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7화
아니, 문은 부드럽게 닫혔지만, 보호자들은 그렇게 느꼈다.
예상하지도 못한,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상황에 다들 입만 벙긋거렸다.
박지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 배우에 대해서는 꼭 비밀 엄수 부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잘 말씀해 주시고요.”
“……왜죠? 이서준이 나온다고 하면, 엄청 화제가 될 텐데요.”
연기 학원 관계자의 물음에 박지수 감독이 서준이 예명을 쓰게 된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보호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자기 아들이, 딸이, 학원생이 이서준과 연기를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연신 사람들이 몰려오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이서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타가 될 기회였다.
그런 보호자들의 생각을 알았는지, 박지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만약, 연습 기간에 비밀이 알려진다면, 이서준 배우는 그만둘 겁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고 공연 중에 알려진다면, 그 이후 공연은 모두 다른 성우분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박지수 감독의 말에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호자들을 살펴보던 박지수 감독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감독이 사라지자 다들 편하게 자기 생각을 내놓았다. 다들 어째서 이서준 이름으로 홍보를 하지 않는지 불만이 가득했다. 그때,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연극이 끝난 후에 알려지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왜요?”
“연습 기간에 빠진다면, 이 연극은 이서준의 필모에도 안 들어갈 거예요.”
“그럼 공연 중에 알리는 건요?”
“공연 중간에 빠진다면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다가오겠죠. 이서준 배우랑 친하냐, 연습 때 어땠냐, 공연 때는 어땠냐.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모두 이서준이 왜 연극에서 빠졌냐만 파고들 거예요.”
모두 여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면 이야기가 돌겠죠. 누군가 비밀 엄수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고. 그러면 대중의 질타가 아이들과 부모님, 학원에 쏟아지겠죠.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계약을 어긴 사람들이라면서요.”
“……그렇게까지 될까요?”
“기자들은 해요.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숨긴 이서준을 건들 수는 없으니, 이서준 이름을 넣으면서도 화제가 될 만한, 자극적인 내용으로 조회 수를 올리는 방법을 찾는 거죠.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에 이서준 배우가 연극을 못했다? 화제가 안 될 수가 없죠.”
어쩐지 기사 제목이 떠오를 것 같아서, 누군가 침을 꼴깍 삼켰다.
“연극 팸플릿에 아이들 이름이 올라와 있고 초등학교 같은 건 금방 알아내요. 연기 학원도 마찬가지죠. 그 뒤는 다들 짐작하실 거예요. 그게 가장 최악의 경우죠.”
“……그렇네요.”
“그럼 가장 좋은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모두가 비밀 엄수를 하고 연극이 무사히 끝나는 거요. 감독님이 말한 대로 연극이 끝나면 알려도 된다고 했으니, 그때부터 알려야죠. 우리 아이가 이서준이랑 같은 무대에 섰다고. 오히려 더는 연극을 볼 수가 없으니, 같이 무대에 올랐던 아이들에게 인터뷰가 쏟아질 거예요. 거기에서 인상 깊게 남으면 드라마나 영화 출연은 문제도 아니겠죠.”
보호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학원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서준’과 함께 연기한 ‘아역 배우’가 있는 연기 학원.
조금 이상한 문구지만, 아역 배우의 세계에서 ‘이서준’의 이름이 붙은 것은 뭐든 팔렸다.
아직도 절찬리에 팔리는 엘리펀트 분유. 이서준이 가지고 놀았다는 몬스터사의 인형. 간간이 올라오는 너튜브 브이로그에 보이는 일상용품.
아역 배우 지망생이라면, 가족이라면 꼭 가져야 할 것 같은, 이렇게 키워야 할리우드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믿음이 있는 물건들.
여기에 있는 보호자들도 가지고 있었다.
“뭐, 연극이 끝날 때까지 비밀이 지켜져야 하겠지만요.”
여자의 말에, 모두 자신의 자식과 제자의 미래를 생각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 완료!
<수고하셨습니다.
>다호 씨도 수고하세요!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서준을 보며 안다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둘째 날 연습이 모두 끝났다.
아이들과 보호자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서준과 안다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서준이 카시트에 오르자 안다호가 점검을 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아이들은 어땠어?”
안다호가 멀리서 지켜보기에는 화기애애했지만 직접 대화를 한 서준과는 다를 수 있었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좋아요! 근데 연습을 장면별로 나눠서 한다고 단체 연습이 아니면 만날 시간이 별로 없을 거래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봄의 대본을 떠올렸다.
“서준이는 맨 마지막에 나오잖아. 같이 나오는 캐릭터가…….”
“주인공이요! 소영이 누나하고만 연습한대요!”
“그것참.”
장면별 연습에 실망할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떠올랐지만, 안다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호자들 사이에 몰래 잠입한 2팀의 직원이 최악의 상황을 잔뜩 이야기해 뒀으니, 웬만하면 비밀은 지킬 터였다.
이서준과 친해지지 못해도, ‘이서준과 함께 연극을 한 사이’라는 건 이서준이 유명해지면 질수록 아주 대단한 타이틀이 될 터였다. 다음에 배우로서 서준과 만날 때, 이야기를 트기도 쉬울 테고.
‘부디 2팀의 계획대로 조용히 끝나기를.’
시동을 거는 안다호가 마음속으로 빌었다.
* * *
한 달의 연습 기간 중 반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게만 대하던 아이들도 곧 서준이 유명한 배우라는 사실을 잊고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다. 장면별 연습에 실망하고 있던 부모들과 학원 관계자들도 그 모습에 만족했다.
“서준아! 아이스크림 먹어! 우리 엄마가 사 왔어!”
“응! 갈게, 형!”
특히 간식을 사 오는 것은 다른 연습실로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대부분 아이스크림이나 빵, 우유 같은 간단한 간식이었지만, 서준이 때때로 피자나 햄버거를 사 오기도 했다.
“서준아, 다음엔 치킨 먹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사냥꾼 역의 이다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벌써 연극에 출연하는 건 네 번째인데, 이렇게 연습 날마다 간식을 주는 연극은 처음이었다.
“그럴까요?”
“난 피자 먹고 싶어.”
“누나. 저번에 먹었잖아.”
그 화기애애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호자들이 열심히 촬영했다. 이서준과 함께 있는 아이들의 영상! 그러다가 박지수 감독과 눈이 마주치면 손으로 입에 지퍼를 닫는 시늉을 했다. 박지수 감독은 비밀만 지켜지길 바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단체 연습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연극이 올라갈 무대 위에서 단체 연습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박지수 감독과 함께 오디션을 봤던 무대에 도착한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것도 없었던 오디션 때와는 달리, 무대 제작팀에서 아직 만들고 있는 배경 소품이 되어줄 빈 상자들이 박지수 감독의 지시대로 적절히 무대 위에 있었다.
“일단 순서대로 동선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장면별 연기 담당자가 아이들에게 달라붙었다. 주인공 ‘봄’ 역을 맡은 최소영에게는 박지수 감독이 따라다녔다.
스크린 배경은 이미 완성되었는지 관객석 위에서 빔이 쏟아져 무대 뒤 스크린에 배경이 나타났다. 아이들 연극과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동화 속 배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준이 등장할 차례였다. 박지수 감독의 손짓에 서준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천장에서 흰색 천이 떨어지며 펼쳐졌다.
“우와!”
아이들의 함성과 함께 서준도 와! 하고 감탄했다. 청룡이었다. 흰색 천에 그려진 멋진 청룡이 그곳에 있었다.
“이게 나중에 스크린에 나올 청룡이야. 서준이가 하는 배역이지. 서준이는 여기서 마이크로 말하면 돼.”
서준은 박지수 감독이 가리키는 자리에 섰다. 서준의 앞에는 얇은 판자가 서 있었는데, 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서준의 키에 맞춘 모양인지 앞에 걸릴 것 없이 무대가 다 보였다.
“여기에 서준이가 잘 볼 수 있게 할 거야. 물론 관객석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소영이랑 연기할 때, 소영이를 보고 타이밍을 맞춰야 해. 알겠지?”
“네!”
그렇게 아이들에게 배역의 위치와 동선을 알려주고 서로 연습하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며 연습하고 있을 때, 박지수 감독이 시간을 확인하고 박수를 쳐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럼 오늘 마지막 연습 시작하겠습니다! 조명도 음악도 효과음도 모두 공연처럼 할 겁니다. 대사가 틀려도, 타이밍이 많지 않아도 이번에는 끝까지 할 예정입니다! 모두 집중해 주세요.”
아이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연습실에서 효과음과 조명은 선생님들의 말로 만들어졌다.
‘스포트라이트!’
‘큰 소리가 들려온다.’
‘배경이 바뀌고.’
이제는 정말로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제일 첫 장면에 등장할 아이들이 무대 위에 섰다. 스태프들도 상자를 옮겨 첫 장면의 무대를 꾸몄다.
두 번째 장면에 등장할 아이들은 올라가기 쉽게 가까운 곳에 서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거나 근처에 앉아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준은 아이들의 이동에 방해되지 않게 조금 떨어져 의자에 앉았다. 서준의 시선은 무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모니터하기 위해 관객석 몇 군데에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무대를 잘 비추고 있는지 확인한 스태프들이 신호를 보내자 박지수 감독이 크게 소리쳤다.
“시작합니다!”
음악이 흘렀다.
아이들은 더듬더듬 동선을 찾아가고 활기차게 연습했던 연습실 때와는 달리 소심하게 연기하면서도 이야기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최소영이 가장 베테랑답게 아이들을 이끌었다. 아이들이 틀리는 곳을 체크하고 배경의 위치와 소품의 위치, 조명을 생각하던 박지수 감독이 손짓했다.
마지막 장면, 서준의 차례가 되었다.
이미 차례를 끝낸 아이들은 마음 편히 관객석에 앉아 있었고 보호자들은 각자 아이들을 휴대폰으로 찍기 바빴다.
스태프들도 끝나가는 단체 연습에 반쯤 마음을 놓고 움직였다.
박지수 감독의 손짓에, 천장에서 청룡 그림이 펄럭 떨어졌고, 서준이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대었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가 발동됩니다.]
서준의 검은색 눈동자가 바다 빛으로 변했다. 검은색 머리카락의 끝도 파랗게 물들어갔다. 온몸의 감각, 특히 청각이 곤두섰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다호 형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좀 더. 좀 더.
서준의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딱딱한 두 개의 뿔이 자라났다. 분홍빛이 돌던 통통한 볼에 맨들맨들한 푸른빛 비늘이 생겨났다.
서준은 자신의 손등에 돋아난 파란색 비늘을 바라보았다.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중하급]
어린 블루 드래곤(해츨링)의 피어입니다.
피어만으로도 ‘격’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피어의 강도에 따라, 신체 일부가 블루 드래곤화됩니다.
‘이래서 연습실에서는 못 썼어.’
오디션 때는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고, 눈동자 색은커녕 머리카락 색도 밝은 조명에 가려져서 마음 놓고 썼다.
하지만 연습실에서는 소영이 누나도 가까이 있었고, 조명도 적당했다. 딱 들키기 좋은 상황이라서 능력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디션 때도 피어의 강도가 약했고, 그 이후에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만한 연기에도 사람들은 만족했지만 서준은 아쉬웠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다. 판자에 서준의 모습이 가려진 지금이, 마음껏 실력을 뽐낼 기회였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그리고,
극장에 청룡이 나타났다.
무대가 끝나고 관객석에 앉아 있던 아이들, 구경하던 보호자들, 걸어 다니던 스태프들 할 것 없이, 모두 무대에 설치된 청룡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 그저 밋밋한 평범한 그림이었다. 그저 멋들어지게 그려진 청룡 그림인데,
“……저거 무슨 장치 했어요?”
한 보호자의 물음에 스태프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대형프린터로 뽑아놓은 멋지긴 하지만, 평범한 파란색 용 그림이었다.
“와. 진짜 청룡님인 줄 알았어.”
“그러게! 정말로 청룡님한테 소원 비는 것 같았어.”
아이들이 조잘조잘 떠들어대자, 그제야 어른들도 정신을 차렸다.
박지수 감독과 첫 단체 연습을 구경 온 사장도 해탈한 얼굴로 청룡 그림과 객석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 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진짜 아까워 죽겠네요.”
“동감입니다.”
“진짜 아까워요!”
“백번 천번 동감합니다.”
그렇게 아깝다는 이야기만으로 대화하던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아깝…….”
“……저기 사장님.”
“네……. 아, 네. 무슨 일이에요?”
모자를 뒤로 쓴 무대 감독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들고 온 노트를 펼쳤다.
“아까, 단체 연습 보면서 생각한 건데, 여기에 장치를 더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있는 세상처럼. 나무도 꽃도 집도, 현실감 있게요. 특히 청룡은 영상 말고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이 나올 수 있게…….”
한동안 무대 감독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장과 박지수 감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시간을 확인한 조연출은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장이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 보았다. 2주. 이제 공연까지 2주가 남았다.
“공연까지 만들 시간이 되겠어요?”
“시간은 됩니다만…… 예산이…….”
무대 감독이 뒷목을 매만졌다. 그가 만들고 싶은 배경과 소품, 그리고 청룡은, 그저 아기자기하게 만들려던 소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지도 음. 짐작되긴 하는데.
무대 감독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 사장에게로 향했다.
“예산은 걱정 마세요.”
서준의 연기를 보고 무대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팽팽 돌아가던 머리가 멈추었다. 은하수 센터 사장의 눈이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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