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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7화 (8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7화

지난주, 내의원 4화는 사냥을 즐기는 양녕대군과 그런 양녕대군을 탐탁지 않게 보는 허유선이 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예고편이 떴다.

엎드려 있는 허유선의 등이 화면에 비쳤다.

[고개를 드세요.]

둥- 둥- 북이 울렸다.

[다음 주 수요일 내의원 5화, 성녕대군 등장!]

[배우 이서준, 첫 드라마 등장!]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고개를 드세요’만 몇 번을 들었는지.

-금요일 되자마자 얼른 수요일이 됐으면 하는 건 또 처음이네.

“이제 시작한다! 서준아!”

“응.”

평소, 서준은 일찍 자고 내의원은 VOD나 재방송으로 보지만 오늘은 특별히 엄마 아빠와 함께 보기로 했다.

가족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KBC 채널을 틀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스마트폰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자동차 광고와 냉장고 광고가 나왔다.

“드디어 서준이가 드라마에 나오네.”

“엄마는 하도 안 보여줘서 안 나오는 줄 알았어.”

“아하하하.”

서은혜의 농담에 이민준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농담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왔다.

이름만 홍보로 쓴 게 아니냐는 둥, 찍긴 했냐는 둥, 얼마나 잘 찍었길래 이렇게 안 나오냐고 다들 이를 갈고 있었다.

“아, 시작한다.”

이민준의 말에 가족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둥-둥- 북소리가 울리고 OST가 흘러나왔다.

“허 의관, 오늘은 성녕대군의 처소로 가게.”

“예.”

충녕, 효령, 양녕대군을 모두 겪어본 허유선은 마지막으로 성녕대군의 처소에 가게 되었다. 성녕대군의 처소에서 삼 일 머물면 다시 충녕대군의 처소로 출근해야 했다.

이리저리 역모 시도, 그러니까 허 대감을 역모로 엮을 만한 일을 궁리하고 있던 허유선의 시선에 대군들이 들어왔다.

왕보다 이쪽이 손쓰기 더 쉽지 않을까. 경안공주의 죽음으로 자식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임금이라면 이쪽이 더 확실한 방법일지도 몰랐다.

허유선이 발걸음을 옮겼다. 비슷비슷한 궁궐이었지만 머무는 주인에 따라 분위기는 많이 차이가 났다.

먹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던 충녕대군의 처소, 향냄새가 나는 것 같던 효령대군의 처소,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것 같던 양녕대군의 처소.

그리고 아기자기한 성녕대군의 처소.

아직 어린 성녕대군을 보살피는 나이 많은 내관과 상궁이 허유선을 반겼다. 모시는 분의 건강을 책임질 사람이었다.

“대군마마, 의관이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라.”

성녕대군의 목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른 대사! 근데 짧아!

문이 열렸다. 허유선이 고개를 숙이고 성녕대군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카메라가 엎드린 허유선을 비추었다.

-나온다! 나온다!

-진짜 나오겠지!?!

“고개를 드세요.”

상냥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유선의 머리가 움직였다. 그때,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 노란 바닥이 비쳤다. 눈꺼풀이 감겼다 떠지는 듯,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그리고 천천히 화면이 움직였다.

둥-

북소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때렸다.

둥-

카메라가 천천히 올라갔다. 노란 바닥과 나무 탁자가 화면에 들어왔다.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허유선의 시선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 탁자와 나무 탁자 위의 덮인 책이 보였다. 책 위에 가지런히 올린 자그마한 두 손도 보였다.

둥둥- 둥둥-!

북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둥둥둥-둥둥둥-!

모두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서준의 얼굴도 나오지 않았건만 어쩐지 가슴이 쿵쿵 뛰었다.

공기의 흐름이 달랐다. 텔레비전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았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화면만 바라보았다.

엎드려 고개를 드는 허유선처럼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고개를 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그 순간 빠르게 들려오던 북소리가 딱, 멈추었다.

조용한 침묵 속에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듯, 화면 위로 성녕대군의 얼굴이 나타났다.

쿵!

심장이 내려앉듯 커다란 북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의젓한 아이가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와.”

순간 서은혜와 이민준은 정말로 뜬금없이, 성녕대군의 등 뒤에서 빛이 비치는 걸 본 것 같았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의 능력에 당한 사람들은 빛으로 표현된 위엄을 느꼈다.

-후광? 방금 이서준 뒤에 빛 나오지 않았음?

=?? 그런 거 못 봤는데?

=나는 본 듯!

“내의원 의관, 허유선이라 하옵니다.”

그렇게 잠시, 화면은 서로를 바라보는 성녕대군과 허유선을 비추었다.

곧 의젓하게 앉아 있던 성녕대군이 빙긋 웃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 말 타러 가요!”

“……네?”

“아바마마께서 말 타러 가려면 꼭 의관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거든요!”

조금 전 의젓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성녕대군은 신나게 방을 나섰다. 의아한 얼굴의 허유선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얼른 뒤를 따랐다.

성녕대군을 돌보는 내관과 상궁들은 익숙하다는 듯 두 사람을 따라갔다.

성녕대군의 귀여운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은 웃으며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말 탔어?”

“응! 근데 승마장이랑은 달라서, 촬영장면밖에 못 찍었어.”

“하긴. 승마장에는 말 잡아주고 도와줄 선생님들이 많지만, 촬영장은 힘들지.”

“그래도 오랜만에 말 타서 재미있어. 다들 엄청 잘 탄다고 놀랐어!”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잘 탄다. 잘 탄다.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본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서준이 능숙하게 타는 모습에 다들 놀란 게 분명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 서준이 혼자 타게 두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민준이 물었다.

“이번 주에 말 타러 갈까?”

“응!”

성녕대군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뭐든지 열심히 했다. 열심히 말을 타고, 놀고, 공부했다. 지나가던 관인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다른 대군의 거처에 놀러 가기도 했다.

허유선은 세 대군과 함께 있을 때보다 거의 배는 돌아다닌 것 같았다. 임금과 왕후도 사흘 동안 엄청 만난 것 같았다.

하하 호호 웃으며 오늘은 이걸 했다, 저걸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통의 여염집과 다르지 않았다.

보통의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허유선에게는 생소한 모습이긴 했다. 길고 긴 삼일 근무가 끝나고 지친 얼굴로 돌아온 제자에 스승 양홍달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네.”

“……성녕대군께서는 참으로 활발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대군마마의 건강을 염려하시는 전하의 명 때문에 못해본 것이 많으셔서 그러시네.”

오랜 세월 어의에 있었던 양홍달이 성녕대군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허유선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게 귀한 자식이면 더 화를 내지 않을까? 허유선의 생각은 어디서 시작을 하든 항상 허대감을 향한 복수로 끝났다.

[내의원 5화, 시청률 28%!]

[배우 이서준, 등장! 없던 후광도 만들어내는 아우라!]

[하지만 역시 어린 대군. 아이다운 모습에 엄빠 미소!]

-첫 등장, 내가 조선의 왕자요! 였는데ㅋ

-내 뇌가 없던 후광도 만들어 낼 정도였는데ㅋ

-너무 귀여움ㅋㅋ우리 말 타러 가요! 허유선 표정=내 표정

-이게 애답기는 함.

-허유선은 기승전독살인 듯. 귀여운 성녕대군이랑 만나고 하는 생각이 독살이라니.

KBC 퓨전 사극, 내의원은 내내 화제가 되었다.

1화부터 지금까지 화제가 되지 않는 화가 없었다. 특히, 모두 화기애애한 조선 왕실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성녕대군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충녕대군과 활을 쏘고 말을 타고, 양녕대군과 함께 저잣거리에 나가 놀고, 효령대군과 절에 갔다. 태종과 왕후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 옆에는 항상 허유선이 있었다.

시청자들은 점점 마음을 여는 허유선의 변화도 달가웠다.

어쩌다 궁 안에서 허 대감과 그의 아들을 만나면 아주 살벌한 얼굴로 으르렁거리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고에 일에, 한참을 시달리다가 성녕대군을 만나면 얼굴이 풀어지는 허유선의 모습에 다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잘못하면 허 대감에 대한 복수의 수단이 성녕대군이 될 뻔했는데, 활발한 성녕대군을 따라다니며 하나둘 챙기다 보니 정이 든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났다.

-허유선…… 상사에게 시달리는 나 같음. 나도 성녕대군같이 힐링해 줄 사람 있었으면

-왕족들은 하하 호호 여유로운데 밑에 사람들은 아주 열심히 일하는구나. 여기나 저기나 별 차이가 없네.

-성녕대군 보면서 힐링하고 가요ㅠ

-허유선 마음 돌려서 다행!

오늘도 궁궐 가까운 산으로 놀러 나왔다. 산의 풍경을 즐기며 성녕대군과 허유선은 산을 올랐다.

성녕대군과 호위들은 멀쩡한 모습이었는데, 허유선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

“헉. 헉. 마, 마마. 좀 천천히 가십시오.”

“아하하하. 운동 좀 해야겠어요. 허 의관은.”

“마마는 진짜 오래 사실 겁니다.”

“당연하지요. 오래오래 살아서 허 의관이 혼인하는 걸 봐야죠. 아이가 태어나면 허 의관 아이와 내 아이가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밝게 웃으며 미래를 말하는 성녕대군.

둥- 둥- 무거운 북소리가 울렸다.

숨을 고른 허유선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순간만큼은 허 대감도 그의 부인도, 어머니도. 모두 잊어버렸다.

“하하. 그럼 제 아이도 의관이 되게 가르쳐야겠습니다.”

허유선은 한 번도 꿈꿔 본 적이 없는 미래를 그렸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미래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허 대감에 대한 분노도, 목숨을 걸었던 복수도 다 잊고 이 사람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아주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궁궐을 바라보고 있는 성녕대군의 작은 등이 듬직했다.

허유선의 시선이 성녕대군 앞에 보이는 궁궐로 향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솔개처럼 허유선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으. 춥네요. 허 의관, 얼른 내려가죠.”

“예. 대군마마.”

날씨가 쌀쌀해지고 겨울이 가까워졌다.

[KBC 퓨전 사극, 내의원 시청률 고공행진!]

[복수를 포기한 허유선? 앞으로의 행보는?]

[성녕대군의 그 날, 추웠던 2월!]

-ㅠㅠ 저렇게 밝게 말하는데, 안 죽으면 안 돼?ㅠ

-그동안 드라마 보면서 정 들었나 봐ㅠ 처음에는 마냥 귀여웠는데 이제 성녕대군이 웃으면서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ㅠ 제발 좀 허 의관이 병 고쳤으면ㅠ

-허유선……이제야 행복한데.

-아…… 진짜…… 마지막에 춥다는 대사가 걸린다.

-근데 마지막에 허유선 궁궐 볼 때 싸하지 않음?

=??? 그런가?

* * *

서준은 바닥에 책들을 펼쳤다. 성녕대군을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서 열심히 능력을 고르는 중이었다.

“죽음.”

서준은 생의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좋게 말해서 생의 도서관이지, 이만큼의 죽음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죽어야 했던 몬스터들. 약해서 죽은 몬스터들. 그리고 수명을 다 채우고 잠이 들듯 죽은 몬스터들.

여기 있는 책들의 수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열려 있는 도서관의 책도 많았는데, 아직 닫혀 있는 도서관도 많았다. 서준은 이만큼의 죽음을 겪었다.

“죽음의 도서관은 조금 으시시한데…….”

삶과 죽음, 계속되는 생에 대한 고민은 옛날옛적에 끝낸, 서준은 태평하게 말하며 능력을 골랐다.

“사람이 죽을 때는 숨이 멎고 체온이 떨어지고 심장이 멈추지? 심장을 멈출 수는 있지만 그건 깨어날 때 조금 힘들겠지. 그럼 이걸로 하자!”

[(선)푸른 슬라임의 핵-하급]

푸른 슬라임의 핵입니다.

얼음을 공격수단으로 사용하는 슬라임의 핵은 차갑습니다.

핵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얼음(낮은 온도)에 대한 저항력이 생깁니다.

얼음(온도) 세기의 조절이 가능합니다.

[(선)푸른 슬라임의 핵-하급]을 고른 서준은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마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책더미가 있었다.

“죽음이라면 역시 마기지!”

완벽한 연기를 위해 서준은 검은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악의 도서관의 책은 전부 부작용이 만만치 않으니, 모두 최하급의 능력 중에서 한 생을 골라냈다.

[(악)스켈레톤 생쥐의 냄새-최하급]

초보 흑마법사가 처음으로 만든 스켈레톤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마법으로 죽음의 냄새가 새어 나옵니다.

스켈레톤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숨길 수 없는 죽음의 냄새 때문에 신관에게 들켜 소멸해 버린 생이었다.

“일찍 죽은 데다가 신관한테 정화당해서 부작용도 없고. 딱 좋네.”

서준은 이히히 웃으며 두 가지 능력을 몸에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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