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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85화 (8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5화

내의원의 방영 날이 가까워지자 KBC 채널에서 홍보를 시작했다.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열심히 홍보했다.

홍보하면 하는 대로 대중의 반응이 뜨거우니 그 어느 때보다도 보람이 있었다.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는 브라운블랙의 박서진이 내의원의 OST를 불렀다.

둥-둥- 무거운 북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새까만 먹이 잔뜩 묻은 붓이 화면에 ‘내의원’이라고 써 내려갔다.

냉정한 얼굴로 진료하는 이지석을 시작으로 무시무시한 얼굴로 검을 빼 든 태종, 술을 마시는 양녕, 부처에게 기도를 드리는 효령과 원경왕후, 그리고 책을 읽는 충녕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끝났다. 방송 날짜를 알리고 바로 다음 광고가 흘러나왔다.

-?? 성녕은요?

-저기요! 누구 하나 빼먹은 거 같은데요!

-예고편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잘라버리네?!

-다른 홍보 영상에도 이서준이 없어!

* * *

“다호 형. 오늘이 마지막이죠?”

“그래.”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촬영이 방송 나가기 전 마지막 촬영이었다. 안다호는 서준의 스케줄을 외우고 있음에도 휴대폰을 꺼내 다시 확인했다.

“월요일에 제작발표회가 있고 수요일, 목요일 10시 방송이야. 푹 쉬고 그다음 주부터 다시 촬영 시작이야.”

“드디어 방송하네요!”

“그러게. 다들 울면서 기다리고 있어.”

“아하하하.”

서준도 팬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너무 일찍 홍보해서 2월부터 4월까지 무려 2달을 기다렸다고, 홍보 영상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우는 팬들이 많았다. 그래도 간간이 올라오는 서준의 사진이 위로가 되었다.

“종아! 촬영 시작한다!”

“네!”

내의원 촬영 동안 서준은 충녕대군과 함께 촬영하거나, 태종, 왕후와 함께 촬영하는 장면이 많았다. 주인공인 이지석이야 항상 붙어 다녔다.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김종호는 서준을 성녕대군의 이름인 ‘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준이 김종호에게 웃으며 말했다.

“종아라고 좀 세게 부르면 강아지 이름 같지 않아요?”

“쫑?”

“네.”

“그럼 앞으로 쫑아라고 불러 줄까?”

“아뇨!?”

기겁하는 서준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을 촬영을 보러온 박도훈도 미소를 지었다.

유쾌하게 웃던 최민성 피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방송 전 마지막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멋지게 촬영하고, 푹 쉰 다음에 다시 달려봅시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준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의 목소리에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서준도 촬영장소로 향했다. 촬영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가 서준의 얼굴에 조금 물방울을 뿌려주었다.

“이거 가지고 있다가 마른다 싶으면 조금 뿌려요.”

스태프가 건네준 작은 분무기를 들고 안으로 향했다. 촬영장소는 성녕대군의 처소였다.

서준은 방에 깔린 푹신푹신한 이부자리에 눕고 따뜻한 이불을 덮었다. 분무기는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다 숨겨두고 안다호가 준 손거울로 얼굴 위에 물방울이 잘 있나 살펴보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준비됐어요?”

“네!”

“예.”

조연출의 말에 서준과 이지석이 대답했다. 카메라들을 살펴본 최민성 피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레디, 액션!”

성녕대군이 고뿔에 걸렸다는 소식에 태종과 왕후가 성녕대군의 처소에 들렀다. 의관 허유선은 거센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태종과 왕후를 피해 구석에 섰다.

이부자리에 누워 색색거리고 있던 성녕대군이 두 사람을 반겼다. 안색이 나쁜 얼굴로 애써 웃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태종과 왕후가 얼른 성녕대군의 옆에 앉았다.

“성녕대군. 어미가 왔습니다.”

“성녕. 많이 아프더냐?”

“괜찮…… 사옵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의젓한 아들이 안쓰러워 태종과 왕후는 조그마한 성녕대군의 손을 아무 말 없이 매만지기만 했다. 열이 어찌나 났는지 손도 뜨거웠고 얼굴도 시뻘겠다.

김종호와 이지혜는 뜨거운 서준의 손에 진짜 아픈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촬영이 계속됐기에 연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이거 진짜 아픈 거 아닌가? 할 때, 최민성 피디가 외쳤다.

“컷, OK!”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서준의 안색이 돌아왔다. 축 처졌던 분위기가 한순간 피어나는 꽃처럼 생생해졌다. 그 변화를 목격한 김종호와 이지혜는 할 말을 잃었다.

잡고 있는 손의 체온이 신기할 정도로 적당히 따뜻했다. 대단한 연기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놀라웠다.

“서준아. 너 체온으로도 연기하니?”

제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지만, 이지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질문에 서준이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선)붉은 슬라임의 핵-하급]

붉은 슬라임의 핵입니다.

불을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슬라임의 핵은 뜨겁습니다.

핵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불(높은 온도)에 대한 저항력이 생깁니다.

불(온도) 세기의 조절이 가능합니다.

난방 용품으로도 사용하던 붉은 슬라임의 핵이었다. 하급이라서 몸 밖으로 불꽃을 내뿜을 수는 없지만, 체온 조절 정도는 가능했다. 게다가 저항력이 있어서 몸에 이상도 없고.

이지혜의 질문에 서준은 그냥 모른 척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송 전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내의원의 배우들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김종호는 박도훈을 불렀다. 촬영 중일 때는 항상 대본을 한 손에 쥐고 있던 박도훈이 오늘은 가방에 대본을 넣고 식당에 왔다.

제법 여유를 가지게 된 박도훈의 모습에 김종호와 이지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도훈이 형!”

“안녕, 서준아. 촬영 잘 끝났어?”

“네. 형은 인터뷰 잘했어요?”

서준이 웃으며 박도훈에게 손을 흔들자 박도훈이 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박도훈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어린 사자 문양이 눈에 띄었다. 박도훈이 서준의 무리에 속해 있다는 표시였다.

‘아직 무리에 속해 있는 걸 보면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서준은 내의원의 모든 촬영이 끝나면 박도훈이 자신감을 어느 정도 되찾고 무리를 떠날 거라고 예감했다. 무리의 일원이 떠날 적절한 때를 아는 것도 어린 사자왕의 감인 듯했다.

잠시 후 삼계탕이 나왔다. 매니저들은 같은 방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뜨끈한 삼계탕을 먹으며 이지혜와 김종호에게서 서준의 체온에 관해 이야기를 듣던 이지석이 말했다.

“꾀병 부리기 딱 좋겠네.”

배우들과 매니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열심히 뼈와 살을 분리하고 있던 서준도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 꾀병 같은 거 안 부려요.”

“그 나이 때는 학교 가기 싫어서 한두 번쯤 꾀병도 부리고 해야지.”

“엄마 아빠가 깜짝 놀랄 걸요. 저 지금까지 아파서 병원 간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뭐?”

배우들과 뒤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던 매니저들이 놀라 서준을 보았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을 알고 난 후부터 아프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게 이해가 갔다.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다 능력 덕분이었다.

아기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열병도, 가벼운 감기도 걸린 적이 없었다. 그뿐인가,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놀다가 넘어진 일도 없었고 무언가에 베이거나 자잘한 상처가 난 적도 없었다.

“너무 건강해서 괜찮은가, 하고 건강검진 받으러 간 적이랑 예방접종 받으러 간 적은 있지만, 아파서 간 적은 없어요.”

“진짜?”

“네. 그래서 꾀병 부리면 엄마 아빠가 엄청 놀랄 걸요.”

놀라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아기 때부터 평범하게 아파서 평범하게 병원에 다녔으면 모를까, 지금까지 아주 건강했던 서준이 아프다고 하면 난리가 날 터였다.

“그러니까 꾀병은 안 부려요. 엄마 아빠가 걱정하니까.”

“이야. 서준이 효자네.”

삼계탕을 먹으면서 네 배우와 서준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다섯 명의 배우들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역시 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소드 연기라. 어쩐지 서준이랑 연기할 때는 몰입하기가 쉬웠어. 누구 하나가 그렇게 몰입하면 더 배역에 집중하기 편하긴 하지.”

“형도 그랬지? 나도 그래서 서준이랑 더 연기하고 싶었어. 이번에도 진짜 대군 같더라. 난 일개 의관이고.”

서준과 함께 촬영하면서 이지석은 허유선 의관의 연기에 좀 더 쉽게 몰입하게 되었다, 서준이 없는 촬영에서도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김종호도 이지혜도 촬영에 들어가면 활짝 웃는 성녕대군이 꼭 아들 같았다. 박도훈도 능력 때문에 좀 미묘하긴 하지만 서준을 엄청 의지가 되는 동생으로 느꼈다.

“아, 체온이 올라간 것도 메소드 연기 때문인가?”

이지혜의 말에 다들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지금부터 KBC 수목드라마, 내의원의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주신 관계자분들과 기자분들, 그리고 인터넷 생방송으로 제작발표회를 시청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MC의 말에 인터넷으로 보던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무대 뒤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스태프들이 골라낸 댓글들이 나타났다.

-기다렸다! 제작발표회! 기다린다! 이번 주 수목!

-2달이 2년 같았어ㅠ

“그럼 2달을 2년 같이, 모두가 기다리던 KBC 수목 드라마, 내의원의 피디님과 배우분들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MC의 말에 무대 옆문이 열리고 최민성 피디가 나타났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기자들이 셔터를 눌러댔다. 배우 한 명 한 명 나타날 때마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댓글들도 수없이 올라왔다. 욕설, 비난, 악플을 골라내면서도 재치 있는 댓글을 찾기 위해 스태프들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럼 먼저 맡으신 역의 소개를 들어볼까요?”

제일 먼저 주인공 허유선 역을 맡은 이지석이 마이크를 쥐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내의원의 주인공, 허유선 역을 맡은 이지석입니다. 허유선은 양반가의 서자로 어머니까지 일찍 죽어 쓸쓸하게 살아온 캐릭터입니다. 오직 성공을 위해 의원이 되었고, 의원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어의가 되기 위해 내의원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겠지!

-주인공이라면 고난, 시련! 필수!

무대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 나타난 댓글을 읽은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웃자 댓글이 폭발했다.

-서준이! 귀여워!

-내 댓글에 웃었어!

“네. 시청자분들의 말씀대로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겠죠. 앞으로 고난과 시련을 헤쳐나갈 허유선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이지석이 자리에 앉고 마이크를 서준에게 넘겨주었다. 많은 기자의 모습에도 겁먹지 않고 의젓한 모습에 다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배우들 단체 엄빠 미소ㅋㅋ

-우리도 그러고 있어.

“안녕하세요. 성녕대군 역을 맡은 이서준입니다.”

-성녕대군ㅠㅠ

-대군마마ㅠㅠ

“성녕대군은 다정한 부모님들과 멋진 형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주 행복한 캐릭터입니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가족들도 엄청 사랑하는 캐릭터입니다.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합니다.”

서준이 자리에 앉고 태종, 김종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유쾌한 댓글들이 올라왔다.

-그렇게 역모를 일으키더니, 드디어 왕이 됐네요!

-감축드리옵니다! 영의정! 아니, 저언하!

-피바람 몰아치는 태종이라니 정말로 잘 어울리네요!

“크흠. 태종 역을 맡은 김종호입니다. 네. 지금까지 일으킨 역모가 몇 개인데 이제야 겨우 성공했습니다.”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김종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의원에서의 태종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막둥이 아들을 엄청 좋아하고 자식들이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배우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최민성 피디가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내의원의 피디, 최민성입니다. 드라마, 내의원은 정치, 역모 같은 일보다는 왕족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과나 식사, 휴식 같은 일상생활을 많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의관 허유선의 시선을 통해 태종의 삶과 아비의 삶. 왕족의 삶과 사람의 삶.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

죽음. 그 단어에 모두 2달 동안 실컷 보았던 기사를 떠올렸다. 왕족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최민성 피디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인지 열심히 올라오던 댓글도 잠시 멈추었다.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싸움이나 전쟁 같은 화려한 장면은 없습니다만, 시청자분들의 마음속 깊이 남는, 그런 드라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민성 피디의 말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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