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29화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가 발표됐다. 기쁘게도 이서준 배우(12)가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역대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중략)…아카데미 시상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3년 전, 뛰어난 연기로 관객들을 울렸던, 남우주연상 후보 1순위로 유력하던 흑인 배우, 밀란 첼런마저 고배를 마신 이곳이 바로 미국, 할리우드다…(중략)…이런 이유로 이서준 배우가 수상하지 못해도, 그것이 오로지 이서준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MBS의 바늘은 아주 아주 날카로워,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사람들의 풍선을 모조리 터뜨려 버렸다.
겨우 1시간짜리 특별 방송이,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내고, 무시무시한 반향을 일으켰다.
노미네이트 소식에 기뻐했던 사람들은 현실을 깨달았다.
[흑인 배우 3명, 동양인 배우 1명!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
[불과 3년 전, 오스카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로 유력하던 흑인 배우, 결국 후보에 오르지 못해!]
[흑인 배우보다 심한 동양인 배우들의 노미네이트 비율과 수상 비율!]
[골든글로브도 아카데미 시상식도 그들의 잔치!]
-……심하네. 서준이가 후보에 오른 게 신기할 지경
-예전에도 2년 연속으로 후보에 백인만 나왔던 때도 있었네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진짜 ‘미국’ 시상식.
-대충 차별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는 아주 완벽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대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심각해진 사람들의 반응에 MBS에서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시청률이 안 나올까, 전전긍긍할 정도였다.
방송이 나간 후 다음 날, 출근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피디는 새하얀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피디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넨 작가도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시…… 말…… 서…….”
“벌써 쓰세요? 하긴 위에 분위기가 안 좋긴 해요.”
“중계권 사 오느라 들어간 돈 생각하면…… 이걸로 끝이었으면 좋겠다.”
하아. 한숨을 쉰 피디는 다시 글자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시간이 되었다. MBS와 피디에게 다행이게도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의 시청자가 MBS 채널로 돌렸다.
-그래도 후보에 올라간 것만이라도 봐야지.
-ㅇㅇ 못 받아도 상관없음. 저기도 엄청 어렵게 간 거잖아.
-그래도 음악상은 받을 거 아니야? 축하해야지.
-바이올린 연주도 서준이가 했으니까!
-내 마음속의 남우주연상은 이서준임! 저쪽이 안 주면 내가 주면 되지! 이서준 트로피 만드실 분!(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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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벌써 트로피 제작에 들어간 팬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깔끔한 정장을 입은 서준이 엄마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WTV 영화제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아빠는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소란을 아는 저택의 사람들이 짠한 눈빛으로 가족을 바라보았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웃으며 서준을 꼬옥 껴안았다.
“촬영 재미있었지?”
“응! 엄청 재미있었어.”
“다음 촬영은 언제가 되려나? 또 1년쯤 쉬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의 말에 서준이 아하하 웃었다.
“상 받는 것도 좋긴 한데, 연기하는 게 백배 천배 더 좋아.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서준의 말에 부부가 아들을 꼬옥 껴안았다. 가족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쓰린 나라 킴과 안다호는,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달콤한 향기가 부부와 나라, 안다호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 엄마 아빠는 먼저 가 있을게.”
“응! 조심해서 가!”
나라 이모와 함께 떠나는 엄마 아빠를 보며 서준이 손을 흔들었다. 곧 웨일 스튜디오에서 준비한 차가 도착했다. 안다호와 서준이 차에 올랐다.
“안녕, 준!”
“안녕! 캐서린, 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캐서린과 폴이 반갑게 인사했다. 촬영이 끝난 것도 몇 달 전. 오랜만이라 더 반가웠다.
캐서린과 폴은 둘 다 엄청 떨리는 듯, 굳은 얼굴이었는데 서준을 보고 긴장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서준의 손목에서 흘러나온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중하급]이 차 안을 맴돌았다.
“나 시상식은 처음이야! 준은 와본 적 있지?”
“나도 여기는 처음이야. 참석한 시상식이라고 해봤자 겨우 두 번인걸.”
“참석했던 두 번의 시상식에서 모두 상을 받았다는 게 중요하지!”
폴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나는 WTV 영화제였고 하나는 KBC 연기 대상이었다.
“한국 시상식인데 어떻게 알았어?”
“너튜브에 없는 게 어디 있어.”
“응. 나도 봤어! 아, 이번에 토크쇼 촬영도 했지!”
“나도 그거 봤어!”
아이들이 재잘대는 사이, 아이들을 태운 차는 레드카펫으로 향했다.
잠시 후, 레드 카펫 앞에 선 차의 문이 열렸다. 여기저기서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에 떨리던 모습은 어디 가고 손을 흔들며 호응하는 아역 배우 세 명이 레드카펫 위에 있었다.
“준!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네.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든 리포터가 서준과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지금 방송으로 보고 계실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꼭 기쁜 소식을 전해드렸으면 좋겠어요!”
[배우 이서준, 레드카펫 위에서!]
[캐서린, 폴, 준. 세 친구가 모두 모였다!]
[배우 이서준, ‘노미네이트돼서 기쁘다’!]
[이서준이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서준이 레드카펫!!
-멋지다. 이서준!
-ㅠㅠ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쁘다! 못 받아도 괜찮아!
=222 거기서 못 받은 상 한국에서 다 받자!
LA 현지 시간으로 오후 6시, 한국은 오전 11시.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중계권을 따낸 MBS는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는 기사 그대로, 바로바로 번역 자막을 올렸고 사람들은 열 일 제쳐놓고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기사도 바로바로 업로드되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음악상, 주제가상, 작품상 수상!]
[오버 더 레인보우, 사라 로트 감독, 감독상 수상!]
[오버 더 레인보우, 지금까지 총 4개 부분 수상!]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서준과 아이들도 ‘오버 더 레인보우’가 상을 탈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감독님 축하드려요!”
“고마워!”
길고 긴 시상식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의 상이 남았다.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손을 모았다. 모두 어제저녁 봤던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를 떠올리면서도 가느다란 희망을 놓지 못했다.
[골든글로브, 남은 상은 남우주연상뿐!]
-못 받을 거 아는데도 떨리네.
-진짜…… 나도 모르게 실망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실망은 서준이에게 향하는 실망이 아님. 절대 아님.
-이서준을 못 알아본 골든글로브에 엿을 주자. 호박엿.
=ㅋㅋ 나는 생강엿 살게.
=쌀엿도 있엉.
관객석에 있던 엄마 아빠는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이 상을 받아도 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좋은 것만 보고 즐거운 것만 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아이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이 너무 넓고 험난했다.
물론, 서준이가 힘든 일이 있어도 결국 다시 나아갈 아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 고난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에 서 있는 MC에게로 향했다.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은!”
MC가 크게 소리쳤다.
MC의 뒤에 설치된 화면으로 노미네이트된 배우들이 보였다.
다양한 작품들과 다양한 배우들, 그 사이 바이올린에 턱을 괴고 가볍게 눈을 감은 그레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 이러니까 왠지 그레이가 상 받는 것 같다…… 아냐, 후보로도 대단한 일이야.
-틀린 말도 아니지. 그레이 역으로 서준 리가 상을 받는 거니까! ……아냐, 후보만으로도 잘했어.
기대감 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에 달리는 댓글이 길어졌다.
두근.
두근.
폴과 캐서린이 서준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보다 더 떨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서준은 꼭 잡아주었다.
서준의 새까만 눈이 무대 위 트로피로 향했다.
서준은 상을 받지 못해도 괜찮았다. WTV 영화제의 상은 첫 생과 현생의 통틀어 처음 받는 상이었기 때문에 첫 생의 감정에 휩쓸려 버릴 뻔했을 정도로 정말로 좋았다. 행복했다. 그리고 KBC의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행복했다.
천천히 채워지는 만족감은 서준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나는 잘하고 있구나. 앞으로도 많은 상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여유가 생겼다. 더 많은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조금씩 생각이 변하고 있었다.
상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 마음에 다가왔다.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의 평가는 충분했다. 팬들의 감탄과 환호성이 상보다 더 빛났다. 그래서 서준은 이번에 못 받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속상해하는 엄마 아빠와 가족들, 지인들, 친구들, 팬들. 모두의 걱정과 마음이 느껴졌다.
‘연기랑 작품 이외의 요소로 평가받는 건 나도 싫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서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서준은 결심했다.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는 그 어떤 차별이라도 가뿐히 짓밟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지금보다도 더 능력을 활용해서 연기하겠다고.
한 번 목표로 삼은 사냥감은 끝까지 쫓아가는 수십 수백 수천의 몬스터가 눈을 반짝이며 으르렁거렸다. 여기저기서 제 능력을 쓰라는 듯 도서관의 책들이 날뛰는 것 같았다.
‘다음 도서관 문은 언제 열리려나.’
빨리 중급, 중상급, 상급의 능력을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준과 전생의 몬스터들이 킬킬 웃으며 전의를 다지고 있을 때.
MC가 크게 외쳤다.
“오버 더 레인보우, 서준 리!”
잠깐의 침묵,
그리고 커다란 환호성!
와아아아!
시상식장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카메라에 서준의 모습이 잡혔다.
“……?”
송곳니를 세우며 전의를 다지던 몬스터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어라? 못 받는 거 아니었어?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서준의 귀에 캐서린과 폴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 축하해!”
“준이 받을 줄 알았어!”
옆을 보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캐서린과 폴이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라 로트 감독과 제작진도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아. 그제야 서준은 이해했다. 머리는 아직 얼떨떨했지만, 심장은 기쁨에 두근두근 뛰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 속에, 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그러니까 이 부분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창 졸릴 시간에 수학이라니. 다들 반쯤 감긴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그때, 가장 뒤에 앉은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덜컹거릴 정도의 큰 소리에 반쯤 졸고 있던 아이들과 열심히 설명하던 선생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
일어선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 옆 반에서도 비명이 들렸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이 깬 아이들이 친구를 바라보았다. 일어선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야! 이서준 상 받았대! 쌤! 이서준 상 받았대요!”
“……받았어!? 받았다고!?”
“진짜 받았어? 못 받는다며!?”
“뭐!? 받았어?! 잠깐, 이 자식 휴대폰 제출 안 했어!?”
여기저기서 몰래 휴대폰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환호성이 들렸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서준의 수상 소식이 퍼져 나갔다.
[배우 이서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 이서준, 골든글로브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으아아아ㅏㅏ!!
-이럴 줄 알았다고!! 이제 마음껏 기뻐해도 되지!? 이서준 최고!!!
-ㅠㅠ 나 울어ㅠㅠ
-후보 발표하기 전부터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 우리 서준이가 최고야!
-서준이 연기력을 보면 인정 안 할 수가 없지!!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기쁨은 더 컸다. 차별 속에서 빛나는 서준의 모습에 울컥한 사람들이 찔끔 눈물을 흘렸다.
서준이 받지 못할까 봐, 안타까움에 시상식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인터넷에 뜨는 기사와 주변 반응에 얼른 텔레비전을 켜고 MBS를 틀었다. 타이밍 좋게 서준이 무대 위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인지, 아니면 MBS에서 내보내는 배경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버 더 레인보우, 파트4’가 흘러나왔다.
절망 끝에 빛나는 희망의 선율.
팬들이 부르는 이름은 ‘찬란’.
그 선율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찬란히 빛나는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골든글로브의 트로피를 손에 든 서준이 마이크 앞에 섰다.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묵직한 트로피의 무게감에, 전의를 상실한 몬스터가 발라당 누웠다. 도서관의 책들도 얌전해졌다. 김이 확 빠진 서준이 앞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박수를 보내고 있는 엄마 아빠, 나라 이모, 다호 형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예상하지 못했던 탓인지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마, 엄마 아빠뿐만이 아닐 터였다.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을 친구들과 팬들. 응원해 준 많은 사람들.
‘다들 엄청 걱정했겠지.’
그리고 지금 엄청 기쁠 거고. 그런 생각이 들자, 서준은 활짝 웃었다. 걱정했을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뭐, 좀 얼떨떨하지만 기쁜 건 사실이니까.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받으니 좋네. 헤헤.’
커다란 화면에 서준의 얼굴이 비쳤다. 두 뺨이 붉게 상기되고 반짝반짝 빛나는 표정이 아주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 리의 수상 소감 첫마디는 WTV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였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동양인 배우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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