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95화
“서준아, 밑에 희상이 왔어. 얼른 가자.”
“응!”
엄마의 말에 늑대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멘 서준이 얼른 방에서 나왔다.
현관에 일주일 여행 동안 쓸 물건들이 담긴 캐리어와 엄마 아빠가 서 있었다. 두 사람도 서준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조용히 가겠다.”
“그러게.”
이번 출국은 알리지 않았다. 그저 축제를 즐기기 위한 가족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공항까지 김희상이 데려다주기로 해서 서준과 부부는 김희상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언제 옮겼는지 서준의 카시트도 있었는데 김희상이 연습 삼아 직접 설치해 보았다. 서준이 어렸을 때, 몇 번 해본 일이라서 꽤 쉽게 설치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
핸들을 잡은 김희상이 활짝 웃었다. 김수빈이 태어난 이후로, 아기 서준을 돌봤던 경험이 엄청 도움이 되고 있었다. 머리는 까먹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된 지 얼마 안 된 최수희 품을 조금 불편해하는 듯한 김수빈이 김희상의 품에서는 편안한 듯 미소를 짓고는 했다.
“삼촌. 요새 수빈이는 잘자?”
“어. 엄청 잘자. 서준이가 준 슬라임 인형이 엄청 좋은 것 같아.”
김희상의 차가 공항으로 향했다. 요즘 김희상과 서준이네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김수빈의 이야기였다.
슬라임 인형은 김수빈이 잠을 잘 안 잔다는 말에 서준이 준 선물이었다.
원래는 가지고 있던 인형을 주려고 했는데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거라 너무 낡아 보였다. 그래서 서준은 자신의 용돈으로 몬스터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샀다.
폭신폭신한 연두색 슬라임 인형.
마음을 안정시키는 촉감의 능력을 인형에 넣고 포장까지 직접 해서 수빈이에게 선물했다.
김희상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그렇지? 그거 엄청 좋은 거야.”
“그 덕에 요새 수희랑 나도 잘 자고 있어. 근데 그거 뭐 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잘 자지? 완전히 애착 인형이 다됐어.”
“음. 그게 폭신폭신해서 좋아.”
능력을 썼다고는 말 못 한다. 서준이 히죽 웃으며 생각해 둔 이유를 댔다.
“내가 딱 알맞은 폭신폭신함으로 만들었어. 다음에 수빈이가 잘 못 자면 다시 들고 와. 내가 또 폭신폭신하게 만들어줄게.”
“그런가. 다른 거랑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던데. 수빈이는 귀신같이 알아차리더라고. 저번에 슬라임이 덜 말라서 다른 인형 주니까, 고개를 돌리더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우리끼리 통하는 게 있지. 어른들은 모르는!”
서준의 말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수빈에 관한 이야기로 공항으로 가는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국제선 공항 앞에 김희상의 차가 섰다. 쌀쌀한 날씨 탓에 다들 어깨를 움츠리고 있어 목도리와 모자를 쓴 서준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서준이네는 차에서 짐을 내리고 김희상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서준아. 김희상이 입 모양으로 서준을 불렀다. 서준이 고개를 들어 운전석에 앉아 있는 김희상을 바라보았다.
“응?”
“축제 대회, 잘하고 와!”
“응! 사람들한테 완벽한 늑대인간 보여주고 올게! 사진도 찍어 올게!”
이 정도로 기합이 들어간 서준이 늑대인간을 연기한다면, 진짜가 나타났다고 뉴스에 뜨지 않을까? 자신이 만든 옷이 그렇게 실감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김희상은 생각했다.
“음. 좀 약하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서준아.”
서준이 눈을 끔뻑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응. 뭐든 적당히가 좋지. 너희도 잘 다녀와.”
“조심해서 가라.”
김희상이 손을 흔들자, 서준과 부부도 손을 흔들었다.
서준과 부부는 떠나는 김희상의 차를 보다가 쌀쌀한 바람에 얼른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에서는 그럭저럭 잘 숨겼지만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얼굴을 숨길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하고 푹 자고 기내식까지 먹으니 어느새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있었다.
서준이 손을 흔들며 떠나고,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마자, SNS에 순식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서준 봤어! 파리행 비행기!
-이서준이랑 같은 비행기 탔음! 가족여행인가 봄. 사인!
하루에 한 번씩 SNS에 [#이서준]을 검색하는 게 일과인 기자들이 순식간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배우 이서준, 파리행 비행기에서 목격!]
[파리엔 무슨 일? 배우 이서준, 프랑스 파리로!]
그리고 눈치 빠른 기자들이 가족여행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했다.
이서준의 부친인 이민준이 일하는 ‘몬스터사’로 검색하니 여러 개의 기사가 있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내의원이 워낙 핫 했어야지.”
“그러게요. 내의원 때문에 묻힌 기사만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DVD 만들라고 난리라더라고요.”
“DVD?”
“네. 원래 DVD 같은 거 사면 드라마랑 관련된 기념품 같은 거 주거든요. 내의원 시청자들은 이서준이 본 대본이 갖고 싶대요. 그 리딩 영상 때 뭘 그렇게 열심히 적었는지 궁금하다면서요.”
“그것도 엄청 팔리겠네.”
조금 전까지도 ‘내의원, 수출 금액만 무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고 있던 기사는 후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새로운 기사를 써 내려갔다.
[몬스터, 프랑스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 협찬!]
[파리 근교의 도시, 오르체시!]
[배우 이서준, 핼러윈 축제에 참석하나?]
-헉, 나 파리 사는데! 오르체시라면 가 볼까!
-나 벨기엔데 갈까 생각 중.
-영국입니다. 고민 중. 내가 언제 이서준을 보겠냐ㅠ
-핼러윈 축제가 이틀 뒤라서 지금 가긴 힘들겠네ㅠ
-근데 핼러윈 축제 재밌어 보이는 듯.
-필독) 오르체시 축제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거기서 사람 얼굴 알아보는 거 엄청 힘들어요. 다들 분장하고 와서. 애들도 많고, 이서준이 바로 옆을 지나가도 모를 겁니다ㅠ
=ㅋㅋ하긴 그렇겠다.
* * *
몬스터사의 직원, 최예슬이 상자를 들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외쳤다.
“이것만 옮기면 끝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르체시 시청에서 준비한 창고에 물건을 모두 옮겼다. 일정표를 살펴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는 내일 오후 5시부터 시작되었다. 내일 오전에 광장에 부스를 설치한다니, 오늘 할 일은 이걸로 끝이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바쁠 테니 오늘은 일찍 쉬어야 했다.
“오늘 일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조금 이르긴 한데 저녁 먹으러 갈까요?”
“네!”
몬스터사의 직원들은 창고의 문을 잠그고 옹기종기 모여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불어를 제법 하는 팀장이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팀장님, 존경합니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을 들었다. 들어가는 재료도 알레르기도 고려해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 파스타 맛있네요.”
“시청 직원에게 추천받았어요. 이 집 뵈프 부르기뇽도 맛있대요.”
“뵈프 부르기뇽이 뭐에요?”
“소고기 스튜 요리에요. 소고기, 레드 와인, 야채, 버섯 등을 넣어서 오래 끓이는 요리예요. 시킬까요?”
“네!”
출장이긴 했지만 다들 프랑스는 처음이라서 들떠서 일하고 있었다. 대표님의 제안으로 오르체 시의 핼러윈 축제가 끝난 뒤, 연차를 쓰면 프랑스에서 휴가를 보낼 수도 있었다. 여기 대부분이 그렇게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진짜 좋네요. 저 해외는 처음이에요.”
“저도요. 첫 해외여행은 한국이랑 가까운 나라가 될 줄 알았는데, 프랑스라니. 전 일이 모두 끝나면 바로 이탈리아에 가려고요.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벨기에에 갈 생각입니다.”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출장 온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한국 소식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던 최예슬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헐!”
“왜 그래요, 예슬 씨?”
놀란 표정의 최예슬이 말없이 팀장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배우 이서준, 가족 여행지는 프랑스!]
[이서준, 프랑스 오르체시에서 열리는 핼러윈 축제에 참석?!]
[프랑스 오르체시의 특산품, 와인!]
[몬스터사, 오르체 시 축제에 협찬!]
기사를 읽던 팀장이 반색하며 말했다.
“와. 이서준 프랑스 왔대요.”
이서준이라는 소리에 다들 최예슬의 휴대폰으로 모여들었다.
“나 내의원 엄청 재밌게 봤는데!”
“솔직히 내의원 안 본 사람들 찾는 게 힘들지 않아요?”
“전 다시 보기로 보다가 10화부터 본방송 봤잖아요. 도저히 다시 보기가 업로드될 때까지 못 기다리겠더라고요.”
“저 엄청 울었습니다. 14화도, 마지막 화도.”
“내의원 애청자들은 다 울었을걸요? 이번에 DVD 나올지도 모른다는데 사실 거예요?”
“네. 기념품으로 꼭 대본집을 줬으면 좋겠네요.”
다들 화기애애했다. 최예슬만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걸 눈치챈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슬 씨. 어디 아파요? 먼저 올라가서 쉴래요?”
“아뇨. 그게 아니라…….”
최예슬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포옥 쉬었다. 즐겁게 이서준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직원들의 시선이 최예슬에게로 모였다. 최예슬이 손가락으로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여기 이서준 가족여행이라고 돼 있잖아요.”
“그렇죠?”
“오르체시에 올지도 모른다고 적혀 있잖아요?”
“그럼 지나가다 볼 수도 있겠네요! 이민준 대표님 아들이라서 회사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번 도 못 봤…… 어?”
말하던 직원이 굳어버렸다. ‘나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의 말에 동의하던 다른 직원들도 그제야 하나둘 깨달은 얼굴로 기사를 보았다. 팀장마저 굳은 얼굴이었다.
[배우 이서준, 가족 여행지는 프랑스!]
유난히 ‘가족여행’이라는 글씨가 굵고 크게 보이는 것 같았다.
“……서준이 가족이라면 우리 대표님이잖아요.”
“……!”
“대표님이 여기 오실지도 모르겠어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 * *
시차 적응을 마친 서준과 부부는 에펠탑을 구경하기로 했다. 유명한 관광지답게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서준은 눈앞의 커다란 탑을 보았다. 점점 가라앉는 노을과 함께 보이는 에펠탑은 정말로 멋졌다.
서준과 부부는 말없이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조명이 켜진대. 그때는 더 멋질 거야.”
“그럼 기다렸다가 사진 찍을까?”
“응!”
외국이라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뜻밖의 여행에 신이 난 서준과 부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에 이민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희상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던 이민준이 혈압이 오른 듯 뒷목을 매만졌다.
“아빠, 누구야?”
“희상이.”
“김희상? 무슨 일이래?”
“오르체시 핼러윈 축제에 우리 회사 부스도 열거든. 거기 한번 들르라고. 그냥 잘하고 있는지 보고 와 달래.”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고개를 갸웃했다.
“휴가 내고 온 거 아니었어?”
“내고 왔지. 어차피 오르체시 갈 거 한번 둘러보래. 이 자식이, 휴가 중인 사람한테 일을 시켜?”
“뭐, 어차피 갈 거니까 상관은 없지 않아?”
“……휴가 때까지 일하긴 싫은데…….”
이민준이 한숨을 쉬자 서준과 서은혜가 웃으며 이민준을 포옥 안았다.
“자, 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여행을 즐겨야지.”
“내일 일은 내일의 아빠한테 맡겨!”
서준의 말에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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