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02화 (10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2화

그 이후 웰튼 가족은 시간이 나면 거실에 모여서 내의원을 시청했다.

성녕대군이 죽는 14화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성녕대군과 똑같이 생긴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마지막 회에서는 돌아오길 바라는 허유선의 외침에 눈물을 흘렸다.

“아빠! 준, 연기 엄청 잘한다! 그렇지?”

“그러게. 허유선 역을 맡은 배우도 잘하더라.”

“정말 슬펐어. 성녕은 정말 병만 아니었으면 왕이 됐을 텐데…….”

“그러게요. 병만 마법처럼 고쳐졌으면 왕이……!”

부모님과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들고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감상을 말하던 로라가 몸을 굳혔다.

없어진 꼬리. 왕. 병. 마법!

“이거다!”

“뭐가?”

“생각났어! 남주 과거!”

로라 웰튼은 그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뛰어가 노트북을 켰다. 몇 주 전부터 손도 대지 못한 파일을 열고 글을 써 내려갔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로라 웰튼의 눈이 반짝였다.

“남자 주인공은 전투 중에 꼬리가 잘렸는데 꼬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마녀뿐이야.”

로라 웰튼은 꼬리가 없는 늑대인간인 찰리와 그 누구보다 위엄 넘치던 무대 위의 서준을 떠올렸다. 두 마리의 늑대인간을 하나로 합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샘솟는 에피소드에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일단 커다란 줄기라도 쓰자. 고치는 건 나중에 하고!”

로라가 킬킬 웃으며 키보드를 내려치는 소리에 그레이스와 엄마 아빠는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로라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 보네.”

“언니, 작가가 될 생각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 타르트 사러 갈래? 머리 쓸 때는 단 게 최고지.”

“응!”

* * *

로라 웰튼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작문 선생인 트일러는 몇 주 전 이후로 한 페이지도 가져오지 않는 로라 웰튼의 모습에 괜한 일을 벌였나, 고민했다.

“하지만 재능이 있는 것 같던데…….”

그저 단편이 재미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로라 웰튼은 재능이 있었다. 읽기 쉽고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긴 했지만 의외로 직접 겪은 것 같은 현실감이 있었다.

단편이라 아쉬워 제안했는데,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고민에 휩싸여 있는 얼굴에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조금이라도 써오면 더 할지 안 할지 말해줄 수 있는데…… 수업시간 이외에는 나타나질 않으니…….”

“선생님!”

걱정 가득한 트일러의 눈앞에 로라 웰튼이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그 환한 모습에 트일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써 왔는데 한번 봐주세요!”

“그래.”

로라 웰튼이 트일러에게 USB를 건넸다.

“전 여기서 계속 쓰고 있을게요!”

“그러렴.”

트일러는 노트북을 켜고 로라 웰튼이 건넨 USB를 꽂았다. 제목 미정 파일이 하나 있었다. 무섭게 글쓰기에 집중하는 로라 웰튼을 흘깃 본 트일러는 파일을 열었다.

늑대인간 무리의 대장이었던 남자 주인공은 적의 공격에 꼬리를 잃는다. 늑대인간에게 꼬리는 늑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남자 주인공을 도망치게 해주었던 동료가 전해져 내려오는 탐지기를 건네주며 마녀를 찾으라고 말했다. 마녀만이 꼬리를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 세상에 남아 있는 마녀는 오직 한 명. 여자 주인공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몰랐다.

탐지기를 쫓아 도시에 나타난 남자 주인공. 길을 잃은 여자 주인공을 도와준 남자 주인공은 탐지기가 가리키는 여자가 아닌 여자 주인공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재밌는데?”

로라 웰튼의 소설을 읽던 트일러는 저도 모르게 알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의 전화번호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연말이 가까워지고 여러 방송국에서 시상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대축제까지. 매해 마무리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를 시작하고, 기자들도 후보자와 수상자 예측을 하기 바빴다.

여러 방송사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는 방송국은 역시, 내의원으로 시청률 40%까지 뽑아낸, KBC 방송국.

[KBC. 연기대상 후보자는?]

[KBC 방송국 수상부문을 알아보자.]

[연기대상, 신인상. 신인은 어디까지인가?]

[중복 수상 가능? 불가능?]

-카메오로 나왔으니 신인상은 무리인가요?

-근데 재수사에서는 너무 짧게 나와서 내의원 정도면 신인상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음. 서준이가 받을 가능성이 있는 건 최우수상, 우수상, 조연상에 아역 배우상까지 있어요.

=대상은요?

-서준이가 잘하긴 했는데…… 역시 허유선이……

-맞아요. 14화랑 마지막 화는 이지석이 다했죠.

-KBC는 내의원이 점령했네요.

인터넷은 이서준의 수상 여부로 들끓었다. 내의원이 끝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했다.

-상은 받아도 하나만 받아야 다른 배우들도 받을 수 있겠죠.

-그래도 연기를 잘했는데 하나만 받기에는 좀.

-신인상은 한 번밖에 못 받아요.

-이서준이 신인상 받기에는 정말 잘했잖아요.

-아역 배우상도 있는데……

-KBC도 고민이 많겠네요.

사람들의 생각처럼 후보자와 수상자를 정해야 하는 KBC도 고민에 잠겼다.

“어쩌죠?”

“글쎄.”

“다른 건 다 정했는데…… 이서준이 문제야.”

“음. 카메오 한 번 나왔는데, 신인상이 되려나?”

다들 한숨을 쉬었다. 시청자들을 울린 이서준에게 줄 상이 너무 많았다.

* * *

“서준아. 연기대상, 축하 무대 해볼래?”

“축하 무대요?”

대본을 읽던 서준이 안다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KBC에서 축하 무대 해주지 않겠느냐고 해서.”

“축하 무대면 노래 불러요?”

“아니. 핼러윈 축제 때, 서준이가 했던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묻더라.”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팬카페에 편집본이 올라오자 너튜브의 개인 촬영 영상들을 모아 편집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다들 화질이 아쉽다고 남긴 댓글을 서준도 보았다.

“음. 그거 짧은데 괜찮아요?”

“서준이가 나와주기만 하면 좋다던데?”

아무리 짧아도 시청률은 폭발할 터였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다들 좋은 화면으로 보고 싶다고 하니까요.”

“알았어. 방송국에 말해둘게.”

“근데, 다호형.”

“응?”

“그거 옷 다른 거 입어도 돼요?”

서준이 에헤헤 웃었다.

[배우 이서준, 축하 무대 출연!]

[이서준이 보여주는 무대! 노래일까, 춤일까!]

-이서준 춤은 한 번도 못 본 듯.

-잘 추겠지. 운동도 잘한다잖아. 노래도 잘 부르니 박치도 아니고.

-난 그거. 핼러윈 무대! 영상이 너무 흔들려. 화질도 떨어지고!

-아. 너튜브 편집본처럼 촬영하면 좋을 듯.

=그게 구성이 제일 좋긴 해. 잘 보이고.

연기대상 시상식 날이 가까워지자 서준에게 들어오는 옷들이 많아졌다.

재작년 WTV 영화제 때 입었던 정장의 브랜드, 아레시스가 그 이후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인 탓에 서준에게 들어오는 옷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물론 이번 시상식은 국내 시상식이라서 해외 브랜드보다 국내 브랜드가 더 많았다.

처음 보는 브랜드부터 유명 디자이너가 속한 브랜드까지. 코코아엔터 연습실 한구석에 쌓인 옷 상자들을 서준이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엄청 많네요.”

“확실히 영화제 때보다 많네.”

“이것도 다 입어봐요?”

서준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안다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중에서 서준이 마음에 드는 옷, 몇 개만 골라서 그것만 입어 보고 결정하자.”

“다행이에요.”

안심한 서준이 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디자인의 정장이 들어 있었다. 옷을 보고 다시 상자에 넣고, 상자를 열고 다시 넣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한 상자가 눈에 띄었다.

“아레시스네요?”

“그러게. 국내 시상식인데도 보내줬네. 그게 좋아? 그거 입을래?”

“좀 더 보고요.”

일단 후보에 올려두었다. 열심히 옷을 살펴보던 서준은 마지막 옷 상자를 열었다.

“와.”

정장을 꺼내본 서준이 감탄했다. 새까만 정장에, 보일 듯 말 듯 한 어두운 실로 서준이 내의원에서 입었던 관복의 기린 수가 정장에 수놓아져 있었다.

물론, 기린 수의 디자인은 심플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안다호도 그 정장에 감탄했다. 멀리서 보면 무늬 없는 정장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기린 수가 보였다.

“의미도 좋고.”

내의원으로 서는 시상식인 만큼, 이 특별한 정장이 서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거 입을래요!”

“그래. 입고 크기 좀 맞춰보자. 수선할 곳이 있나?”

안다호가 정장을 살피는데 서준이 안다호를 불렀다. 상자 속에 또 다른 옷이 하나 더 있었다.

“다호 형! 이거 용 버전도 있어요.”

“아마 용이…… 왕의 옷에 있는 무늬지?”

“네!”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성녕대군이 시상식에서나마 왕이 되길 바라는 디자이너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마도 디자이너가 내의원 애청자인 것 같았다.

* * *

12월 31일, 시상식 날이 되었다.

서준은 축하 무대 리허설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시상식이 열릴 KBC 홀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는 찬이 삼촌과 함께 나중에 오기로 했다.

서준은 준비가 끝난 무대를 바라보았다. KBC 홀의 무대는 핼러윈 축제 때의 무대보다 컸다.

“여기서 이렇게 갈 거예요.”

서준의 말에 연출진과 카메라맨들이 자신의 노트에 동선을 표시했다. 작은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동선과 카메라 구성을 궁리했다. 카메라맨 중 하나가 질문했다.

“속도는 어느 정도?”

“어. 이 정도요?”

서준이 무대 위를 달렸다. 안개 속에서 늑대화했을 때의 속도와 비슷한 정도였다.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속도를 가늠하던 카메라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 무대 때는 네발로 달릴 거니까, 카메라를 지금보다 내려야겠네.”

“두 발로 설 때는 어디서 서죠?”

“여기쯤에서요.”

서준은 자신의 구상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연출진을 부탁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없이, 두 발 서서 공연 때와 똑같이 무대 위를 달렸다.

서준이 무대 끝에서부터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중간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맨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무대 뒤를 향해 달렸다.

카메라로 따라가던 카메라맨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이서준 배우.”

“아니에요. 잘 찍어주세요.”

“네. 걱정하지 말아요.”

저희도 욕은 듣고 싶지 않아요. 다들 마지막 말을 삼켰다.

서준의 축하 무대에 관한 기사가 뜨자, 사람들은 노래나 춤보다도 ‘늑대인간의 변신’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올렸다.

-너튜브에서 개인 촬영 영상만 보다가 답답해 죽는 줄.

-KBC 카메라 잘해라!

-진짜 발로 찍으면 홈페이지 폭파시킴.

이외에도 많은 댓글이 KBC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서준의 무대가 나오기도 전에 홈페이지가 폭파될 판이었다.

촬영진과 인사를 나누고 서준은 KBC에서 준비해 준 대기실로 향했다.

똑-똑-

편한 옷을 입고 대기실에서 안다호와 시간을 보내던 서준이 노크 소리에 문을 바라보았다.

“안녕. 서준아.”

지석이 형이었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몇 달 만에 만나는 이지석을 반겼다.

“형! 일찍 왔네요!”

“입장 같이하려고. 너랑 처음 참여하는 시상식이잖아.”

“비켜봐. 인마.”

“서준아, 안녕!”

지석이 형뿐만 아니라, 종호 삼촌, 도훈이 형도 있었다. 다들 여기서 바로 레드카펫에 올라갈 예정인지 각 잡힌 정장에 깔끔히 넘긴 머리카락에 화장까지 끝낸 모습이었다.

서준은 뿌듯한 얼굴로 박도훈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내의원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며칠 후 만난 도훈이 형의 머리 위에는 더는 아무 문양도 떠 있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깨끗했다.

‘이제 괜찮겠지.’

강한 마음은 아니어도 능력의 영향을 벗어날 정도로 단단해진 것 같았다. 서준은 활짝 웃으며 세 사람을 반겼다.

“핼러윈 축제는 재미있었어?”

“네. 엄청요!”

“서준이는 뭐만 하면 바로 난리가 난다니까.”

“다음 작품은 정했어?”

“아직요. 종호 삼촌은요?”

“이번엔 현대극 해보려고.”

그 말에 이지석이 입을 벙긋댔다. 조폭? 김종호가 이지석의 등을 내려쳤다. 악! 이지석이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에 박도훈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아. 이제 옷 갈아입자.”

“네.”

시계를 확인하던 안다호가 말했다. 대기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은 서준이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졌다. 아직 아이라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구겨진 곳이 없는지 살피는 스타일리스트와 안다호의 뒤에서 구경하던 세 배우가 놀란 얼굴로 서준의 옷을 보았다.

“이거 신기하네? 가까이서 보니까 수가 놓여 있어.”

“용. 용인가요?”

“곤룡포에 있는 그거?”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옷 보내준 곳에서 기린이랑 용이랑 보냈는데 용 그려진 옷을 입기로 했어요.”

“이야. 서준이 몰랐는데 야망 있네. 다음엔 왕 하려고?”

이지석의 농담에 서준도 어른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