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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7화 (10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7화

얼마 후, 사라 로트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트북 화면 가득 사라 로트 감독의 얼굴이 비쳤다.

-반가워요. 사라 로트예요.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말씀도 편하게 하세요.”

서준의 말에 사라 로트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준, 대본은 읽어봤니?

“네. 엄청 재미있었어요.”

서준이 대본 속 좋았던 내용을 이야기하자 사라 로트 감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해도 예뻐 보이는 배우인데 하는 짓까지 정말 예뻤다.

-좋아. 준, 바이올린을 켜본 적 있어?

“예전에 조금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나라 이모에게서 받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위해 배운 적이 있었다.

벌써 2년이나 지났고 배운 시간도 짧았다. 태권도 같은 운동이나 승마 같은 경우는 촬영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능력으로 보조해가며 열심히 배웠지만, 설마 바이올린이 주제인 영화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

‘피아노는 열심히 배웠는데.’

-그럼 촬영 때까지 연습해 줄래?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아도 돼. 그저 바이올린을 잡는 법이라든가 활을 쥐는 법, 기초적인 자세만 잘 배우면 돼.

“촬영이 언제죠?”

-이제 첫 단계라서 내년쯤 촬영하지 않을까 싶어. 야외 촬영도 있으니 날씨가 풀리는 봄이나 여름쯤?

지금이 8월이니 9개월 정도 남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자세만 연습하기에는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촬영할 연주 장면의 부분의 악보를 보내줄게. 그걸 보고 순서를 연습하다가 나중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섭외되면 연주 장면도 보내줄 테니까 타이밍도 맞춰줬으면 해.

“네.”

그 이후에도 사라 로트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서준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몇몇 곡은 아예 작곡을 의뢰할 생각이라서 아직 준비된 악보가 없는데 그것도 악보가 들어오는 즉시 보내줄게. 연습해 줬으면 해. 음. 너무 많지?

“아니요. 괜찮아요. 대본이라고 생각하고 외우면 쉬워요.”

한 달에 한 곡씩 연습하면 9곡이나 연습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짧은 연주였다. 그냥 암기하기도 쉽겠지만 생의 도서관에서 적당한 능력을 찾아 연습한다면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을 터였다.

서준의 말에 사라 로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진짜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연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준에게 바라는 것은 ‘그럴듯한 자세’였다.

-바이올린 운지법을 다 외우기 힘들면 활을 올리고 내리는 타이밍만 정확하게 해주면 돼. 손가락이야 클로즈업하지 않는 이상 티도 잘 안 날 테니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외워주고.

“네.”

-그리고 촬영 시작 전에 이 주정도 레슨을 할 수도 있는데 미국에 올 수 있니? 바이올린 연주 신이 있는 다른 아역 배우도 부를 예정이야. 혼자서 연습하는 것보다는 배우들하고 친해지면서 배우는 게 낫지 않나 싶어.

사라 로트 감독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일이 없으면 꼭 참여하도록 할게요!”

-그래. 그럼 곡 나오는 대로 에이전시로 연락할게.

노트북 화면 속 사라 로트 감독이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준. 우리, 영화 멋지게 만들어 보자.

“네!”

서준이 활짝 웃었다.

* * *

일단 바이올린을 가르쳐 줄 선생님을 구해야 했다. 선생님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문득 깨달았다. 이런 게 소속사의 일이겠지.

서준은 마린사, 킹즈 에이전시와 연락하며 일하고 있을 안다호를 배려해서 서은찬에게 연락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응!”

-서준이 너, 몇 년 전에 배우지 않았었나? 누나가 영상 찍어줘서 몇 번 본 것 같은데?

그것도 꽤 잘했던 기억이 있었다. 서은찬의 물음에 서준이 대답했다.

“조금 켤 수 있기는 한데, 좀 더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싶어. 악보도 봐야 하고 연주랑 타이밍도 맞춰야 하고. 나 혼자서 하긴 힘들어.”

그 말에 통화하고 있던 서은찬이 뒷목을 매만졌다. 서은찬도 대본을 읽어보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이 꽤 있긴 했지만 솔직히 서준이라면 조금만 배워도 잘할 줄 알았다.

-그래. 알았어. 바이올린이라…….

서은찬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기타나 피아노 같으면 브블이 아는 가수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바이올린이라…… 그건 수희 누나가 잘 알지 않을까?”

“……그러네?”

서은찬의 말에 서준이 눈을 끔벅거렸다. 최수희는 생각도 못 했다.

김희상의 아내로, 서준에게는 수희 숙모라고 불리는 최수희는 유럽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몇 년 전 한국에 정착했다. 지금은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서준이 얼른 수희 숙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 서준아.

“안녕하세요. 숙모!”

-……헝아?

휴대폰 건너에서 아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주전 돌이 지난, 김수빈이었다.

수빈이 재잘재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수희가 웃으면서 영상통화로 바꾸었다. 슬라임 인형을 품에 꼭 안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기가 보였다.

-그래. 서준이 형아야.

-헝아?

김수빈이 활짝 웃으며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깜빡이는 눈, 오동통한 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일 좋아하는 형이 웃자 수빈도 활짝 웃으며 꺅꺅 소리를 질렀다.

“안녕, 수빈아.”

-헝아! 아녕!

-수빈아. 엄마랑 형아랑 통화 좀 하자.

-아냐!

김수빈이 휴대폰을 잡고 있는 듯, 카메라가 어두워졌다. 최수희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숙모. 목소리는 잘 들리니까 말씀만 해주셔도 돼요.”

-아하하. 그래. 알았어. 무슨 일이야?

“바이올린 가르쳐 주실 만한 분, 알고 계세요?”

-바이올린?

“네. 차기작이 음악 영화라서요. 제가 바이올린을 켜야 하거든요. 촬영은 내년 봄이나 여름쯤에 시작한대요. 그때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와서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분으로요.”

-헝아? 나! 나!

“그래. 수빈이 안녕!”

-아녕!

휴대폰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던 수빈이 서준의 인사에 꺄르르 웃었다.

최수희가 생각에 잠겼다.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외국에 있고, 이 사람은 바쁘고.

-영화 촬영이면 유명한 분한테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나중에 따로 가르치시는 분을 모신대요. 그때까지만 기초적인 부분만 배우면 돼요.”

-그러면 꼭 교수가 아니라도 괜찮겠네?

“네!”

-그럼 아는 사람이 있어. 아직 학생이긴 한데 과외를 몇 번 해봐서 잘 가르칠 거야. 걔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짧게 할 일을 찾고 있거든. 내년에는 출국할지도 몰라서 말이야. 내년에는 못 배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네. 내년에는 다른 선생님을 구하면 되죠.”

-알았어. 그럼 그쪽에 연락해 볼게. 아이고. 수빈이 삐졌다.

히잉! 전화기 건너에서 수빈이의 울음 섞인 투정 소리가 들리자 서준과 최수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조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잘 있어, 수빈아!”

-바이바이, 해야지. 수빈아.

-아냐! 헝아아아!

“나중에 또 놀러 와, 수빈아.”

-응!

-놀러 오란 소리는 또 찰떡같이 알아듣네. 그럼 다음에 보자. 서준아.

“네!”

수빈의 아우성과 최수희의 웃음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잠시 후, 슬라임 인형과 함께 휴대폰을 꼭 안고 있는 수빈의 사진이 도착했다.

>수빈이가 폰 보면서 형아만 불러대고 있어ㅎ

<빨리 놀러 가야겠어요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서준은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굳게 닫힌 생의 도서관이 보였다. 도서관의 문을 여니 많은 책꽂이와 책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사용한 능력의 책들, 읽은 책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수많은 책.

촬영이 없을 때는 하루에 조금씩 책을 읽고 있어서 아직도 못 읽은 책들이 많았다.

적당히 훑어보고 좋은 능력을 고를 수도 있었지만 한 생 한 생 책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희미하게 떠올라 감상에 빠져서 금세 깰 시간이 돌아오고는 했다.

“그래도 오늘은 능력을 먼저 찾아야겠지.”

서준은 먼저 책꽂이에 꽂힌 책의 제목을 둘러보았다.

생의 도서관의 분류는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어떤 종류의 슬라임이든, 슬라임은 슬라임의 책장에, 어떤 종류의 엘프든 엘프는 엘프의 책장에.

바이올린과 관련된 책을 찾으려면 모든 책장을 다 둘러봐야 했다.

세 개의 책장을 지나며 겨우 두 권의 후보를 골라낸 서준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류를 다시 해야 하나?”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그 이외에도 많은 분류 방법이 있겠지만, 서준은 할 수 없었다. 생의 도서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생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삶들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춘 존재였다.

중하급 정도의 능력만 쓸 수 있는 서준에게는 무리였다.

“생의 도서관에 힘을 쓰려면 맨 마지막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겠지?”

생의 도서관에는 아직도 닫힌 문이 많았다. 그 문들을 모두 열고 마지막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는지. 서준은 포옥 한숨을 쉬고 다음 책장으로 걸어갔다.

“에휴. 열심히 찾아야겠네.”

* * *

며칠 후, 최수희가 소개한 바이올린 선생님, 정이슬이 코코아엔터에 도착했다. 바이올린 케이스의 끈을 두 손으로 잡은 정이슬이 엉거주춤 코코아엔터 앞에 서 있었다.

연예인의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바이올린 케이스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정이슬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다호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정이슬을 발견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이슬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정이슬이 안다호의 안내를 받아 코코아엔터로 들어왔다. 정이슬은 안다호가 건네는 임시 출입증을 받았다.

“이서준 배우의 매니저인 안다호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이슬입니다.”

“서준이 연습실은 이쪽입니다.”

정이슬이 케이스의 끈을 꼭 잡았다. 연예인 소속사는 처음인데, 여기저기 연예인 사진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안다호가 안내한 연습실은 아파트인 집에서는 크게 소리를 낼 수도 뛰어다니며 연기 연습을 할 수도 없어서 서준이 소속사에 들어오자마자 서은찬이 만든 서준 전용 연습실이었다.

“여기에 출입증을 찍으시면 열립니다. 한번 해보시죠.”

“아, 네!”

안다호의 말에 정이슬이 목에 건 출입증을 기계에 댔다. 삐릭, 소리가 나고 안다호가 문을 열었다.

연습실은 넓고 깨끗했다. 한쪽 벽이 모두 거울로 가득했다. 신기해 구경하고 있는데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정이슬도 얼른 인사했다. 안다호가 연습실을 나가고 서준이 정이슬을 의자로 안내했다.

연습실 한편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이외에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와 촬영한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커다란 모니터, 출출할 배를 달래줄 간식과 음료가 들어간 냉장고가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선생님.”

“아. 고마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전 이서준이에요.”

“……반가워. 난 정이슬이야.”

“네. 정이슬 선생님!”

서준이 익숙하게 잔 두 개를 꺼냈다.

“녹차도 있고 커피도 있어요. 오렌지 주스도 있는데 뭐 드실래요?”

“음. 주스로 줄래?”

“네.”

서준이 오렌지 주스를 두 잔에 따르고 정이슬 앞에 놓았다. 목이 말랐던 정이슬이 꼴깍꼴깍 주스를 마셨다. 한숨 돌린 정이슬이 말했다.

“교수님한테 들었는데 연주가 아니고 곡과 타이밍만 맞추면 된다고 들었는데 맞니?”

“네. 감독님이 악보를 보내줬어요. 다음 악보가 올 때까지 거기에 있는 악보의 자세만 연습하면 돼요.”

“그렇구나. 몇 년 전에 바이올린 배웠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배웠어?”

“음. 몇 개월 정도요.”

“몇 개월이라…….”

정이슬이 생각에 잠겼다. 몇 년 전에 겨우 몇 개월 배웠다라, 그 정도면 아예 안 배운 것과 다르지 않았다. 몇 달만 배워도 금세 실력이 느는 서준의 습득력을 모르는 정이슬은 처음부터 가르치기로 했다.

“그럼 처음부터 가르치면 될까?”

정이슬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앞 음악학원 선생님께 배웠던 기억이 있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달랐다. 서준은 연기를 위해서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기로 했다.

“네!”

“그럼 일단 바이올린을 들어볼까?”

정이슬의 말에 서준이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나라 이모가 사 준 꽤 비싼 바이올린이었다. 몇 년 전에는 조금 큰 것 같았는데 지금은 딱 알맞은 크기였다.

바이올린 활을 꺼내던 서준이 아차, 하고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이거 촬영해도 되요?”

“촬영?”

“네. 연기할 때 도움 될 수도 있어서 촬영하고 있거든요.”

“아, 괜찮아.”

정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에 도움이 된다니, 촬영해야지. 서준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정면과 옆쪽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카메라를 조절하고 맞추는 모습이 이런 촬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카메라에 붉은 불이 들어오고 서준은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그럼 자세부터 볼까?”

다음 영화를 위한 서준의 바이올린 레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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