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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71화 (7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71화

서준은 마이크를 잡았다.

‘이 마이크를 잡는 것도 마지막이네.’

딱딱한 마이크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만 나오는 역할이었지만, 이렇게 있으면 정말로 청룡이 되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 같았다. 서준이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둘러보았다.

‘정말로 마지막이야.’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형 누나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데,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영화 찍을 때는 안 이랬는데.

삐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지막 공연이다.

‘마지막이니까 더 열심히!’

서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서준은 능력을 발휘했다. 서준의 눈동자가 바다 빛으로 변하고 머리카락의 끝 부분부터 파랗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두 개의 뿔이 점점 자라나고 볼과 뺨에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

좀 더.

두 눈을 꼭 감은 서준이 호흡을 시작했다.

[(선)엘프의 기초호흡이 발동됩니다.]

좀 더.

마이크를 잡고 있는 두 손의 다섯 손가락 끝까지, 날카로운 발톱으로 드래곤화 되어갈 때 새하얗던 선기가 파랗게 물들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서준은 이내 그 활용법을 깨달았다. 서준은 눈을 뜨고 한쪽을 바라보았다.

바다 빛 눈동자가 닿는 곳을 따라, 서준의 몸 안에서 맴돌던 푸른 선기가 벽을 타고 스크린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청룡 모형으로 향했다.

파도의 물결처럼 출렁이는 블루 드래곤화된 선기가 청룡 모형을 감쌌다. 허물처럼 청룡을 뒤집어쓴 블루 드래곤의 그것은 기계처럼 움직였던 청룡의 모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부드럽게 감기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수염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뻣뻣하게 서 있던 갈기가 부드럽게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인조의 색으로 뒤덮여 있던 파란색 비늘이 생기가 넘치는 바다 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서준은 청룡이 되었다.

[우우우.]

짐승 같은 청룡의 낮은 울음소리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오늘은 어떨까, 궁금해하던 관객들과 후기를 보고 찾아온 관객들이 그 소리에 몸을 떨었다.

온몸의 털이 삐죽삐죽 쏟을 정도로 귀에 박히는 소리였다. 무대 위의 이야기가 진짜 현실이 된 것처럼, 모든 게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왔다.

다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연극 속에 빠져들었다.

기침 소리, 몸의 움직임에 의자가 들썩이는 소리,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그 어떤 잡음도 극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온몸을 긴장한 채, 무대를 바라보았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그런 관객석을 볼 여유도 없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대사를 치고 몸을 움직이고 울고 웃고. 그 가슴 절절한 연기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리고 스크린을 뚫고 청룡이 나타났다. 처음 연극을 본 관객들은 물론이고, 여러 번 연극을 본 관객들과 직접 청룡을 설치한 스태프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은 청룡을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기다란 수염도, 뻣뻣하던 털도, 그리고 딱딱한 눈꺼풀의 움직임도 모두 사라졌다.

딱딱하던 청룡의 비늘이 조명에 반짝였다. 파랗게 칠했던 페인트가, 오묘한 심해의 빛으로 변했다.

마치 숨을 쉬듯, 청룡의 코끝에서 미약한 바람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림 같았던 용의 푸른 눈동자에는 신비로운 생기가 돌았고 어색하게 붙어 있던 두 발의 발톱은 그 무엇이라도 뚫을 듯 날카로웠다. 청룡의 푸른 갈기가 바람에 흔들렸다.

진짜,

살아 있는 용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청룡이 극장에 머리를 박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하수 센터 밖으로 나가면 하늘을 떠 있는, 청룡의 커다란 몸통이 있을 것만 같았다.

[여의주를 찾아주었구나. 고맙다.]

청룡의 입이 살며시 열리고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문뜩, 무대 감독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저거 입은 안 열릴 텐데……? 입의 움직임에 맞추어 수염도, 갈기도 바람에 살랑거리듯 움직였다.

묵직한 목소리가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용이 된 서준은 생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해츨링의 삶을 떠올렸다.

아직 어렸던 해츨링과 함께 살았던 조부를 떠올렸다. 커다란 몸에 인자한 얼굴. 인간 왕국의 수호신이던 블루 드래곤을.

해츨링에게는 다정했지만, 조부는 인간과의 거리감을 잊지 않았다. 넉넉히 베풀어주면서도 호의가 권리가 되지 않게, 인간에 대한 냉정함을 유지했다. 해츨링은 그런 드래곤이 되고 싶었다.

첫 무대에서는 그런 조부를 따라 했다. 하지만 점점 무대를 거치면서 서준은, 해츨링은 성장했다.

지금 이 모습은 할아버지도, 그 누구도 따라 하지 않은 자신이었다. 일찍 죽어, 인간 왕국의 수호용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답으로 소원을 들어주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청룡의 말에, 아이들과 관객석에 있던 사람 중 일부가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았다. 서준의 눈에 간절한 표정의 짓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비록 거짓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해츨링이 바라던 수호용이 된 게 아닐까,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연극이 끝났다. 무거운 커튼이 무대를 가리며 내려왔다.

관객석이 밝아졌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청룡의 충격이 어마어마했는지 관객석에는 묵직한 침묵만이 남았다.

곧 막이 오르고,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 위에 나타난 아이들이 보였다. 줄줄 땀을 흘리면서도, 숨이 찬 듯 가쁘게 숨을 쉬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짝짝!!!

짝짝짝!!!

와아아아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람들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할 것 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환호였다.

“멋지다!”

“최고였어!”

“이다진!!”

누군가 이름을 부르자, 사냥꾼 복장의 이다진이 앞으로 나와 꾸벅 인사를 하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그 돌발 행동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여러 번 연극을 보러 왔던, 팸플릿의 배우들을 모조리 외운 관객들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니, 이다진이 씨익 웃으면서 등을 밀어주었다.

아이들도 쑥스럽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무대 위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배우.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신성하고 묵직한 목소리를 들려준 배우.

관객들의 시선이 한 아이에게로 향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 가운데, 홀로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아이가 있었다.

오늘도 친구들과 연극을 보러온 김수한이 외쳤다.

“나 진!!”

모자를 쓴 서준이 그 이름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여기저기서 청룡님! 청룡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은 관객석을 한 번 훑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다음 작품에선 얼굴 좀 보자!!”

그 말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배우들도 웃으면서 나란히 섰다. 그리고 옆의 친구들과 손을 잡았다.

서준도 형 누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마주잡은 두 손에서 배우들의 감격이 느껴졌다.

하나, 둘.

“감사합니다!”

마지막 무대가 끝났다.

* * *

“수고했어!”

“끝났구나!”

연극이 모두 끝났다. 앞으로는 연습도 없고 공연도 없었다. 무대 뒤에서 서로를 껴안고 실컷 운 아이들이 퉁퉁 부은 눈으로 음료수가 든 잔을 높이 들었다.

연습실 가운데에 피자, 치킨, 족발 할 것 없이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엉엉 울어서, 배가 고팠던 아이들이 얼른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눈가가 빨간 서준도 피자를 한 조각 들고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꼭꼭 피자를 씹어먹으면서 서준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능력의 삶은 서준이 연구했던 캐릭터의 역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적당한 능력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비슷한 용족이라는 것, 인간을 위한다는 것. 그리고 해츨링이 바라던 삶이었다는 것. 연극의 상황에서 많은 것이 능력의 삶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가? 짧았던 삶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던 해츨링이 자신의 연기에 따라 성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내, 해츨링은 조부가 아닌 자신만의 위엄을 드러냈다.

‘해츨링이 꿈꾸던 수호용이 된 건가?’

목 중앙에 그려진 아기용 무늬의 능력이 만족한 듯 반짝였다. 고개를 숙여 슬쩍 보니 문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뿜어내는 푸른 빛이,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많은 전생 중 한 생의 소원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준 기분이었다.

‘돌아가면 도서관에 가 봐야겠다.’

서준이 냠, 마지막 피자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근데 청룡, 아까 진짜 살아 있는 거 같지 않았어?”

“그러게. 무대 뒤에서 봤는데 그 정도면 소영이 누나는 완전 놀랐겠다.”

일찌감치 자신 몫의 피자를 해치우고, 닭 다리를 잡은 최소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청룡 진짜 숨 쉬는 것처럼 몸이 부풀었다가 꺼졌다가 했어. 너무 움직이는 게 작아서 헛것을 봤나 했는데, 다들 그렇게 느꼈다니까, 진짜 같네.”

“무대 감독님도 넋이 나가서 점검하러 가셨어. 이건……. 이런 장치는 없는데?! 하고 달려가시더라.”

이다진이 무대 감독님을 흉내 내며 말하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안다호를 제외한 보호자들과 스태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모두 무대 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보러온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는 믿지 못할 일들이 많은걸.”

UFO에 관심이 많은 아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겪었던 신기한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밤 중에 흰옷을 봤다는 아이, 길에서 신기한 동물을 봤다던 아이. 학교에서 신기한 소리를 들었다는 아이. 대부분 귀신 이야기였지만 모두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다.

청룡 모형을 점검하던 무대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호자들도 스태프들도 생기는커녕 차갑고 딱딱한 청룡의 모형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아, 무대 아래로 내려온 청룡의 모형을 머뭇거리다가 손가락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녹화 영상을 확인하러 갔다 온 박지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녹화 영상에서는 평소와 같은 움직임이에요.”

“……그럼 정말로 헛것을 봤다는 건가요?”

누군가의 말에 박지수 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몸짓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 * *

일정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보호자들이 기다리던 때가 닥쳐왔다.

마지막 공연 날, 저녁.

동시다발적으로 SNS에 글이 올라왔다. 가장 빨리 인터넷에 오른 것은 글을 작성하고 입력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연기 학원들이었다.

[이서준과 함께 연기한 아역 배우, 최소영!]

#어린이연극봄 #주인공역 #이서준 #최소영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과 함께! 이다진 아역 배우!]

#어린이연극봄 #사냥꾼역 #이서준 #이다진 #할리우드

라는 글과 함께, 명백한 증거인 사진들이 올라왔다.

환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서준과 아이들의 사진과 장난치고 있는 사진. 그리고 서준과 아이들이 연습하고 있는 동영상도 올라왔다.

비슷한 시간에 코코아엔터에서도 자료를 뿌렸다. 그리고 몇 분도 되지 않아, 인터넷에 서준의 기사가 넘쳐 흘렀다.

[이서준, 차기작은 어린이 연극?! 그것도 이미 끝났다!]

[예명?! 이서준의 예명은 나진!]

[문체부 후원, 은하수 센터 기획, 어린이 연극 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서준은 목소리만 나왔다. 하지만 목소리 연기도 톱!]

[아이들이 찾던 청룡님! 이서준!]

그리고 어린이 연극 ‘봄’의 후기 글들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 * *

“야! 이쪽이라고!”

“잠깐만! 가고 있잖아!!”

어린이 연극 봄을 보고, 피시방에 들른 김수한과 친구들이 열심히 총을 쏘고 있었다. 피시방 안은 시끌벅적했다. 다들 컵라면을 하나씩 끼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핵 아니야? 어떻게 쏠 때마다 피해?”

“……네가 못 쏘는 거야.”

김수한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가장 먼저 죽은 김수한은 친구들의 게임이 끝나길 기다리며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가장 자주 가는 사이트에 들어가 별생각 없이 게시글을 보고 있는데 어쩐지 ‘이서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김수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또 뭐 할리우드 영화라도 찍나?”

“뭐!?”

“아니야!”

김수한은 가장 조회 수가 많은 게시글을 클릭했다. 내용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짧게 줄이면.

이서준, 어린이 연극, 봄, 청룡 역, 나 진, 예명.

“……어?”

“아! 죽었다.”

“와, 어떻게 한 명도 안 빠지고 다 죽냐?”

그사이 친구들도 게임 오버 된 모양인지 시끌벅적해졌다. 김수한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검색 사이트에 들어갔다. 실시간 검색어도 살펴보았다. 기사도 확인해 보고, 너튜브 영상도 확인해 보았다.

“야, 너 왜 이렇게 떨어?”

“뭐, 사고라도 쳤냐?”

김수한은 친구들의 말에 자신을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우스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야…….”

“왜?”

“세상이 미쳤나 봐.”

“아니, 네가 미친 것 같은데?”

“……나 진이 이서준이래.”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진? 나진이 누구야? 그 청룡. 아, 수한이가 좋아하는? 근데 나진이 이서준이라고? 이서준은 걔 아니야? 진 나트라.

속닥속닥 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모두 이상한 표정으로 김수한을 보았다.

“……미쳤냐?”

“내가 미친 건가? 나 진이 이서준이래. 청룡 역을 맡았던 게, 이서준이래!”

온몸에 소름이 돋은 김수한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운 소리에 피시방에 있던 사람들이 김수한과 친구들 쪽을 바라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김수한이 토하듯 말했다. 말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모자를 쓰고 있던 나 진. 제 말에 손을 흔들어주었던……. 헉. 걔가?!

“내가 8번이나 본 연극에 나왔던 게! 내가 사인받았던 나진이 이서준이래! 이것 봐!”

김수한이 보여준 것은 분명 그들이 보았던 연극 ‘봄’의 주인공, 최소영과 사냥꾼 역의 이다진, 그리고 이서준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팸플릿 소개를 함께 올려놓았다. 최소영, 이다진,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나 진/ 8세]

-와. 진짜 생각도 못 한 곳에서 튀어나오네!

-나 진? 설마……. 진 나트라?

=아ㅋㅋ 그런 듯ㅋㅋㅋ

“……헐.”

“와씨.”

피시방에 있던 사람들에 김수한의 말에 쑥덕쑥덕거렸다. 뭐야? 뭐, 사고 났어? 아니, 이서준이래. 이서준? 그 왜, 할리우드 진출한 아역 배우. 아.

다들 이서준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길래 저 난리야?

잠시 후, 여기저기서 헐?! 진짜? 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에게 시선이 모였다. 그중에는 피시방의 실태에 조사하러 나왔던 사회부 기자도 있었다.

“……근데 너 나 진 이름으로 사인받았잖아.”

“아…….”

“아냐! 오히려 그게 더 희소성 있지! 누가 이서준 사인을 나진으로 받겠어!”

“그건 그러네.”

사람들의 시선도 모른 채, 일희일비하는 김수한 옆에서 친구들이 조잘댈 때, 김수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수한은 얼떨떨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네? 네?”

덜덜 떨리는 김수한의 목소리에 나진의 사인이 좋냐, 이서준의 사인이 좋냐 토론하고 있던 친구들이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코코아엔터래.”

“거기가 어딘데?”

“이서준 소속사…….”

“뭐?”

피시방에 소음이 사라졌다. 드문드문 게임 소리가 들렸지만 다들 입을 다물고 김수한과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인생 처음으로 덕질을 시작한, 나 진(8세, 알고보니 이서준)의 팬인 김수한이 이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 나 진이 이서준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폭풍처럼 일이 몰아닥쳤다.

“8번이나 연극 봐주셔서 고맙다고. 주소 알려주면 이서준 사인 보내준대. 진짜 나 진이 이서준인 거야?”

“……헐.”

“저기. 잠깐만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다들 넋을 놓고 있을 때, 사회부 기자가 명함을 내밀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자신이 쓰던, 연예부로 넘기던 놓칠 수 없는 특종이었다.

[(단독)어린이 연극 봄, 전회차 관람자에게 이서준이 주는 특별한 선물!]

-와. 진짜 운 좋은 듯ㅋㅋ 어떻게 싸게 보러 갔는데, 그게 딱 이서준 연극이냐.

-근데 전회차 다 봤으면 학교에서 준 지원금은 다 쓰고 자기 돈 썼다는 거 아니야?

-나진의 연기 때문에 8번이나 봤다는 거잖아. 얼마나 인상 깊게 봤으면 표를 모아서 사인해 달라고 하냐ㅋㅋ 8살한테ㅋㅋ

-그 덕에 나진, 이서준 사인 2개 가질 수 있잖아. 부럽ㅠㅠ

-난 저게 더 웃김. 2회차는 친구들 5명이서 보고 3회차는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불러서 보고 8회차때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엄청 왔다고ㅋㅋ 피라미드냐고ㅋㅋ

-이제 어린이 연극 봄, 관람자 인터뷰는 주영고 가면 될 듯ㅋㅋㅋ

-쌤들 난감;;; 학교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긴 했는데, 영 이상한 쪽으로 유명해졌어ㅋㅋ

-난 그거 보고 싶다. 공연 보고 감상문 써야 한다던데 누가 감상문 좀 올려봐ㅋㅋ

그리고 며칠 후, 인터넷에 후기 하나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후기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왔다! 이서준 사인!]

이서준 사인 왔다! 연극 봄, DVD도 있어! 엽서도 있음!

(나진 사인, 이서준 사인, 연극 봄 dvd, 이서준 엽서)

(엽서 확대)

글씨는 나보다 나은 것 같다. 깨알같이 나 진이라고 적었넼ㅋㅋ

근데 진짜 세상일은 모르는 일이야. 내가 처음 좋아하게 된 배우가, 이서준이라닠ㅋㅋ 첫 팬인 줄 알았는데, 이미 월드스타ㅋㅋ 팬카페나 가입하러 가야지.

-와, 팬서비스……. 짱이다.

-솔직히 이건 이름값도 없이, 그냥 연기만 보고 팬이 된 거라서 더 마음이 갈 듯. 어떤 사람이 8살짜리 애 연기에, 그것도 목소리 연기에 빠져서 8번이나 보냐.

-그것도 고1이ㅋㅋ

-근데 DVD는 뭐임?

=다음 주부터 파는 거. 지금 예약 중.

[이서준의 차기작, 어린이 연극 봄! 전회차 DVD화! VOD도 있다!]

[문체부 후원! 이서준 출연! 어린이 연극 봄 DVD 예약 진행 중!]

[전회차 관람자가 전하는 각 회차의 특징!]

[다른 회차는 몰라도, 꼭 봐야 하는 마지막 8회차 연극!]

[어린이 연극 봄에 출연한 아역 배우들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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