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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9화 (6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9화

삐익- 소리가 울리고 관객석이 어두워졌다.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커튼이 올라갔다. 다들 무대 위를 보고 감탄했다. 어린이 연극이라고 해서, 동화처럼 동글동글하고 단순한 배경일 줄 알았는데, 어디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집들과 나무의 흔들림까지 표현한 배경이었다.

주인공, 봄의 마을에는 몇 년 동안 가뭄이 닥쳤다. 결국, 동생이 쓰러지자 드림은 전설로 내려오는, 세계의 수호자 청룡에게 소원을 빌러 청룡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봄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고 그 보답으로 알 수 없는 유리 조각을 받았다. 쓸데는 없지만, 동생에게 선물로 줘야지, 생각한 봄은 보따리에 잘 간직했다.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고 말았다. 아니, 쟤들이 아이들이라고? 무대 장치도, 소품도 어디 하나 모나지도 튀지도 않고, 진짜 같았다.

특히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니, 모습이 마치, 텔레비전으로 해외 어느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았다.

저기서 몇몇은 이번 무대가 처음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진짜 농사꾼 같았고 나무꾼 같아서 연습하는 한 달 내내 아이들의 보호자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이런 재능이 있나? 연기 쪽으로 가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 삼아 시켜본 다른 연기는 여전히 초보 수준이라서 이번 연극이 특별한 경우인 걸 깨달았다.

마침내 봄이 청룡의 동굴 앞에 도착했다.

“청룡님, 청룡님!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봄은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제 동생 좀, 저희 마을 좀 살려주세요.”

그 간절한 모습에, 최소영과 같은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던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쟤가 잘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봄은 가뭄으로 괴로워하던,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은 봄이 도와주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였다.

청룡님이 비를 내려주시는 것!

“청룡님, 청룡님! 모두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때, 우르르 쾅쾅! 커다란 소리가 극장을 울렸다. 새로 설치한 스피커의 화력에 무대 감독이 몸을 떨었다. 역시 비싼 게 제값을 해!

스크린 속 맑았던 하늘에 뭉게구름이 잔뜩 끼고 해가 사라졌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번쩍! 번개가 쳤다.

그리고 무대 중앙에 놓인 소품 뒤에 서 있던 서준의 눈이 바다 빛으로 반짝였다.

아무도 서준을 보지 않는 지금은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서준의 눈동자와 함께 머리카락의 색도 변했다. 조그마한 뿔도 자라났고 용의 비늘이 볼과 손등에 새싹이 돋듯 돋아났다.

이번에는 시각이 강화된 듯, 소품 너머에 관객석을 등지고 자신 쪽을 보며 열연하는 소영이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조명이 강했지만 드래곤화된 서준은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표정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연극을 보는 것처럼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재미있게 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관심 없어 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연극은 이래서 좋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곧 놀란 표정을 지을 사람들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서준이 히죽 웃었다.

여기,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블루 드래곤이 있다.

서준은 입을 열었다.

무대 감독이 준비한 목소리 변형 기계를 통해, 한 차례 걸러졌지만 중하급의 능력은 대단했다.

[시끄럽구나.]

그 한마디가.

어린아이인 듯 성인인 듯, 알 수 없는 그 목소리가.

텔레비전의 화면을 뚫고, 무대 위의 세계와 무대 아래의 세계를 연결했다.

관객들은 압도적인 무언가에 저절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빌고 있던 봄이, 멀게만 느껴지던 봄의 태도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자신이 마치 엄청난 존재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연극은 연극이 아니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동굴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커다란 청룡이 나타났다.

동굴을 빠져나온 청룡은 넓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봄과 관객들이 고개를 들어 천장까지 올라가 있는 청룡을 보았다.

그리고 청룡이 봄에게로 다가왔다. 저 끝에서 날고 있던 청룡이 날아왔다.

가까이.

커다란 눈과 마주칠 정도로 아주 가까이.

“어? 어!”

어른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청룡을 보며,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의자 등받이에 막혀서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다들 몸을 웅크리듯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진다 싶을 때.

청룡의 머리가 스크린을 뚫고 무대 위에 나타났다.

헉!

관객들이 헛숨을 들이키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압도당한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입을 헤에 벌리고 진짜로 나타난 청룡을 바라보았다.

청룡의 기다란 수염이 파도처럼 물결쳐 무대의 양 끝까지 이어졌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봄과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청룡이 된 것처럼, 저 앞에 있는 모두가 조그맣게 느껴졌다. 강화된 시력이 관객들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

기이한 경외감에 뒤로 물러선 어른들, 따뜻한 신성함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아이들.

서준은 인간 왕국을 수호하던 해츨링의 조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시끄럽구나, 아이야.]

그 목소리에,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춥지도 않은데 소름이 돋았다.

평생 보지 못한 인외의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거대하고 신령한 것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을 뿐이었다.

김희상은 문득, 이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령.

물론 조금 다르긴 하다. 악령 때의 연기가 장난기 가득했지만 보다 인간적이었다는 느낌이라면 이건 진짜, 인간 외의 것이 말하는 것 같았다.

“청룡님! 제발 도와주세요.”

관객석 모두가 입을 열지도 못하는데, 연습으로 익숙해진 봄은 잘도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열심히 몸짓하며 커다란 눈을 가진 청룡에게 알려주었다.

두 눈을 끔뻑거리며 듣던 청룡의 기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으음. 미안하구나.]

“네?”

[누가 내 여의주를 훔쳐 갔단다. 그게 있어야 비를 내릴 수가 있는데…….]

청룡의 말에 봄이 벌떡 일어났다.

“제가 찾아올게요! 여의주만 있으면 되죠?”

[그래. 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아마 여의주가 부서진 것 같구나.]

“괜찮아요! 얼른 찾아올게요!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 주세요!”

청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개한 청룡의 눈이 기억을 더듬듯 깜빡였다.

[파랗고 예쁘게 생겼지. 이런 무늬가 새겨져 있단다.]

봄의 앞에 물방울무늬가 생겨났다. 청룡의 능력에 아이들이 와아!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 문뜩, 봄은 이걸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주 가까운 곳.

내 보따리!

“내 보따리!”

[으음?]

봄이 얼른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그 안에서 세 개의 유리 조각이 나왔다. 봄은 청룡이 잘 볼 수 있게 유리 조각을 번쩍 들어 보였다.

“청룡님! 이거 여의주예요!?”

항상 반쯤 감겨 있던 청룡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여의주란다. 정말로 고맙구나. 보답으로 소원을 하나 이루어주마.]

“잘됐어요! 청룡님! 소원이에요! 얼른 비를 내려주세요.”

[그것 말고 다른 소원은 없느냐?]

“네!”

[그래. 잠시만 기다리렴!]

청룡이 눈짓하자 봄의 손에 있던 유리 조각들이 공중으로 올라와 번쩍 빛나고 둥그런 여의주로 변했다. 그리고 청룡의 발에 여의주가 딱 알맞게 들어갔다.

[으음!]

만족스러운 신음을 뱉은 청룡의 머리가 천천히 스크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스크린 가득 이리저리 움직이는 청룡의 모습이 보였다.

서준은 능력의 주인인, 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하나뿐인 가족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유쾌하고 믿음직스럽고 의지가 되는, 모든 걱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호쾌한 웃음소리.

삶의 책 덕분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조부의 웃음소리를 따라, 웃었다.

[으하하하하!]

청룡의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소리에 관객들의 마음도 묵직한 것이 비에 쓸려 내려가듯 상쾌해졌다.

무대에도 비 같은 것이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쏟아부은 무대 효과였다.

해가 지고 달이 지고 며칠이 지나 봄은 자신의 마을에 도착했다.

청룡님이 내린 비에 신비로운 힘이 있는 모양인지, 밭과 논이 벌써 수확을 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다들 기쁜 얼굴로 추수하고 있었다.

“언니!”

그리고 병이 다 나은 봄의 동생, 가을이 달려와 봄을 반겨주었다.

자매의 포옹으로 연극이 끝났다. 묵직한 검은색 커튼이 무대를 가리며 내려왔다.

곧 관객석이 밝아졌다.

짝-!

짝짝짝!!!

박수 소리가 극장을 울렸다.

* * *

첫 무대를 끝내고 작은 파티가 있었다. 아직 많은 공연이 남았지만, 다들 즐겁게 웃으면서 부모님들이 준비한 음식들을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은 박 감독이 말했다.

“순서를 조금 바꾸자고?”

박지수 감독의 옆에 앉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손에는 피자 빵과 우유가 든 잔이 들려 있었다.

“네. 관객분들 보니까, 처음에는 조금 벽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건 그렇지. 일상극을 해도 그런 기분이 드는데, 이건 완전히 동화 같은 이야기니까.”

박지수 감독의 말에 서준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완전히 몰입한 게 보이잖아요.”

“그래.”

내내 무대와 관객석을 번갈아 보던 박지수 감독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처음에는 어린이 연극치고는 애들이 잘하는구나, 팔짱만 끼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청룡이 나올 때부터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완전히 연극에 빠져들었다.

산만했던 어린이 관객들도 청룡이 등장할 때는 입을 벌린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다.

몰입의 또 다른 지표는 여의주였다. 은하수 센터 사장이 기념품으로 준비한 파란빛의 여의주가 절찬리에 팔려 나갔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나가는 길에 번쩍이는 파란색 여의주를 하나씩 사 갔다.

다들 꾸며낸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반쯤은 미신처럼 믿음이 가는 표정이었다.

“전부 서준이 덕분이지.”

“그러니까, 앞에서도 청룡이 조금 나오면 어떨까요?”

“어떻게?”

“음. 여의주를 잃어버리고 엉엉 우는 청룡 같은?”

서준의 말에 어느새 다가온 최소영이 앉으며 말했다.

“너무 없어 보이지 않아?”

“근데 누나. 아하하하 웃는 청룡도 영…….”

대본에 있고, 해츨링의 조부도 그렇게 웃어서 신나게 웃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인간 왕궁에 갔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웃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언제나 근엄한 척 진지한 얼굴로 있던 수호룡이 레어에만 돌아오면 실실 웃으면서 손주를 찾았다.

“하긴 말투도 ‘아이야’ 그러는데.”

어느새 다가온 이다진과 아이들도 서준과 박지수 감독의 이야기에 동참했다. 다들 한마디씩 의견을 보탰다.

아이들의 의견이 모여 결국 청룡의 대사를 추가하고 변경하기로 했다. 다음 공연은 삼 일 뒤니 그동안 연습하기로 했다.

“괜찮아요? 박 감독님? 애들이 막 대사를 바꾸는데.”

조연출의 말에 박 감독이 웃었다.

“우리는 밖에서 보지만, 쟤들은 직접 연기를 하면서 느끼잖아. 우리는 모르는 무대 안의 세계가 있는 거겠지. 우리가 흥행을 바라고 이런 기획을 했다면 다르겠지만 이번 기획은 아이들을 위해서 기획된 거니까, 이 정도의 수정이야 뭐.”

잘 자란 제자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서준과 아이들을 바라보던 박지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겠지.”

언제나처럼 박수 소리로 아이들의 시선을 끈 박지수 감독이 말했다.

“애들아.”

“네!”

“다른 연극 가서도 이렇게 막 바꾸면 안 된다. 우리라서 가능한 거야.”

“네에!!”

우리.

그 단어가 서준과 아이들의 마음에 콕 박혔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서준도 알았다. 이렇게 자유롭고 재미있는 연극 무대는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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