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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00화 (10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00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공연을 위해서 무대를 꾸미는 동안 콘테스트의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돌출 무대 위만 밝아졌다. 그 위에 13팀의 참가자들이 나타나자 관객들의 시선이 돌출 무대 위로 향했다.

[지금부터 몬스터 콘테스트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르체시, 시장님께서 트로피를 전달하시겠습니다.]

스피커에서 안내 목소리가 나왔다. 트로피 옆에 서 있던 시장이 꾸벅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3등!]

“누굴까?”

“난 단체로 나왔던 마법사&마녀 팀도 좋았던 것 같아.”

[2번! 페가수스와 함께 춤을!]

그 말에 관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그 우스꽝스러운 참가자를 잊지 않았다. 2번 참가자가 빙글빙글 돌면서 트로피를 받으러 나왔다.

“잘했어!”

“엄청 웃겼다고!”

축하의 박수 소리가 들리자 2번 참가자는 음악도 없이 열심히 춤을 췄다. 화면으로 볼 때도 웃겼는데 직접 보니 정말로 웃겼다. 뒤에 모여 있던 서준과 참가자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인정. 저 사람 덕분에 맘 편하게 공연했어.”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시장도 유쾌하게 웃는 얼굴로 2번 참가자에게 트로피를 전해주었다.

[2등! 1번! 요정의 춤!]

와아아아!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 우아하게 걸어 나온 1번 참가자가 빛나는 트로피를 받고 화려한 동작으로 턴을 돌았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두 쌍의 날개가 무척 아름다웠다.

[1등!]

“늑대인간!”

“최고였어!!”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13번! 늑대인간의 변신!]

서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상을 받는 건 두 번째였는데 영화제 때와는 다른 규모였지만 축하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준은 상을 받았던 다른 참가자들이 짧은 공연을 보여줬던 것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 트로피를 건네주는 시장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에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무대 위에 자욱했던 연기 때문에 더 멋지게 보였나 싶었는데 연기가 없어도 대단했다.

[멋진 공연을 보여주신 참가자분들께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관객석에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상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도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잠시 후,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가고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관계자석에 가 앉았다. 먼저 앉아 있던 참가자들의 일행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참가자들을 반겼다. 관계자석에서 보고 있던 이민준이 활짝 웃으며 두 아이와 서은혜를 반겼다.

“잘했어! 진짜 늑대 같았어!”

아빠의 말에 서준이 이히히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관계자석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연신 감탄의 말을 전했다.

“어린데도 대단한 연기였어.”

“현대 무용 같기도 했고. 어디서 무용 배웠니?”

서준의 향해 쏟아지는 칭찬에 친구인 찰리의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칭찬세례도 곧 멈추었다. 안내방송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의 마지막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들리고 어두웠던 무대 위에 빛이 한 줄기 떨어졌다. 황금색 상자가 무대 중앙에 세워진 탑 위에 올려져 있었다.

고개를 들고 무대를 보던 서준은 늑대 머리가 조금 불편해서 모자를 벗었다. 옆에 앉은 서은혜가 최대한 늑대 귀와 털에 자국이 남지 않게 정리해 주었다.

조명이 다른 곳을 비추었다. 무대 왼쪽 새까만 성을 배경으로 다섯 개의 새까만 관이 세워져 있었다.

“뱀파이어다.”

찰리가 속삭였다.

새까만 관의 뚜껑이 스르르 옆으로 열리고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관 안에는 새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눈을 감고 있었다. 다른 관도 마찬가지였다.

박쥐 떼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뱀파이어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묵직한 음악이 흐르고 뱀파이어들이 관에서 나왔다. 귀족 같은 얼굴로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행동을 했다. 그리고 뱀파이어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무대 중앙의 탑 위에 있는 황금빛 상자를 가리켰다.

왼쪽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이번에는 조명이 무대 오른쪽을 비추었다. 바위가 가득한 배경 앞에 설치된 바위 모양의 소품 위에 누군가 나타났다. 노란 조명이 그를 비추었다.

“늑대인간이야!”

그리고 다섯 명의 늑대인간이 나타났다. 딱딱해 보이던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앉거나 서 있었다. 늑대인간 중 하나가 황금색 상자를 가리켰다.

대사가 없어도 무대를 보고 있던 관객들은 이해했다. 뱀파이어도 늑대인간도 저 황금빛 상자를 노리고 있었다.

오른쪽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얼마 안 가 무대가 밝아졌다. 숫자가 늘어난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이 딱 마주쳤다.

뱀파이어 중 하나가 그들을 가리켰다. 늑대인간들도 상체를 숙이며 으르렁거렸다.

긴장감 흐르는 음악이 흘렀다.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원수처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이 진행된다 싶을 때 관객들 눈에 노란 무언가가 들어왔다. 호박이었다.

“잭 오 랜턴!”

호박 머리의 존재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싸우는 사이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녔다. 두 무리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는 모습이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결국, 황금빛 상자를 차지한 것은 잭 오 랜턴이었다.

커다란 박수 소리와 함께 공연이 모두 끝났다. 땀을 흘리며 공연했던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은 관객석을 바라보며 꾸벅 인사했다.

그들의 앞을 황금색 상자를 든, 여유로운 모습의 잭 오 랜턴이 지나갔다. 끝까지 유쾌한 공연이었다.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펑! 펑!

폭죽이 터졌다. 새까만 하늘 위에 예쁜 불꽃이 피었다. 짧은 불꽃놀이가 끝나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되었길 바랍니다. 내년 핼러윈 축제에서도 뵙기를!]

오르체시의 핼러윈 축제가 모두 끝났다. 사람들도 즐거운 얼굴로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찰리 아빠가 올 때까지 관객석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멀리서 달려오는 마녀가 있었다.

“준! 찰리!”

“그레이스!”

“준 진짜 일등 했구나! 나도 엄청 응원했어!”

그레이스의 뒤로 가족들이 보였다. 다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까 연락처 준다는 거 깜빡해서 찾고 있었어. 먼저 간 줄 알았는데 여기 있었구나!”

“나도 전화번호 알려줄게! 메신저는 뭐 써?”

세 아이가 연락처를 교환하고 있는 사이, 옷을 갈아입은 찰리 아빠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늘어난 일행에 찰리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희 가게에서 뭐 좀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 * *

찰리 아빠의 가게는 광장과 가까웠다. 쌀쌀한 날씨에 가게 안을 온도를 올리고 모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찰리의 아빠는 금세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연신 감탄하며 요리를 먹었다.

“저쪽에서 놀래?”

“그래!”

찰리가 다른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하자 서준과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잘재잘 떠들며 놀고 있는데,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공연 때부터 고민했는데, 어차피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가면 한 명쯤 알아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엄청 불어나겠지. 오늘 처음 만난 친구들이었지만 직접 말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비밀이야?”

비밀이라는 말에 찰리와 그레이스가 눈을 반짝였다. 서준이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서준이 분장을 모두 끝내고 쉐도우맨2를 촬영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찰리와 그레이스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야?”

“찰리, 쉐도우맨 몰라?”

“쉐도우맨은 아는데…… 설마 에반 블록이야!?”

“……리첼 힐도 여기 있어.”

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두 배우의 옆에는 지금까지 자신들과 함께 놀았던 아이가 서 있었다.

찰리가 사진과 자신의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설마.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찰리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진짜로?”

“응.”

“정말로 준이 진 나트라야?”

한발 늦게 알아챈 그레이스가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경악하는 두 아이와 눈이 마주친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진 나트라, 서준 리야.”

찰리와 그레이스는 몇 초간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겨우 탄성을 내뱉었다. 내 친구가 진 나트라라니! 할리우드 배우라니!

“……와!”

그레이스와 찰리의 눈이 반짝였다. 서준이 다른 사진도 보여주었다. 레드본, 데이비스 가렛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레드본!”

“진짜다!”

두 아이의 심장이 아주 크게 뛰었다. 좀 더 놀라면 기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레이스가 목소리를 줄이고 서준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한테 말해도 돼? 언니도!”

“나도! 아빠한테 말해도 돼?”

“그래.”

아이들이 노는 사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른들이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멋진 공연이었다고 말하자 찰리 아빠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저보다야 준이 엄청 잘했죠.”

“진짜 늑대인간 같았어요.”

다들 다시 떠올려도 생생한 공연을 떠올렸다. 그레이스의 아빠가 휴대폰을 꺼냈다.

“영상으로 찍었는데 보실래요?”

“아, 저도 있어요.”

어른들이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보여주었다. 관객석의 다른 위치에서 보는 서준의 공연은 여전히 대단하고 멋졌다.

“이쪽이 변신 장면이 잘 찍혔네요.”

“달리는 건 옆에서 보는 게 훨씬 좋아요.”

“근데 어떤 자리에서 봐도 준은 참 잘하네요.”

그 말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레이스의 언니가 서은혜와 이민준에게 물었다.

“준이 무용이나 연기 같은 걸 했어요? 아니라면 지금부터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저희 학교 연극부보다 훨씬 잘하는 걸요!”

“아…….”

음. 어쩌지? 부부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찰리와 그레이스가 놀라 얼굴로 달려왔다. 서준만 여유로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 아빠! 아-빠!!”

찰리가 굉장한 걸 본 듯한 얼굴로 연신 아빠를 불렀다. 찰리의 아빠는 아들의 이런 표정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얼굴로 흥분해 있었다. 준은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자기 아들만 그랬다.

“무슨 일이야?”

“아빠!”

찰리는 고장 난 것처럼 아빠만 불러댔다. 서준이 찰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찰리는 발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연신 동동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음. 애가 장난꾸러기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야단법석을 떤 적은 없었는데.

“아빠, 준이 진이래!”

“뭐?”

JUN이 JIN이라고? 그 이상한 말에 찰리의 아빠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애들만 아는 비밀 암호 같은 건가? 찰리의 아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부부를 보니, 두 사람은 뭔가 아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찰리의 아빠가 물어보려던 찰나, 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레이스도 자신의 부모님과 언니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손짓 발짓 몸짓으로 설명하는 그레이스와 점점 표정이 멍하게 변해가는 그레이스의 가족이 보였다.

“준이 진 나트라래! 쉐도우맨에 나왔던! 서준 리가 준이래!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랑 찍은 사진하고 데이비스 가렛이랑 찍은 사진도 있었어! 레드본 말이야!”

“……뭐?”

“아빠도 봤잖아! 쉐도우맨!”

아들의 말에 찰리 아빠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그레이스의 가족들도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진 나트라를 연기했을 때처럼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웃자, 어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짜 진 나트라였다.

늑대 모자가 인상 깊은 평범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할리우드 배우가?

“안녕하세요. 배우, 서준 리예요.”

“……진짜?”

“네.”

“정말로?”

본인인 걸 알아봤어도 믿기지 않았는지 찰리 아빠의 시선이 부부에게로 향했다. 부부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는 연신 흥분해서 음식점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너무 놀라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우와! 우와! 소리만 질렀다. 어느새 그레이스도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인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맞아! 사인! 나도 해줘!”

“우리도 부탁해도 될까?”

“네. 괜찮아요!”

사인을 받은 두 아이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이건 내 보물이야!”

“나도 액자에 끼워둬야지!”

사인하고 사진까지 찍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모두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떼기 쉽지 않았지만, 내일 일정이 있었기에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었다. 서준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두 아이를 꼬옥 껴안았다. 찰리와 그레이스도 서준을 껴안았다.

“나중에 쉐도우맨 3도 꼭 볼게.”

“나도! 준이 나오는 영화는 다 볼 거야!”

“다음에 또 놀러 와야 해!”

“뉴욕에 꼭 와!”

“두 사람도 한국에 놀러 와! 같이 놀자!”

귀여운 아이들의 작별인사를 보며 어른들도 이별의 악수를 하였다. 이제 정말로 헤어질 때가 됐다.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안녕!”

“또 보자!”

서준은 점점 작아지는 친구들을 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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