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2화 (9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2화

“플러스는 고를 때가 제일 힘들어.”

집 청소를 모두 끝내고 유료 스트리밍 사이트 [플러스+]에서 드라마를 보며 여유로운 주말을 즐기려고 했던 올리비아는 과자를 먹으며 볼만한 드라마를 찾아 헤맸다.

자막이 있으면 외국 드라마도 상관없어서 열심히 찾고 있기는 한데 딱히 끌리는 드라마가 없었다.

“이것도 별로고…….”

결국, 첫 화면으로 돌아온 올리비아의 눈에 [금주의 배우] 배너가 들어왔다.

유료 스트리밍 사이트, [플러스+]의 [금주의 배우]는 매주 배우들을 골라 그들이 나온 작품을 모아 놓은 카테고리였는데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일 때도 있었고 각 나라에서만 유명한 배우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나라에서 유명하면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

올리비아는 ‘금주의 배우’ 덕분에 해외 팬들이 생긴 세계 각국의 배우들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누가 올라와 있으려나.”

배너를 클릭하자 화면 가득히 배우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인도,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적도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진은,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었다.

[서준 리]

“준이야 이미 스타지. 다 보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긴 하니까, 한 번 더 볼까?”

한국 영화 ‘악령’까지 플러스+로 본 올리비아가 웃으며 서준의 사진을 클릭했다.

쉐도우맨 1, 쉐도우맨 2, 악령. 세 가지 영화 중 뭘 볼까 고민하고 있던 올리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연극/ ‘봄’ 1차-8차] NEW!

[드라마/ 내의원 1화-8화] NEW!

서준 리의 새로운 작품이 떴다.

* * *

“그래서 엄청 난리야.”

KBC도 제작사도, 유료 스트리밍 사이트 [플러스+]도.

모두 서준의 이름값을 기대하긴 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에 난리가 났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늘어나는 조회 수에, 그리고 서준 리의 새로운 작품을 보기 위해 플러스+에 가입하는 사람들 수까지.

“대군마마 귀엽다는 댓글이 많더라고.”

“14화 업로드되면 큰일이겠네요.”

서준의 말에 이지석이 웃었다. 커다란 감자탕의 뼈 하나를 서준의 앞 접시에 올려주고 자신의 접시에도 하나를 올렸다.

“매주 2화씩 올린다니까 아직 조금 시간이 있지. 그러고 보니 내의원 스페셜이 플러스+에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그 말에 서준이 허탈한 웃음을 뱉고 말았다. 서준의 고개가 식당 한쪽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내의원 스페셜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시청자분들도, 사극에서 보셨겠지만 일단 전염병 환자들이 나타난 마을을 폐쇄해야 합니다. 그 이후 의원들을 불러서 치료를 시작하죠. 창진의 완벽한 치료 약은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탕약을 오늘 여기서 만들어보겠습니다. 저라면 성녕대군에게 제일 먼저 이 탕약을 처방했을 겁니다.]

불타오르는 내의원 시청자들의 반응에 KBC는 신이 난 듯 내의원 스페셜을 방송했다.

조선시대의 창진 대처법과 당시의 약재로 만들 수 있는, 창진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탕약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 스튜디오임이 분명한 곳에서 열심히 탕약을 달이고 있는 한의사가 나오고 있었다.

“진짜 저게 올라가요?”

“그럼. 내의원 덕분에 외국에서도 한의원에 대해 많이 궁금해한다더라. 해외에 있는 한의원에도 손님이 많이 생기고. 성녕대군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화제지. 아는 사람 말로는 내의원 스페셜에서 양약으로 창진 치료하는 방법도 방송한다더라고. 플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보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대체 그런 건 왜 보는 걸까요?”

“원래 쓸데없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야. 이런 약이 있었으면 성녕대군이 살지 않았을까, 성녕대군이 살아 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말이야.”

“그렇구나.”

라고 대답은 했지만,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서준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뜨끈한 감자탕의 국물이 참 맛있었다.

* * *

내의원 23화가 방송되었다.

경기도에서 발생한 창진의 소식을 들은 세종은 고민할 것도 없이 한 남자를 불러들였다. 차가운 얼굴로 부복한 허유선이 세종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허 의관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네.”

“예. 전하.”

“무울리에서 창진이 창궐했다네. 그대가 가줬으면 하네.”

부복한 채로 별생각 없이 세종의 말을 듣고 있던 허유선이 몸을 움찔 떨었다. 세종은 알고 있었다. 다른 의관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몸을 떨었다면 분명 창진이 두려워서일 것이 분명했지만, 이 남자는 다를 터였다.

“……창진?”

임금의 앞인 것도 잊은 듯, 허유선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창진?

“하…….”

허유선이 고개를 숙였다. 몸을 움츠렸다. 그때, 그 날처럼 허유선의 등이 떨렸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아하, 아하하하!!!”

허유선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 광기 어린 웃음소리에 밖에 있던 호위들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종은 아무 말 없이 손을 저었다. 아하하하, 궁궐을 떠나가라 울리던 허유선의 웃음소리가 멈추었다.

“전하.”

허유선이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 잡힌 허유선의 얼굴에 시청자들이 식겁했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허유선이 소리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와. 이 장면으로 23화 끝냈어도 됐을 것 같은데?

-그러게. 근데 아직 반이나 남았어.

허유선은 짐을 쌌다. 그동안 세종이 연구해 둔 자료들과 자신의 자료들을 모았다. 미친 듯이 짐을 싸는 허유선의 모습에 다른 의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지로 가게 돼서 미쳤나 보군.”

“자네 못 들었나? 전하께 명받고 성은이 망극하다고 했다 잖나. 미친 게지.”

허유선은 무울리로 가기 전 성녕대군의 묘에 들렀다. 깔끔하게 정리한 성녕대군의 묘에 절을 올리고 굳은 얼굴로 무울리로 향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형적인 전염병이 퍼진 마을이었다. 허유선은 흰색 천을 하관에 두르고 마을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죽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에는 눈도 돌리지 않은 허유선이 병졸에게 물었다.

“환자는 어디 있느냐?”

“이쪽입니다. 나으리.”

병졸이 길을 안내했다. 환자들은 질서도 없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허유선은 일단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나누었다. 병세가 심하지 않은 자들은 함께 온 의원들에게 맡기고 다들 가기 싫어하는 심각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후. 이것도 아니군.”

허유선은 그 누구도 허술하게 치료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했던 치료법이 환자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한 명이 죽고, 또 한 명이 죽어 나갔다. 허유선과 같은 마음인 세종은 충분한 약재를 보내주었다.

실패한 치료법을 고치며 허유선이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나으리! 나으리!”

“무슨 일이냐!”

밖에서 허유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자 예전, 창진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병졸이 누군가를 업고 있었다.

“저어기 산속에 사는 약초꾼 아이인데, 요새 내려오질 않아서 가봤더니 창진에 걸려 있지 뭡니까!”

“평상에 눕혀보아라.”

“예예!”

병졸은 조심조심 아이를 내려놓았다.

둥-!

몇 화 내내 잠잠하던 북소리가 울렸다. 내의원을 열심히 보던 시청자들이 그 북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두근, 심장이 뛰었다.

둥!

병졸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사라지고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싸늘하게 환자를 살펴보려던 허유선의 표정이 일순간 흔들렸다. 입이 저절로 열렸다.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엄청 착한 아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플 때 좋은 약초도 줬습니다요. 나으리, 꼭 고쳐 주십시오,”

병졸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둥! 둥!

다리에 힘이 빠진 허유선이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졸이 나으리, 나으리! 소리쳤지만 허유선의 모든 감각은 아이에게 쏠려 있었다.

마마.

색색 가쁜 숨을 내쉬는 아이를 보며 허유선은 결국 내뱉고 말았다. 무언가 막힌 듯, 갈라진 목소리였다.

“성녕대군마마!”

[성녕대군 다시 등장?!]

[내의원 23화, 순간 최고시청률 37%!]

-미친? 진짜? 본인!? 성녕대군이 여기에 있었다고!?

-아니, 그러기에는 벌써 7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안 자랐잖아! 다른 사람임!

-와. 허유선 미칠 듯. 성녕대군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애도 창진에 걸림.

=……헐! 그러네?!

-근데 쟨 이서준 맞지?

=ㅇㅇ 이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나왔네!

=약초꾼 복장에도 빛나는 외모!

[KBC 내의원 마지막 화!]

[다시 등장한 성녕대군?]

[지금까지 실패한 치료법! 과연 치료할 수 있을까!]

-아…… 마지막 화. 보고 싶은데 안 보고 싶다.

-해피엔딩이겠지? 치료할 테니까!

=성녕대군 죽은 시점에서 해피엔딩은 아니지 않나?

=ㅠ그럼 노말 엔딩인가ㅠ 배드엔딩만 아니어라ㅠ

허유선은 비어 있는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잠시 착각하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성녕대군과는 다른 아이였다.

“벌써 7년이나 흘렀는데…….”

성녕대군이라면, 7년이면 훌륭하게 장성했을 나이였다. 이렇게 작은 아이일 리가 없었다. 멍하니 약초꾼 아이만 바라보던 허유선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세종에게 서신을 올렸다.

“성녕과 닮아?”

세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종과 닮아? 아련한 눈으로 무울리 쪽을 바라보던 세종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상선.”

“예. 전하.”

“허 의관이 보내달라는 약재를 모두 준비해서 보내주게.”

“알겠사옵니다. 전하.”

편지를 받아간 상선이 방을 나서자 세종이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뱉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제발, 이번에는 제발…….”

30이 다 돼가는 나이지만 다시 떠오르는 기억에 세종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충녕 형님! 형님!’하고 자신을 부르는 성녕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유선은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보면 볼수록 당시의 성녕대군과 비슷한 아이였다.

키와 생김새는 물론이고 병의 증세까지, 몇십 번이나 살펴본 성녕대군의 증세와 비슷했다. 그래서 허유선은 더욱더 치료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치료하지 않을 때는 다른 환자들을 살피며 약의 효과를 알아보았다. 아이에게 맞는 약도 있었고 맞지 않는 약도 있었다.

“나으리. 쉬셔야 합니다!”

병졸이 말릴 정도로 허유선은 아이의 치료에 집중했다. 상태가 나아지는 환자가 먹었던 약이 아이에게 듣지 않을 때는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이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그때의 그 날처럼. 허유선은 힘없이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마. 마마.

그때는 차마 울 수 없었지만 여기는 달랐다. 허유선은 모든 걸 다 털어놓듯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허유선의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때, 따뜻한 무언가가 허유선의 손에 닿았다. 아이의 손이었다. 아이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의 입 모양에 허유선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고마워요. 허 의관’. 성녕대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옷도 장소도 달랐지만 성녕대군과 똑같은 얼굴의 아이는 허유선과 시청자들에게 그때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허유선의 얼굴과 진맥을 잡고 침을 놓는 손, 고통에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

모두 숨도 쉬지 않고 집중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졌다. 아이의 몸을 태울 듯했던 열이 점점 내려갔다. 붉었던 발진이 가라앉고 가빴던 숨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덜덜 손을 떨며 진찰하던 허유선은 끝내 그 작은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며 그 위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허유선은 성공했다.

아아, 대군마마.

아이를 치료했다는 서신을 받은 세종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완벽한 창진의 치료법은 아니었지만 아이 하나가 치료된 것만으로도 마음속 짐을 반쯤 내려놓은 것 같았다.

세종은 허유선을 어의로 삼으려고 했으나 허유선은 거절했다. 아이를 치료하고 무울리의 상태가 나아진 것을 확인한 허유선은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성녕대군의 묘였다.

“대군마마.”

성녕대군의 묘에 절을 한 허유선이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았다.

“제가, 이 허 의관이 창진을 치료했습니다. 마마를 치료했던 때와는 달리 많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허유선은 진료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던 허유선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지고 물에 잠겼다.

“아이는 나았습니다. 기력만 회복하면 다시 전처럼 지낼 수 있사옵니다.”

허유선이 울 듯 웃었다.

“마마와 함께 지내던 날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래를 생각하면서 작은 싹이 텄습니다. 소신이 보고 배운 것이 권력을 탐하는 것이라, 마마께 임금의 자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드리고 싶었는데, 분명 마마께서는 싫다고 하셨겠지요?”

제 몸에 허 대감의 피가 흐르는 모양인지 부족해 보이는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는 것을 볼 때면 불쑥불쑥 반감이 솟았다. 그 자리는 첫 만남부터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던 성녕대군이 더 어울렸다.

그런데 그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주인이 하늘로 떠났다. 그 죽음이 나쁜 마음을 품었던 제 잘못인 것 같아 허유선은 죄책감이 들었다.

“잘못했사옵니다. 제가, 제가 정말로…….”

허유선은 그 날처럼 흙바닥에 엎드렸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흙바닥을 적셨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영원히 잊을 수 없었던 그 날.

허유선은 토해내지 못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돌아와 주십시오.”

상위복.

하늘로 올라간 임금의 영혼께 다시 돌아와 달라고 청하는 말.

성녕대군의 무덤 앞에 엎드려 엉엉 우는 허유선의 모습 밑에 자막이 생겨났다.

[그동안 내의원을 시청해 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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