.”

페일런 박의 말에 리처드 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자들의 국적과 인종이 다양해지는 골든글로브와는 달리, 매년 논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곳이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어마어마한 광고를 하면서도 마린사는 서준이 오스카상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린사가 광고를 내보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이번’이 아니라, ‘다음’을 위해서였다. 리처드 보윈이 후후후 악당 미소를 지었다.

“준이 골든글로브에서 상을 받았으니, 압박감은 더 심해졌겠지. 오스카에서 상을 받을 가능성은 적으니, 이번에는 불씨를 던져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준이라면 언제고 멋진 연기를 펼치겠지. 아마 그때도 받지 못한다면 이 불씨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겠지.”

일반인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의 온오프.

그런 대단한 연기를 하는 서준 리가 몇 번이나 상을 받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시상식에 의문을 가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가 천천히, 아니면 빠르게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뭐, 자기들도 생각이 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주겠지만.”

“그리고 말씀하신 대본들 준비해 놨습니다. 바로 준에게 보낼까요?”

리처드 보윈의 지시로 마린사의 자료실 안에 있던 대본들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몇십 년 전의 시놉시스부터 갓 들어온 대본까지. 그중 쓸 만한 대본들을 골라 모두 깔끔하게 포장했다.

“그래. 그 ‘서준 리의 다음 작품’이 우리 회사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해. 기껏 이렇게 다 준비해 놨는데 다른 회사 작품으로 상을 받으면 큰일이지.”

계산이 철저한 리처드 보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페일런 박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부사장님. 기념 티켓 프린터기를 한 대 대여하셨다고 들었는데…….”

“크흠.”

진 나트라 역에 서준을 반대하던 때는 까맣게 잊고, 꼼수로 ‘그레이 바이니의 월드 투어 티켓’을 모은 리처드 보윈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 * *

“오! 올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자!”

“수상 축하해!”

“준이 받을 줄 알았다니까!”

파티 시작 시간은 한참 멀었는데 벌써 들떠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였다.

쉐도우맨 팀과 그린윙을 보며 놀라는 캐서린과 폴. 벤자민 모튼 교수님과 제이슨. 그리고 스미스 가족과 LA지인들.

-으아아아! 쉐도우맨에 벨 나트라, 그린윙이라니!

-코코아엔터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런 너튜브 생방이라니!!

-상상도 못 한 조합이다!

휴대폰으로 채널 [JUN]의 라이브 방송을 보내고 있던 안다호가 방향을 바꾸었다. 막 정원으로 들어오는 레드본, 데이비스 가렛의 모습이 비쳤다.

파티 시작 전, 짧게 생방송을 내보낸다는 말을 들었던 데이비스 가렛이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악! 저기 데이비스 가렛이다!

-행복…… 하…… 다……(다잉메세지)

-쉐도우맨×어셈블×오버 더 레인보우!

-(속보)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그레이 바이니, 초능력자로 밝혀져!

-버프 계열인가! 아니면 연주로 감정을 조절한다든가!

-레드본이 세계 3대 바이올린을 사 줄 거야!

-아예 그레이 전용 연주홀을 만들어줄지도!

마지막으로 서준이 휴대폰 앞에 섰다. 서준이 화면에 비치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댓글이 쏟아져 내렸다.

-댓글이 너무 많아서 하나도 안 보이는데! 내 것도 묻히겠지만 서준아, 수상 축하해!

-서준아, 수상 축하해!

-2222 수상 축하해!!!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받았어요!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받아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게 골든글로브 트로피예요! 여기 제 이름도 새겨져 있어요.”

서준이 손에 들고 있던 트로피를 카메라에 가까이 댔다. 서준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가 반짝였다.

-생방 볼 때는 몰랐는데 재방 보니 놀라는 서준이 얼굴이 보임ㅋㅋ

=재방 언제 함? 일하느라 못 봄ㅠ

=2222 작은 휴대폰 화면 말고, 크고 선명한 텔레비전으로 보고 싶다

=지금, MBS에서 계속 상 받는 장면만 내보내고 있음. 오늘 다른 방송은 안 할 모양인 듯. 근데 봐도 봐도 좋음ㅎ

-ㅇㅇ 진심 놀람ㅋㅋ 그것도 귀염ㅋ

-앗. 트로피 제작 중이었는데……아쉽…….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많은 분이 축하해 주러 오셨어요. 다들 정말 좋은 분들이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어서 방송하기로 했어요. 모두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분명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걱정 마세요. 그럼 한국에서 만나요!”

화면 속 서준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준이 착함ㅠ

-골든글로브상 받았으면 됐지, 뭐.

-오스카 안 가고 그냥 한국 오면 안 됨?

=음악 관련 상은 ‘오버 더 레인보우’가 적어도 하나는 받을 게 거의 확정적이라서. 그거까지 받고 올걸.

-그럼 아카데미 트로피 대신 주면 되겠다!

=ㅋㅋ디자인부터 만드는 것 같던데, 얼마만큼 진행됨?

=이름만 새기면 돼!

=……엄청 빠르네.

* * *

파란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끝나고 며칠 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를 정하는 1차 투표 날이 되었다.

매년 하는 투표였지만 올해는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백인 배우에게 투표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의 조쉬 맥튼은 머리를 쥐어 싸맸다.

후보자 5명을 뽑아야 하는데 누굴 뽑아야 할까. 예전처럼 뽑았다가는,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만큼 논란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후보자를 정하는 건 기명 투표다.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다.

‘세상에 얼마나 미친놈이 많은데…….’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만큼 그중 누군가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어떻게든 투표자들을 알아낼지도 몰랐다.

미래의 일을 잔뜩 떠올리던 조쉬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미래도 미래지만, 가장 큰 압박은 지금이었다.

“쉿. 아빠 일하네.”

“쉿!”

“쉬잇!”

방문에 달라붙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딸과 아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젤 훌륭한 배우를 뽑는 거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오른 조쉬는 다시 한번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민 끝에 5명의 배우에게 투표했다.

마린사의 의도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투표자들에게 조금의 주저함을, 조금의 고민을, 조금의 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그렇게 수천 명의 투표자가 많은 고민 끝에 1차 투표를 마쳤다.

1월 말. 미국의 최대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를 발표했다.

다시 한번, 한국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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