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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8화 (10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8화

사라 로트는 커피를 마시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흥행 조건의 반은 서준이 캐스팅되면서 달성했고, 나머지 반은 곡에서 결정될 터였다.

카페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초조하게 입구만 바라보던 사라 로트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모튼 교수님!”

이름이 불린 벤자민 모튼과 사라 로트의 눈이 마주쳤다. 벤자민 모튼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사라 로트 감독의 앞에 앉았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

“반갑습니다. 모튼 교수님. 영화감독, 사라 로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벤자민 모튼입니다.”

사라 로트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하면서 꼭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한 사람은 배우, 서준 리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여기에 있는 벤자민 모튼이었다.

벤자민 모튼.

바이올리니스트면서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음악가였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개인 사정으로 은퇴하고 지금은 집과 가까운 음악대학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겨우 이 주일에 한 번 나가는 특별 강의였지만 벤자민 모튼이 가르친다는 이유로 작곡과와 바이올린과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벤자민 모튼은 바이올린 실력도 뛰어났지만,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은 그의 곡이었다.

벤자민 모튼이 작곡한 곡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누군가의 인생 곡이 되기에 충분했다.

벤자민 모튼이 작곡한 곡들만을 모아서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연일 매진행렬이었다.

벤자민 모튼의 곡들의 장점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손꼽는 장점은 바로 ‘감정’이었다.

듣기만 해도 연주하는 사람이 뭘 표현하고 싶은지 쉽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 ‘대중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음악 영화를 만드는 사라 로트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커피가 나왔다. 벤자민 모튼이 한 모금 마시자 사라 로트가 입을 열었다.

“시놉시스와 대본은 읽어보셨습니까?”

“네. 마음에 들더군요. 많은 생각이 들던 이야기였습니다.”

음. 부드러운 벤자민 모튼의 목소리에 사라 로트가 올라가려는 입꼬리는 잡아 내렸다.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벤자민 모튼이 입을 열었다.

“제 곡보다는 다른 유명한 클래식은 어떻습니까? 어울리는 곡이 있을 텐데요.”

“네. 그런 곡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모튼 교수님의 곡이 필요합니다. 관객들에게 생생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라 로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벤자민 모튼이 입을 열었다.

“제 곡을 쓰는 대신 부탁할 게 있습니다.”

“네.”

반쯤 허락한 듯한 말에 사라 로트 감독의 눈이 반짝 빛났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벤자민 모튼이 커피잔을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부드러웠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주인공의 연주를 대신할 바이올리니스트는 구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입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교수님께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는 바이올리니스트 중에 주인공 역과 어울리는 연주를 하는 분이 계신가요?"”

벤자민 모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겁니다. 제 제자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에게 맡겨 줬으면 좋겠습니다.”

벤자민 모튼 교수의 제자!

사라 로트 감독이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연주 실력은 벤자민 모튼이 보증할 테고, 홍보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저야말로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곡은 완성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사라 로트 감독이 아차 싶어 입을 열었다.

“모튼 교수님.”

“네?”

“괜찮으시면 저희 배우들을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배우들, 말입니까?”

벤자민 모튼 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연주는 대역을 쓸 테지만 연주하는 장면은 배우들이 찍어야 하니까요. 곡과 자세의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데 교수님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촬영 전 2주 정도 집중 레슨을 하고 연주 장면을 촬영할 때도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벤자민 모튼 교수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자도 함께 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연락해 주십시오. 학교 강의가 있어서 맞춰야 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사라 로트가 밝은 얼굴로 돌아가고 벤자민 모튼도 집으로 돌아왔다. 망할 제자에게 문자를 남기고 휴대폰을 껐다.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 * *

“벤자민 모튼 교수님이요?”

서준이 놀란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라 로트 감독이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쉬는 시간에는 정이슬 선생님에게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벤자민 모튼의 이야기도 있었다. 선생님이 들려준 곡들은 참 감동적이었고 아름다웠다.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이랬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기절하지 않을까. 서준이 속으로 웃었다.

-그래. 2주 동안 레슨해 주시고 촬영 때도 도움을 주신대.

“잘됐네요. 근데 곡 엄청 빨리 나왔네요.”

-나도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 깜짝 놀랐어. 게다가 이렇게 좋은 곡이 나올 줄이야!

벤자민 모튼의 제자가 연주한 곡이 너무 좋아서 사라 로트 감독은 벤자민 모튼 교수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줄 알았다. 이렇게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의 곡이 나올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운도 좋지!

“그럼 곡은 다 나온 거죠?”

-그래. 이제 연습만 하면 돼.

“다른 배우들은 다 캐스팅됐어요?”

-1차 2차 오디션은 끝났고 최종 오디션만 남았어. 이제 세트장을 짓고 미술팀이 고생할 시간이지.

사라 로트가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제작비가 넉넉해서 다들 웃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촬영 시기는 대충 정해졌어. 다른 배우들도 학교에 가야 하고 준도 학교에 다녀야 하니 내년 여름방학 동안 촬영하기로 했어. 물론 여름방학 기간 전에 미국에 와야겠지만 말이야.

서준도 안다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안다호와 킹즈 에이전시, 그리고 웨일 스튜디오가 이야기를 나눈 게 학교 출석이었다. 내의원이야 한국에서 찍고, 조퇴와 주말을 이용해서 찍어서 출석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이번 촬영은 달랐다.

‘유급은 안 되지.’

어른들도 서준도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에서 찍기 때문에 빠지는 날이 많아, 안다호는 매실초등학교에 가서 서준이 출석해야 하는 일수를 확인하고, 킹즈 에이전시에 전했다. 조절한 끝에 날짜가 대충이나마 정해졌다.

“네. 알겠어요. 확실히 정해지면 연락해 주세요.”

-그래. 연습 열심히 하고!

전화를 끊고 서준이 악보를 프린트했다. 몇 달 동안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악보를 보는 실력도 늘었다.

서준의 시선과 함께 바이올린 무늬가 박힌 손가락들이 악보의 음표를 따라 움직였다.

“와.”

악보를 읽어가던 서준이 감탄을 뱉었다.

잔잔했던 연주가 몰아치고 끝내 찬란하게 빛났다. 몇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려니 진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 같았다.

이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두 손이 간질간질해진 서준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서준아. 밥 먹자!”

“응!”

하지만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내일 연주해야겠네.’

아쉬운 한숨을 삼키고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게 모튼 교수님의 곡이라고?!”

“네. 저희 영화 도와주신대요.”

“할리우드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구나!”

정이슬의 눈이 반짝였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벤자민 모튼의 곡이었다.

정이슬은 악보를 읽어 내려갔다. 평생 봐온 게 악보인 만큼 서준보다 빨리 곡을 읽어 내려갔다.

서준이 느낀 그대로 잔잔하고 격렬하며 끝내 빛나는, 정말 멋진 곡이었다.

잠시 연주하는 자신을 떠올리던 정이슬이 정신을 차렸다. 이건 자신이 아니라 서준이 연주할 곡이었다.

“이걸 연주하면 되는 거야?”

“네. 손동작이랑 활 쓰는 타이밍만 잘 맞으면 된대요. 진짜 연주는 바이올리니스트분이 하신대요.”

“그렇구나. 알았어. 해보자.”

바이올린을 턱에 괸 서준이 정이슬을 불렀다.

“그런데요. 선생님.”

“응?”

“연습이 잘되면 우리 진짜로 연습해 봐요. 연주할 수 있게.”

서준의 말에 정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린을 가르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서준은 정말 잘했다.

한 번 가르치면 잊지 않고 바로 익혔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서준의 모습에 놀라기도 지친 정이슬이었다.

지금까지 과외를 해온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도 않았다. 너무 빨리 느는 실력에 서준과 최수희가 자신을 속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이슬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올라오는 게 서준의 재능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제목: 배우 이서준이랑 축구 함!]

친구가 엄청 유망한 축구 선순데 주말에 축구 하자고 불렀더니, 선약이 있다더라. 그래서 뭐하냐니까, 아는 동생이랑 만나서 축구 한데. 그럼 같이하자고 했음. OK 해서 축구부 애들 모아서 학교 운동장에 갔는데 이서준 있었음. 다들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음ㅋㅋ 너무 뜬금없어서ㅋㅋ 왜 여기서 네가 나와?

여튼, 일 때문에 축구부실에 있던 감독님도 놀라서 뛰쳐나오고 연락받은 축구부 애들도 달려오고ㅋㅋ 그래도 외부인한테 알리지는 않아서 사람은 별로 없었음ㅋ 사인받고 사진도 찍고 시합도 하고 재미있었다ㅋ

---이거 올려도 된댔음.

>최ㅁㅁ ㄱㅅ! 진짜 이서준 볼 줄은 몰랐음!! 사인도 받았다!!

>내가 이서준이랑 시합을 하다니! 서준이 진짜 잘하더라.

>최ㅁㅁ : ㅁㅅ보다 잘함ㅋㅋ

<……인정, 초4인데 중3인 나보다 잘함. 연기에 축구에, 못하는 게 뭐야?

>최ㅁㅁ : 없을걸ㅋ

>감독님ㅋㅋ 취미생활로 축구는 어떠냐고 묻는 거 봤음?

>ㅋㅋ 서준이도 웃겼다ㅋㅋ 축구 영화 찍으면 생각해 본데ㅋㅋ

-이서준이랑 친한 축구 선수면 최시혁뿐이지. 카메오도 같이 나왔고

-중3 최시혁, 친구에게 이서준이 더 잘한다 발언!

=이서준과 함께 경기했던 친구, 인정!

-취미로 축구는 어떠냐는 감독님ㅋㅋ

-축구 영화ㅋㅋ 기승전영화냐ㅋㅋ

-ㅋㅋ역시 뭐든 하면 국대로 추천받는 이서준답닼ㅋ

이서준의 재능이 발휘되는 곳은 바이올린만이 아니었다. 축구, 승마, 태권도. 분야를 넘나드는 뛰어난 재능에 질투하기도 힘들었다.

하늘이 이서준이라는 인물을 만들면서 이것저것 재능을 들이부은 모양이었다.

일찌감치 해탈한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저번 시간에 연습하던 거 한번 해보자.”

“네!”

서준은 활을 들었다. 바이올린 현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누르고 활을 그었다. 손가락 끝에 박힌 바이올린 무늬들이 반짝였다.

[(선)바이올린 꿈 요정의 기초수업이 발동됩니다.]

[(선)바이올린 꿈 요정의 기초수업-하급]

바이올린 꿈 요정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를 찾아갑니다.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편해집니다.

음정과 박자에 대한 감각이 발달합니다.

재능을 가진 아이의 꿈속에 찾아가 아이를 가르치는 꿈 요정으로, 꿈속에서 배운 내용은 아이의 무의식 속에 남아,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는 했다.

비슷한 요정으로 '꿈속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작곡 꿈 요정이 있었다.

한마디로, 좀 더 쉽게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는 능력. 바이올린 바이올린을 배워야 하는 서준에 딱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책장을 6개나 뒤졌지.’

서준이 허탈하게 웃으며 활을 움직였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 1악장.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자세만 연습하자던 수업은 어느새 진지한 바이올린 수업이 되었다.

정이슬은 들려오는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소리와 정확하게 움직이는 서준을 보았다. 서준은 어느새 음악에 집중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누가 이 아이를 보고 고작 몇 개월 배운 아이라고 생각할까. 정해진 몇 곡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성장은 정말로 대단했다.

‘이해도 빠르고 습득력은 더 빨라. 처음부터 제대로 바이올린을 배우면 엄청날 거야.’

눈부신 재능에 정이슬은 아쉬워졌다.

‘배우면 잘할 텐데…… 근데 안 배우겠지?’

서준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가 영화 촬영 때문임을 아는 정이슬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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