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91화 (9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1화

며칠 후, 너튜브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 : 외국인 친구에게 내의원을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조조입니다. 오늘은 영국 여행 도중 만난 친구, 엠마에게 요즘 화제인 드라마, 내의원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전부 보기에는 너무 길어서 아주 중요한 파트만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조민영과 엠마가 화면에 나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성녕대군이 나오는 장면만 앞뒤가 맞게 연결해서 편집했습니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성녕대군을 본 친구의 반응이 궁금하시지 않나요! 게다가 엠마는 진 나트라의 열성 팬이라서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이서준의 한국 작품도 보기 위해 열심히 한국어도 공부 중이랍니다!”

조민영의 말과 함께 자막이 깔렸다.

‘엠마는 한국어는 알아듣지만, 한국 역사는 지금 공부 중입니다. 아직 고려시대입니다 ;)’

“엄청 기대돼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서준 리를 볼 생각에 엠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기대감이 영상 너머에서도 너무 잘 느껴져 너튜브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라이브도 아니고 녹화 영상이라 이미 다 봤을 테지만 안타까웠다.

-악마다! 악마가 여기 있어!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대군마마는, 마마는!ㅠ

영상을 보는 엠마와 조민영의 모습과 함께 영상 구석에 내의원 제목이 나타났다.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허유선이 성녕대군의 처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가 노란 바닥을 비추다가 천천히 올라갔다.

나무 탁자, 덮인 책, 기린 수가 놓인 자주색 관복, 그리고 성녕대군. 엠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크. 등장 신이 최고지.

-북소리가 너무 잘 어울림

-이게 딱 차기 왕은 나요. 포스인데.

그 이후의 영상은 평화로웠다. 조민영의 말대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활발한 성녕대군의 일상이 가득했다.

엠마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엠마의 얼굴에 후후후 웃으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꼭 3주 전의 나 같네. 난 퓨전 사극이라서 살릴 줄 알았음.

-감정이입 NO. 몰입 NO. 흐린 눈으로 보고 있다.

-후폭풍이 장난 아닐 듯.

-이제 ‘그거’다.

=그거ㅋㅋㅠ

[창진이옵니다!]

어의 양홍달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창진? 엠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조민영이 병이라고 말해주었다. 병? 제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상황은 매우 급하게 돌아갔다.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성녕대군은 몸져누웠다. 불안함이 엠마를 덮쳤다. 엠마가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영상을 보았다. 14화는 거의 통째로 이어졌다. 단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종아!]

“아…….”

입을 틀어막은 엠마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통함이 가득한 부모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엠마의 눈가가 벌게졌다. 서준과 함께 웃으면서 지내던 의관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눈이 내렸다.

[성녕대군 이 종, 졸 Dead]

친절하게도 조민영은 자막을 달아주었다. Dead. 그 글자가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눌렀다.

“……크흥.”

함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진 조민영에 엠마에게 휴지를 건넸다. 너튜브 영상은 휴지를 잔뜩 준비한 엠마와 조민영이 다정하게 내의원 1화를 보는 장면으로 끝났다.

-아, 나도 다시 봐야지.

-1화부터 다시 보면 성녕 나올 때마다 그날 생각나서 슬플 것 같다.

-쯧쯧. 난 벌써 3번째 정주행하고 있음.

=후폭풍 괜찮냐?

=ㄴㄴ 그래서 반차 내고 광화문 갔다 왔다. 살아 있는 성녕대군으로 치료하고 왔어.

한국 드라마나 뮤비에 관한 외국인 리액션 영상은 많이 올라왔지만, 내의원의 영상은 조민영이 처음이었다.

조회수가 빛의 속도로 올라가자 조회수에 목을 매고 있던 외국인 너튜버들이 하나둘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누구는 조민영처럼 편집본을 보기도 했고 누구는 1화부터 차근차근 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미리 스포일러 당했던 한국인들과는 달리 외국인들은 화려하게 등장한(일부는 후광을 보기도 했다) 성녕대군이 왜 죽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어째서 죽어? 이 꼬마가 왕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딱 봐도 왕이 될 느낌인데?

=꼬마 형이 세종대왕임. 게임에도 나오는.

=아, 그렇군.

=그리고 꼬마가 진 나트라야 ;)

=????!

그 이후, ‘feat. 진 나트라’라는 제목으로 리액션 영상이 만들어지면서 ‘내의원’에 관심을 보이던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 * *

세종 즉위년(1418) 8월 11일. 22살의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화려한 즉위식은 죽은 성녕대군의 모습을 되새기는 충녕대군의 모습에 무거운 분위기였다.

[KBC 내의원, 시청률! 34%!]

[내의원을 끌고 나가야 하는 두 배우! 박도훈, 이지석!]

-몰랐음. 성녕대군의 죽음이 이렇게 영향을 끼칠 줄이야. 2월에 성녕대군 죽고, 6월에 왕세자 되고, 8월에 왕위에 오르고. 파란만장한 1418년이네.

-34%ㅋㅋ 시청률 깡패냐ㅋ

=다른 방송국은 그 시간대 완전히 망했더라.

슬픈 일은 끝나지 않았다.

“상위복!”

원경왕후가 죽고 불과 2년 뒤, 태종이 눈을 감았다. 내시가 왕의 상의를 들고 동쪽 지붕 처마로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 외쳤다. 세종이 허망한 얼굴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위복!”

임금의 머릿속에 그와 다정하게 지냈던 경안공주와 성녕대군의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추억과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상위복!”

세종은 말없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태종이 죽었다는 소식은 허유선의 귀에도 들어갔다. 연구하다 잠시 나온 허유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 너무 깨끗해서 싫었다.

“대군마마. 중전마마와 잘 계시죠? 상왕 전하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왕 전하는 죄를 많이 지어서 마마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길 끝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사내가 보였다. 등에 노인을 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허유선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착한 일을 해야 마마가 계신 곳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좀 더 착한 일을 해야겠습니다.”

“의원 나으리! 의원 나으리!”

[KBC 내의원, 시청률 30%대 유지!]

[벌써 3번째 장례식!]

-와. 성녕대군 죽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원경왕후도 죽고 태종도 죽음.

-장례식 벌써 3번째ㅠ 세종 멘탈 괜찮음?

-성녕-2년 뒤 왕후-2년 뒤 태종…… 2년 뒤 또 누가 죽음?

-허유선 그 와중에 디스ㅋㅋ 태종 죄 많이 지었다고ㅋㅋ천국 못 간대ㅋㅋ

* * *

“안녕하세요!”

서준이 활짝 웃으며 등장하자 열심히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서준을 반겼다. 조연출이 서준을 분장사에게 안내했다. 의자에 앉은 서준이 신이 나 콧노래를 불렀다.

분장사의 붓이 서준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번 촬영이 마지막 촬영인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최민성 피디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역으로 출연해 주지 않겠냐는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뀐 장면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 촬영이 마지막인데 삭제돼서 조금 아쉽긴 했어. 촬영도 흐지부지 끝났고.’

마지막 촬영 때, ‘컷, OK!’라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서준은 대본을 펼쳤다. 다른 역이긴 하지만 어쩐지 최 피디님이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본을 다시 읽던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서준이 왔다는 소식에 분장실에 들른 이지석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

“네!”

“서준인 정말 천생 배우야.”

“이히히히.”

“서준아, 옷 입자.”

“네!”

안다호의 부름에 서준이 얼른 달려갔다. 촬영장을 살펴보던 최민성 피디가 웃으며 흙이 잔뜩 묻은 한복으로 갈아입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조연출이 뒷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근데 괜찮을까요?”

“글쎄. 뭐 막장 소리 듣겠지?”

“알고 계시네요?”

“근데 이게 훨씬 보는 사람들이 더 쉽게 집중할 수 있어. 나도 대본만 봤을 때는 또래를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촬영하면 할수록 성녕대군이 콱 박혀서, 그냥 비슷해서는 안 되겠더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 때문에 배우를 못 정했는데 그냥 본인을 출연시키기로 했어.”

최민성 피디의 말에 조연출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도 바뀐 게 더 마음에 들지만요. 허유선의 심정이 더 이해가 가긴 하죠.”

“그렇지? 그럼 촬영 시작해 볼까!”

“네! 촬영 시작합시다!”

이불 위에 누운 서준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신이 나 촬영장에 들어온 게 무색할 정도로 긴장한 서준의 모습에 이지석이 물었다.

“서준아, 왜 그래? 아깐 엄청 신났잖아?”

“음. 조금 긴장돼서요.”

“서준이가 긴장을 하고 별일이네.”

이불 위에 누운 서준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이지석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조금 주저하듯 입을 열었다. 몸속에 있는 [(선)붉은 슬라임의 핵]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지석이 형. 아픈 연기는 어느 정도로 하는 게 좋을까요?”

아직 서준은 기준을 잡지 못했다. 놀란 김종호의 얼굴과 뜨거운 손을 잡고 걱정하던 이지혜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흠. 이지석은 생각에 잠겼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누구는 잘했다는 연기도 누구의 마음에는 안 들 수도 있거든. 엄청 슬플 때, 엉엉 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소리 없이 우는 사람도 있어. 사람 성격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서 공감하는 연기도 다르지.”

“그렇구나.”

“많은 작품을 찍고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이 정도면 되겠구나, 하고 자신이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

“그럼 경험을 쌓기 전에는요?”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준의 눈이 이지석을 향했다. 이지석은 어쩐지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를 아끼는 종호 형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이요?”

“저번 촬영 때처럼 말이야. 서준이의 연기가 과하면 피디님이 알아서 멈춰주겠지? 장면이 삭제되는 게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보통은 NG가 나지. NG가 나면 피디님이 잘못된 부분을 알려줄 거고 서준이는 그걸 듣고 다시 연기하면 돼.”

“다시…….”

“그렇게 조절해 나가면 돼.”

“그렇구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NG를 낸 적이 거의 없지만 단 한 번, 몇 개월이나 대차게 까여본 적이 있었다.

‘그러네. 8개월 동안 라이언 감독님께 피드백 받았던 적도 있었지. 물론 촬영 중에는 그 정도로 많이 내면 안 되겠지만. NG 몇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서준은 마음이 편해졌다. 두 배우의 대화를 위해 잠시 기다리던 최민성 피디가 웃으며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다른 스태프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레디, 액션!”

[(선)붉은 슬라임의 핵이 발동됩니다.]

서준의 체온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색색 가쁘게 숨을 내뱉고 체온을 조절했다.

‘저번보다 약하게. 약하게.’

이지석이 심각한 얼굴로 서준의 진맥을 살폈다. 서준의 숨이 색-색-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서준의 연기를 똑똑히 기억하는 이지석은 혀를 깨물고 말았다.

“컷, NG!”

최민성 감독의 목소리에 서준은 놀라 눈을 번쩍 떴다. NG. NG라니! 서준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서준은 고개를 돌려 최민성 피디를 바라보았다.

“어,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서준아. 연기는 잘했는데, 이 장면에서는 성녕대군이 아플 때랑 아주 똑같이 연기해야 하거든. 근데 이번엔 좀 약했어.”

“아, 아. 그렇구나.”

최민성 피디의 말에 대본을 떠올린 서준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놀랄까 봐 조절한다는 게 너무 약하게 연기한 모양이었다. 이지석이 서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편하게 해. 편하게. 서준아, 너 연기 엄청 잘해.”

“으. 네. 연기 참 어렵네요.”

에휴.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이 어린 배우가 연기했던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유배에서 돌아온 양홍달과 허유선!]

[KBC 내의원, 몇 부작?]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의원! 과연 결말은?!]

-용두사미만 아니어라!

-그래서 내의원 몇 부작인데?

=24부작. 오늘이 22화니까 다음 주가 마지막.

-와……벌써 끝나?

-기다린 건 2년 같았는데 엄청 빨리 가는구나!

유배지에서 돌아온 어의 양홍달과 허유선은 다시 본래의 직책으로 돌아갔다.

허유선은 여전히 할 일을 마치면 연구를 이어나갔다. 가끔, 아니, 때때로 성녕대군의 옛 처소 주위를 거닐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세종도 허유선도 가슴 한구석이 빈 듯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급보가 전해졌다.

창백한 전령의 얼굴에, 세종은 무언가를 직감했다. 동생이,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전령이 크게, 아주 크게 외쳤다.

“창진이옵니다!”

[내의원 22화! 경기도에서 발생한 창진!]

[전염병 창진을 막아라!]

[세종과 허유선! 이번에는 치료할 수 있을까!?]

-와 씨. 창진이옵니다! 할 때, 소름 돋았다.

-허유선이 막을 각! 이번엔 꼭 치료해라!!

=그래도 성녕대군은 이제 없음ㅠ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내의원이 다시 불타올랐다. 성녕대군의 죽음 뒤 그 죽음을 잊으려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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