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70화
두 번째 공연 날.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은하수 센터에 몰려들었다. 첫 번째 공연을 보러왔던 김수한이 친구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보다가 기절하는 줄!”
온갖 몸짓으로 대단함을 알리는 두 사람을 보며 나머지 세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어린이 연극에 뭐 볼 게 있다고!”
“내가 진짜 재미없으면 피시방 쏜다!”
“컵라면?”
“콜!”
서로 얻어먹을 생각에 희희낙락 들어오던 학생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우리 조용히 볼 수는 있는 거지?”
은하수 센터의 로비가 아이들과 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청룡님! 보고 싶다고!! 희주가 엄청 자랑했어! 여의주도 샀대애!!”
“청룡님! 청룡님!! 소원 빌어야 해!”
“여의주!!! 여의주 사 줘!!”
로비에 있는 아이들의 분위기는 세 개로 나누어졌는데.
활짝 웃으면서 기념품으로 산 여의주를 연신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아이들.
첫 번째 공연을 봤던 아이들로 여의주도 생겼으니, 청룡을 만나 소원을 빌기 위해 부모님을 졸라 은하수 센터에 왔다.
두 번째로, 울고불고 떼를 쓰는 아이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자랑하는 친구들 때문에 찾아온 아이들이었다. 연극은 둘째치고 여의주를 사기 위해서 온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무리는 지인의 추천으로 부모님이 데려온 아이들. 연극에도 관심이 없고 여의주는 신경도 쓰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높은 목소리에 귀가 아파진 학생들이 귀를 막고 매표소로 향했다. 김수한이 아이들에게 많이 시달렸는지 지쳐 보이는 직원에게 물었다.
“저 표 남은 거 있어요?”
“아, 뭐 찾으세요?”
“어린이 연극, 봄이요.”
김수한의 말에 따라온 친구들은, 이 나이에 어린이 연극이라니, 먼 산을 보며 못 본 척했지만 연극을 본 직원과 김수한은 별생각 없이 대화했다.
“네. 아직 자리 있어요.”
“그럼 그거 5장 부탁할게요.”
“첫 공연 보셨나 봐요.”
“네. 여의주까지 샀어요.”
“뭐? 여의주를 샀어? 네가 애냐?”
“흐흐흐. 너도 보고 나면 사게 될걸?”
뒤쪽에선 아이들이 여의주! 청룡님! 을 외치고 있고 먼저 연극을 본 김수한도 여의주를 샀다니, 세 명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무슨 연극이길래 이 난리야?”
* * *
모두 극장에 입장하자, 관객석이 반쯤 찼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목소리에 관크를 예상한 학생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온 부모가 말리는 것 같기는 한데, 한껏 흥분한 아이들이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아이들의 손에는 아이들의 성화로 공연 전에 판매한 파란빛의 여의주가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싱글생글 웃으며 여의주를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데, 부모님에게 끌려온 아이들은 손은 텅 비어 있었다.
“진짜 안 사도 돼? 친구들 다 사잖아.”
“그냥 구슬이잖아. 나중에 자동차 사 줘!”
하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던 아이였다.
삐익- 소리가 들리고, 곧 극장 안이 어두워졌다.
막이 오르기도 전에,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 소리가 관객석을 울렸다.
“뭐지?”
첫날 공연을 보고 또 보러 왔던 관객들은 첫 공연과 다른 시작에 저절로 소리가 나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대 한쪽에 서 있던 서준이 살짝 웃고는 마이크를 켰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으흐흐흐.]
무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 같지도, 어른 같지도 않은 목소리에,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이상한 느낌에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도 말리다 지친 어른들도 합죽이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내 여의주……!]
그 한마디로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하나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첫날 공연과 같았다.
관객석은 혼이 쏙 빠져 무대 위를 유영하는 것처럼 연극에 몰입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봄이 위험에 빠졌을 때는 자신이 위험에 빠진 것처럼 반응했고, 봄이 울 때는 함께 울었다.
그리고, 청룡이 나타났다.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청룡의 모습에 다들 청룡에게서 멀어지듯,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눈이 꿈뻑 움직였다. 무시무시하고 신성한, 그 무거운 분위기가.
[시끄러워!]
아이 같은 청룡의 목소리에 산산조각이 났다.
서준은 새로운 캐릭터 해석에 신이나 연기를 이어갔다. 몸의 어딘가가 또 블루 드래곤이 되어갔고, 오감 중 특히 청각이 몇 배로 상승했다. 서준의 귀로 관객들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헉!
히익!
휴우.
모두 자신의 연기로 만들어진 반응이었다. 서준이 정말로 어린 청룡, 아니, 능력의 주인인 블루 드래곤 해츨링이 된 듯 외쳤다.
[시끄럽다고!]
“청룡님! 도와주세요!”
[난 못 도와줘! 내 여의주가 없단 말이야!]
생떼를 쓰는 부리는 듯한 청룡의 목소리인데도, 신기하게도 그 신성함과 인외적인 느낌은 여전했다.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의 힘이었다.
“이거요! 여의주예요!”
[내 여의주! 고마워! 내가 소원 하나 들어줄게!]
“제 소원은.”
그리고 그 몰입감이 넋을 놓고 무대를 보던 아이들을 움직였다. 현실과 이야기의 구분이 아직 힘든 몇몇 아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여의주를, 마치 봄처럼 머리 위로 들고 외쳤다.
“용돈 많이 받게 해주세요!”
“내일 피자 먹게 해주세요!”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최소영은 대사를 계속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 잠깐의 틈에, 귀가 밝아진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다른 사람은 소원이 없어?]
그 장난기 섞인 청룡님의 목소리에, 눈치 빠른 음악 감독이 배경음의 음량을 내렸다.
극장 안에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청룡의 말에 힘을 얻은 아이들이 자신의 여의주를 들고 소원을 빌었다.
여의주를 사지 않았던 아이들은 신나게 소원을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에 발만 동동 굴렸다.
“엄마가 얼른 낫게 해주세요!”
“내일 학원에 안 가게 해주세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소원이 들려왔다. 틈틈이 중얼거리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서준의 귀에 꽂혔다.
웅성웅성 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고 청룡의 시선이 봄에게로 향했다.
[너는 어때?]
“저도 소원이 있어요! 제발 비를 내려주세요!”
[좋아! 모두 들어줄게!]
아하하하! 밝은 청룡의 웃음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박지수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최소영과 서준에게로 다가왔다.
“둘 다 잘했어! 와! 진짜 잘했어!”
“그렇게 말할 줄 생각도 못 했어! 소영이 누나도 서준이도! 난 무대 망하는 줄 알았다니까!”
“다 서준이가 한 건데, 뭐.”
어른들과 친구들의 칭찬에 최소영은 서준에게로 공을 돌렸다. 하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저와는 달리 애드리브로 연극을 이어간 건 서준이었다.
“누나도 딱 맞춰서 해줬잖아요.”
서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때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야기를 더는 진행하지 않았던 것도, 자신의 애드리브에 적절히 답해주었던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둘 다 잘했어!”
박지수 감독의 손뼉을 시작으로 무대 뒤, 모든 사람이 두 배우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기뻐하는 동료들을 본 서준이 행복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가슴 속이 간질간질했다.
아, 너무 좋다.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이 연습실에 모였다. 무대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다음 무대를 위해 모두 모여 회의를 하기로 했다.
“다음 무대는 아예 소원 빌 시간을 넣을까?”
“그거 좋다!”
“감독님이랑 음악 감독님에게 말하자!”
“우리도 조금 대사를 바꿀까?”
그렇게 아이들의 의견으로 청룡과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조금씩 바뀌었다.
어떤 때는 어린아이 같은 청룡, 어떤 때는 할아버지 같은 청룡, 어떤 때는 진짜 신 같은 청룡. 아이들의 입에서 가지각색의 청룡이 등장했다.
화기애애한 무대 뒤와는 반대로 은하수 센터 로비는 공연 전보다도 시끌벅적했다.
공연 전, 별생각 없이 가판대를 지나친 아이들이 파랗게 반짝이는 여의주를 보자마자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의주! 여의주 사 줘!”
“나도 소원 빌래!”
말리다 포기한 엄마 아빠가 여의주를 사주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여의주를 들어 올렸다. 그중에는 자동차를 사달라던 아이도 있었다.
“청룡님! 소원을 들어주세요!”
“들어주세요!”
“또 보러 오자! 소원 빌어야 해!”
아이들의 성원에 바다 빛 여의주가 쉴 새 없이 팔려 나갔다. 그중에는 뭣 하러 여의주를 샀냐고 타박하던 세 친구도 있었다. 다들 뭐에 홀린 듯 여의주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야. 진짜,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아는데, 왠지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소원을 들어주는지 안 들어주는 지는 몰라도, 용이 있으면 진짜 저런 느낌일 것 같더라.”
다들 청룡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듯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긴장했던 모양인진 온몸이 뻐근해졌다.
“근데, 이거 봤어?”
“뭐?”
김수한이 팸플릿을 들어 보였다. 주인공 봄 역의 최소영부터 나무꾼, 사냥꾼 역의 배우 사진과 이름, 나이가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청룡 그림과 그 밑에 쓰인.
[청룡 역, 나 진/8세]
“……?”
“헐?”
“그게? 8살 목소리라고?”
학생들 말고도 팸플릿을 본 어른들도 신성한 청룡이 있는 극장을 한 번, 팸플릿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위엄 넘치는 청룡 연기와 엉뚱하지만 유쾌한 청룡 연기를 모두 봤던 김수한과 친구는 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잰가?”
“……요즘은 재능 있는 애들이 많구나.”
“근데 첫날 공연이랑 조금 다르더라.”
“첫날에는 조금 청룡이 할아버지 같던데, 이번에는 애 같았지.”
“그것도 있는데, 처음부터 확 몰입되는 느낌이라서 좋았어.”
“확실히 편집되면 끝인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연극이라서 이런 재미가 있는 듯.”
“다음 공연도 달라지려나?”
첫 공연을 본 친구들의 대화를 들은 나머지 세 사람은 다음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방학숙제를 위해 싸고 볼만한 연극을 찾던 주영고 학생들이 은하수 센터에 모여들었다.
* * *
“짱 재밌어!”
서준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요즘 서준은 공연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달력에 공연 날을 표시해두고 가위표를 치며 하루하루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연습실에 모이면 꺄르르 웃어대느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아빠는 할아버지 청룡이 좋더라.”
“엄마는 어린이 청룡.”
“난 다 좋아!”
매번 소소하게 바뀌는 공연 ‘봄’은 N회차 관객이 많았다. 첫날부터 공연 마지막 주인 이번 주까지 열심히 보는 관객이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그 관객이 직원을 통해서 7번의 공연 표를 붙인 사인지를 서준에게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일단 나 진의 사인을 보내주었지만, 나중에 꼭 이서준이라는 이름으로 사인을 보내주고 싶었다.
“요즘은 관객석이 꽉 찬다며?”
“응! 빈자리가 하나도 없어!”
관객들이 소원을 비는 시간이 따로 마련된 3회차 연극이 끝나고 후기가 하나 인터넷에 올라갔다.
[제목: 어린이 연극 ‘봄’ 꼭 보세요!]
은하수 센터에서 하는 어린이 연극 ‘봄’ 꼭 보세요!
정말 멋진 연극이에요.
특히, 연극을 보고 난 후에 저희 아이가 착한 일을 하면 기념품으로 산 여의주-3조각으로 나뉘어요!-를 하나 주거든요.
그거 3개를 모으면 청룡님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까, 칭찬 스티커 모으는 것보다 열심히 하네요.
덕분에 밥도 잘 먹고 장난감도 잘 치우고 책도 열심히 읽어요. 요새는 청룡님이 나오는 책만 찾고 있는데 많이 없네요.
물론, 너무 들어주기 힘든 소원은 ‘청룡님도 못 들어줄걸?’하고 청룡님 핑계를 대곤 하지만요. 죄송합니다. 청룡님.
칭찬 스티커의 효과가 떨어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세요!
맘카페에 후기가 올라간 덕인지 아이들도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학생들 사이에도 입소문이 퍼져 요새는 청소년이나 어른들도 많이 왔다.
연일 매진되는 기록에 신이 난 문체부가 기자들에게 자료를 뿌렸다.
[문체부 후원, 어린이 연극 봄 매진 행렬!]
[봄을 이끌어나가는 베테랑 아역 배우, 최소영!]
[누구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아역 배우들이 나타났다!]
[8세, 나 진. 재능있는 성우!]
[성우계의 제2의 이서준! 나 진!]
-요샌 좀 뜬다 싶으면 제 2의 이서준이라고 하더라.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그냥 애들끼리 하는 연극이잖아. 유치할 게 뻔함.
=애들이 열심히 하는데 칭찬 좀 해라. 제목을 저렇게 붙인 건 기자임.
마지막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 문체부에서는 연장 공연을 바랐지만 봄 팀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은 이제 곧 개학이었고, 어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서준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 *
그리고 석 달에 걸친 무대가 끝나는 마지막 공연 날이 되었다.
마지막.
그 한 단어가 봄의 배우들에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서준이 연습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형누나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우리가 모여서 간식을 먹는 일도 없을 거고 우리가 함께 다음 무대의 대사를 바꾸는 일도 없을 거다.
누군가 훌쩍,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가가 새빨개졌다. 서준의 눈가도 붉게 변했다. 눈물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너무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3달이어서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고 아쉬웠다. 영영 못 만나는 건 아니지만, 이 팀으로 무대에 서는 날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서준은 더 슬펐다.
“울지 마! 화장 지워져!”
최소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런 말을 한 것치고는 소영이 누나도 코끝이 빨갰다.
“우리 힘내자! 마지막이니까! 최고로 멋진 연기를 하자!”
최소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요 석 달 사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뻗었다.
모두 누나 손 위에 형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한 명 한 명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봄!”
“봄!!”
“화이팅!!”
아이들이, 서준이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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