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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14화 (11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14화

나탈리는 최유성과 함께 공원으로 향했다. 저번 주도 저저번 주도 일요일, 이 시간에 공원에 왔다는 최유성의 말에 나탈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매주 가는 거야?”

“그래 봤자 이번이 네 번째인걸.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그래? 너도 장학금 받고 다니면서, 참 착하다.”

“나 말고도 매주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라고. 매주 동영상 찍어서 너튜브에 올렸더라.”

“그래?”

최유성이 너튜브 앱을 열어 영상을 보여주었다. 조회 수도 구독자 수도 별로 없는 새로 연 채널에 3개의 동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반응은 어때?”

“일단 조회 수가 적어서 별 반응이 없기는 해. 이런 실력인데 버스킹을 하냐는 사람부터 자기가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가 생각난다는 댓글도 있어.”

“하긴 나도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을 때는 그랬지. 소리가 나는 게 엄청 신기했어.”

나탈리와 최유성은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던 날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바이올린 소년 앞에 사람이 꽤 서 있었다. 파란 고래 그림이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 최유성은 익숙하게 자신의 지정석에 섰다.

바이올린 현을 짚는 손가락이 잘 보이는 소년의 왼쪽이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깽깽거리는 소리에 최유성이 틀린 곳을 체크했다. 저번 주부터는 휴대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주 만나면서 친해지면 나중에 보여주면서 가르쳐 줘야지.’

흐뭇한 얼굴로 소년을 촬영하고 있는데, 나탈리가 놀란 얼굴로 최유성의 옆구리를 쳤다.

“왜?”

작은 목소리에 나탈리도 목소리를 줄였다.

“엄청 좋아졌잖아?”

“……뭐?”

“몰랐어? 처음 들었을 때보다 자세도 소리도 좋아졌어.”

나탈리의 말에 최유성은 다시 소년을 보며 첫날 보았던 자세와 들었던 소리를 떠올렸다.

어라?

진짜였다. 첫날보다 소년의 자세가 정석에 가까워졌다. 소리도 조금의 실수가 있지만 들어줄 수는 있었다.

물론 바이올린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최유성의 귀에는 아직 멀었지만, 겨우 삼 주가 지났다고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변화였다.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있나?’

옷이 낡긴 했지만 깨끗했다. 바이올린도 체구보다 작긴 했지만 소리가 좋았다.

어쩌면 예전에 바이올린을 했던 사람이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점점 나아지겠지. 최유성과 나탈리가 기쁜 얼굴로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

투명한 저금통에 동전과 지폐를 넣으며 서준이 활짝 웃었다.

벌써 네 번째 버스킹. 7달러, 10달러, 14달러, 그리고 오늘은 20달러를 벌었다.

“구독자 수도 꽤 올랐다면서?”

“응! 이제 100명!”

서준이 뿌듯해하며 하는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채널 [JUN]의 성장 속도가 비정상적이긴 했나 보다. 웨일 스튜디오에서 만든 채널 [RAINBOW]의 성장은 다른 채널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듯 지인들이 구독했다. 서준의 지인이 좀 많아서 그렇지, 정말로 모르고 구독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서준이랑 엄마랑 아빠랑, 브라운블랙 애들이랑, 은찬이랑 희상이랑.”

“다호 형이랑, 라이언 감독님이랑 에반이랑 리첼도!”

“수희 씨랑 수련 씨랑, 코코아엔터 직원분들도 했고.”

“벤자민 교수님이랑 제이슨도, 캐서린하고 폴도 구독했어. 감독님이랑 스태프분들도 했대.”

그렇게 모으고 모은 사람이 94명.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구독한 사람은 겨우 6명이었다.

“6명. 이게 홍보가 되려나?”

“홍보팀에서 알아서 하지 않을까?”

새로고침을 해도 바뀌지 않는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서준과 부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이번 촬영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그레이의 어머니였다. 미국인 남편이 죽고 다운록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쪽은 그레이의 어머니 역인 지연 조. 이쪽은 그레이 역의 서준 리.”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지연이 손을 내밀었다. 서준도 웃으면서 손을 마주 잡았다.

“안녕하세요!”

“안녕! 정말 반가워!”

그 말에 서준이 에헤헤 웃었다. 동양인 배우와 같이 연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윌리엄의 엄마인 멜리사도 백인이었고.’

윌리엄이 백인으로 나오는 만화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윌리엄의 아버지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역이라 그런 세세한 설정까지는 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서준이 쉐도우맨 2의 진 나트라까지 맡게 되면서 설정이 더해졌다.

영화의 공식 설정이 나올 때까지는 혼혈이다, 입양이다, 의견이 분분했다.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서준의 말에 지연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3년 전에 찍었던 게 마지막인데, 그걸 봤어?”

“네. 한국어로 연기하셔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요.”

지연 조는 미국에서 드라마를 찍었다. 의학 드라마였는데, 날카로운 인상의 외과 의사 선생님이었다. 몇몇 에피소드에서 한국어로 연기한 영상이 너튜브에 뜨고 그 드라마를 찾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 우리 열심히 촬영해요!”

“그래. 그러자.”

그때와는 달리 부드러운 인상의 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레디, 액션!”

좁은 집. 색이 바랜 소파. 낡아 보이는 물건들. 그러나 집은 깨끗하고 안락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레이는 레베카에게서 받은, 레베카가 어렸을 적 쓰던 작은 바이올린을 들었다. 그레이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레베카와 조지는 가족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레베카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바이올린은 비싼 물건이라 주지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레이는 열심히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어렸을 때 쓰던 게 있었어!”

레베카는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집 창고에 있었다. 낡긴 했지만, 현을 갈아주고 활을 손질하니 그럭저럭 쓸 만했다. 조지는 맛있는 과자를 잔뜩 챙겨주었다.

“이걸로 연습하고 있어. 여행 갔다 와서 검사할 거야.”

“작곡도 열심히 해.”

엄포를 놓는 레베카와 조지의 모습에 그레이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레베카와 조지는 가족과 여행을 떠났고 삼 주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여행…….”

좁은 자신의 방에서 보는 창밖의 풍경이 으스스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여름의 다운록은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레이가 벌떡 일어났다.

“다 들리겠지.”

윗집 아저씨는 밤에 일하러 나가서 지금은 자고 있었고, 아랫집 형은 시끄러운 걸 싫어했다. 윗집 아저씨와 아랫집 형이 싸울 때는 엄청 무서웠다. 방음이 되지 않은 아파트.

그레이는 조심스럽게 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바이올린을 켜는 시늉을 했다.

“이게 도, 이건 레.”

미파솔라시도. 소리 없이 바이올린의 현만 누르며 놀다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고 낡은 가방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작곡하던 오선지였다.

그레이는 작고 낡은 식탁에 앉아 펜을 들고 써 내려갔다. 공원에서 적었던 앞부분을 고치고 새로운 선율을 떠올렸다.

잠시 고민하고 펜을 움직이고 또 고민하고 펜을 움직이고, 그렇게 시간은 빛처럼 지나갔다.

“……레이. 그레이?”

작곡에 푹 빠져 있던 그레이는 엄마가 온 것도 몰랐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가 있었다.

“이게 다 뭐니?”

사주지도 않은 물건이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비싸 보이는 바이올린. 엄마의 표정이 굳자 그레이가 얼른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공원에서 친구를 만나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작곡을 배웠다.

“이건 레베카가 빌려준 거야. 어렸을 때 쓰던 거라서 지금은 안 쓴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며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컷! OK!”

사라 로트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로 넋이 나가 있던 지연이 정신을 차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서준을 보며 지연은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겠다던 아들. 아들을 위해서 그 길을 반대하고 있지만 서준의 얼굴에 환하게 웃던 아들이 떠오르고 말았다.

“다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지연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촬영은 계속됐다. 지연과는 반대로 그레이의 엄마는 아들을 위해서 열심히 그 길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느새 지연은 그레이의 엄마에 동화되어 갔다.

다운록의 마트에서 일하는 그레이의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바이올린 선생님에 관해 묻고 다녔다.

“바이올린? 그런 비싼 악기를 누가 가르쳐 주겠어?”

“그런 헛짓거리 할 돈도 없잖아.”

날카로운 말에도 엄마는 열심히 수소문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레이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다운록은 스타필과 멀어질수록 치안이 좋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살기에는 공원과 가까운, 지금 사는 아파트가 그나마 안전했다.

겨우겨우 비싼 집세를 내며 사는 곳이었다. 그 이외에도 돈이 나갈 곳은 많았다.

“그렇지만…….”

찾아보면 싸고 좋은 선생님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들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 끝에 희망이 보였다.

“그레이! 저쪽 다리 쪽에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대.”

엄마의 말에 악보를 보며 놀고 있던 그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가 와서 공원에 갈 수 없었다. 안전하고 조용한 곳. 공원 말고는 바이올린을 켤 곳도 없었다.

그래서 그레이는 바이올린 대신 작곡에 몰두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오선지에 그리는 재미가 있었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레슨비도 싸고, 유명하진 않지만, 음대도 나오셨대.”

“……그렇구나.”

그레이는 눈만 깜빡거렸다.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지? 깜짝 놀랄 아들을 기대하며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레이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 내일부터 이틀에 한 번씩 가면 돼.”

어. 그레이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돈은?”

그렇게 내뱉고는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돈 걱정은 엄마가 제일 슬퍼하는 일이었다. 그레이는 입을 가리고 데굴데굴 눈을 굴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행복하게 웃을 아들을 기대했건만, 그 한마디에 엄마의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티를 내지 않았다. 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엄청 싸다니까? 그 정도야 엄마도 낼 수 있지.”

그 말이 진심으로 들렸는지, 어린 그레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다. 선생님한테 배울 수 있어!

정말로,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났다. 그레이는 활짝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 놀라고 행복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우물거리던 그레이가 엉엉 울며 한마디를 뱉어냈다.

“으아아앙! 엄마! 으아아앙!”

“열심히 해야 된다?”

“응! 응!”

울면서 웃으면서 그레이는 엄마에게 포옥 안겼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컷! OK!”

사라 로트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크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감격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엄마의 지극한 마음에 우는 사람도 있었다. 서은혜와 이민준도 눈시울을 붉혔다.

지연은 오늘 촬영이 마치면 아들이 원하는 길을 좀 더 수월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 * *

“뭐해, 서준아?”

눈이 빨간 엄마와 아빠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서준의 연기에 하루 종일 눈가가 새빨갰다.

스탠드를 켜놓고 고심하는 서준의 모습에 무슨 대본을 보나 궁금했던 엄마 아빠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본이 아니네?”

“오선지? 악보야?”

“응. 촬영 때 작곡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

“그렇구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응!”

서은혜와 이민준은 조용히 서준의 방을 나갔다. 서준은 곰곰이 그때 스쳐 지나갔던 곡을 떠올렸다.

기쁘고 즐거운 음률의 곡. 그때는 촬영 때문에 못 썼지만, 집에 돌아오면 조금씩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거 다음이 뭐였지……!”

문제가 있다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영감이 끄트머리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작곡할 수 있는 능력까지 쓸 정도는 아니었다.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야 얼마든지 걸려도 괜찮았다. 그저 서준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취미생활처럼 천천히 하기로 했다.

“아, 생각났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을 그대로 악보에 표현하는 작곡은 연기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에헤헤 웃으며 서준이 오선지를 음표로 가득 채워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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