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1화
“여기다.”
표에 적힌 좌석과 비교해 보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자리에 앉았다. 엄마 아빠의 뒤를 따라 걷던 서준도 꽁꽁 둘러매고 있던 목도리와 모자를 벗었다.
어셈블을 보기 위해 서준과 부부는 조금 비싸더라도 사람이 적은 영화관을 골랐다.
바로 옆에 좌석이 있는 일반 영화관과는 달리 좌석이 멀리 떨어져 있고 칸막이까지 있는 프리미엄 상영관은 옆 사람의 얼굴도 보기 힘든 곳이었다.
작년, 그린윙 2도 여기서 봤다.
“세상 참 좋아졌어.”
일반 영화관보다 푹신하고 넓은 좌석에 이민준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서은혜도 팝콘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도 넓고 앞도 옆도 머니까, 아들이 들킬 일은 없네.”
“내가 나온 영화라면 좀 더 사람 많은 곳이 좋지만, 이건 아니니까 괜찮아.”
그래도 커다란 스크린은 포기하지 못해서 영화관까지 왔다. 광고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곧 영화관의 불이 꺼졌다.
두둥-
새로운 OST가 흘러나왔다. 어셈블의 OST였다.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빛나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영화는 레드본의 영화답게 유머러스하였고, 쉐도우맨의 영화답게 진지했다. 조지 로버츠 감독의 실력은 대단했다.
개성 강한 히어로들이 모여도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히어로들의 활약으로 적이 사라지고, 이제 막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시원하고 유쾌하게 끝나겠다고 모두 생각했을 때,
레드본이.
쓰러졌다.
“헐?!”
어셈블의 중심이었던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레드본!?]
히어로들이 놀라 비행선에서 바다로 추락하는 그를 불렀다. 그리고 레드본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서준과 부부의 입이 벌어졌다. 맛나게 먹던 팝콘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필사적으로 뻗은 쉐도우맨의 손가락이 정신의 잃은 레드본의 뒷덜미에 닿았을 때, 영화가 끝났다.
두둥-
어셈블의 OST가 흘렀다.
영화관이 밝아졌다. 스크린 위로 조지 로버츠 감독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이제 다들 마린사의 쿠키영상에 익숙해진 모양인지 다들 자리에 앉아서 영화의 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 갑자기 왜 쓰러진 거지?”
“적이랑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당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서준과 부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쿠키영상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서준이 스크린을 보았다.
두둥-
어셈블의 OST였다.
화면에 침대에 누워 있는 창백한 레드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쉐도우맨, 맥이었다. 그리고,
“어라?”
벨 나트라였다.
리첼 힐이었다!
서준과 부부, 그리고 관객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쉐도우맨의 편인지 진 나트라의 편인지, 선악이 확실하지 않은 캐릭터였던 벨 나트라가 어셈블의 기지에 나타난 것이었다.
벨 나트라가 유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잠시 동맹이야.]
[넌 네가 원하는 걸 얻고, 난 내가 원하는 걸 얻고.]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의 맥이 손을 뻗었다.
쉐도우맨 2의 쿠키영상처럼, 쉐도우맨과 레드본이 그렇게 손을 잡았던 것처럼, 맥과 벨 나트라가 손을 맞잡았다.
“이게 뭐야?”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영화객이 심각한 표정으로 라이브를 켰다.
“개판이죠?”
첫마디부터 강렬했다.
-ㅇㅇㅇㅇㅋㅋㅋㅋ
-거기서 벨 나트라가 나올 줄이야ㅋㅋ
-그럼 쉐도우맨 3임? 어셈블 2임?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나온다는 건 확실했다. 두 사람이 나온다면 쉐도우맨 3일까?
아니면 쿠키 영상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히어로들까지 등장하는 어셈블 2일까?
겨우 영화 제목이었지만 중요했다.
“네. 그게 중요하죠. 쉐도우맨 3이면 이서준 배우가 나올 테고, 어셈블 2면, 음, 안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마린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이렇게.”
[어셈블 2]
“네. 어셈블 2라네요.”
-ㅋㅋ아쉽ㅋㅋ
“그래도 어셈블 2 지나면 확실히 쉐도우맨 3가 나올 것 같습니다! 벨 나트라가 나온 이유가 있겠죠!”
-레드본은 왜 쓰러진 거임?
“그건 좀 의견이 분분하긴 한데, 아마 적과 싸우면서 어셈블 멤버들과 레드본 자신도 모르게 당한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
“마린사의 히어로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수도 하고, 모두를 구하지도 못하죠. 적에게 당하고 당하다 마지막에 이깁니다. 이게 영화라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거지, 실제였으면 난리가 나고도 남았죠. 윌리엄 같은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닐 테니까요.”
-그건 그럼.
“그러니까, 레드본도 항상 강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어셈블 1에서 쉐도우맨이 성장했다고 하면 어셈블 2는 레드본의 휴식과 성장이겠네요.”
-레드본 쓰러질 때, 깜놀.
-난 레드본은 안 쓰러질 줄 알았다.
-벨 나트라는 왜 나옴?
“아마, 레드본의 치료제가 외계 물질이라는 떡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쿠키 영상에 나온 대사처럼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 각자 구할 물건이 있죠. 쉐도우맨은 레드본의 치료제가, 벨 나트라는 아마도, 진 나트라와 연관된 물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물건일지는 상상도 안 가네요.”
곰곰이 생각하던 영화객이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확실한 건?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이 만났으니, 과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야 뭐 전지적 시청자 시점으로, 막장 드라마에 단련된 예민한 촉으로 얘랑 쟤랑 가족이겠구나 짐작하지만, 쉐도우맨은 아직 모르잖습니까. 아마 어셈블 2에서 밝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지적 시청자 시점ㅋㅋ
-막장 드라마ㅋㅋ 설마 네가 내 누나?!
-저번엔 다중인격이더니 이번엔 남매냐ㅋㅋ
“어셈블 2는 레드본의 휴식과 성장, 그리고 쉐도우맨 3를 향한 떡밥이 되겠습니다.”
벨 나트라의 등장과 어셈블 2의 예고는 이서준의 차기작만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쉐도우맨 3는 어디에?!]
[어셈블 2를 예고하는 쿠키영상!]
[벨 나트라는 있지만 진 나트라는 없다!]
[사라진 진 나트라를 찾아라!]
-마린사 터뜨리러 가실 분?
-어셈블 끝나고 쉐도우맨 3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어셈블 2를 뿌려?!
-이번에도 서준이는 안 나오네요ㅠ
-아, 진짜 예명이라도 좋으니까 활동해줬으면 좋겠네요. VOD라도 좋으니까 서준이 연기 보고 싶어요ㅜ
-요새 몇 번을 돌려보는지…….
모두 어셈블 2에 맞은 뒤통수에 아파하고 있을 때, 드라마 제작사 ‘파도’는 다른 이유로 난리가 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최민성 피디와 소은진 작가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진짜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물음에 이번 드라마의 제작과 기획을 맡은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요?”
“네!”
“정말로! 진짜요?!”
“네! 네!”
기획팀장 대답에 소은진 작가와 최민성 피디가 만세를 불렀다.
1년 동안 이서준에게 까인 드라마와 영화가 몇 개인가! 그중에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어서 다들 이서준의 눈에 든 대본의 기준이 뭔지 궁금해했다.
모두 그 기준에 들기 위해 다음 작품을 만들 테고 이서준의 차기작이 그 기준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게 우리라니!”
기분 좋으면서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왜 우리 드라마를 선택했을까요?”
“글쎄요. 사극이라서 그런가?”
“사극은 영화 하나 있었잖아요. 이다진 배우가 출연한. 게다가 흥행까지 했고.”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고민에는 전혀 관심 없는 기획팀장은 얼른 본론을 꺼냈다.
사극이라는, 점점 사라져 가는 장르에 누구를 캐스팅할까, 비용은 얼마나 들까, 투자자는 있을까, 이게 돈이 될까, 고민만 하고 있던 드라마 제작사 ‘파도’는 이제 몰려들 투자자들과 많아진 경우의 수 속에서 흥행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였다.
기사도 나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PPL이 거의 불가능한 사극인데도 불구하고 투자자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 사극과는 전혀 관계없는 제품의 이름 있는 기업들이었다. 제작사 직원들은 투자자들의 정보력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리고 가장 정보력이 빨랐던 한 방송국이 연락을 해왔다.
“방송할 곳이 정해졌습니다.”
연예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KBC 방송국에 엄청난 드라마가 들어왔다고.
* * *
띠링-띠링-
새콤한 한라봉을 까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던 서준이 전화를 받았다. 이지석이었다.
“지석이 형!”
-서준아! 드라마 한다며!
“어떻게 알았어요?”
다호형에게 하겠다고 말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서준이 하겠다고 했으니, 말을 바꿀 리는 없겠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코코아엔터뿐이었다.
제작사와 방송국은 하루라도 빨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길 바랐다. 이서준의 출연료로 얼마를 적어도 들어줄 터였지만 코코아엔터는 적당히 계약서를 작성했다.
코코아엔터와 제작사, 그리고 방송국까지. 드라마와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서준의 출연을 알게 됐다.
모두 입이 간질간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홍보계획이 세워질 때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서준의 출연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지석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출연하거든!
“정말요?”
뜻밖의 소식에 서준의 입이 벌어졌다. 이지석이 유쾌하게 웃었다. 이지석은 이 우연이 정말로 반가웠다.
-사극 해보고 싶었거든. 좋은 대본이 들어와서 하기로 했는데 계약서에 사인할 때, 그러더라고 네가 나온다고!
“와! 정말요? 형이랑 같이 촬영해서 좋아요!”
첫 드라마라서 서준도 어른들도 걱정했는데 이지석이 있다면 여러모로 안심이었다.
-나도! 우리 엄청 오랜만에 같이 촬영하는 것 같지 않아?
악령은 4년 전, 재수사는 2년 전. 게다가 재수사는 같이 촬영했다고는 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네! 엄청 기대돼요.”
서준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2월.
인터넷에 기사가 떴다.
[(단독)배우 이서준, 드라마 출연 확정!]
-???이서준이 드라마!?
-드디어!! 근데 어디 방송국, 무슨 드라마, 무슨 역이냐고!
-이 기자는 소식은 빠른데 내용이 없음.
-기다려. 좀 있으면 주르륵 뜸.
[배우 이서준, KBC 드라마 출연 확정!]
[이서준과 이지석! 두 배우가 뭉쳤다!]
[KBC, ‘내의원’ 4월 첫 방송!]
[왕실 주치의, 내의원의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
[조선의 왕자! 성녕대군 역의 배우 이서준!]
[성녕대군에 대해 알아보자!]
“궁금하긴 한데 드라마 스포 같잖아!”
박성원이 머리를 잡아 뜯었다. 이서준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기사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들 비슷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박성원은 그 기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우스가 [성녕대군에 대해 알아보자!]의 기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극은 이게 문제였다. 이미 정해진 결말이, 역사가 있었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래도 큰 미래를 바꾸진 않았을 터였다.
이건 스포일까, 아닐까? 마우스 커서가 덜덜 떨렸다.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민하던 박성원은 결국,
“으아아악!”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성녕대군에 대해 알아보자!]
배우 이서준(10)이 분하게 될 성녕대군에 대해 알아보자.
성녕대군(誠寧大君) 이 종(李褈)
1405년(태종 5)~1418년(태종 18)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넷째 아들로서, 이름은 종이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다.
형제로는 11살 차이의 양녕대군, 9살 차이의 효령대군, 8살 차이의 충녕대군이 있으며 충녕대군은 훗날 세종대왕이 된다.
태종의 늦둥이 아들이었던 성녕대군은 14살 때 창진(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뭐?!”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박성원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14살 때 창진(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 한 문장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죽어요!?
-세종대왕 동생인데 죽어!?
-이거 눈물 각인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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