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3화
[안녕하세요! 연예 TV에서 이서준 배우와 함께 연극 ‘봄’에 출연한 배우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했구나. 좀 빠르지 않아요, 형?”
콩콩! 새하얀 종이에 도장을 찍고 있던 서준이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준의 정체가 알려진 게 겨우 보름 전인데, 언제 녹화를 했는지 방송까지 나오고 있었다.
“바람 극단에 비해서 빠르긴 하지만, 화제성 때문이라면 좀 늦었지. 아마 며칠 전에 나온 VOD를 보고 누구를 인터뷰해야 할지 고민했을 거야.”
옆에 앉은 안다호는 새 종이를 밀어주고 도장이 찍힌 종이를 빼내 번지지 않고 잉크가 마르도록 거실 바닥에 두었다.
거실 여기저기 서준이 직접 그린 청룡의 그림과 함께 서준의 이름이 적힌 사인지가 널려 있었다.
물론 전부 도장이었다.
콩! 콩!
새하얀 종이에 찍힌 파란색 잉크가 반짝였다.
[(선/제작)바다 슬라임의 행운 잉크-하급-]
아주 많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바다 슬라임으로 만든 잉크입니다.
행운이 깃든다는 미신이 결국 사실이 되었습니다.
사용된 잉크가 뜻밖의 행운을 불러옵니다.
사용법 : 잉크 통을 두 손으로 꼭 잡습니다.
[바다 슬라임]의 삶을 발견하고 읽었을 때,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다. 왜냐하면, 잉크의 원료가 슬라임의 수액이었기 때문이었다.
흠뻑 젖은 수건을 꽈아악 짜내는 것처럼, 온몸을 짜내던 인간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기도 해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다행이야. 피 같은 게 필요했으면, 음. 못 썼을지도.’
서준은 나지도 않은 식은땀을 닦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사인을 받은 팬분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라며, 아무리 하급 능력이지만 최대한 발동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하나하나 성심을 다해 찍었다. 삐뚤어지면 안 되지.
그러길 몇 분, 잉크에 한 번, 종이에 한 번 능숙하게 움직이던 서준의 손이 멈추었다.
찍히지 않는 도장에 안다호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향해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한 연기학원이 나왔는데, 이름을 보아하니 소영이 누나와 다진이 누나가 다니는 학원이었다. 항상 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투덜투덜하던 두 사람이 떠올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두 사람이 서준과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리포터는 학원장을 인터뷰하고, 곧 최소영과 이다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최소영 배우, 이다진 배우.]
리포터의 말에 두 사람이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웃었다. 연극이 끝난 지 보름.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며칠 전, 연극 봄의 DVD와 VOD가 발매되었는데요. 모든 배우에게 쏟아지는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어린이 연극’에서 ‘어린이’를 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리포터의 칭찬에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배송까지 시간이 걸리는 DVD보다는 집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리모컨 조작 한 번이면 편하게 볼 수 있는 VOD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판매가 시작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예상을 뛰어넘는 다운로드 수에 VOD를 판매하는 ‘비디오트리’도 은하수 센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준과 부부도 DVD를 받았지만, VOD를 샀다. 확실히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편했다.
VOD는 [어린이 연극 ‘봄’]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왔고, 연극을 편집한 짧은 예고편은 무료, 1회차부터 8회차까지, 그리고 메이킹필름이 유료로 올라왔다.
연극뿐만이 아니라 메이킹필름도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저희도 무대 위에 있을 때는 잘 몰랐어요. 잘해야 한다, 그런 부담감 없이 정말로 즐겁게 연기했거든요.]
이다진의 말에 최소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저희 연극을 관객의 시선으로 보니까 우리가 저렇게 잘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히 저기서 연기하는 건 전데, 저렇게 움직인 것도 기억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있고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서준은 두 사람의 인터뷰에 푹 빠져 손을 움직이는 것도 멈추었다.
안다호는 재촉하지 않고 함께 인터뷰를 보았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이다진과 쑥스러운 얼굴로 차분히 대답하는 최소영의 모습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서준이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다진이 누나! 지금 TV에 누나 나와!”
-악! 봤어?! 아니, 그게 오늘이었어? 잠깐만!
* * *
[제목 : 8회차 청룡 무슨 일이냐?]
혼자만 CG 처리한 거?
아니, 다시 보면 다른 회차랑 똑같은데, 처음 볼 때는 진짜 살아 있는 줄 알았다.
8회차까지 연속으로 봐서 눈에 이상이 생긴 건가. 아니면 처음 볼 때만 CG 처리한 것처럼 보이게 컴퓨터 기술이 발달한 거냐?
-그런 기술 없음ㅋㅋㅋ
-근데 진짜 신기함. 나도 처음 볼 때는 어디서 진짜 용 데리고 왔나 싶었음ㅋㅋㅋ
-?? 그런 게 있음? 난 못 봤는데?
[제목 : 이거 어떰? 8회차는 이런 느낌이었음.]
내가 그려봤는데ㅋㅋ 진짜로 은하수 센터에 머리 박은 느낌ㅋㅋ
(머리는 은하수 센터 안에, 몸통과 꼬리는 은하수 센터 밖 하늘을 날고 있는 용 그림.)
-ㅋㅋ아ㅋㅋ
-알겠다ㅋㅋ
-내가 합성함ㅋ(은하수 센터 사진에 용의 몸통과 꼬리 합성한 사진)
-저렇게 진한 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음?(몸통과 꼬리가 희미한 구름처럼 보이는 사진)
=봄이 올라간 극장은 이쪽에 있음. 반대로 해야 함
-이렇게?(사진.)
-ㅋㅋ이거 누가 만화로 그려 올림ㅋㅋ
* * *
“다호 형. 이거 봤어요?”
서준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비록 카시트에 앉아 있어서 팔이 운전석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룸미러로 서준과 눈을 마주친 안다호가 물었다.
“뭔데?”
“봄 만화요!”
“아, 봤어. 귀엽게 잘 그렸던데?”
“그죠? 특히 청룡이 소원 들어주려고 봄이를 찾다가 은하수 센터 벽을 머리로 뚫는 게 귀엽지 않아요? 머리에 혹도 났어요.”
“그거 인기가 많더라고.”
오늘은 서준의 생애 첫 팬미팅 날이었다.
카시트에 앉은 서준은 창밖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휴대폰으로 서준의 팬미팅에 당첨되어 너무 기쁘다는 후기 글을 보거나, 또 벌써 팬미팅 장소에 도착했다는 글을 읽었다.
그 글에 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형! 벌써 도착한 분들도 있대요.”
“그래? 시작하려면 아직 좀 멀었는데…….”
“형형! 오늘 날씨 괜찮아요? 팬미팅 장소요!”
“다른 데는 좀 흐리다는데 팬미팅 장소는 괜찮은 것 같아. 어차피 실내라서 상관없지만, 밖에서 기다리는데 날씨까지 안 좋으면 그렇겠지. 잘됐어.”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날씨가 좋다니 다행이었다.
서준은 기분 좋은 긴장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이리저리 두 다리를 흔드는 서준을 보며 안다호도 웃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에게서 서준이 너무 기대한 나머지 도통 잠이 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늦게 잤다며? 차에서 조금 자는 건 어때?”
“괜찮아요! 잠 하나도 안 와요!”
그 말 그대로 서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모두 다 능력 덕분이었다.
팬미팅 장소로 다가갈수록, 이상한 모자와 옷, 가방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새까맣게 선팅된 창문에 코를 박은 서준이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앗. 저거 희상이 삼촌 거다. 저것도! 내 것이랑 똑같네!”
서준이 악령 때, 촬영장에 들고 갔던 도깨비 모양 가방도, 이번 연극 때 들고 다녔던 가방에 달린 몬스터 인형도, 모자에 달았던 금속 배지도 있었다. 서준의 심장이 둥둥 뛰었다.
“여기 전부 내 팬분들이에요?”
“그래. 다들 팬미팅 가나 보다.”
한 팬이 앞서가던 팬의 가방에 달린 배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음. 서준이 눈을 찌푸렸다. 잘 안 보이는데?
움찔움찔 주저하다가 결국 그 팬의 어깨를 두드리고 이리저리 몸짓했다. 아마도 배지를 산 곳을 묻는 모양이었다. 그 팬도 싫어하지 않고 활짝 웃으면서 산 곳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어느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팬미팅장소로 향하는 팬들의 모습에 서준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배지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들 친하게 지내서 너무 좋아!
힘차게 달리던 서준의 차가 지하주차장에서 멈추었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차에서 내리는 서준의 앞에 서은찬이 나타났다. 이제는 꽤 정장이 잘 어울리는 서은찬의 모습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삼촌!”
“서준이 왔네! 올라가자!”
서준과 서은찬, 안다호가 위층으로 향했다. 서은찬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서준과 눈을 마주치면 서로 손을 흔들거나 꾸벅 인사했다.
“팬미팅 끝나고 극장에서 나갈 때, 팬분들한테 서준이가 찍었던 사인지랑 DVD랑 선물이랑 해서 드릴 거야. 휴식 시간에는 간식도 드리고.”
“응!”
“진행 순서는 기억하고 있지?”
서은찬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갔다. 서준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물부터 음료수, 과자, 폭신한 의자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서은찬이 서준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서준아. 하다가 힘들면 말해. 휴식시간은 언제든, 많이 써도 되니까. 알았지?”
“괜찮아! 나 엄청 튼튼해!”
“그래도!”
서은찬의 서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서은찬의 말에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소영이 누나!”
“안녕! 서준아!”
“청룡 연기 보여줄 때, 다른 사람보다는 최소영 배우가 낫지? 그리고 MC는…….”
“짠! 나야!”
“다진이 누나!”
최소영의 뒤에서 이다진이 나타났다. 연극이 끝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폭풍 같던 인터뷰들이 줄어들고, 드라마 대본이 쏟아졌다. 열심히 고르고 있던 두 사람에게 코코아엔터에서 제안이 왔다. 최소영과 이다진은 기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방송 좀 하지.”
이다진의 말에 최소영과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극장 안에 사람들이 꽉 찼다. 예매 시작 5분 만에 매진된 표를 구한, 행운만땅 팬들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얼른 팬미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MC도 나오겠죠?”
“서준이 혼자 하기는 힘드니까, 불렀겠죠?”
“누가 나오는지는 몰라도, 제발 방해만 안 했으면 좋겠네요.”
팬미팅은 콘서트나 연극보다 팬과 연예인이 가까워지는 장소였다.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아도, 그저 연예인이 웃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딱, 브블의 황예준이 좋은데. 우리가 모르는 서준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랬으면 우린 여기 못 앉아 있을 걸요?”
“하여튼 제발 케미가 좋은 사람으로!”
다들 두 손을 꽉 쥐고 빌었다.
팬미팅 시작 시간이 되자, 무대 위가 밝아지고 누군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한 소녀가 무대에 섰다. 생각보다 어린 MC의 등장에 다들 어리둥절하다가 소녀가 이다진인 것을 알아차렸다.
1화부터 8화까지는 물론이고 메이킹필름까지 몇 번이고 본 팬들이었다. 서준과 함께 떠들고 놀던 이다진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케미는 딱히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쟤도 참 웃긴 애던데.”
와. 저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가 마이크를 타고 극장을 울렸다. 그 얼빠진 중학생의 얼굴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많이 오셨네요. 아, 이게 아니지! 안녕하세요. 이서준 배우의 첫 팬미팅 MC를 맡은 이다진입니다.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저 서준이랑 같은 연극에 나왔어요!”
무대 뒤에 서 있던 서은찬 씨익 웃었다.
“잘하네.”
“사람도 많은데, 안 떨고. 다진 양도 잘하네요.”
코코아엔터에서 브라운블랙의 콘서트와 팬미팅 등의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팀장이 능숙하게 말하는 이다진을 보며 눈을 빛냈다.
최소영과 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진이 누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말하는 건데. 그지, 소영이 누나.”
“응. 그게 나쁜 말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큰일 났어.”
“근데 다진이 누나 진짜 신났나 봐. 완전 날아다니는데.”
“쟤가 좀 관종이야.”
두 사람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이다진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서준이 보러 온 거죠? 저도 오랜만에 봤어요. 그럼 빨리 이서준 배우를 불러볼까요? 서준아! 얼른 나와!”
그 친구 같은 말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팬은 이다진을 따라 ‘서준아!’ 부르기도 했다.
아역 배우의 팬미팅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기대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서준의 팬들도 이렇게 어린 배우의 팬미팅은 처음이라 긴장했던 스태프들도 이다진의 말에 실실 웃으면서 여유를 가졌다.
“봐봐. 대본이랑 완전 다르지.”
“최소영, 얼른 나와! 이서준!”
“누나, 얼른 가자. 저러다 무슨 말 할지 모르겠다.”
편하게 하라고는 했지만…… 이다진의 말투에 뒤통수를 맞은 기획팀장과 서은찬의 얼빠진 얼굴에 웃음을 터뜨린 서준이 최소영을 이끌고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커다란 무대 위에 그들이 기다리던 서준이 나타나자, 꺄아아악! 모두 소리를 질렀다.
서준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켜고 꾸벅 인사를 했다.
[서준아! 사랑해!] 잘 보이는 패널을 들고 있는 팬들, 서준이 좋아하는 몬스터 인형의 옷을 입고 온 팬들, 서준에게 줄 선물로 사 온 몬스터 인형을 머리 위로 흔드는 팬들까지.
굳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들의 마음에, 서준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서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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