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8화
-오늘이죠?
-꼭 상 받아야 하는데!
-몇 시에 시작하죠? 시차가 달라서ㅠ
서준의 팬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다들 기대 반 긴장 반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제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여기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영화를 본 사람들도 안 본 사람들도 그 작은 아이가 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해하며 소식을 기다렸다.
-여기[주소]에서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앗, 라이언 감독이에요!
라이언 윌 감독이 차에서 내렸다는 소식에 인터넷이 시끄러워졌다. 쉐도우맨의 감독인 그가 나타났다면 곧 이서준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 * *
커다란 차에서 라이언 윌 감독이 내렸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회색 정장을 입은 에반 블록,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리첼 힐이 내리고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앞머리를 뒤로 넘긴 검은 정장을 입은 서준이 나타났다.
쉐도우맨 팀의 등장에,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렸다.
쉐도우맨! 리첼! 진! 에반! 준! 벨! 나트라!
여러 목소리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심장을 뛰게 하였다. 경호원들이 잔뜩 서 있는 곳에서 서준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두근두근.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서준의 마음이 들뜨자 저절로 선기가 움직였다.
차에서부터 뿜어나오긴 했지만, 레드카펫 위에 서 있는 지금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여긴 경호원도 많고 펜스도 있으니까 능력을 쓸 필요는 없겠지?’
작정한 듯 나 슈퍼스타요! 하고 반짝이는 서준의 외모와 아우라에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다른 소란이 앞서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모았다.
소란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소란을 만들었다. 서은찬이 봤더라면 이게 바로 군중심리라고 이야기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날뛰는 사람들과 날뛰는 서준을 막은 건 라이언 윌 감독이었다.
“준. 진정해라.”
라이언 윌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묵직하게 두드리는 손에, 서준이 이성을 찾았다. 아이고, 마음 놓고 즐긴다는 게, 너무 즐긴 모양이었다. 서준은 후후- 숨을 내쉬고 손목을 매만졌다.
[(선)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달달한 향기가 풍기고 사람들도 하나둘 진정하기 시작했다. 다들 펜스에서 물러서고 다시 적당한 호응을 보여주었다.
서준이 손목에 새겨진 사과꽃 문양을 바라보았다. 쓸모없는 능력인 줄 알았는데, 가장 활용성이 좋았다.
“재밌었어?”
리첼 힐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 서준이 민망한 듯 웃기만 했다.
“첫 영화제라서 그래. 언제 이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환호를 보내주겠어.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니까 열심히 즐겨.”
“그러게요. 팬미팅 때는 다들 제자리에 앉아 있고 공항에서는 위험하고. 여기는 경호원도 많고 펜스도 있어서 너무 즐겼나 봐요.”
“이럴 때는 가수가 좋아.”
리첼 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수는 콘서트 같은 곳에서 팬들하고 마음껏 즐길 수가 있잖아. 배우야 스태프들하고 하는 촬영이 단데. 그지?”
“난 연기가 좋아.”
에반 블록이 끼어들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팬들하고의 시간을 말하는 거지.”
투닥투닥 거리는 두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생방송 카메라에 모두 담겼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세요?”
불쑥 리포터가 끼어들었다. 계속 걷기만 해서 몰랐는데 벌써 포토존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까지보다 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쉐도우맨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번쩍번쩍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사이에서 가장 유머 감각이 좋고 인터뷰에 익숙한 리첼 힐이 인터뷰를 이끌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넘기고 리포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에반과 서준, 라이언 감독에게도 관심이 향하게 하였다. 끝내는.
“그럼 모두 쉐도우맨 3 기대해 주세요!”
아직 촬영도 하지 않은 쉐도우맨 3의 홍보까지 확실하게 끝냈다. 세 남자는 저도 모르게 리첼 힐에게 박수를 보냈다.
“리첼, 인터뷰 진짜 멋졌어요.”
“그래? 이것도 하다 보면 늘어.”
네 사람은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가 쉐도우맨 팀이라고 적힌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숨 돌렸다.
에반이 건네준 물을 한 모금 마신 서준은 관객석을 살펴보다가 엄마 아빠와 삼촌, 다호 형을 발견했다.
네 사람은 서준이 들어올 때부터 계속 서준만 바라본 모양인지 금세 눈이 마주쳤다.
“누나, 서준이!”
“어!”
서준이 뒤를 보며 손을 흔들자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두 배우도 서준의 가족을 발견했다. 서은혜와 이민준, 서은찬, 안다호 모두 서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람 많은데 어떻게 찾았어?”
“느낌으로?”
이 넓은 관객석에서 네 사람을 찾아낸 서준의 촉이 대단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모두 영화제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라이언 윌 감독은 번역사이트를 사용해서 어린이 연극 봄에 대해 조사했고, 세 배우는 시상식장에 들어오는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뒤에 앉은 사람도 앞에 앉은 사람도 죄다 서준이 본 적 있는 배우들이었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은 지인을 만나면 서준을 소개해 주고 인사를 나누게 해주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펑! 하고 축포가 터지고 WTV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영화제는 앨범을 냈다 하면 빌보드차트의 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솔로 가수의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연신 폭죽이 터지고 화려한 불꽃이 춤을 췄다. 서준은 열심히 박수를 치며 공연을 보았다. 가수는 배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화려한 축하공연이 끝나고 MC가 마이크를 잡았다.
간단히 WTV 영화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입을 열었다. 다른 부문에서 상을 받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서준은 열심히 손뼉을 쳤다.
그리고,
“올해 최고의 영웅상!”
화면에 에반 블록의 얼굴과 다른 배우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관객석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쉐도우맨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영웅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준은 두 손을 꼬옥 잡고 마음속으로 쉐도우맨을 외쳤다.
잠시 뜸을 들이던 MC가,
“에반 블록!”
이라고 외쳤다. 화면에 에반 블록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반 블록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언 윌 감독과 악수를 하고 리첼 힐과 마주 보며 웃고,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치던 서준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그 모습이 화면으로 송출되자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쉐도우맨! 진 나트라!
“최고의 영웅상이라니 신기하네요. 쉐도우맨 1을 찍을 때까지도 이런 상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만화로 유명했던 레드본과는 달리 20년 전 절판된 쉐도우맨이 이렇게 상을 받게 될 정도로 여러분들의 기억에 남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
에반 블록과 서준의 시선이 부딪쳤다. 에반 블록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쉐도우맨 3 기대해 주세요.”
와아아아!!!
커다란 박수 소리가 시상식장을 울렸다. 트로피를 가지고 무대에서 내려온 에반 블록이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는 서준을 보고 웃었다.
“축하해요! 에반!”
“고마워.”
“트로피 봐도 돼요?”
“그래.”
두 배우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에반 블록 받음!
-제발 서준이도!
“다음은 ‘주목할 만한 배우상’입니다.”
MC의 말에 관객들도, 방송을 보고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화면에 나타나는 배우 중 유난히 어린 얼굴의 배우가 눈에 띄었다.
영화제 관객 중 아이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작은 아이의 연기력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MC는 허허로이 웃으면서 대본에 적힌 내용과 자신의 감상을 섞어 말했다.
“이 배우 투표율이 장난 아니네요. 하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배우입니다. 이거 상을 잘못 정한 게 아닌가요? 이 배우는 이미 충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배우의 연기를 인상 깊게 봤죠. 그리고 다음 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배우상의 수상자는…….”
조용한 무대 위에서 MC가 크게 외쳤다.
여러 후보자를 비추던 카메라가 유독 라이언 윌 감독과 리첼 힐, 에반 블록, 그리고 서준을 오래 비추었다.
관객석에서도 서은혜와 이민준, 서은찬과 안다호가 침만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쉐도우맨 2의 진 나트라 역을 맡은, 서준 리!”
와아아아!!
커다란 함성이 들리고 서은혜과 이민준은 너무 놀라 소리도 뱉지 못했다.
반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진짜로 받다니! 감격스러움에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서은찬은 만세를 불렀고 안다호는 기운이 빠진 듯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커다란 카메라가 서준을 향했다. 화면으로 멍하니 MC만 바라보는 아이가 보였다. 그에 모두 환호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에반 블록이 서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리첼 힐도 라이언 윌 감독도 박수를 치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서준은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다가오는 감각과 몰아치는 감정은 달랐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올라오세요! 준!”
MC의 목소리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상.
상 받았다.
내가 연기로, 영화로 상을 받았어.
생의 도서관이, 흔들거렸다.
뱃속 깊은 곳에서 감정이 흘러넘쳐, 눈물이 되었다. 서준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내가 연기로 상을 받았어.’
오직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첫 생의 한이 파도처럼 서준을 집어삼켰다.
많은 감정이 서준을 향해 몰려들었다.
행복. 기쁨.
만족.
바다에 가라앉으려던 서준이 멈추었다.
?
만족?
여기서?
겨우 여기서?
서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근원에 달라붙는 첫 생의 한을 떼어냈다. 차가울 정도로 가벼운 손짓이었다.
아니, 겨우 여기서 만족이라고?
배짱이 없어?
욕심이 없어?
첫 생의 한이 주춤 물러섰다.
말했잖아.
서준이 씨익 웃었다.
난 슈퍼스타가 될 거라고!
슈퍼스타가 겨우 상 하나에 만족할 리가 없지!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던 서준이 현실로 돌아왔다. 1초도 지나지 않았다. 그저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리첼과 에반이 서준을 일으켜 세웠다. 라이언 감독이 등을 떠밀어 주었다.
서준은 환하게 웃으면서 통로로 나와 무대 위에 올라갔다.
무대는 넓었다. 넓은 무대에 오직 허준과 MC만이 서 있었다. 영화제에 참석한 모든 관객이, 그리고 방송으로 보고 있을 모든 시청자가 오직 서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 큰 MC 옆에 있으니, 서준이 더욱 작아 보였다. 관객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MC가 건네준 트로피가 반짝반짝 빛났다. 첫 트로피. 환한 조명에 반짝이는 상이 정말,
웃겼다.
빨간색 팝콘 상자에 금색 팝콘이 담긴 트로피였다.
에반 블록이 들고 있었을 때는 그 차이에 웃기기만 했는데, 어린 서준이 드니 정말 잘 어울렸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박수를 보냈다.
웃기게 생긴 트로피긴 했지만 상이었다. 서준이 웃으며 트로피를 들어 보였다.
엑스트라 역만 전전하며 살았던 삶이라서 그런지, 첫 생은 너무 욕심이 없었다. 첫 생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건 내 삶이었다. 이서준의 생이었다.
‘하나에 만족할 수는 없지!’
서준의 뒤에 서 있는 화면 위로 서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윌리엄도, 진 나트라도 아닌 ‘이서준’이 화면에 비쳤다. 그 어린 얼굴에 쉐도우맨 시리즈를 인상 깊게 보았던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새삼 놀랐다.
서준이 자신을 찍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았다. 그 진한 검은 눈동자가 카메라를 꿰뚫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모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화면 속 서준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의 소감은 한국어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 뒤는 영어였다.
“처음 영화를 촬영한 게 쉐도우맨이었어요. 그저 잠깐 나온 엑스트라였는데 그 역할이 성장해 진 나트라로서 이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목할 만한 배우상!’ 앞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저를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찬이 삼촌, 희상이 삼촌! 정말 사랑해요!”
서은찬은 찡한 마음에 훌쩍 코를 먹고, 한국에서 보고 있던 김희상은 그 작던 아기가 이렇게 자랐나, 감탄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계속 울면서도 커다란 화면에서, 무대 위에 서 있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쉐도우맨에 저를 캐스팅해 주신 라이언 윌 감독님!”
서준이 무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쉐도우맨 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라이언 윌이 화면 가득 보이는 자신의 배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리첼과 에반이 있었다.
“에반 블록, 리첼 힐! 그리고 조나단 윌! 쉐도우맨의 스태프 여러분! 다호 형! 코코아엔터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휙휙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조나단 윌이었다. 조나단은 설마 자신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조나단의 주위에 앉아 있던 몇몇 쉐도우맨의 스태프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투표해 주신 전 세계 여러분. 한국 팬분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준이 꾸벅 인사를 했다. 관객석에서 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트로피를 들고 내려가려던 서준이 움찔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MC에게로 돌아가 마이크를 받았다.
다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쉐도우맨 3 기대해 주세요!”
아하하하!
[배우 이서준, ‘주목할 만한 배우상’ 수상!]
[WTV 수상 최연소 배우!]
[모두가 반한 배우 이서준의 귀여운 수상소감!]
[그 작던 아이가 이렇게 컸습니다!]
-한국어로 말할 때 울었음ㅠ
-장하다! 이서준!
-팝콘ㅋㅋ 트로피가 팝콘 상자야? 이서준이랑 잘 어울림ㅋ
=ㅇㅇ 1회부터 저랬음ㅋㅋ
-쉐도우맨 팀 쉐도우맨 3 홍보하는 거 너무 웃김ㅋ 누가 짤 만들어 놓음ㅋ
=리첼, 에반, 이서준 전부 함ㅋㅋ홍보비는 굳었을 듯ㅋ
=그래서 언제 개봉임?
=아직 촬영도 안 했어ㅋㅋ
=그럼 지금 홍보해 봤자 소용없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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