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8화
서준의 내의원 마지막 촬영 날.
“벌써 마지막 장면이네.”
이지석과 김종호가 아쉬운 표정으로 촬영장에 들어서는 서준을 반겼다. 그 모습에 서준은 웃으면서 가져온 쿠키를 나누어 주었다.
“맛있겠네.”
“엄마 아빠랑 만들었어요. 이건 안 단 쿠키. 이건 단 쿠키. 이건 엄청 단 쿠키예요. 뭐 드실래요?”
“엄청 단 쿠키가 궁금하긴 한데, 보통 쿠키로 줘.”
이지석이 단 쿠키를 골랐다. 김종호는 안 단 쿠키를 골랐다. 그 이후로도 서준은 촬영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쿠키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은 최민성 피디와 소은진 작가였다.
“엄청 단 쿠키는 없어요.”
“어떤 맛인지 궁금했는데!”
소은진 작가가 안타까운 얼굴로 안 단 쿠키를 베어 물었다. 서준이 웃었다. 다들 궁금하다면서 한입 먹었다가 정말 단 맛에 몸서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오늘로 내의원 촬영은 끝이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최피디와 소작가와 대화하는 서준의 모습에 이지석과 김종호가 미소를 지었다.
“작품도 잘됐고 도훈이도 많이 좋아졌고. 복덩이가 따로 없네.”
“그러게. 형도 드라마 찍으면서 큰 소리 안 낸 게 거의 처음 아니야?”
“애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지.”
“혈압도 높은데 앞으로도 좀 그래 봐.”
“야, 그게 내 맘대로 되면……!”
“서준이 걱정할라.”
이지석의 말에 버럭 화를 내려던 김종호가 마른세수를 했다. 이지석이 낄낄 웃었다.
“나도 그렇지만 형도 어지간히 서준이한테 약하네.”
“서준이한테 안 약한 사람이 어딨어?”
김종호의 말에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촬영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부터 이들이 촬영할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만만의 준비를 끝내고 완벽한 연기할 생각에 신이 난 서준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레디, 액션!”
창진에 걸린 성녕대군의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색색거림이 심해졌다. 태종이 보낸 어의, 양홍달과 그의 제자 허유선이 노력했지만 성녕대군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숨이 가쁘다. 폐가 아팠다.
온몸에 열기가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성녕대군이 힘들게 내뿜는 가느다란 숨에 최민성 감독도 스태프들도 대기하고 있던 배우들도 숨을 죽이고 서준만 바라보았다.
“아, 아바, 마마…….”
자그마한 성녕대군의 목소리가 태종에게 닿은 모양인지, 격리된 성녕대군의 처소에 아들을 위해 달려온 아비와 어미가 나타났다. 신하들의 말림도 무시하고 발진이 생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종아, 종아.”
“어미가 여기 있어요. 성녕.”
언제나 활기차게 웃으며 부부를 기쁘게 하던 아들이 아니었는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그 환한 웃음을 보여줘야지. 태종과 왕후가 눈물을 흘리며 성녕대군을 토닥였다.
어의 양홍달과 허유선은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송구함이 부부에게 닿은 모양인지 태종과 왕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어째서 네가 부모보다 먼저 떠나려 하느냐.”
“이건 아니에요. 성녕. 일어나 보세요. 어미가 왔어요.”
희미하게 들리는 부모의 목소리에 착한 성녕대군의 입꼬리가 사르르 올라갔다.
[(선)푸른 슬라임의 핵이 발동됩니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성녕대군의 배가 천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뜨거웠던 체온이 점점 식어갔다.
[(악)스켈레톤 생쥐의 냄새가 발동됩니다.]
서준은 준비했던 능력을 전부 발동시켰다. 불쾌한 죽음의 냄새가 서준에게서 흘러나왔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소수의 배우와 스태프들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그 소수 중 하나인 태종, 김종호가 낮아지는 체온에 서준을 안아 들었다. 불쾌한 기운이 김종호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서준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종아. 아니 된다. 종아!”
김종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준을 안았다. 죽음의 냄새가 김종호의 판단력을 흐렸다. 아니, 왜 자꾸 체온이 떨어지지? 연기 잘하는 아이인 줄은 알지만 서준의 체온은 너무 빨리 떨어졌다. 피가 통하도록 큰 손으로 주물러보지만 통하지 않았다.
문득, 김종호는 첫 방송 회식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메소드.
메소드 연기. 그때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종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메소드 연기 탓인가? 너무 몰입해서 정말로 자신이 병에 걸린 성녕대군이라는 생각에 빠진 건 아닐까. 김종호의 손이 떨리고 얼굴에 핏기가 싸악 가셨다.
일정 이하로 체온이 떨어지면 큰일이었다. 김종호는 서준을 안아 들며 자신의 체온으로 데우려고 애썼다.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누가! 누구 없느냐!?”
김종호의 눈가가 벌게졌다. 그 사나운 인상에 카메라로 보고 있던 최민성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그와 함께 연기하던 배우들이 몸을 움찔했다.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에 김종호의 표정이 불안감을 더했다.
‘어라? 뭐지? 애드리브인가?’
서준은 쿵쿵, 급하게 뛰는 김종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덜덜 떨리는 종호 삼촌의 손이 느껴졌다.
고르고 고른 능력들을 사용해 현실감 100%의 죽은 척을 하고 있던 서준이 어라? 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가는 상황에 서준의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건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생긴 경험보다, 더한 엄청난 위급상황을 알리는 본능이었다.
언젠가 마족이었다가 하급 천족으로 다시 태어난 서준을 알아차린 상급 천사와 눈이 마주쳤던 그 날보다 더한 위급상황이었다.
서준은 지금 김종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자신의 연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서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러니까, 종호 삼촌은 내가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위급상황이면 누구든 상식적으로 구급차를 부를 테고 구급차를 부르면 뉴스에 뜨고. 그러면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걱정할 게 분명했다.
엄청 건강한 서준과는 상관없이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그건 안 되지!’
0.01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서준은 얼른 능력을 멈추고 감겨 있던 두 눈을 부릅떴다.
드디어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김종호가, 지금까지 이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어디 있냐 싶을 정도로 크게 소리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구ㄱ……!”
김종호의 품 안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킨 서준이 한 손으로는 김종호의 입을 막고 나머지 손으로 김종호의 입을 막은 손의 손목을 매만졌다.
손목의 사과꽃 무늬가 빛나자 서준은 지금까지 이렇게 온 힘을 다해 능력을 쓴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선기를 뿜어대며 능력을 사용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선기를 불어넣었다.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선)엘프의 기초호흡이 발동됩니다!!]
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선기가 촬영장을 뒤덮었다. 중하급 능력에 기초호흡까지 더해졌으니 최하급 능력에서 흘러나온 죽음의 냄새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의 반 이상은 침착해질 것이 틀림없었다.
김종호의 다급한 표정에 촬영장으로 뛰어들어오려던 최민성 피디와 안다호, [(악)스켈레톤 생쥐의 냄새]가 통하질 않아, 바닥에 엎드려 ‘이야, 종호 형 연기 잘하네’ 하고 태평하게 감탄하고 있던 이지석. 사고인가? 걱정하던 스태프들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도 아직 큰 고비는 남아 있었다. 서준의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김종호와 이지혜였다.
지혜 이모는 능력이 통한 듯 당황하던 얼굴에 편안함을 되찾았다. 그럼 종호 삼촌은? 서준이 조심스레 아직도 김종호의 입을 막고 있던 자신의 손을 치웠다.
“후우.”
김종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먹구름이 낀 듯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한순간 밝아졌다. 쿵쾅쿵쾅 뛰던 심장이 안정을 찾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이 며칠 전 일처럼 느껴졌다.
멀쩡한 모습의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다시 한번 숨을 내쉰 김종호가 자신을 쳐다보는 서준을 껴안고 등을 토닥토닥거렸다.
그런 종호 삼촌 반응에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에 힘을 풀었다.
* * *
“서준이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 죽은 줄 알았던 거야? 종호 형도 참!”
“그러게.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따뜻한 선기의 영향으로 보통 때보다 너그러워진 김종호가 이지석의 능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촬영이 모두 꿈인가 싶었다.
온몸으로 뿜어낸 선기가 너무 효과가 좋았던 모양인지 다들 조금 전의 촬영 때의 불안감은 모두 잊고 나른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서준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는데. 그냥, 좀 더 완벽한 연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서준이가 죄송할게 뭐 있어. 우리가 너무 몰입해서 그렇지.”
“서준이는 열심히 한 것뿐이니까.”
그래도,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 멋진 연기를 기다릴 카메라 너머 시청자들만 생각했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함께 연기하는 배우의 체온이 식고 몸이 뻣뻣해진다면, 안 놀랄 배우가 없을 터였다.
‘게다가 마기까지 사용했으니까.’
오늘은 반성문 쓰고 자야겠다. 서준은 정말 미안하고 죄송해서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다짐했다.
서준의 능력이 통한 사람들은 안정을 찾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촬영 때의 김종호는 엄청 다급해 보였는데, 지금은 느긋한 얼굴이었다.
“그게 연기였나?”
“나 그거 보고 소름 돋았어.”
“근데 아까 서준이 진짜, 큰일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
어정쩡한 촬영장의 분위기에 최민성 피디는 오늘 촬영을 끝내기로 했다.
최 피디는 김종호와 이지혜 사이에 앉아 쓰다듬당하고 있는 서준을 보았다.
그동안 촬영을 하면서 스태프들은 내적으로 서준과 많은 친분을 쌓았다.
활기차게 노는 성녕대군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성녕대군을 뿌듯해했다.
아마 편집을 하고 방송을 내보내면 대중의 반응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한마디로, 여기 있는 스태프들의 반응이 드라마 ‘내의원’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라는 소리였다.
띄엄띄엄 여러 날을 걸쳐서 촬영하는 성녕대군을 본 스태프들도, 촬영인 걸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다들 서준을 걱정했다.
완벽하게 편집된 방송을 보며 힐링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스태프들보다 더 마음을 쓸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에 최민성 피디는 고민에 빠졌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모두 촬영장을 떠나고 서준은 안다호와 함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어째서!?”
얼마나 오래 살았건, 얼마나 많은 전생을 겪었건 병원은 싫었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은 서준은 점점 가까워지는 병원에 당황했다.
“이번 촬영 중에 아픈 장면이 좀 있잖아. 촬영 다 끝나면 건강검진 받으려고 했는데 오늘 일찍 끝나서 시간도 남겠다, 건강검진 받자.”
“나 엄청 건강한데요! 밥도 잘 먹고! 아프지도 않고!”
“사장님이 접수했으니까 병원에 계실 거야. 끝나면 맛있는 거 먹자!”
“다호 형?! 나 건강하다니까요?!”
“건강검진 자료 들고 가면 다들 안심하겠지?”
“……네.”
열심히 건강함을 어필하던 서준은 안다호의 마지막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다들 걱정하는데 받아야지. 그래도 병원은 싫은데. 새하얗고 커다란 건물이 서준의 쪽으로 점점 다가왔다.
검진 결과는 금세 나왔다. 서준은 김종호와 이지혜가 촬영하는 날, 촬영장소에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고 등장했다.
마치,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선비처럼 의기양양하게 두 배우에게 결과지를 내밀었다.
“저 이서준! 완전! 건강합니다!”
김종호와 이지혜가 서준의 건강 검진 결과지를 들고 분석하듯 빠져들었다. 여러 번 건강검진을 받아본 두 사람은 익숙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지석과 박도훈도 어떻게든 보기 위해 열심히 기웃거렸다.
“종호 형! 나도 보여줘요!”
“삼촌! 저도!”
아니,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서준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결과지에 매달려 있는 네 사람을 보았다.
저 결과지는 사본으로 원본은 집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게 키울 수 있나? 비법이 있나?’라는 물음을 가장한 칭찬을, 찬이 삼촌에게서 전해 들은 엄마 아빠가 활짝 웃으면서 잘 보관해 두었다.
서준의 생각에 의사 선생님은 진심으로 물어본 것 같았다.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논문이라도 써 내려갈 듯 서준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한참을 건강검진 결과지에 빠져 있던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하군.”
“그렇다니까요!”
“그래도 다음엔 좀 약하게 부탁하마.”
“……네.”
죽은 척 한 번 했다가 촬영장이 뒤집어졌다. 다음 촬영 때는 다른 건 하지 말고 체온만 약간 낮춰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장면 바꿨습니다.”
날벼락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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