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15화
[마린사, 어셈블 2! 9월 촬영 시작!]
[슈퍼히어로 총집합! 어셈블 2에 나오는 히어로들!]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이 손을 잡은 이유, 레드본이 위험하다!]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의 과거는?]
[진 나트라는 어디에?!]
-그러게. 진 나트라는 어디 있냐.
-어셈블 2에도 안 나올 것 같지?
=ㅇㅇ 안 나옴ㅋ
-요새 이서준 뭐 하나? 드라마도 영화도 재미있는 게 없어. 내의원 재탕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잠수 2년ㅠ 돌아와라, 이서준!
-요샌 너튜브에 어린 천재 찾고 있음ㅋ 이서준이 있지 않을까 하고ㅋ
=그럼 벌써 기사 떴지.
-이거 봤음?!! 공원에서 버스킹하는 동양인 남자아이래, 이서준 아님?!![링크]
=보러 감!!!(기대)…… (보고 난 후)…… 낚시금지!!
=ㅎ지옥에서 올라온 연주자 같은데ㅎ 바이올린이 괴로워하고 있다
=?? 얼굴 안 보이는데? 이서준 아닌 거 어떻게 앎?
=못하잖아. 이서준이 못할 리가 없어.
=바이올린인데? 이서준은 배우잖아.
=걘 못하는 게 없어ㅎ
-근데 1주차보다 5주차 많이 나아지지 않음?
=그러게. 신기하다. 저렇게 빨리 실력이 좋아지나?
=댓글들도 다들 놀라고 있어ㅋㅋ 악마한테 영혼을 팔고 산 바이올린 실력이라고ㅋㅋ
-근데 진심, 5주 만에 저렇게 할 수 있어?
=ㄴㄴ 난 바이올린 현 누르는 것도 외우느라 바빴음ㅋ
=나도ㅋ 활도 신경 쓰고 누르는 것도 신경 쓰면 머리 터짐.
-누가 클래식 사이트에 1주차랑 5주차 편집해서 올렸네. 다들 놀람ㅋㅋ
=사이트 평가도 좋아. ‘어떻게 자랄지 기대된다’ ‘5주 만에 이만큼이나 늘었다고???’ ‘직접 듣고 싶다, 여기가 어디?’
바이올린 소년의 믿을 수 없는 실력변화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1주차와 5주차의 영상을 짧게 편집된 영상은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바이올린 전공자와 클래식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인까지 ‘악마적 재능’을 가진 바이올린 소년에게 관심을 표했다.
특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ㅎ 우리나라, 중국, 일본 네티즌들 싸우고 있음.
=왜?
=바이올린 소년이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ㅋㅋ 동양인인 건 확실한데 얼굴이 안 보이니ㅋㅋ 다들 싸우는 중ㅋ 다른 나라도 참여할 것 같음ㅋ
=? 당연히 한국계 아님? 왜 싸움?
=ㅋㅋㅋㅋㅋ
* * *
그레이가 배우기로 한 바이올린 선생님은 다운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분하고 지적인 남자였다.
낡은 아파트 현관에 서서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선생님을 본 그레이는 그가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잘 어울리는 멋진 선생님이었다.
“네가 그레이구나. 반가워. 난 스왈로우야.”
“안녕하세요. 선생님!”
다리 근처, 조그마한 아파트에 사는 선생님은 그레이에게 먼저 음악에 관련된 책을 빌려주었다.
누군가 읽은 흔적이 역력해 그레이는 그게 선생님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쉬는 날에는 그거 읽으렴. 무엇보다도 기초가 중요해. 더 많은 책이 필요하면 수업 날 와서 더 빌려 가도 된단다.”
“네!”
다운록은 학교는커녕 도시 어디에도 도서관이 없는 터라 책을 빌릴 장소도 없었다. 그레이는 환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는 바이올린이 있니? 없으면 선생님이 아는 사람…….”
“바이올린 있어요!”
그레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중한 친구가 빌려준 바이올린이었다. 스왈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그럼 다음 수업 때 가지고 오렴.”
“네! 선생님!”
활짝 웃는 그레이의 얼굴을 보며 스왈로우도 환하게 웃었다.
“컷! OK!”
사라 로트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자 스왈로우 역의 와이엇 카터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윽.
“양심에 찔려서 못 하겠어.”
“나쁜 선생님! 못된 선생님!”
에밀리 조감독이 약 올리듯 외쳤다. 일찌감치 대본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는 스태프들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와이엇 카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히어로에게 이런 역할을 시키는 게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야?”
전직 슈퍼히어로, 그린윙의 말에 사라 로트 감독이 웃었다. 2개의 시리즈를 함께 마무리한 와이엇 카터와 사라 로트 감독, 에밀리 조감독은 친밀한 사이였다.
“그래야 더 믿음이 가지. 반전의 충격도 크고.”
웃음 가득한 사라로트 감독의 말에 와이엇 카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통수를 맞을 관객들이 불쌍해졌다.
* * *
“와이엇 카터?! 그린윙이랑 촬영했어?”
“와이엇 카터가 선생님이었구나.”
마린의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폴이 외쳤다. 캐서린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랑 같이 촬영할 장면은 없겠네.”
“그러게. 그레이랑만 나오잖아. 선생님은.”
“뭐, 어쩔 수 없지.”
촬영이란 게 다 같이 찍는 장면이 없다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와도 만나지 않는 배우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아이들은 금세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너튜브 채널 구독자 수 엄청 늘었더라.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왔어. 악마에게 재능을 산 바이올리니스트.”
캐서린이 히힛 웃었다. 폴도 서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봤어. 어떤 악마냐고, 악마 소환진 만드는 방법 묻는 사람도 있더라.”
폴의 말에 서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악마 소환진들을 떠올렸다가 금세 고개를 저었다. 떠오르는 첫 재료부터 심상치 않았다.
“근데 아무도 그게 영화 홍보라는 걸 모르던데, 언제 밝힐 생각일까?”
“이번 주 버스킹이 마지막이랬으니까, 아마 곧 밝히지 않을까?”
“정말?!”
“엄청 기다렸어!”
서준의 말에 환하게 웃던 캐서린과 폴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 오늘 촬영 잘할 수 있을까?”
“그러게. 엄청 힘들 것 같은데…….”
“열 번 안에는 통과했으면 좋겠다.”
잡담하며 긴장감을 풀려고 했던 캐서린과 폴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듯싶었다. 오늘 촬영은 영화에서 처음 나오는 격한 감정 신이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돼. 편하게 해.”
“그러고 싶은데 긴장이 되는걸.”
“준. 한 번만 더 맞춰보자.”
폴의 말에 캐서린도 손에 꽉 쥐고 있던 대본을 펼쳤다.
“그래.”
친구들의 말에 서준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레디! 액션!”
그레이는 공원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반가운 두 친구가 달려오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레베카와 조지가 활짝 웃으면서 선물을 내밀었다.
“그동안 연습 열심히 했어?”
“응! 아, 나 선생님 생겼어.”
쑥스러운 듯, 벌건 얼굴로 말하는 그레이의 모습에 레베카와 조지가 환하게 웃으며 축하했다.
“잘 됐다! 슬슬 가르쳐 줄 것도 없었는데!”
“넌 몇 년을 배웠다는 애가 그렇게 가르쳐 줄 게 없냐?”
“네가 바이올린을 안 배워서 그래. 그레이가 얼마나 잘하는데!”
정말 잘해서 질투가 날 때도 있지만, 바이올린을 볼 때마다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그레이를 보면 질투 같은 마음도 싹 날아가 버리고는 했다.
눈에 띄게 나아지는 실력을 보면 그레이는 레베카가 상상도 못 한 재능을 가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같았다.
“선생님이 책 주셔서 책도 많이 읽었어.”
“아, 책! 책이 있었지! 우리 학교 도서관에 책 많은데.”
“방학에도 빌릴 수 있으니까, 빌려줄 걸 그랬다.”
“역시 선생님은 다르구나.”
레베카와 조지의 칭찬에 그레이는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자랑할 것이 없었던 다운록의 그레이는 평생 처음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생겼다. 자신이 봐도 친구들이 봐도 스왈로우 선생님은 멋졌다.
우리 선생님 멋있어! 최고야! 대단해!
그런 그레이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레베카와 조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레이의 선생님 자랑을 들어주었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다들 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촬영장에 들른 벤자민 모튼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벤자민 교수와 함께 온 제이슨 무어는 평소처럼 ‘저게 뭐’라는 듯,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벤자민 모튼 교수는 제이슨 무어를 처음 봤던 때를 떠올렸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는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반짝거렸다. 제자로 삼는 데 고생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 제자는 저렇게 스승 자랑을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저렇게 웃으면서 자랑했으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을까, 새삼 벤자민 모튼은 자신의 제자가 무뚝뚝해도 너무 무뚝뚝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그레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줬다는 말에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레이는 생전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에 맞는 바이올린 대신 그동안 연습했던 작은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활이 현을 스쳤다.
비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심히 박수를 치며 친구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레베카와 조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동안 레베카와 조지가 가르쳐 주었던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
그레이의 자세는 나쁘고, 나쁘고, 나빴다.
억지로 쓰려는 기술은 음 이탈로 나타났고, 수준에 맞지 않은 선곡은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게 했다. 잘못 누를 때도 있었고 아예 틀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는 웃고 있었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화사하게. 바이올린이 좋아. 행복해. 더 연주하고 싶어. 레베카와 조지가 좋아하는 그레이의 표정과 귀를 찢을 듯한 연주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게 뭐야!?”
결국, 참지 못한 레베카가 소리를 질렀다. 연주에 빠져 있던 그레이가 화들짝 놀라 활을 멈추었다.
“뭐, 뭐가?”
“왜 그런 곡을 연주해? 자세는 또 왜 그렇고!”
“어……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 곡은 어려운 곡을 해야 쉬운 곡을 쉽게 할 수 있대.”
그레이는 멋진 스왈로우 선생님이 했던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은 인자한 목소리로 그레이에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레이는 그 말을 이해했고 얼른 몸에 익혔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해 줘야지. 말주변이 없는 자신을 탓하며 설명하려던 찰나,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차분하지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조지가 외쳤다.
[(선)흑백카멜레온의 흑백화가 발동됩니다.]
색색으로 빛나던 그레이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두근.
두근.
“……소리가 이상해도 나중엔 다 괜찮아진다고…….”
“아니야! 그레이!”
레베카의 비명에 그레이는 불안감을 느꼈다. 친절하고 멋진 스왈로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런데 눈앞의 친구들을 불같이 화를 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너무 뛰어 숨쉬기가 힘들었다. 선생님, 선생님. 스왈로우 선생님. 열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너무 마음을 줘버린 그레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바이올리니스트의 자세가 아니야! 다 엉망이라고!”
바이올린을 빌려주었던 레베카가 울먹거리며 외쳤다. 그레이에게 화낼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조지가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를 숨길 수는 없었다.
“곡은 쉬운 것부터 해야 해. 그게 손에 익은 다음에 어려운 곡으로 넘어가는 거야.”
두근.
두근.
천천히 까맣게 물든 그레이의 심장이, 비상벨처럼 빠르게 전신을 울렸다. 아냐, 선생님은. 선생님은……!
“그 선생님, 진짜 바이올리니스트 맞아!?”
땅- 땅- 땅! 재판관의 망치 소리처럼, 귀를 파고드는 레베카의 목소리에 그레이의 불에 탄 듯 새까맣게 변한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컷, OK!”
사라 로트 감독의 말이 떨어지고 붉으락푸르락 화를 내던 캐서린과 폴이 어휴,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몰아쉬며 진정한 후, 활짝 웃었다.
이런 힘든 장면을 한 번에 통과하다니! 너무 긴장하고, 너무 몰입한 탓인지 열이 뻗쳐서 서준의 연기는 보지도 못했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한 번에 통과해서 기쁜 캐서린과 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 연습한 보람이 있어. 한 번에 통과할 줄을 몰랐는데.”
“역시 감정 연기는 힘들어. 중간에 까먹을 뻔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열 받아서 진짜 화내버렸어. 스왈로우 선생님, 진짜 나쁘네.”
“그러게. 그래도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돼서 생각보다 쉬웠어. 감정이입도 잘되고. 저번 영화 촬영 때는 앞부분 연기했다가 뒷부분 연기했다가, 엄청 힘들었어.”
“그래도 둘 다 잘하던걸.”
“와! 준에게 칭찬 들었다!”
캐서린과 폴이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서준도 웃으면서 다음 클로즈업샷 촬영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한 번에 가자!”
“가자!”
활기차게 촬영을 시작한 것도 잠시, 클로즈업샷 촬영은 NG가 계속되어 결국 8번째에서 OK가 났다.
긴장이 풀린 캐서린과 폴이 절망하는 그레이의 표정을 똑똑히 목격하고 그 암담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 * *
“그러다 이 나가겠구나. 제이슨.”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제이슨 무어는 벤자민 교수의 말에 자신이 이를 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러다 폼 망치면 어쩌려고 저런 겁니까?”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닌데, 뭐. 생각보다 잘하기는 했지?”
‘저런 거’를 가르쳐 준 벤자민 모튼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속이 없는 자세와 연주법을 주문한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벤자민 모튼 교수가 생각해낸 ‘저런 거’였다.
일반인들은 모르고 바이올리니스트만이 눈치챌 법한 괴상한 자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세라서 조금 궁리를 하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그걸 또 쉽게 몸에 익히는 서준을 보며 천생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던 벤자민 모튼이었다.
“준은 배우야. 그것도 엄청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
“……알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서준에게 달려가 자세를 고쳐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었지만, 벤자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이 아무리 준을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고 싶어 해도 준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 그냥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지.
내의원에서 나왔던 속담을 활용하며 벤자민 모튼이 후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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