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65화
다음 날.
얼른 학교와 학원에 다녀온 서준을 흥행에 상관없이 그저 문제작과 아닌 작품을 구분해, 대본과 시놉시스를 한가득 안고 온 안다호가 반갑게 맞았다.
“이게 우리가 골라낸 거야.”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다호 형.”
“응?”
서준은 천천히 어젯밤 엄마 아빠, 희상이 삼촌과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래서 예명으로 나가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예명?”
“네!”
안다호가 볼을 긁적거렸다. 같이 출연할 아이들까지 생각하는 서준의 모습이 기특했다.
근데, 배우의 매니저로서는 좀. 곰곰이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생각하던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상관없지만 서준이는 꼭 하고 싶어?”
“네!”
배우가 하고 싶다는데. 그제 축 늘어졌던 서준과는 반대로 환하게 웃는 자기 배우의 얼굴에 안다호는 씨익 웃었다.
“신청서에는 본명으로 내자. 어차피 합격하고 연습하려면 다들 서준이 얼굴 보게 될 거야. 저쪽 사람들은 알아야지.”
“아 참. 그렇지.”
“신청서는 지금 같이 쓸까?”
“네!”
안다호가 노트북을 펼치고 서준은 안다호의 옆에 앉았다.
* * *
어린이 연극을 기획한 곳은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크기의 극장을 가진, 은하수 센터였는데, 아역 배우의 육성을 위해서 올해 시범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기획이었다.
첫 시도라서 그런지 브라운관이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도 가리지 않고 받았다.
신청일이 지나고 1차 서류 심사가 시작되었다. ‘제2의 이서준’의 자리를 노리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이 늘었는지 신청서가 많았다.
다른 팀 직원까지 불러모은 덕분에 별문제 없이 진행되던 서류 심사가 한 신청서 때문에 뒤집혔다.
연출을 맡은 박지수 감독이 머리를 싸맸다.
“이서준이 나오는데, 목소리만 나오는 청룡 역에, 이름까지 예명으로 하고 싶다니…….”
“어떻게 할까요? 감독님.”
조연출의 물음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신청서를 내려다보던 박지수 감독이 고개를 들었다.
“일단, 오디션 보죠. 이번 연극으로 우리가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위한 연극이니, 이서준 배우가 나오지 못할 이유도 없죠. 게다가…….”
박지수 감독이 신청서에 적힌 이력을 바라보았다.
쉐도우맨 1
악령
쉐도우맨 2
재수사, 카메오.
“이 정도의 이력을 가진 배우면, 같이 연기하는 다른 아이들도 배우는 게 있겠죠.”
* * *
어린이 연극 [봄]의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서준은 안다호와 함께 은하수 센터로 향했다.
서준은 카시트에 올라가 앉아 스스로 안전띠를 채웠다. 안다호는 서준의 카시트와 안전띠를 점검하고는 운전석에 가서 앉았다.
앞으로 서준의 발이 되어줄 차 안을 둘러보며 서준이 물었다.
번쩍번쩍하고 반들반들한 모양새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우리 차보다 좋아!
“다호 형. 이 차, 새 차예요?”
“응. 사장님이 서준이 거라고 새로 사셨어.”
“우와.”
서은찬과 2팀 직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차로 골랐다. 돈 걱정하지 말라는 사장님의 말에 다들 신이 나서 차를 골랐다.
본인이 탈 건 아니지만, 카탈로그를 잔뜩 늘어놓고 돈 걱정 없이 고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꼈다.
“근데 저 언제까지 카시트에 앉아요?”
“서준이 키 아직 145 아니지?”
“네.”
“몸무게도 36까지는 돼야 차 안전띠를 쓸 수 있어. 서준이는 아직 멀었네.”
“그렇구나.”
이제는 카시트가 친근감이 들 정도였다. 서준이 두 발을 달랑달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호는 안전하게 운전했다. 간혹 느린 속도에 끼어들기를 하려던 차량도 번쩍번쩍 빛나는 서준의 차에 기가 죽어 속도를 늦추었다.
서준의 차는 곧 은하수 센터에 도착했다. 안다호가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문을 열 때까지 서준은 얌전히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이제 내려도 돼.”
“네!”
안다호의 말에 그제야 서준은 카시트의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차가 멈추면 알아서 벨트를 풀고 내릴 수 있지만, 엄마 아빠는 항상 서준에게 어른이 내려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내리라고 했다.
서준과 안다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은하수 센터 1층으로 올라갔다.
띵동-
1층입니다.
“또 아니네.”
어린이 연극 [봄]의 오디션 마지막 날, 그리고 청룡 역 오디션 당일.
출근한 직원들의 시선이 아까부터 계속 엘리베이터를 향하고 있었다. 띵동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번개처럼 고개가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아이와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고개를 쭉 빼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긴 여자아이면 금세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지만 남자아이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아이만 계속 보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주는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다들 아쉽다는 얼굴로 다시 제 할 일을 시작했다.
“이제 오디션 시간 아니에요?”
“이제 걔만 오면 다 온 거예요.”
어디서 이야기가 새어 나갔는지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의 말에 다들 엘리베이터를 노려보았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왔다!
띵동, 1층입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아이와 보호자가 나타났다. 은색 배지가 달린 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써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들 짐작했다.
인원을 체크하는 직원이 얼른 달려갔다.
“생각보다 평범하죠?”
“그러네요. 솔직히 이서준이라면 그냥 서 있어도 아우라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쉐도우맨 2 촬영 전에는 그랬다.
“이서준 배우?”
“네.”
오디션을 도우러 온 직원이 애써 떨림을 숨기며 명단에 체크를 했다. 그리고 번호표를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오디션 번호예요. 나중에 번호를 부르면 앞에 나오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직원이 안다호를 보며 말했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션이 끝나면 바로 가셔도 돼요. 결과는 나중에 알려드리거든요.”
“알겠습니다.”
“대기할 곳은 이쪽이에요.”
직원이 안다호와 서준을 안내해 주었다. 그저 작은 대기실을 생각했던 서준과 안다호는 직원이 향하는 곳에 있는 커다란 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직원은 굳게 닫힌 두꺼운 문을 열었다. 활짝 열린 문 뒤로, 커다란 무대와 넓은 관객석이 보였다.
“오디션은 연극 공연을 할 무대에서 볼 거예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 조연출님이 부르실 거예요.”
“……무대에서 말입니까?”
“네. 무대에 서 본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여기서 겁먹지 않고 오디션을 보는 것도 시험이라고 하셨어요. 청룡 역이 목소리만 나오지만 무대 위, 소품 뒤에서 배우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거든요.”
직원의 말에 안다호와 서준이 다시 공연장을 바라보았다. 하긴, 관객이 없는데 무대에서 겁먹는다면 관객이 가득 찼을 때는 무대에 서지도 못할 터였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자리를 뜨고 서준과 안다호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군데군데 오디션을 보러온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보였다.
연신 무대와 관객석을 둘러보며 겁먹은 듯 울먹거리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달래는 보호자. 그저 넓은 장소가 마음에 들어 뛰어다니는 아이와 휴대폰만 보고 있는 보호자. 대본을 열심히 읽는 아이도 있었다.
까만 야구모자를 눌러쓴 서준은 관객석과 무대를 번갈아 보았다.
바람극단이 있던 소극장과는 많이 달랐다. 무대도 넓고 깨끗하고 관객석도 많았다.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도 조금 있었다.
‘음.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
서준이 생각한 무대는 바람극단보다는 넓어도 배우의 시선까지 느껴질 정도로 작은 무대였다.
서준의 미묘한 표정에 안다호가 물었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아뇨. 생각보다 무대가 커서요. 난 이것보다 작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의 머릿속에 바람극단의 소극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소극장처럼 작은 곳?”
“어? 다호 형이 어떻게 알아요?”
안다호가 웃었다. 서준의 팬인 그는, 사진이 뜨자마자 연극을 보고 왔다.
“나도 그 연극 봤거든. 근데, 그렇게 작은 곳은 안 돼.”
“……안 돼요?”
안다호의 단호한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관객들이 조금 더 배우의 호흡을 느꼈으면 했는데 안 된다고 말할 정도인가?
“그렇게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곳은 위험해. 연극 도중에 무대에 난입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무대 위로 뭔가 던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거든.”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안다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겨우 2년 동안의 연예계 생활이었지만 볼꼴 못 볼 꼴 다 보았다.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서는 객석과 무대는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 좋아.”
“네.”
아쉽다는 얼굴로 객석과 무대 사이를 보던 서준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럼 바람극단 형 누나들은요? 괜찮아요?”
“큰 사고가 났다는 소리는 없는데 자잘한 사건은 있나 봐. 그래도 그쪽은 전부 성인이니까 서준이보다는 괜찮을 거야.”
“다행이다.”
안심하던 서준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서준이 물으면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해 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람극단의 현재 상황까지 알 정도라니 신기했다. 안다호가 볼을 긁적였다.
“원래 매니저가 그래. 배우들이 신경 쓰지 못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하지. 바람극단은 서준이랑 인연이 있는 극단이고, 아직 화제니까 알아둬야 해.”
코코아엔터 2팀에서는 바람극단과 서준의 이름이 엮여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도 안다호의 휴대폰으로 ‘바람 이상 무!’ 라고 문자가 도착했다.
“그렇구나.”
코코아엔터의 상황을 모르는 서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관객석의 불이 꺼졌다. 무대 위가 환해졌고, 무대로 향하는 통로만이 이동에 위험하지 않게 밝아졌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가 극장을 웅웅 울렸다. 그에 뛰어놀던 아이들도 대본을 보던 아이도 모두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여자가 서 있었다.
[어린이 연극, 봄의 감독 박지수입니다.]
여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짝짝 박수 소리가 나왔다. 서준이었다. 그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쳤다.
[이제 곧 청룡 역의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번호를 호명하는 순서대로 여기 이 자리에 서서 연기해 주시면 됩니다.]
“아이 혼자서 올라가야 하나요?”
보호자의 질문에 박지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보호자분은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지원자분 혼자 올라오셔서 대본의 대사를 연기해 주시면 됩니다. 더는 질문 없으신가요?]
관객석이 조용했다. 박지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 밑으로 내려가 제일 앞 관객석에 앉았다.
서준이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박지수 감독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마 음악 감독과 조명 감독, 조연출 등등의 관계자일 것이다.
[그럼 1번 지원자 나와주세요.]
박지수 감독의 말에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가 왜 이래?! 어서 나가야지!”
“싫어엉! 무서워!!”
커다란 공연장에 겁을 먹었던 아이였다. 아까부터 불안해 보이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보호자는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1번 지원자?]
“잠시만요! 너 이서준처럼 되고 싶다며. 여기서 포기할 거야?”
“누가 이서준처럼 되고 싶다고 했어?! 엄마가 그랬잖아!”
아이와 보호자의 말이 조용한 공연장을 울렸다.
두 사람의 말에 잘못한 것도 없는 서준과 안다호가 움찔했다. 오늘 누가 오디션을 보는지 아는 관계자들도 움찔했다.
“아빠도 그래! 내가 싫다고 했잖아아아!!”
결국, 대성통곡하는 아이를 데리고 보호자는 공연장을 나갔다. 박지수 감독이 한숨을 쉬고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2번 지원자.]
“나도 안 할래!”
공연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개구쟁이 아이는 씩씩하게 공연장을 뛰쳐나갔다.
보호자들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하며 아이를 따라 나갔다.
이미 3일에 걸친 오디션을 겪으면서 해탈한 관계자들과 밖에 있던 직원들은 익숙하게 제 할 일을 계속했다.
[3번 지원자 나와주세요.]
박지수 감독의 말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지원자는 말도 없이 나간 모양이었다. 관계자들은 고개를 젓는 행동도 없이 신청서를 넘겨버렸다.
10명의 지원자 중 무대에 선 아이는 6명. 그중에서도 오디션 대사를 반쯤 외운 아이는 3명. 연기까지 해낸 아이는 1명뿐이었다. 그 연기도 보호자가 말로 열심히 지도한 덕분이지만.
처참한 상황에 심사를 보던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청룡 역. 왜 이렇죠?”
“그러게요. 다른 역할들은 그래도 진지하게 하던데.”
주인공 역은 다들 너무 진지하게 해서 보호자들끼리 싸움이 날 뻔했다. 떨어뜨리기 아까운 배우도 있었고.
“얼굴이 안 나오니까요. 누가 목소리만 나오고 싶어 하겠어요.”
대본을 떠올린 관계자들이 한숨을 내쉬려다가, 마지막 신청서를 보았다.
“여기 있네요.”
“그래요. 이 배우만 있으면 되죠.”
박지수 감독이 마이크를 들었다.
공연장 밖에서 나온 아이들의 숫자를 세던 직원들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 관객석에 앉았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괜찮아. 괜찮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서준 연기를 직접 보겠어.”
“선배!”
“왜?”
“저기 사장님 아니에요?”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조연출에게 연락을 받은 은하수 센터 사장이 조용히 공연장에 들어와 심사석 근처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도 잘 볼 수 없었던 윗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준이 박지수 감독의 호명을 기다리는 사이 이서준 배우의 지원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다 공연장에 나타났다.
텅텅 비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군데군데 사람들이 보는 관객석에, 별다른 기색 없는 서준과는 달리 자기 배우의 유명세를 확인한 안다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관객석을 둘러본 박지수 감독은 대충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아 입을 열었다.
[11번 지원자 나와주세요.]
야구 모자를 벗은 서준의 머리를 안다호가 정리해 주었다. 안다호의 손이 떨어지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형! 저 갔다 올게요.”
“그래. 서준아. 잘하고 와!”
“네!”
서준이 날아갈 듯,
“뛰지 말고!”
계단을 내려가려다 안다호의 말에 조심히 걸어갔다.
조연출이 조금 떨리는 손으로 서준에게 마이크를 달아주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서준의 모습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서준이 무대 위에 섰다.
어두운 무대 위로 쏘아진 한 줄기의 스포트라이트가 오로지 서준만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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