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1화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가 끝나고 너튜브에 관객들이 찍은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르체시 채널에도 영상들이 올라왔다. 콘테스트 참가자들의 영상부터 공연 영상까지.
그렇게 유명한 축제는 아니었지만 몬스터사와의 협찬과 서준의 참석 여부로 기사까지 뜬 덕분에 한국에서는 영상과 후기를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제목: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 후기]
파리에 사는 유학생임. 이서준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오르체시에 갔음. 생각보다 사람이 많더라. 하여튼 몬스터사 부스에 들렀는데 이서준은 없었음. 찾아보려고 해도 다들 가면 쓰고 인형 탈 쓰고 있어서 못 찾음ㅜ
근데 축제는 재밌었음. 몬스터 콘테스트라는 행사도 있었는데 다들 잘했음. 특히, 마지막에 올라온 늑대인간…… 다 보고 나서 깨달은 건데, 그게 이서준인 듯.
후기 글을 읽은 사람들이 너튜브 영상에서 늑대인간을 찾았다. 가장 조회 수가 많은 영상은 오르체 시에서 올린 영상이었다.
[몬스터 콘테스트 1등! 13번, 늑대인간의 변신.]
-와, 대단하다. 다른 영상이랑 비교해 보면 키가 작아서, 어른은 아닌 것 같은데.
-애 맞는 듯. 근데 어디서 현대 무용이라도 했나? 엄청 잘하네.
-조명이랑 연기랑 그림자를 잘 이용했음. 연기가 옅었으면 그림자도 안 생기고 허접했을 텐데, 날씨가 잘 따라준 듯.
-나 왠지 이런 거 겪어본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나도 알 것 같음. 이서준 안 보일 때, 어떤 아이가 유명해지면 그게 이서준 본인ㅋㅋ
오르체시 영상은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다른 영상들도 찾아보았다. 흔들리기는 했지만, 영상마다 잘 보이는 부분이 따로 있어서 어느새 [늑대인간 영상 보는 순서]라는 글이 뜨기도 했다.
-근데 늑대탈 때문에 얼굴은 안 보이네. 진짜 이서준 맞음?
-이 나이대에 저 정도 연기력은 이서준밖에 없지 않음?
-모르지. 또 다른 천재일지.
이서준이다, 아니다. 논란은 코코아엔터까지 전해졌다. 연신 들려오는 전화 소리에 에구, 한숨을 쉰 서은찬이 서준의 집으로 향했다.
한참 파리에서 사 온 선물과 짐을 정리하고 있던 부부와 서준이 서은찬을 반겼다.
“이거 삼촌 선물!”
“……슬라임?”
“삼촌이랑 닮았어!”
몬스터사의 제품이 아니라 핼러윈 축제 때 산 인형이었다. 말랑말랑한 슬라임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서은찬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족 여행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엄청 재미있었어!”
반짝이는 서준의 눈에 결국 서은찬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 재미있었으면 됐다.
“누나. 영상 찍은 거 있으면 좀 줘.”
“팬카페에 올리게?”
“난 그냥 조그마한 축제인 줄 알았는데, 서준이가 나갔다 하면 그냥 레전드네.”
서은찬이 허탈하게 웃으며 노트북을 켰다. 서은혜가 영상을 보여주었다.
“왜 영상이 3개야?”
“이건 서준이 친구 언니가 찍은 거, 이건 서준이 친구 부모님이 찍은 거. 이건 민준이가 찍은 거야. 이게 영상마다 잘 찍힌 부분이 따로 있더라고. 기왕 올리는 거 편집해서 올리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음. 그건 그러네.”
서은찬이 3개의 영상을 보았다. 짧아서 금세 볼 수 있었는데 서은혜의 말대로였다.
“알았어. 회사 가서 해야겠다.”
회사로 돌아간 서은찬이 홍보팀에 영상을 넘겼다. 직원들이 모여서 가장 좋은 편집본을 만들었다. 영상 끝에는 축제 때 서준을 찍은 사진을 몇 장 붙여넣었다.
영상은 바로바로 팬카페에 올라갔다.
-와! 역시 서준이였네!
-얼굴 안 보이는데도 멋지다!
-사진도 엄청 귀여워! 저것도 몬스터사 옷이겠지?
그리고 서준의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짐을 모두 정리하고 코코아엔터에서 올린 영상을 보던 서준과 부부가 그 번개 같은 속도에 감탄했다.
“빠르긴 엄청 빠르네.”
[배우 이서준,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 참석!]
[가족 여행 중 몬스터 콘테스트 1등!]
[진짜 늑대인간?! 배우 이서준!]
-역시……그럴 줄 알았어.
-진짜 잘하긴 하더라. 늑대랑 몇 년 산 것 같음.
-현직 동물원 직원(늑대 담당)인데 연기 안의 그림자는 완전 늑댄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지?ㅋㅋ 내가 흉내 내도 저것보다 못할 것 같아.
-이서준은 청룡도 잘하고 늑대도 잘함. 보통 이런 거 하기 쉽지 않을 텐데ㅋ
* * *
핼러윈 축제가 끝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올해만큼은 어쩐지 축제가 끝난 후가 더 시끌벅적했다.
“찰리! 찰리!”
음식점의 문이 벌컥 열렸다. 와인 가게를 운영하는 뱀파이어 대장이 놀란 얼굴로 들어왔다.
관광객이 떠난 음식점은 다시 오르체시 시민들로 가득했다. 다들 아는 얼굴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포크를 들었다.
휴대폰으로 준과 찍은 사진을 보며 헤헤 웃던 찰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왜요? 삼촌?”
“네 친구! 그때 늑대인간 옷을 입고 있던 친구 말이다!”
서준의 이야기에 찰리가 벌떡 일어났다. 홀에서 나는 소리에 찰리의 아빠도 무슨 일인가? 밖으로 나와보았다.
“준이요?”
“그래. 네 친구 준!”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들도 핼러윈 축제 내내 찰리와 같이 있던 늑대 머리의 아이를 떠올렸다. 똘망똘망하고 착한 아이였지. 그 아이가 콘테스트에서 보여준 모습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잘하지 않았어?”
“응! 꼬마가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
“연기하면 엄청난 배우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걔가 할리우드 스타라며!?”
“……?”
남자의 말에 다들 입으로 가져가던 포크를 멈추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나, 눈을 깜빡거리던 사람들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침부터 와인이라도 마셨나?”
“술주정은 집에나 가서 하라고.”
술주정이라면 질색을 하는 찰리 아빠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손님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얼굴이 벌건 남자가 열심히 말했지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화를 낼 찰리 아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쯤에서, ‘나가’라는 목소리가 들려야 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님들이 찰리 아빠를 바라보았다. 씨익 웃고 있는 얼굴에 의문이 들었다. 찰리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알았어요? 난 축젯날부터 알았다고요. 준이 할리우드 스타라는 거요!”
“역시! 진짜였어?!”
“여기 사인도 있어요!”
찰리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늑대인간 친구, 찰리에게. 서준 리가] 그 사인에 반신반의하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내 평생 할리우드 배우는 처음 봤는데!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악수도 못 했어!”
괴로워하는 남자의 모습에 의문이 쌓여가는 건 손님들이었다.
“찰리. 무슨 소리냐? 그때 그 애가 뭐라고?”
찰리와 서준에게 오렌지 주스를 주었던 할아버지가 물었다. 찰리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할리우드 배우요! 쉐도우맨에 나왔던 진 나트라! 서준 리에요!”
“……뭐!?”
쉐도우맨을 보지 않은 사람도 쉐도우맨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게 엄청 흥행했다는 사실도.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찰리만 바라보았다.
무대 뒤에서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던 시청 직원이 이마를 짚었다. 그는 레드본 1부터 어셈블 1까지 모두 N차를 뛰며 본 마린팬이었다.
서준 리도, 진 나트라도 아주 잘,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 엄청 팬인데! 어쩐지! 엄청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기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바로 눈앞에서 봤는데! 좌절하는 직원의 모습에 하나둘 정말로 그들이 봤던 꼬마 늑대가 진짜 할리우드 배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엔 연극 배우에 올해는 할리우드 배우라니. 내년엔 누가 나올지 두려워지는데.”
“내년에도 그 아이가 올까?”
“영화 제목이 뭐라고?”
“근데 삼촌은 어떻게 알았어요? 준이 할리우드 배우인 거!”
찰리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튜브에 떴어. 그 영상에 준이 할리우드 배우인 거랑 콘테스트 마지막 참가자라는 게 다 올라갔더라. 지금 조회 수도 장난 아니야! 그거랑 같이 우리 축제도 알려졌다고. 전 세계에!”
“……!”
전 세계에! 그 마지막 말이 음식점 내부를 울려 퍼졌다. 내년에는 엄청 큰 축제가 되지 않을까. 오르체시, 시민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 * *
“망할 과제!”
뉴욕으로 돌아온 그레이스의 가족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고등학생인 로라 웰튼은 머리를 쥐어 짜내며 작문 과제를 하고 있었다.
단편 소설을 적어오라는데 아직 한 줄도 못 적었다. 새하얀 화면에 커서만 깜빡거렸다.
“으으. 머리야 힘 좀 내봐.”
책상에 머리를 부딪치며 좋은 생각을 찾고 있는데 번개처럼 동생 그레이스가 떠올랐다. 미아가 됐던 동생과 동생을 찾아준 두 명의 아이!
“그레이스!”
“응?”
“너 축제 때 미아 된 거, 내가 소설로 써도 돼?”
“엑!”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그레이스의 표정이 마구잡이로 찡그려졌다. 로라가 빌듯 부탁했다.
“이름도 바꾸고 생김새도 바꿀게! 나 이번 주까지 내야 한다고!”
“……음.”
“뉴욕 치즈 타르트 3개 사줄게!”
“5개!”
“좋아!”
지금 돈이 문제냐! 로라가 환한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가려다 다시 몸을 돌렸다.
“준이랑 찰리 이야기, 넣어도 돼?”
“그건 준이랑 찰리한테 물어봐야지.”
“좀 물어봐 주라.”
“타르트 2개!”
“좋아!”
<우리 언니가 과제 하는데 단편 소설 쓰는 거거든.
<찰리랑 준 나와도 돼? 핼러윈 축제 때 이야기가 모티브인가 봐.
<이름도 바꾸고 생김새도 바꾼대.
>찰리 : 난 괜찮!
>준 : 나도 좋아!
>준 : 다 쓰면 볼 수 있어?
>찰리 : 나도! 궁금하다!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는 그레이스를 보며 로라는 애가 탔다. 해외는 시차가 있지 않나? 지금 연락하면 받을까? 좀 더 기다려야 하나? 과제는 내일 제출인데!
그레이스가 고개를 들어 로라를 바라보았다.
“언니! 준이랑 찰리가 다 쓰면 보여 달래!”
“알았어!”
로라는 순식간에 대답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노트북 화면이 보였다.
“좋아. 여자 주인공은 마녀고, 남자 주인공은 늑대인간.”
로라는 순식간에 글을 써 내려갔다. 실제로 있었던 일에 약간의 상상을 더 했다.
길을 잃은 마녀와 마녀를 찾은 늑대인간. 결말도 핼러윈 축제 때처럼 마녀가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끝냈다.
지금까지 막막했던 게 거짓말처럼 작문 과제는 금세 끝났다. 그동안 고민한 게 허무할 지경이었다.
과제를 내고 며칠 뒤, 작문 선생님이 로라를 불렀다. 어색한 얼굴로 의자에 앉은 로라 웰튼에게 작문 선생님인 트일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웰튼. 이거 장편으로 써보지 않을래?”
“네?”
“너무 재미있어서 말이야. 다른 이야기도 넣어서 장편으로 쓰면 어떨까 싶어서.”
“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글 쓰는 건 좀…….”
단편 이야기도 생각해 내지 못해서 끙끙 앓았는데 장편이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절하는 로라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트일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학기 작문 과제는 이걸로 대신하는 건 어때?”
“좋아요!”
당장의 작문 과제들을 없애기 위해 로라 웰튼은 창작의 고통 속으로 자진 입수해 버렸다.
“안 돼. 생각이 안 나!”
단편도 힘들었지만, 장편은 더 더 더 힘들었다. 미아를 찾는 이야기를 늘릴 수도 없었고 다른 에피소드들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연애 소설을 쓸 생각인데 주인공들을 엮어 어떻게 연애감정으로 키워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로라 웰튼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들을 읽으며 고민했다.
“문제는 캐릭터의 과거야.”
과거가 사건·사고의 시작이 될 텐데. 로라는 머리를 싸맸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였다. 열린 문 사이로 빼꼼 머리를 꺼낸 그레이스가 입을 열었다.
“언니, 텔레비전 같이 보지 않을래?”
“텔레비전? 뭐 하는데?”
“준이 나온 드라마. 플러스에 있더라고.”
그레이스의 말에 로라 웰튼은 새하얀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더 고민해도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 머리나 식히자.”
로라와 그레이스가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과 연결된 텔레비전 화면 가득히 내의원의 오프닝 화면이 떴다. 부엌에서 가져온 과자를 먹으며 로라가 물었다.
“근데 무슨 드라마야?”
“댓글에 스포일러 보지 말고 보라는 글이 많아서, 내가 아는 건 한국의 역사 드라마라는 것뿐이야.”
“그래?”
1화는 한 남자가 누군가를 치료하는 장면이었다. 영어 자막에는 인물들의 대사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모를 법한 지식을 알려주기도 해서 몰입하기 쉬웠다.
로라와 그레이스가 내의원을 보고 있을 때, 외출했다 돌아온 부모님도 드라마 시청에 합류했다.
웰튼 가족은 평소에 보던 프로그램도 잊어버리고 내의원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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