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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17화 (1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17화

학교 안 카페테리아에 자리를 잡은 최유성과 나탈리는 초조하게 채널 [RAINBOW]의 업로드를 기다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잘 찍었을 거야.”

“그래. 믿어보자.”

그사이 SNS에도 오늘의 버스킹에 대해 글이 올라왔다.

[오늘 정말 감동적이었어. 음대 학생들도 착했지만, 바이올린 소년의 연주가 진짜 대단했어. 단순하면서도 듣기만 해도 행복한 음악이었는데. 아무도 곡의 제목을 모르더라. 난 지금 너튜브 업로드만 기다리고 있어. 레인보우 님은 꼭 찍었길 바라.]

#악마적 재능 #바이올린 소년 #버스킹 8주차 #레인보우님만 믿어요!

[첫 연주는 나쁜 쪽으로 충격적이었어. 저번 주까지 잘하다가 오늘은 왜 그랬던 걸까? 그래도 마지막 연주가 좋은 쪽으로 충격적이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그 아이 선생님의 멱살을 잡을 뻔했어 ;)]

#악마적 재능 #바이올린 소년 #선생님이 누구야? #다행인 줄 알아!

“동감.”

“나도.”

최유성과 나탈리가 올라온 글에 저도 모르게 말했다. 진짜 두 번째 연주가 아니었다면 아이를 꼬드겨 선생에게 찾아갔을지도 몰랐다.

“올라왔다!”

“역시 레인보우 님!”

노트북 화면에 너튜브 사이트를 켜고 채널 [RAINBOW]로 들어갔다.

새로운 영상이 떴다. 최유성과 나탈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너랑 내가 나올까?”

“글쎄…… 나오지 않을까?”

편집 없이 올라오던 레인보우의 영상이었다.

그사이 바이올린 소년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활이 크게 움직였다.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소년의 자세에 최유성과 나탈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네.”

“그러게. 다시 들어도 너무 좋다.”

그때처럼, 소년은 반짝였다.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빛났다.

고맙고 기쁘다.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 감정에 최유성과 나탈리는 잠식될 것 같았다.

그러는 중, 최유성과 나탈리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친근함. 무언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막상 떠오르지 않는, 재채기 같은 그 느낌.

‘매주 봐서 그런가?’

두 사람이 고민하는 중에도 소년의 연주는 계속됐다. 일단 연주부터 듣자고 생각한 두 사람은 다시 연주에 푹 빠졌다.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최유성과 나탈리는 이제 곧 끝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좀 더 오래. 좀 더 오래 연주해 줬으면 싶었다.

그렇게 소년의 연주가 끝나고 노트북 화면도 새까맣게 변했다.

최유성은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영상을 보려고 화면을 눌렀다. 화면 아래에 재생 버튼과 함께 영상의 재생 시간이 나타났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재생 시간에 의아해지려던 찰나.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건 뭘까?]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아이는 그저 누군가의 말을 전하는 듯 담담한 듯, 지루한 투로 말했다.

“어라?”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의 등장에, 다시 듣기 위해 마우스를 잡았던 최유성과 감상을 SNS에 올리려던 나탈리가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재능?]

화면에 밝게 웃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비쳤다. 여자아이는 카메라가 아닌 옆을 보고 있었다.

[노력?]

이번엔 남자아이였다. 활짝 웃고 있는 남자아이도 여자아이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화면이 옆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아니,]

그 두 아이가 바라보는 곳에 수줍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작은 바이올린을 든 아이가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최유성과 나탈리의 눈이 커졌다. 야구 모자로 항상 가리고 있던 얼굴이었지만 두 사람은 한 번에 알아보았다. 분위기가 똑같았다. 처음 보는 바이올린 소년의 맨 얼굴이었다.

[돈이다.]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끝으로 새까만 화면 가득, 새하얀 글자가 떴다.

[OVER THE RAINBOW]

[올해 개봉 예정]

[웨일 스튜디오]

[서준 리. 캐서린 밀러. 폴 오든.]

영상이 끝나고 다시보기 버튼이 떴는데도, 최유성과 나탈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뇌가 방금 일어났던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어어, 그러니까…….

“……서준 리?!”

“……이서준이라고!?”

카페테리아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직접 버스킹을 봤던 학생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너튜브에 영상이 뜨기만 기다리던 다른 학생들도 상상도 못 한 일에 경악했다.

악마적 재능을 가진 동양인 아이라는 소식에 한국,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의 아이인지, 8주차 영상을 보고 다시 전의를 불태우려던 네티즌들의 손이 멈추었다.

온갖 언어로 불타오르던 SNS가 물을 끼얹은 것같이 조용해졌다.

다른 나라의 아이인 걸 안 중국과 일본 등의 나라는 물론이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한국 네티즌들도 할 말을 잃었다.

-????

-그동안 몰랐는데, 내가 알파벳을 잘못 배운 것 같음.

=그러게. 나도 너랑 같이 잘못 배웠나 봐…… 아니면 그새 알파벳 표기법이 바뀌었다거나……?

=33333 ????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걸까. 멍하니 올라오는 댓글들을 읽고 있던 사람들이 한 댓글에 얼음 땡, 한 듯 정신을 차렸다.

-……? 서준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맞지?! 이서준! 난 또 동명이인인 줄!?

-진짜 왜 여기서 이서준이 나와? 누가 설명 좀!!

-버스킹 아니었어? 아니, 왜 갑자기 영화? 이서준?

굳어버린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불과 몇십 초.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현실 비명을 내지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뒤집혔다. 그리고 상상도 못 할 이서준의 등장에 한국도 뒤집혔다.

NEW! 이서준

NEW! 이서준 바이올린

NEW! 이서준 영화

NEW! 이서준 영화 촬영

“각오는 했지만, 대단하네요.”

“실시간 검색어는 전부 서준이네요.”

코코아엔터 2팀 직원들과 홍보팀 직원들이 익숙한 듯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폭발할 것 같은 메일함과 자신의 휴대폰을 차례로 열어보았다.

배우 이서준이 맞느냐, 할리우드 영화 촬영인가, 개봉은 언제냐,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냐. 질문이 쏟아졌다.

“보도 자료 보냅니다!”

[배우 이서준, LA에서 영화 촬영 중!]

[코코아엔터, 작년 여름부터 준비했다고 밝혀!]

[배우 이서준. 할리우드 영화, 첫 주연!]

[배우 이서준의 한계는 어디까지? 바이올린도 수준급!]

[이제 개봉까지 몇 개월 남지 않은 이서준의 차기작!]

[음악에 필요한 건, 재능? 노력? 아니, 돈. 무슨 의미일까!]

-진짜 사람 놀라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그래서 너무 좋음ㅋㅋ

-첫 주연!! 축하해!! 서준아!!

-와. 내년에 나오나 싶었는데 올해 나오는구나! 그것도 이미 찍고 있었어ㅋㅋ

-바이올린! 음악 영화라니!!

-싱어롱은 불가능할 듯. 같이 불러줘야 재밌는데ㅋ 바이올린은ㅠ

서준의 기사가 뜨자, 채널 [RAINBOW]의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순식간에 오르기 시작했다.

클래식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등장인물이 이서준이라는 소식에 찾아보기 시작했다. 1주차 영상부터 8주차 영상까지.

다시 봐도 신기할 정도의 변화였다. 어째서 다들 악마적 재능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서준인 걸 알고 봐도 어색함.

-키랑 실루엣은 비슷한 것 같은데 분위기가 완전 다름. 역시 이서준 연기력은 대단.

=근데 8주차는 이서준 같음. 조명도 없는데 존재감 뿜뿜ㅋㅋ

=지나가면서 봐도 이서준ㅋㅋ 어떻게 못 알아봤대?

=솔직히 이서준이 버스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님? 게다가 한 번만 한 것도 아니고 8주나 했는데ㅋㅋ 나 같아도 쟨 오늘도 있구나, 생각하고 지나갔겠닼ㅋㅋ

-근데 1주차부터 8주차까지 실력 차이, 장난 아니다. 바이올린 전공자까지 속을 만한 1주차 자세부터 8주차 프로 같은 연주까지…… 대단하네.

-8주차 곡 좋네요. 제목이 뭐예요?

=아는 사람이 없음. 다들 웨일 스튜디오에 문의하는 것 같다. 사이트 터졌어ㅋㅋ

-그래서 개봉이 언제라고?

* * *

광고가 나온 다음 날. 촬영장.

모두 신기한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서준에게 바이올린을 권하던 제이슨 무어는 물론이고, ‘그건 준의 마음에 달렸지’ 하고 허허 웃던 벤자민 모튼도 이번만큼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준이 작곡한 거라고?”

“네. 감독님 말로는 작년부터 했다고 하더군요.”

거의 일 년에 한 곡 작곡한 것 같지만, 아예 초보자가 저 정도의 곡을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었다. 작곡으로도 이름이 높은 벤자민 모튼에게 배운다면, 얼마나 크게 자랄까.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웠다.

“저랑 같이 꼬드기지 그러셨습니까. 저야, 말로 하는 건 젬병이지만, 스승님은 절 꼬드길 때처럼만 하면 넘어왔을지도 모를 텐데요.”

“……그렇구나. 정말로 그럴 걸 그랬어.”

툴툴거리는 제이슨 무어의 말에 벤자민 모튼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천생 배우인 서준이 취미나 촬영이 아니면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레디, 액션!”

사라 로트 감독의 말과 함께, 기계에서 뿜어져 나온 빗방울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우비를 입은 경찰관들이 스왈로우의 아파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조지의 형과 함께 우산을 쓰고 선생님을 만나러 온 아이들이 창백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

조지의 형이 경찰관에게로 향했다.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레이는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조지의 형이 돌아왔다. 아이들과 그레이는 자그마한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이미 조지에게서 사정을 모두 들은 조지의 형은 참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른…….”

빗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빗방울이 땅바닥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건도 있었나 봐. 그쪽 피해자가 신고했대.”

그레이의 귀가 먹먹해졌다. 피해자. 사건. 그 두 단어만으로도 그레이는 이해했다. 다운록은 코흘리개 꼬마도 ‘사기’라는 걸 알고 있는 그런 동네였다.

“피해자라면 경찰서로 찾아오라는구나. 피해금의 얼마를 받을 수도 있다고…….”

엉망이 된 머릿속에서도 문득 그레이는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어 기뻐하던 엄마. 엄마가 애써 찾아낸 선생님이 사기꾼이었고, 제 아들이 바이올린에 ‘바’ 자도 모르는 사기꾼에게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레이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제가 경찰서에 가도 되나요?”

“……아마 어른이 가야 할 거야.”

그야, 그렇겠지.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보려고 했던 그레이는 우산을 꼭 잡았다. 우산 손잡이가, 너무 차가웠다.

“……감사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

“그레이…….”

“너희도, 정말 고마워. 나중에. 나중에 보자.”

비가 내렸다. 그레이는 평소와 같은 발걸음으로,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사기를 치고, 사기를 당하고, 때리고 다치고 싸우고. 다운록에서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레이에게도 평범한 일이었다.

그래…….

그래도…….

한 번쯤은 기적이란 게 있었으면 했다.

그레이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새까만 길이 마치 자신 같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악)새끼 크라켄의 은신이 발동됩니다.]

[(악)새끼 크라켄의 은신-최하급]

은신의 귀재인 크라켄의 은신 능력입니다.

주위의 환경과 동화됩니다.

접촉 시 마기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새까만 어둠에 삼켜지는 그레이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사라 로트 감독이 조명을 살폈다.

‘좀 어두운가?’

조명을 더 밝게 하기에는 서준의 뒷모습은 분명히 보였다. 하지만 미묘하게 골목길의 어둠과 서준의 모습이 엉켜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 좋아.’

경계선이 없는 그 모습이 더 좌절하는 그레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두컴컴하고 불길한 기운이 서준을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절망하는 그레이의 모습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기분을 느낀 게 사라 로트 감독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등만 바라보고 있던 캐서린과 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두 사람은 밀려오는 슬픔에 대사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천천히, 캐서린과 폴의 대사를 기다리며 걷고 있던 서준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능력을 발동했다.

[(선)하급천사의 부채가 발동됩니다.]

“컷! NG!”

따뜻한 바람이 불고, 촬영장에 낮게 깔린 마기가 사라졌다.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캐서린과 폴이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에밀리. 비 멈춰야지.”

“아, 네!”

사라 로트 감독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스태프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계를 멈추고, 수건을 들고 배우들에게로 향했다. 우산을 썼지만 완벽하게 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바짝 마른 수건으로 젖은 옷을 닦은 서준과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몸을 녹이며 합을 맞추었다.

그렇게, 3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안절부절못하던 레베카가 소리쳤다.

“그레이! 이틀 뒤에! 이틀 뒤에 공원에서! 항상 만나던 곳에서 보자!”

“꼭 와야 해! 올 때까지 기다릴게!”

레베카와 조지의 목소리에 그레이의 까만 우산이 뒤로 도는 것 같기도 했지만, 끝내 그레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컷! OK!”

사라 로토의 목소리에 비를 뿌리던 기계가 멈추었다. 서준이 우산을 접으며 능력을 발동했다.

[(선)하급천사의 부채가 발동됩니다.]

마기를 없애기 위한, 따뜻한 바람이 촬영장 안을 가득 채웠다. 서준과 아이들은 스태프들이 건네주는 수건으로 물이 튄 옷과 몸을 닦았다.

“겨울에 찍었으면 엄청 추웠겠다.”

“그래도 NG 2번만 내서 다행이야.”

“캐서린이 울어서 그렇지, 뭐.”

“너도 울었잖아.”

“솔직히 그건 안 울기 힘들어.”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버린 아이들이 재잘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한 얼굴로 떠드는 배우들을 보며 사라 로트 감독이 남은 촬영 스케줄을 떠올렸다. 이제 촬영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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