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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4화 (9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4화

몇 번을 말해도 떨리는 기분이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서은찬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과 부부에게 말했다.

“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렇구나.”

“홍보팀 팀장님?”

“김수련 씨?”

진지한 서은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멍하게 변했다. 부부와 서준이 똑 닮은 얼굴로 히죽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

“다호 형이 가르쳐 줬어!”

“브라운블랙 애들이 가르쳐 줬어. 너랑 팀장님이랑 왠지 수상하다고 하더라.”

서은찬이 마른세수를 했다. 걔들은 어떻게 알았지? 아니, 잠깐! 간간이 회사에 들르는 안다호와 브라운블랙이 안다면 대부분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서은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우리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다호 형이 그랬어. 다들 아는데 말 안 하는 거라고. 다 티 났대.”

“그랬구나…….”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이민준의 물음에 지금까지 직원들 몰래 만나면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었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쥐구멍에 숨고 싶었던 서은찬이 정신을 차렸다.

“다다음 주에 상견례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엄마한테는 말했어.”

“아. 그러네. 상견례가 있었지.”

서은혜와 이민준은 결혼과 상견례를 바로 연관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서은혜와 이민준의 상견례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부모님들도 절친한 사이라서 외식하는 것처럼 편하게 밥을 먹고 왔다.

얼마나 편했냐고 하면 즐겁게 이야기하고 돌아와서야 그게 상견례였다는 걸 깨닫고 다시 모여 결혼식 날짜를 정할 정도였다.

부부도 외할머니도, 그리고 당사자인 서은찬도 이런 보통의 상견례는 처음이었다. 뭘 준비해야 하지, 생각하던 서은혜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서준이는 어쩌지?”

“응? 나?”

“상견례가 중요한 자리니까. 서준이가 얌전하긴 하지만, 계속 가만히 있기엔 서준이도 답답하지 않을까?”

“그러게. 다호 씨한테 부탁해도 되려나. 아니면 브라운블랙 애들이나.”

“누나.”

서은찬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이 서준이 데려와도 괜찮으시대. 내의원 엄청 재미있게 보셨대.”

서은찬의 말에 어쩌면 생각보다 편한 상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서준과 부부는 생각했다.

* * *

예상이 맞았다.

상견례 당일. 어색함이 흐르던 상견례장은 서준의 ‘사인해 드릴까요?’ 한마디에 사르르 풀려버렸다.

서준의 사인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들뜬 김수련의 부모님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애가 회사 사장님이 바뀌고 나서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그렇게 상사 칭찬하는 부하 직원도 없을 거예요.”

김수련 어머니의 말에 마주 보고 앉은 서은찬과 김수련의 얼굴이 불타오를 듯 붉어졌다. 김수련 아버지도 미소를 지었다.

“서 서방이 믿음직하고 듬직하니 회사도 잘 꾸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새아기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은찬이가 일 잘한다고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하하 호호, 두 사람의 흑역사를 제물로 상견례 자리가 화기애애해졌다.

조용히 찬이 삼촌과 수련숙모의 러브스토리를 듣던 서준이 웃었다. 다들 이미 결혼을 승낙한 듯 마음 편히 아들딸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찬이 삼촌과 수련 숙모가 함께 일한 것도 벌써 10년.

전 사장 밑에서 함께 고생하고, 찬이 삼촌이 사장이 돼서도 함께 했던 수련 숙모였다.

언제부터 사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귀기 전 별생각 없이 가족에게 털어놓았던 서로에 대한 칭찬이 이 자리에서 부메랑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진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서로 했다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실실 웃는 얼굴이었다.

“안녕. 서준아.”

“안녕하세요.”

“이거 먹을래?”

“감사합니다.”

낯이 익은 얼굴들도 있었다. 48시간에서 함께 지냈던 의사 선생님, 김화련이었다.

김수련의 언니인 김화련이 서준의 앞 접시 위에 계란찜을 올려주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계란찜이 참 맛있어 보였다.

김화련은 계란찜을 먹는 서준을 보고 웃었다. 48시간을 찍으면서 걷지도 못하던 서준을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남의 애들은 진짜 빨리 자랐다.

“이모 기억해?”

“네. 48시간 찍을 때, 같이 있었죠?”

“서준이 똑똑하네.”

깜짝 놀란 김화련이 웃었다. 김화련의 남편도 놀란 얼굴로 서준을 보았다. 서준이 웃으며 김화련의 남편을 보았다.

“사인 1호 아직 가지고 계세요?”

“……와.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김화련의 남편, 최민호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너무 깜짝 놀라 심장이 요동쳤다. 김화련의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

“어떻게 알았어?”

“그때 본 기억도 있고, 예전에 48시간 방송에 1호 팬으로 나온 적 있잖아요.”

“그래도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방송에 나왔다지만 9년이나 지난 지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김화련과 최민호는 뛰어난 서준의 기억력에 저도 모르게 속으로 박수를 쳤다.

김화련이 시선을 돌려 자신의 부모님과 서준의 외할머니를 보았다. 세 사람은 여전히 서은찬과 김수련의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의원 잘 봤어.”

“나도. 엄청 재미있었어.”

“감사합니다.”

“우리 시부모님도 엄청 울면서 보셨어. 나중에 사인 좀 부탁할게.”

김수련이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최민호가 멋쩍은 얼굴로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만날지도 몰랐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브라운블랙 형들 팬이에요?”

“응. 행사들을 찾아갈 정도로 열정적인 팬은 아니지만, 노래는 꾸준히 듣고 있어.”

“거의 10년 팬이면 엄청난 팬이지. 시간 나고 티켓 생기면, 콘서트도 꼭 가면서.”

웃으면서 말하는 김화련의 말에 최민호가 민망한 듯 뒷목을 매만졌다. 서준이 웃었다.

“근데 선생님이랑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신기한 조합이었다. 브라운블랙 팬 1호와 48시간을 찍을 때 함께 있었던 소아과 의사 선생님.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조카랑 병원 갔다가 만났어. 서로 딱 알아봤지.”

“솔직히 잊기 힘들 만남이었잖아.”

놀이터에서 데뷔도 안 한 아이돌의 사인을 받아간 남자와 너튜브 예능을 촬영하던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

김화련이 최민호를 알아보고, 최민호가 조카와 함께 내원하면서 인연이 생겼다. 그렇게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했다. 지금은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오늘 안 데려오셨어요?”

“지금 그 조카 형이랑 논다고 정신없을걸?”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은찬과 김수련의 결혼식은 1월로 정해졌다.

* * *

8월 한참 태풍이 올라오던 때, 핼러윈 축제 때 입을 옷을 제작하기 위해 김희상이 서준의 집에 들렀다.

맞춤제작이라서 김희상은 익숙하게 서준의 몸을 이리저리 치수를 재고 기록했다.

“복슬복슬한 게 꼭 인형 같네!”

“그치? 엄마랑 아빠도 엄청 귀엽다고 했어.”

“일단 그림은 이걸로 할까?”

“응!”

서준과 김희상은 서준의 스케치북에서 그림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김희상이 만들 수 있는지를 고려하며 새 종이에 새롭게 그려나갔다.

슥슥- 그려지는 그림에 서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상의는 모자가 달린 청재킷이었고 바지는 평범한 검은색 바지였다.

“음. 삼촌. 좀 평범하지 않아?”

“서준이가 그린 거 봤는데. 그건 늑대인간이라기보다, 그냥 늑대지 않아? 위도 아래도 전부 털옷이고. 좀 더 인간다워야지.”

생각해 보면 전생의 늑대인간들도 다양한 모습이었다. 아예 늑대 쪽에 가까운 늑대인간도 있었고 인간 쪽에 가까운 늑대인간도 있었다. 서준이 그린 건 늑대 쪽에 가까운 늑대인간이었다.

“너무 털북숭이로 가면 다들 늑대인 줄 알 거야. 늑대인간이 아니라.”

“음. 그건 그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늑대이긴 해야 하니까, 이렇게.”

김희상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청재킷에 달린 모자는 늑대의 머리처럼 보였다.

대부분 회색 털로 덮여 있었고 두 개의 늑대 귀와 기다란 주둥이, 날카로운 송곳니와 매서운 눈동자를 그렸다.

검은 바지의 엉덩이 쪽에는 기다랗고 복실복실한 꼬리를 그렸다.

“모자를 쓰면 아마 야구모자를 쓸 때처럼 늑대 주둥이가 튀어나와서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질 거야. 조금 떨어져서 보면 늑대 머리에 서준이 턱만 보이겠지. 장갑은 이렇게 소매랑 장갑 사이의 틈으로 손을 빼내면 벗겨지게 만들게. 위쪽이 소매랑 연결돼서 잃어버릴 일도 없게. 장갑의 늑대 발톱은 폭신폭신한 거로 달아야겠다.”

“송곳니도!”

한참을 핼러윈 의상에 관해 이야기하던 서준과 김희상의 관심은 곧, 한 달 전 태어난 김희상의 아들, 김수빈에게로 향했다.

“우리 수빈이 사진 볼래?”

“응!”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아 보러 갈 수는 없었지만, 사진으로 봐도 좋았다. 김희상이 잔뜩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엄청 작아.”

김희상이 보여준 사진에는 아주 작은 아기가 있었다. 너무 작아서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서준이 아기였을 때는 몸도 작아서, 같이 놀던 아기 친구들이 그다지 작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이렇게 크고 나서 아기를 보니 너무 작았다.

갓 태어났을 때의 사진부터 병원 면회 때의 사진, 조리원 때의 사진, 집에서 찍은 사진.

“동영상도 있어.”

김희상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폭신폭신한 이불 위에 누워 환하게 웃고 있는 갓난아기, 김수빈의 모습과 함께, 동영상에는 보이지 않는 김희상과 최수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엄청 귀엽지?”

“응!”

이렇게 어린 아기를 보는 건 처음인 서준은 김희상이 찍어놓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구경했다.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외출했던 서은혜가 돌아올 때까지 구경했다. 돌아온 서은혜도 사진 구경에 끼었다.

“서준이도 이만할 때가 있었는데. 엄청 귀여웠지?”

“우리 수빈이가 제일 귀엽지!”

“뭐래. 우리 서준이가 제일 귀여워!”

김희상과 서은혜가 낄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준은 여전히 휴대폰 사진을 구경했다.

눈도 못 뜨고 꼬물꼬물하는 아기가 너무 귀여웠다. 동생! 얼른 커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

“……부탁이 있는데.”

항상 유쾌한 그답지 않게, 김희상이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사진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던 서은혜와 서준이 고개를 들어 김희상을 바라보았다.

“응? 부탁?”

“……수빈이 키우다가 모르는 거 있을 때 물어봐도 돼? 꼭 필요할 때만 물어볼게.”

김희상은 수빈이를 서준이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키우고 싶었다. 뜻밖의 물음에 두 눈을 끔뻑거리던 서은혜가 입을 열었다.

“너도 잘 알잖아. 우리 서준이 그냥 평범하게 자랐는데. 물론, 연기나 미국 생활은 좀 특별하지만…… 다른 건 거의 인터넷 후기나 엄마들 추천 듣고 샀어.”

“그래도 뭐랄까, 아빠가 되니까 조그만 거에도 신경 쓰게 되더라고. 좋은 것만 주고 싶고, 수빈이가 서준이처럼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

쑥스러운 듯한 김희상의 모습에 서은혜가 미소를 지었다. 서준이랑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건 언제 어른이 되나, 생각했는데 벌써 아빠가 된 모양이었다.

“알았어. 뭐든 물어봐. 아는 건 전부 가르쳐 줄게.”

“고마워.”

“윽. 소름 돋는다. 그냥 평소대로 해.”

“아하하하. 그럴까?”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서준이가 잘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좋아하던 동화책 같은 거. 먹일 분유는 정해놨어. 엘레펀트 분유. 아직도 엄청 인기더라고.”

“분유는 추천. 근데,”

“응?”

“서준이가 잘 갖고 놀던 장난감은 너도 잘 알잖아. 네가 만든 인형.”

그 생각을 못 했다는 듯, 깜짝 놀란 김희상의 얼굴에 서은혜와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아기 친구들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수빈이는 좋아하려나? 좋아하면 같이 놀아줄 텐데!’

서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몬스터 인형 중에서 아기가 좋아할 인형이 뭐가 있나 고민했다.

* * *

여러 나라에 ‘내의원’이 수출되고, 플러스+에도 내의원 24화까지 모두 업로드되었다.

내의원을 방영하기 시작한 나라의 사람들은 내의원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플러스+에 가입하기도 했다.

내의원에 나왔던 배우들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는 소식이 서준의 귀에 들어왔다.

도훈이 형과 지석이 형이 함께 찍은 CF도 있었다. 종호 삼촌이 나온 CF도 있었다.

서준에게도 CF 제안이 많이 들어왔지만 서준은 모두 거절했다.

내의원의 흥행으로 많아진 건 CF 제안만이 아니었다. 서준에게 들어오는 대본과 시놉시스의 양이 많아졌다.

문제는 대본의 질이었다. 이서준이 선택만 한다면 어떤 허접스러운 대본으로도 엄청난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보내본다는 식의 대본이 많았다.

서준의 전담 2팀이 거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준에게 전해지는 대본의 양도 1.5배 정도 늘었다.

대본과 시놉시스 더미를 읽고, 여름방학 숙제를 하면서 서준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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