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7화
호텔을 나온 서준과 부부는 잭 오 랜턴이라고 불리는 호박들을 따라 광장으로 향했다.
가로등처럼 길을 따라 잭 오 랜턴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잭 오 랜턴과 함께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도 찍을까?”
“응!”
서준과 부부도 연신 사진을 찍었다.
잭 오 랜턴 길의 끝은 오르체시의 광장이었다. 아직 축제는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광장은 시끌벅적했다. 부스들은 환한 불이 켜져 있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배 안 고파?”
“응! 괜찮아. 좀 이따 먹을래.”
소시지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던 서은혜가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시계를 본 이민준이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펑! 펑!
핼러윈 축제의 시작은 색색의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가고, 모두 함께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광장에 설치된 스피커로 트릭 오어 트릿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핼러윈 축제가 시작되고 서준과 부부는 먼저 주최 측 천막에 들러서 콘테스트 참가 신청서를 냈다. 직원은 종이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 효과 중에 여러 개를 고를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선택하면 타이밍이 안 맞을 수가 있으니까, 한두 개 정도만 선택하는 게 좋아요. 이 안내표 보시고 무대 위에서 어떤 효과를 언제 쓸 건지 적어주세요. 조명도 숫자가 적혀 있으니까, 무대 보시고 고를 수도 있어요. 너무 어려우면 조명을 다 끄고 스포트라이트만 비추거나 모든 조명을 다 켜도 괜찮아요.”
여러 가지 색의 조명, 안개 효과, 비눗방울 효과 등이 있었다.
“기준은 참가자분이 준비한 음악의 시간에 맞춰주세요. 음악이 없으면 여기서 골라서 사용하셔도 돼요.”
“음악 있어요!”
“그럼, 효과 고르시고 1시간 전까지 무대 뒤로 와서 순서표를 받으시면 돼요. 제비뽑기할 거니까, 꼭 제시간에 와야 해요.”
서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꽤 본격적인데…….”
“그러게. 그냥 누가 가장 어울리나, 고르는 줄 알았는데. 서준이는 알았어?”
“응! 너튜브에 올라온 거 봤어. 삼촌 회사 연습실 가서 연습도 했어.”
어쩐지, 촬영도 안 하는데 안다호와 자주 나간다 싶었다. 서준과 부부는 안내표를 가방에 넣고 주최 측 천막 밖으로 나왔다.
천막 밖, 광장은 이미 몬스터들로 가득했다. 몇 번이고 핼러윈 축제에 참석해 본 사람들이 능숙하게 몬스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곧 익숙해져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빠져들었다.
“으르릉!”
“꺄하하하!”
늑대인간의 분장을 한 사람이 으르렁거리자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도망쳤다. 붕대를 감은 미라와 피투성이의 좀비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도 했고 꼬마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서로의 빗자루와 지팡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대본도 없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축제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정말 제대로 하네.”
“그러게.”
“나 저쪽에서 놀아도 돼?”
서준이 가리킨 곳은 늑대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서준이 처음 그렸던 그림처럼 동화 속 늑대 같은 인형 옷을 입은 어른부터 간단히 늑대 귀 머리띠만 쓴 아이까지. 서로의 분장을 칭찬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기서만 놀아야 해. 멀리 가지 말고. 엄마 아빠는 여기 있을게.”
“응!”
엄마 아빠에게 손을 흔든 서준은 늑대인간들에게로 향했다.
“오. 또 다른 동족이 왔구먼.”
“귀여운 늑대네.”
“안녕하세요!”
다들 반갑게 서준을 맞아주었다. 늑대 인간 분장을 한 아이들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너 엄청 멋지다. 옷 어디서 샀어?”
“우리 삼촌이 만들어줬어!”
“손바닥 귀엽다. 우리 맥스같아!”
“맥스?”
“우리 집 개야. 엄청 커.”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도 있었고 못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기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이 싸우고 있어!”
“뭐?! 어디!”
누군가의 외침에 어른들이 벌떡 일어났다. 불어를 못하는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가 번역해 주었다.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이 싸우고 있대.”
“어?”
뱀파이어랑 늑대인간이 천적이라는 설정이긴 했지만, 축제에서까지 싸움할 정도였나?
멍하게 있는 서준을 아이가 이끌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싸움이 났다는 장소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가자!”
“잠시만! 엄마 아빠한테 말하고 올게!”
서준이 얼른 한쪽에서 미국에서 왔다는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 저기서 누가 싸우고 있대.”
“뭐? 싸움?”
“신고해야 하나?”
놀란 서은혜와 이민준과는 달리 두 번째로 이번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웃으며 말했다.
“싸움이 아니라 대결이에요.”
“대결요?”
“저번엔 맥주 마시기였거든요. 이번엔 어떤 걸려나?”
“늑대인간파하고 뱀파이어파는 이 축제가 시작됐을 때부터 라이벌이라서 엄청 난리에요. 두 몬스터의 대결은 이 핼러윈 축제에서 손꼽히는 행사죠.”
어쩐지. 그래서 아이들이 구경하러 달려갔구나. 고개를 돌리니, 서준에게 번역해서 전해주었던 아이가 얼른 가자며 손짓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 나 가도 돼?”
“같이 가자. 엄마 아빠도 궁금하네.”
“응!”
동석하던 부부와 인사하고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대결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서준을 기다려 주었던 아이도 함께였다.
금발의 남자아이는 늑대 귀가 달린 머리띠만 달고 있었다. 다들 달고 다니는 늑대 꼬리도 없었다.
“찰리야!”
“난 준이라고 해!”
“준은 우리 아빠랑 비슷하네! 멋지다! 나중에 콘테스트에 나갈 거야?”
“응! 일등 하려고!”
서준의 말에 찰리가 훗훗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 콘테스트는 분장뿐만이 아니라 연기도 엄청 잘해야 해. 작년 일등은 뱀파이어였는데 등장할 때,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엄청 멋졌어. 뱀파이어 연기도 엄청 잘했는데 알고 보니까,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였대.”
찰리는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너 여기 살아? 엄청 잘 아네.”
“응! 이번 축제도 벌써 10번째 참가하는 거야!”
“몇 살인데?”
“10살! 내가 1살 아기였을 때부터 참가했어. 그때는 잭 오 랜턴 분장을 했지만, 이제는 아빠를 따라서 늑대인간을 하고 있어.”
“대단하다. 멋져!”
“엣헴!”
아이들의 이야기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대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시지를 파는 부스였다.
“……나 더는 못 먹겠어.”
“좋아. 교대다!”
간단하게 마련된 두 자리에 검은 망토를 두른 뱀파이어 하나와 상의를 벌거벗은 늑대인간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잘 구워진 소시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배가 불룩한 뱀파이어가 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고 다른 뱀파이어가 그 자리에 앉아 소시지를 먹기 시작했다.
찰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은 소시지네.”
“오늘은? 다른 때는 달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싸움은 랜덤으로 정해지거든. 재작년은 스테이크였고 작년은 맥주였어. 그래서 매번 시작 시간도 다르고 싸움 장소도 달라.”
“그렇구나.”
이번에는 늑대인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늑대인간이 의자에 앉아 소시지를 먹기 시작했다.
“참가하는 건 예약해야 해?”
“아니. 뱀파이어나 늑대 인간이라면 아무나 해도 돼. 한번 내려온 사람, 아니, 몬스터는 다시 못하고 새로운 몬스터만 대결에 참가할 수 있어. 이렇게 계속 이어가다가 끝끝내 남아 있는 몬스터가 이기는 거야.”
“근데 왜 싸움이라고 해?”
그것 때문에 아까 큰 사고가 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서준의 물음에 찰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기왕 몬스터로 분장했는데 대결이나 내기 같은 건 너무 약해 보이잖아.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싸움이나 전투 정도는 돼야지!”
“……진짜 설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야 엄청 재밌는걸.”
찰리의 말에 서준도 씨익 웃었다. 그래. 그래야 재밌지!
“그럼 나도 싸워도 돼?”
“오. 적응 빠른데? 그래. 아빠! 애도 싸우고 싶대요!”
찰리가 팔을 번쩍 들어 손을 흔들었다. 늑대인간 쪽에서 참가자들의 줄을 세우고 있던 늑대인간이 고개를 돌렸다.
“와.”
서준과 부부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어냈다. 늑대탈을 뒤집어쓴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집트에 있는 개의 신, 아누비스의 모습에서 개가 아니라 늑대 머리를 쓴 것 같았다. 머리는 완전히 늑대였고 목 부분도 늑대의 털로 뒤덮여 있었다.
‘보이긴 하나? 눈은 어디지?’
서준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도 엄청 멋있었다.
“꼬마 늑대. 참가하고 싶다고?”
“안녕하세요! 준이에요!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좋아. 동족의 참가는 환영이다. 찰리, 넌?”
“나도 갈래!”
찰리와 서준이 손을 잡고 대기 줄 쪽으로 향했다. 진짜 같은 늑대인간이 서은혜와 이민준을 바라보았다.
음. 어쩐지 두 사람은 늑대 귀 머리띠가 부끄러워졌다.
“걱정 마세요. 조금만 먹이고 내려보내겠습니다.”
찰리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거칠었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 변화에 부부는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이 몬스터를 좋아해요.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보이네요. 이 축제는 처음일 텐데, 찰리랑 잘 노네요.”
대기 줄에서도 장난을 치며 노는 어린 늑대들이 보였다. 그 밝은 얼굴에 부모들이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 앉아라.”
서준의 앞에 있던 늑대인간이 백기를 들었다. 서준이 자리에 앉자 엄마 아빠가 사진을 찍고 서준의 앞에 새로운 소시지가 도착했다.
간이 세지 않은 아이용으로 크기도 어른용 소시지에 비해 작았다.
“소스 뿌려도 되고 천천히 먹어도 된다. 3개만 먹고 내려오너라. 다른 맛있는 간식도 사 먹어야지.”
“네!”
찰리 아빠가 내려가고 옆에서 기다리던 찰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서준이 포크를 들어 소시지를 찔렀다. 소시지 3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근데 저 대결은 언제까지 하는 거야?”
찰리도 소시지 3개를 먹고 내려왔다. 이제 마실 음료를 사러 찰리가 자주 간다던 가게로 가는 중이었다.
“재작년엔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스테이크가 다 떨어져서 끝났고 작년에는 맥주 마시기였는데 그건 한 사람, 아니, 몬스터당 제한이 있어서 참가자가 없어서 끝났어. 올해도 소시지가 떨어지거나 참가자가 없으면 끝날걸?”
“그렇구나.”
오르체시 토박이인 찰리는 아는 사람도 많았다. 걸어갈 때면 부스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지나가던 사람들도 찰리를 불렀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간식거리가 쌓였다. 찰리의 친구라며 서준에게도 많은 간식을 주었다.
서준도 찰리도 한 아름 간식을 들고 걸어 다녔다.
“트릭 오어 트릿도 안 했는데 간식을 이만큼이나 받아버렸네.”
“다 맛있어. 저기 앉아서 먹을까?”
찰리가 가리킨 곳은 아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미끄럼틀이나 그네 같은 놀이기구도 있었고 장난감과 인형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주위에는 아이들의 부모가 앉아서 쉬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여긴 놀이터라고, 아이들이 노는 곳이야. 아이들만 들어올 수 있어. 저쪽은 복잡해서 아이들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아예 따로 공간을 만들었대.”
“그렇구나.”
“우리도 가자!”
찰리의 말에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아빠는 여기 있을게.”
“응!”
서준이 활짝 웃으며 찰리와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 이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은혜가 물었다.
“가 보려고?”
“어.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서준이는 내가 보고 있을게.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이민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찰리의 안내로 광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기업 부스 쪽에는 관심이 없는지 이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기업 부스 쪽도 사람이 많았다. 이민준은 천천히 낮에 들렀던 몬스터사의 부스로 걸어갔다.
“오. 이거 서준 리가 하던 배지 맞죠?”
“네! 이거랑 이 배지를 자주 하죠.”
“배송 중간에 분실될까 봐 안 샀는데, 여기서 사게 될 줄이야!”
이민준이 웃고 말았다. 몬스터사의 어른 손님들은 대부분 서준의 팬이었다. 배지나 인형을 사고는 처음 보는 옆 손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의원’ 보셨어요?”
“당연하죠. 엄청 울었어요!”
세상에. 외국인이 내의원이라고 한국어로 말할 줄이야. 역시 미디어의 힘은 대단했다.
“대표님?”
“아. 안녕하세요.”
“놀러 오셨어요? 늑대 귀가 잘 어울리시네요.”
팀장의 말에 이민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띠를 매만졌다.
그때, 이민준과 팀장의 앞으로 반짝이는 LED 천사 링 머리띠를 한 최예슬이 지나갔다. 하얀색이던 천사 링이 빨간색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모습에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직원들도 잔뜩 준비해 왔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일한다고 축제에는 참석 못 하지만 이렇게라도 참가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민준은 몬스터사의 부스를 바라보았다. 직원들이 환한 얼굴이라서 안심이 됐다.
“고생 많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런 축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네요.”
“동감입니다. 별일 없으면 내년에도 또 참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좋겠네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팀장이 멀어지는 이민준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 번쩍번쩍한 빛이 나타났다. 목소리보다도 빠른 인기척이었다. 최예슬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표님 또 오셨어요?”
“네. 아마 가족분들이랑 축제에 오셨나 봐요.”
“와, 그럼…….”
반색하던 최예슬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서준 배우도 왔겠네요!”
“아…… 그렇지.”
어째서 대표님과 이서준 배우를 연관을 짓지 못하는 걸까. 이서준을 만나고 싶었던 팀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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