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28화
그사이, 무대 위에서는 방청객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안다호와 홍보팀 직원이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서준을 바라보는 발레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정말 바이올린을 켜줄 거예요?”
“네. 바이올린도 가지고 왔어요.”
“와. 영화의 마지막 촬영에 일반인을 엑스트라로 초대했다는 소식에 정말 아쉬웠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게 됐네요!”
서준의 말에 감격한 발레리아와 방청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스태프가 서준에게 바이올린을 전해주었다. 나라 이모가 사 준 바이올린이었다.
“이 곡은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로 너튜브 영상에 올라온 곡이에요. 음원으로도 공개됐는데, 8주차 버스킹 영상이랑 무대 영상 보셨어요?”
여기저기서 봤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서준의 팬들인 만큼 안 본 영상이 없었다.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그 곡이에요. 그레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게 됐을 때 느낀 기쁜 마음과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잔뜩 담은 곡이죠.”
“그렇군요.”
영화 속 그레이와 두 아이가 만나는 장면을 떠올린 발레리아와 방청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서준은 그레이의 마음으로 연주하기로 했다. 처음 친구를 만나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던 기쁨을 그대로.
무대 위에 서 있던 서준 리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많은 배우를 만나본 발레리아가 놀랄 정도의 변화였다. 방청객들도 놀랐다. 옷도, 머리 모양도, 화장도 그대로인데, 분위기가 바뀐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다른 작품에서도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 같기는 했지.’
다른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캐릭터인데도, 사람들은 윌리엄을 좋아하면 성녕대군도 좋아했고, 진 나트라를 좋아하면 청룡님도 좋아했다.
문득 발레리아는 악역도 장르도 가리지 않는 인기의 공통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서준 리의 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분위기. 아우라 같은 것.
‘그래. 이런, 보통의 배우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격렬한 감정 전달.’
바로 앞에서 그들을 만나는 듯, 전해지는 선명한 감정과 느낌. 한 번 느끼면 중독된 것처럼 또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의 파도와 어느 배우와도 비교할 수 없는 몰입도.
발레리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소곤거리던 방청객들도 알 수 없는 압도감에 입을 다물었다.
[(선)고블린 바이올리니스트의 선율이 발동됩니다.]
중하급의 능력이 파도처럼 발레리아와 방청객, 촬영진을 덮쳤다. 밀려드는 생생한 기쁨과 고마움에 발레리아와 방청객들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 표현해도, 선물을 준다고 해도 이것보다 감사와 고마움을 잘 나타내는 방법이 있을까.
마음까지 절절해지는 수줍으면서도 선명한 감사의 표현에 다들 조용히 바이올린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서준은 다시 무대에 올랐다.
“멋진 연주였어요.”
“감사합니다.”
“준.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뭐에요?”
발레리아의 말에 방청객들도, 스태프들도, 홍보팀 직원도, 안다호도 귀를 기울였다. 서준이 생각에 잠겼다.
‘첫 생 때문이라고는 말 못하지.’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너튜브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알아요!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
-저도요! 너튜브로 봤어요!
여기저기 손을 드는 팬들이 보였다. 홍보팀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안다호에게 물었다.
“그게 뭔가요?”
“준이 10개월쯤 찍은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돌그룹이 48시간 동안 아기를 돌보는 방송이었죠. 브라운블랙과 준의 팬이 아니면, 이젠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물 텐데…….”
“와…….”
와. 서준도 감탄했다.
“아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어요.”
“그게 뭐죠? 저만 모르는 건가요?”
“아이돌이 48시간 동안 아기를 돌보는 예능이에요. 그때가 12월이었으니까, 9개월, 10개월쯤 됐을 거예요. 그 아기가 저였죠.”
10개월의 서준 리라니. 48시간을 몰랐던 발레리아와 방청객들이 내적 비명을 질렀다.
“엄청 귀엽겠네요!”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봐도 귀엽긴 해요.”
그 능청스러움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무대 뒤 화면에 환하게 웃는 아기의 모습이 비쳤다. 웃던 방청객들이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아주 잠깐 멈췄다가 소리를 질렀다.
-……? 꺄아아악!
그 비명에 화면을 등지고 앉아 있던 서준과 발레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무슨 일이에요?”
발레리아의 말에 방청객들이 그녀의 등 뒤를 가리켰다. 발레리아와 서준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볼살이 통통하고 꺄르르 웃는 것 같은 아기가 거기에 있었다.
“……준이에요?”
“네. 엄청 귀엽죠?”
“정말, 귀엽네요.”
발레리아는 녹화가 끝나면 당장 48시간을 찾아보겠다고 결심했다. 화면에서 아기 서준이 사라지고, 다시 모두 서준에게 집중했다.
서준은 그날을 떠올리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그 날. 형들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고 상을 받는 모습이 엄청, 부러울 정도로 반짝거렸거든 그 날.
“아마 그 방송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첫 생에 연연해서 정한 목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삶의 목표로 삼았던 그 날. 서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진지한 서준의 표정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미국으로 이사 온 뒤에도 연기와 배우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봤고 그렇게 연기를 배웠어요. 부모님은 그냥 애가 노는구나 생각했지만, 5살짜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있었죠.”
“그게 누구죠?”
“나라 이모요. 나라 이모가 첫 오디션을 신청해 줬어요.”
스타의 숨겨진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었다. 서준 리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푹 빠졌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5살짜리 꼬마와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 이모.
오디션 이야기에, 다들 설마설마했다. 서준 리가 5살 때 출연했던 작품은, 하나. 발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 오디션이?”
“쉐도우맨이에요.”
서준의 말에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발레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요. 쉐도우맨. 아주 잠깐 나왔던 윌리엄을 모두가 기억하게 되어버렸죠. 준의 연기 덕분에요.”
“나라 이모가 오디션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출연 못 했겠죠.”
쉐도우맨에 출연하지 않은 서준 리와, 서준 리가 없는 다른 작품들을 상상하던 발레리아와 방청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라 씨께 감사드려야겠군요.”
발레리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결에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듣게 된 이모의 모습이 떠올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배우 이서준, 발레리아의 토크쇼 출연!]
[발레리아의 토크쇼, 이서준편, 플러스+ 업로드!]
[그레이의 바이올린 연주곡 NO.1, 감사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곡!]
[WNET,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 방영 결정!]
[이모가 없었다면 배우 이서준도 없었다.]
-토크쇼ㅠㅠ 서준이를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토크쇼에서 볼 줄이야!
=다른 방송에도 나와줬으면ㅠ
-바이올린은 들어도 들어도 너무 좋다ㅎ
-WNETㅋㅋ 물들어온 김에 노 저음ㅋㅋ
-서준이 이모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일 적게 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이서준 이모, 돈 많음ㅎ 브블 케빈 킴 누나임. 킹즈마켓 사장.
=……더 많이 버세요.
-서준이가 아닌 윌리엄은 상상할 수도 없음ㅋ 쉐도우맨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것 같다.
-모르지. 이서준 연기력이면 언제든 배우가 됐을 거야.
=그건 그런데…… 그러면 성녕대군마마가 없잖아.
=……이모님 감사합니다.
* * *
“나 엄청 유명해졌는데?”
돈 많이 벌고 건강하라는 댓글에 나라가 유쾌하게 웃었다. 지인들에게서도 진짜냐며 메시지와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내 말은 하나도 안 믿더니!”
나라는 낄낄 웃으며 지인들에게 서준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특히, 서준의 팬인 지인들은 석고대죄하며 사인을 부탁했다. 나라의 옆에 앉아 나라가 선물해 준 대본을 읽고 있던 서준이 활짝 웃었다.
“나 잘했지?”
“그럼! 서준이 팬들이 고맙다면서 우리 마켓까지 와서 물건 산다더라.”
“진짜?”
“이번 달 매출은 다 서준이 덕분이야. 근데 방송 한 번 나갔다고 이 정도로 홍보 효과가 있을 줄이야.”
나라 킴의 이름이 알려지고, 회사가 알려졌다. 킹즈마켓을 알던 사람들도 모르던 사람들도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게 매출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인마켓이 이렇게 유명해지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일 터였다.
“우리 서준이!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이모가 다 사 줄게!”
나라의 말에 서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일 관심이 가는 몬스터 인형들과 물건들은 희상이 삼촌이 보내주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 아빠에게 사달라고 한다.
그게 대본이나 영화, 드라마 DVD 같은 물건이라서 엄마 아빠도 금세 사주고는 했다.
“별로 갖고 싶은 건 없는데…… 하고 싶은 게 있긴 해.”
“뭔데?”
서준이가 하고 싶은 거라니, 나라가 눈을 반짝였다.
“기부하고 싶어.”
“기부?”
“응. 영화 찍으면서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의 출연료는 기부하고 싶어.”
분야는 다르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간간이 들른 펀딩 사이트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서준의 말에 나라가 서준의 꼬옥 껴안았다.
“우리 서준이 진짜 착하네!”
“아하하하.”
“좋아. 이모한테 맡겨둬. 이모가 서준이한테 주고 싶은 만큼 더해서 기부할게. 따로 기부하고 싶은 곳 있어?”
“응.”
나라의 말에 서준이 미리 찾아놓은 여러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나라도 눈을 반짝이며 사이트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 * *
배우 이서준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후보로 지명되고 오스카 레이스에 참여한 만큼 한국의 관심은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 쏠렸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라는 두 시상식의 역사를 알아보는 방송을 제작하면서 두 시상식에 대해 알아보던 MBS의 제작진은 침음성을 흘렸다.
“이거, 못 받겠죠?”
“그러게.”
“세상에. 2년 연속 후보자들이 전부 백인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주연상을 받아야 했던 흑인 배우가 조연상을 받았던 적도 있어.”
“……이게 그거죠.”
“그래. 오스카소화이트(OscarSoWhite).”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투표자는 90여 명의 외신기자들. 그 덕분에 좀 더 다양한 영화, 다양한 배우가 받을 수 있었다지만 인종차별 논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투표자가 외신기자들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그 정도인데, 투표자 중 백인 비율이 70%가 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근데 이걸 방송해요?”
그런 역사와 자료가 모여, 지금 막바지 편집 작업 중인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는 꿈도 희망도 없이, 두 시상식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송이 되어버렸다.
제작하던 예능국 피디와 작가들도 ‘이거 우리가 아니라 시사 교양국에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였다.
“솔직히 꿈과 희망을 넣을 구석도 없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이렇게 저렇게,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배우 이서준이 받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넣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간단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배우들의 비율과 백인 배우들의 비율. 그리고 흥행을 위해 동양인 배우들이 중요한 역을 맡을 확률. 모든 걸 고려해 봐도, 미국의 시상식인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양인 배우가 꿈과 희망을 얻기에는 힘들었다.
그런 자료와 영상을 줄곧 보고 있던 제작진은 깨달았다.
못 받겠구나!
그것도 배우 이서준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인종차별 때문에!
그에 피디는 방송을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오히려 이런 것도 모르고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이서준 배우가 수상 못 한 뒤에 쏟아질 시선이 더 큰 일이지.”
“어휴.”
피디의 말도 틀린 게 아니라서 작가들은 한숨을 쉬었다.
전 국민의 관심이 미국으로 쏠려 있었다. 다들 상을 받고 돌아올 이서준의 모습을 기대했다.
현실을 꼬집는 기사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낙관적인 태도였다. 그 기사를 읽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 기대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찬물을 끼얹어야지. 아주 확! 기대도 못 하게! 사람들이 현실을 알아야 서준이가 상을 못 받아도 서준이 탓을 안 할 거 아니야!”
피디는 아주 날카로운 바늘로 풍선을 찌르기로 했다. 아예 처음부터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박살을 내버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하고, 대견하고,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피디의 말에 작가들이 속닥거렸다.
“피디님. 서준이 팬이지?”
“응. 새싹부터 팬카페 1기 회원이라고 엄청 자랑했어.”
그리고 이틀 후, 그러니까 골든글로브 시상식 하루 전.
MBS에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를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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