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84화 (8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84화

오늘은 성녕대군과 충녕대군이 활을 쏘며 노는 장면을 찍을 차례였다.

두 대군마마가 다치지 않을까, 다치면 얼른 치료하기 위해 의관 허유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트장이 준비되길 기다리며 박도훈과 서준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세트장에서만 촬영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많이 풀려 햇볕이 적당히 따뜻했다. 서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형. 이거 먹을래요?”

서준은 박도훈에게 자신의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주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만든 초콜릿이었다. 조금 어설프게 포장된 초콜릿에 박도훈이 손을 뻗었다.

“고마워.”

“헤헤.”

서준도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 박도훈도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박도훈의 경계가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아니, 경계라기보다는 여유가 생긴 걸지도.’

서준이 힐긋 박도훈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대본만 보느라 주위는 신경 쓰지도 못했는데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잠깐이지만 숨을 돌릴 시간을 가지고는 했다.

그동안 도훈이 형의 촬영을 지켜보았는데 형은 완벽주의자인 것 같았다. 눈썹 하나까지 계산하는 에반 블록 정도는 아니었지만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더 중요해.’

에반 블록은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이 계산한 연기가 완벽할 거라는 자신감. 연기를 마친 후 모니터를 할 때도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을지언정, 자신의 연기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틀린 게 아닌가, 싶지만 좀 다른 거란다. 열심히 설명하는 에반 블록에 서준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았다.

그새 박도훈의 짧았던 여유가 사라졌다. 박도훈이 대본을 넘겼다. 에반 블록의 대본처럼 여러 가지 행동 지시문으로 대본이 새까맸다. 덕지덕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고 여러 색의 볼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박도훈은 초조한 듯 오늘 촬영할 장면의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박도훈은 자신감이 부족했다. 멋진 연기를 하고서도 인정하지 못했다.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도 ‘틀린 부분’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고쳐 연기했다. 다시 촬영한 장면은 좋았다.

‘에반이랑 같은 과정이랑 같은 결과인데, 너무 달라.’

박도훈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믿음이 약했다. 자신만만하던 에반 블록과는 달랐다. 항상 초조해하고 대본을 읽고 연기를 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도훈이 형. 형 연기 잘해요.”

“그래?”

라이언 감독님이나 스왈린 애넘, 에반 블록이었다면 멋진 조언과 충고를 해줄지도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준은 박도훈에게 해줄 조언이 생각나질 않았다. 많고 많은 전생은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이런 섬세한 고민을 하기에는 너무 본능으로만 살았다.

‘게다가 조언이라면 종호 삼촌도 지석이 형도 많이 했을 거야.’

그래서 서준은 박도훈을 만날 때마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오늘 촬영은 이런 점이 좋았다, 저런 점이 좋았다, 그렇게 한바탕 칭찬 세례가 쏟아지면 박도훈의 초조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도 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박도훈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역 배우 출신이거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과 달리, 두 배우를 놀라게 하기 위해 조용히 다가오던 이지석은 깜짝 놀라 박도훈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랑 얼굴이 많이 변해서 못 알아보는 사람도 꽤 있어. 자세히 뜯어보면 남아 있기는 해.”

서준이 건넨 초콜릿을 먹은 박도훈이 말을 이었다.

“어릴 때, 정우라는 역의 아역을 맡았거든. 그것도 사극이었어.”

“아. 알아요. 그거. 봤어요.”

“그때 나만 한 아역 배우가 없었던 탓인지,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못했던 탓인지, 아니면 정우라는 캐릭터가 나랑 엄청 잘 맞았던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엄청 잘했어. 근데 그 이후에 찍은 역할을 내가 잘 못 했어.”

이지석이 두 배우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건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도훈이는 잘했어. 연기 경력도 없는 아이가 이미지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맡아서 연기하는 건 힘들거든. 그런 걸 고려하고 보면 아주 잘했어. ……문제는 그 영화가 폭삭 망했다는 거야.”

영화 제목을 들은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한 영화였다. 이지석의 말에 박도훈은 조용히 웃었다. 그를 위해서 많은 사람이 노력해 주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이 많은, 음, 나쁜 말을 들었어. 나도 그중 하나였지. 그 후로는 강박감이 생겨 버렸어. 좀 더 완벽하게, 좀 더 어울리게. 캐릭터를 자세히 분석하고 손끝 발끝까지 신경 쓰게 된 거야.”

박도훈과 함께 출연했던 김종호는 망가지는 배우를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여러 배우를 만나게 하고 여러 경험을 하게 했다. 이지석도 김종호의 소개로 박도훈과 알게 되었다.

박도훈의 연기는 멋졌다. 서준은 즉위식 때의 근엄하던 세종대왕의 모습을 기억했다.

장례식 때의 세종대왕을 떠올렸다. 최민성 피디와 소은진 작가가 러브콜을 보낼 정도였으니까,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박도훈은 한 손에 대본을 쥐고 여전히 초조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촬영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하지만 그게 과연 멀쩡한 걸까.

서준과 같은 생각을 하는지 이지석의 얼굴도 착잡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연기를 본인만 인정하지 못한다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건 처음이야. 왠지 서준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니까.”

박도훈의 말에 서준은 어떤 책임감을 느꼈다.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형을 챙겨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왤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생각에 빠질 시간도 없이 촬영이 시작되었다.

스태프들이 촬영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서준이 숨을 들이마시고 손가락으로 벽을 두 번 두드렸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이 발동됩니다.]

* * *

내의원의 촬영이 계속될수록 서준의 칭찬이 쏟아졌다. 서준의 칭찬에 자신감을 얻던 것도 잠시 박도훈은 의문이 들었다.

너무 잘한다고 하니 오히려 비딱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잘해서 칭찬하는 건가. 아니면, 날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구경 온 서준이 손을 흔들었다. 박도훈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의원의 촬영이 시작된 지 한 달. 그동안 무뚝뚝한 인사만 하던 도훈이 형이 이제는 손도 흔들어주게 되었다. 새삼 그 차이를 깨달은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활짝 웃는 서준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기를 잘하지 못해도 서준은 칭찬을 해줄까. 사춘기 아이처럼 삐딱선을 탄 박도훈이 촬영에 들어갔다.

“컷! NG!”

최 피디의 목소리에 다들 움직였다. NG 한 번이야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다들 별생각 없이 재촬영을 준비했다. 촬영장에서 나오는 박도훈을 보며 최민성 피디가 그저 지나가듯 말했다.

“음. 도훈 씨. 좀 더 자연스럽게 안 될까요? 조금 전에는 너무 과장된 것 같아서 말이죠.”

“아, 네. 알겠습니다.”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반응에 박도훈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속으로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마른세수를 했다. 부모한테 관심받으려고 사고 치는 아이도 아니고 저지르고 말았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서준의 시선이 따가웠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발은 저절로 서준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서준은 고민했다. 힘든 과거가 있는 배우에게 항상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는가. 근데 조금 전 촬영은 진짜, 정말로, 별로였다. 도훈이 형이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보였다.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서준은 칭찬이냐 아니냐 고민했고, 박도훈은 애가 탔다. 왜지, 왜 열 살밖에 안 된 아이의 말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도훈이 형.”

“응?”

“다음 촬영은 제대로 해요.”

“……알았어. 미안해.”

“저한테 미안할 건 없죠. 고생하시는 건 촬영진분들이니까요. 실수라면 몰라도 조금 전은 형이 의도한 거잖아요.”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서준의 말에 주눅이 든 박도훈은 다시 촬영했고 단번에 OK가 났다. 그리고 촬영진의 회식을 쏘기로 했다.

“두 번째는 잘했어요.”

박도훈이 구워준 삼겹살을 먹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칭찬을 멈추지 않는 서준에 박도훈이 미소를 지었다. 안다호가 잠시 자리를 비워, 서준과 박도훈의 테이블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오늘 일로 서준이 그동안 했던 칭찬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준은 정말로 박도훈이 잘해서 칭찬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박도훈은 삼 주 내내 숨겨왔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서준이 깜짝 놀라 박도훈을 바라보았다.

“그걸 계속 보고 있었어요?”

“응. 보고 배울 점이 없나 해서 최 피디님한테 말해서 받았어. 유출되지 않게 조심하고 있어.”

박도훈이 가방 깊숙한 곳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성녕대군과 허유선이 처음 만나는 장면의 영상이 들어 있었다. 촬영한 지 벌써 삼 주나 지난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왜 저렇게 연기하지 못하는 거지, 하고 자책감만 들었는데 보다 보니까, 마음이 풀어지더라. 의지가 되는 느낌이었어.”

“의지요?”

“응.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그때의 나는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거든. 종호 삼촌의 말도 지석이 형의 말도. 멋지다, 잘했다고 하는데 그게 진심 같지가 않았어. 좀 더 내가 힘내야겠구나, 잘해야겠구나, 그런 생각만 했어.”

서준은 귀를 기울이고 박도훈의 말을 들었다. 서준의 그런 태도가 느껴졌는지 박도훈도 마음 편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그 영상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영상 속 성녕대군에게 의지를 하게 되더라고. 그냥 웃고 있을 뿐인데, 느껴지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고민을 털어놓게 되더라. 신기한 일이지? 서준이가 촬영을 할 때도 때때로 그 느낌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어.”

서준도 그동안 어째서 박도훈에게 이유 모를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지 고민했다. 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왜 도훈이 형만 보면 미약한 책임감을 느끼는지.

‘능력 때문이구나.’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이 영향을 끼친 탓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서준이 의도한 대로 왕자다운 위엄만 느끼는 정도겠지만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는 박도훈에게는 더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두 번도 아니고 완벽주의자인 도훈이 형이라면 엄청 봤겠지.’

“형, 얼마나 자주 봤어요?”

“서준이 연기가 너무 멋져서. 꼭 배우고 싶어서,”

쑥스러운 듯 박도훈이 이유를 먼저 말하고는 대답했다.

“시간이 생기면 봤지.”

“와.”

한마디로 박도훈은 서준이 다스리는 무리의 일원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무리의 일원인 박도훈은 서준에게 기대고, 무리의 왕인 서준은 그런 박도훈을 돌볼 책임이 생긴 것이었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에 이런 효과가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알림창에 쓰여 있지도 않았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서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았다. 어떤 마음이 약한 사람이 서준의 영상을 틈만 나면 보고, 서준의 칭찬을 계속 들을 수 있을까?

“그게 시작이었어.”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동안 박도훈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스스로 다그쳤던 것이었다.

그때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이 박도훈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신을 찾는 것처럼 자신을 압도하는 성녕대군의 위엄에 박도훈은 저도 모르게 성녕대군을 의지하게 되었다.

타이밍 좋게 박도훈을 위해 만날 때마다 쏟아지던 서준의 칭찬도 큰 힘을 발휘했다. 아이에게 부모의 칭찬이 가장 좋듯, 자신이 의지하는 존재의 칭찬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었다.

서준의 칭찬이 삭막하던 박도훈의 마음에 비가 되어주었다. 그 비 덕분에 박도훈은 여유를 찾았고 연기는 더 나아졌다. 나아진 연기에 박도훈은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종호 삼촌이랑 지석이 형의 말도 귀에 들어오더라고.”

지금도 물론 초조했다. 하지만 희망이 보였다. 자신의 연기를 믿는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결 편안해진 박도훈의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잘됐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서준과 박도훈, 두 사람만으로 생성된 ‘어린 사자왕의 무리’는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도훈의 정신력이 강해지면 저절로 서준에게서 느꼈던 위엄의 효과에서 벗어날 테니까.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서준아.”

박도훈은 몇 주 내내 자신의 촬영장에 찾아와 칭찬하던 아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박도훈의 진심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이 변형됩니다.]

손등의 포효하는 사자 문양이 반짝거렸다.

[(선)어린 사자왕의 위엄-하급]

어린 나이에 사자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리를 이끌기 위해 많은 능력 중 위엄만이 상승했습니다.

조건 충족 시 무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1/1)

무리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조건 : 약한 정신력, 30번 이상의 만남, 10번 이상의 칭찬

발동 :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기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