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26화
‘오버 더 레인보우’가 개봉한 지 약 한 달 반.
12월이 되자, 코코아엔터에 긴장감이 흘렀다. 미국에서 서준을 서포터해 주는 킹즈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아닙니다만, 이쪽 관계자 말로는……’으로 시작된 킹즈 에이전시의 연락은 코코아엔터를 들뜨게 하였다.
배우 이서준 전담팀인 2팀 직원들과 홍보팀 직원들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재잘댔다.
“역시,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 게 좋네요. 저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당황하기만 했는데…… 이젠 발표 전에 알려줄 사람들도 있고.”
“그건 뭐,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거니까요. 전 그때 WTV 영화제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저두요. 그래도 이건, 영화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알걸요?”
사장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다가 결국 2팀 사무실로 내려온 사장 서은찬과 이서준의 매니저인 안다호는 입을 꾸욱 다물고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전화만 바라보았다.
“영화제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다들 예상하지 않았어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흥행인데!”
“맞아요. 한 달 동안 사람들의 여행 패턴을 완전히 바꿔 버린 영화라구요.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 여행까지, 완전 난리였잖아요.”
“음악회랑 기부도요. 영화의 영향력이 대단하긴 해요.”
“……아직 소문이라는 말이 걸리긴 합니다.”
걱정스러운 안다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안 팀장님. 이 정도 소문이면 거의 확정이죠.”
“분명 좀 이따가 연락 와서 확정입니다! 하고 말할걸요?”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구름 위에 서 있는 듯,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던 2팀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사장, 서은찬이 전화를 들었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면서 밝아지는 서은찬의 표정에 2팀 직원들도, 홍보팀 직원들도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틀 뒤에 기사 뜬다네요.”
서은찬의 말에, 안다호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배우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웨일 스튜디오에서 아카데미 캠페인 시작한답니다.”
서은찬의 말에 또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 *
오버 더 레인보우의 곡들이, 유명 가수들의 컴백에도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 머물고 있을 때, 인터넷에 파란이 일어났다. 그 시작은 한 댓글이었다.
-그거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거?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LA 영화관에서도 7일 이상 상영했고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 흥행했잖아.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에도 올랐을 정도로 관심도 많이 받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게 뭔데?
=……오스카상
뭐, 기삿거리 없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대댓글을 쓰던 연예부 기자가 저도 모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어…….”
“뭘 그렇게 넋 놓고 있어? 이서준 기사 쓰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아뇨…… 선배…… 이거…….”
후배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자, 선배가 고개를 갸웃하며 화면에 비치는 댓글을 읽었다. 읽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짜?”
“저야 모르죠.”
“괜히 기사 냈다가 부정 탈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서준과 할리우드와 오스카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상상만 해도 짜릿해지는 조합이었다.
선배 기자는 머릿속으로 올해 개봉했던 영화들을 떠올렸다. 오버 더 레인보우보다 인상 깊었던 영화는 없는 것 같았고, 타이밍도 좋은 것 같았다.
“일단, 코코아엔터에 연락해 보자.”
“넵!”
“그리고 떡밥 깔아놓고.”
“떡밥이요?”
후배의 질문에 선배 기자가 씨익 웃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알아보자!]
[아카데미상이 오스카상으로 불리게 된 이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오를 만한 영화들!]
[역대 한국인 수상자와 수상 작품에 대해!]
-갑자기 웬 시상식?
-연말이라서 그런 거 아님? 이제 시상식도 많을 때잖음.
-그래도 날짜로 따지면 내년에 열릴 시상식들인데.
-그건 거 같은데…….
=그거?
=오버 더 레인보우ㅎ
=……오?
코코아엔터의 홍보팀 전화와 메일함이 기자들의 연락으로 터져 나가는 사이, 영화제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글을 달기 시작했다.
파란의 댓글이 달린 지 겨우 몇 시간, 오버 더 레인보우의 기사와 영화제 기사의 댓글들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가능성…… 있으려나?
-오스카상이 아카데미상이었구나. 한국인은 단편 애니메이션 상에 후보로 오른 적 있네.
-진짜? 진짜 받으려나? 받았으면 좋겠다! 수상하면 한국인 최초!
=수상은 무리일 것 같은데. 노미네이트라도 엄청난 거임.
-역시, 우리 대군마마! 연기 천재는 다르네!
-저기, 부담 주지 말죠. 서준인 아직 어리고, 한국인 성인 배우들도 아직 한 명도 못 받았는데…….
기대를 내비치는 댓글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배우 이서준의 팬이 쓴 글이었다.
기대한다는 댓글을 쓰려고 댓글창을 읽어 내려가던 사람들이 그 댓글에 손을 멈칫했다.
=ㅇㅇ 그건 그런 듯. 괜히 받을 가능성 있다 싶으면 이리저리 띄우다가, 못 받으면 바로 실망하잖아. 그게 배우한테 얼마나 부담되겠어.
=거품이니 뭐니…… 말도 많고.
=수상에 상관없이 이서준은 연기 잘함. 엄청 잘함.
=그냥 후보 발표될 때까지는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이서준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그 생각에 동의했다. 부담감으로 져버렸던 천재들이 한둘이었던가. 결국, 댓글 쓰는 걸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모두 이서준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화객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화의 리뷰를 끝내고 시청자들과의 잡담시간에, 그 이야기가 나왔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영화객이 웃었다.
“제가 뭐라고 말해도, 이서준 배우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르니, 짧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영화객이 벽에 걸린 티켓 액자를 쳐다보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이서준 배우.”
그 말만큼 배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도 없을 터였다.
서준은 학교의 미묘해진 분위기를 느꼈다. 겨울방학이 가까워져서 그러나? 아니면 다른 행사라도 있나?
뭐라고 말하려다가 지레 놀라 입을 막는 반 친구들과 어색하게 웃는 선생님들이 자꾸 보였다. 서준은 볼을 긁적였다.
“분위기 왜 이런지 아는 사람?”
그래서 서준은 가장 편한 친구들에게 물었다. 서준의 질문에 지오가 데굴데굴 눈을 굴리다 입을 열었다.
“……말해도 되나?”
“뭔데?”
“엄마가 부담된다면서 말하지 말랬는데…….”
“아하.”
부담. 그 한마디로 다 알아차린 서준이었다. 모를 리가 없지. 자신의 팬카페인 [새싹부터]도 자주 들리고 자신의 기사도 때때로 찾아보는 서준이었다.
‘인터넷 안에서만 그런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학교 아이들도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역시 우리 학교 애들은 착하다니까.’
지후가 지오의 옆구리를 쳤다.
“아! 왜 때려!”
“말하지 말랬는데, 왜 말해.”
“뭐? 엄마가 말하지 말라는 건 시상식이잖아.”
지오의 말에 지후와 미나, 지윤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고, 멍청아. 그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말해도 돼.”
“진짜?”
“응. 조금 있으면 기사도 나올 거고.”
“기사가 나와?”
타이밍이 좋았다. 아마 오늘쯤 기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아마 지금쯤 나오지 않았을까?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사이, 미국에서 기사가 떴다.
줄곧 미국 사이트를 새로고침하고 있던 후배가, 바뀌는 화면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떴어요!”
후배의 눈이 재빨리 기사를 훑었다. 상기된 얼굴로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후배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근데…… 아카데미상이 아니네요?”
“골든글로브잖아! 그것도 중요한 거야! 바로 번역해서 올려! 그리고 넌 연예부 기자라는 녀석이 골든글로브도 몰라?”
후보가 발표되자 언론은 바로 기사를 올렸다. ‘배우 이서준이 후보에 올랐다’, ‘오르지 못했다’ 같은, 여러 버전으로 미리 작성해 놓은 기사가 많았던 만큼, 어느새 연예 뉴스는 서준의 이야기로 가득 찼고,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이고 텔레비전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골든글로브,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오버 더 레인보우, 남우주연상, 음악상, 주제가상, 작품상, 감독상!]
[배우 이서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최연소 노미네이트!]
[오스카상의 전초전, 골든글로브상. 배우 이서준 수상 가능성?!]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한국인 배우는 처음!]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만든 골든글로브상에 대해 알아보자!]
……아카데미상이 아니라?
오스카상에 대해서만 알고, 골든글로브라는 시상식에 대해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눈을 끔벅거리며 쏟아지는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골든글로브상.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만든 시상식으로 90여 명의 외신 기자의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그리고 골든글로브의 시상식이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한 달 전에 열리기 때문에, 골든글로브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따라서 골든글로브상의 후보로 오르면 아카데미상의 후보에 오를 확률도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 기사들이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후보! 후보에 올랐어!
-생각지도 못한 시상식이지만 여기 후보에 오르는 것도 장난 아니게 어렵구나!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배우가 별로 없어!
-오스카의 전초전이라니, 가슴이 너무 뛴다…….
-진짜 되는구나, 이게!! 뉴스도 나왔어!
-이제 좀, 어, 기대해도 되나?!
-역시 오버 더 레인보우, 음악 관련 상은 다 후보에 올랐엌ㅋㅋ
-이거 듣고도 후보에 안 올리면 막귀지, 뭐.
“서준아, 후보에 오른 거 축하해!”
“후보도 엄청 대단한 거라며!”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저번에는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더니, 이젠 또 칭찬이 미묘해졌다. 너무 신경 써주는 모습이 이젠 자신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후보에 올랐어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마음껏 축하해 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의 시상식인 만큼 수상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가 뜬 탓이었다.
그 기사 이후 곧바로, 예전 한국계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만큼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기사가 떴지만, 역시 받지 못할 거라는 여론이 컸다.
-올해 내 최고의 영화는 오버 더 레인보우야.
-누가 뭐래도, 남우주연상은 서준 리.
-동의. 이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줬는데 못 받으면 말이 안 되지!
-뭐, 2월 시상식은 몰라도, 골든글로브는 가능성 있겠지.
서준의 수상에 관심을 가지는 해외의 여론도 비슷했다.
그렇게 모두가 서준의 골든글로브상 노미네이트 소식에 들떠 있던 그 시간, 코코아엔터에서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들이 기사를 업로드했다.
[웨일 스튜디오, 아카데미 시상식 캠페인 시작!]
[웨일 스튜디오, 오버 더 레인보우, 작품상 이외 6개의 출품 희망 부분 밝혀!]
[웨일 스튜디오, 서준 리, 남우주연상 후보로 추진 중!]
<아카데미 시상식은 배급사와 제작사에서 작품을 추천하고, 그 출품작 중 1차 투표로 후보를 고른 후 수천 명의 투표자의 2차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웨일 스튜디오는 10월 개봉작인 오버 더 레인보우를 출품작으로 올렸다. 출품 희망 부분은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음악상, 음향 편집상, 주제가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이다.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당연하게도 배우 이서준(12)의 이름이 올라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노미네이트 명단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끝난 후, 1월 말 발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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