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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3화 (6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3화

요즘 서준의 일과는 똑같았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숙제와 학습지를 한다. 다호 형이 와서 대본을 건네준다. 읽는다. 고개를 젓는다. 다호 형이 돌아간다.

안다호가 돌아가고 서준이 뾰로통한 얼굴로 아빠에게 말했다. 이민준이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었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연극!”

“천천히 해도 돼. 서준이는 아직 어리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역이 있을 것 같아서 아쉬워!”

“그래? 그러면 서준이가 직접 마음에 드는 연극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직접?”

서준의 눈이 커졌다. 직접?

이민준은 반쯤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서준의 마음에 확 꽂혔다.

서준에게는 여유로운 자금도, 친한 명배우들도, 훌륭한 감독들도 있었다. 좋은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서준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라?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

“저거 서준이가 본 연극 아니야?”

“응?”

아빠의 말에 서준의 생각이 멈추었다. 서준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하자 이민준이 소리를 높였다.

[배우 이서준, 이지석이 본 우리 동네! 바람극단 인터뷰!]

연예계 뉴스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짤막한 영상이 나왔다. 서준이 봤던 소극장보다 큰 무대를 배경으로 바람극단의 단장, 김선곤이 화면에 나타났다.

[새로운 극장은 어떻나요?]

-다들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라 어색해하고 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연극, 우리 동네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 동네는 사람들의 오해와 착각으로 만들어가는 휴먼 코믹극입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연극에 대한 짧은 인터뷰가 이어지고, 서준과 이지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극에 대한 질문과 달리 많은 질문이 이어지자, 화면에 비친, 활짝 웃고 있는 김선곤의 눈빛이 잠깐 어두워졌다.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을 보던 서준은 김선곤의 모습이 사라지자, 급히 휴대폰을 꺼내 이지석에게 연락했다.

몇 번 신호가 가지 않아, 이지석이 전화를 받았다.

-서준아? 무슨 일이야?

“형. TV 봤어요?”

-TV? 아니. 왜?

“TV에 바람극단이 나왔는데, 단장님 얼굴이 안 좋아서요.”

무슨 일인가 싶었던 부부가 슬그머니 거실을 떠났다. 이런 일은 베테랑인 이지석 배우에게 맡기는 것이 나았다.

이지석은 서준의 말에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검색했다. 극단이 나올 일이라면 연예뉴스인가? 검색을 해보니 알 것 같았다.

“서준아.”

-네?

“걱정하지 마.”

-근데, 표정이 안 좋았어요.

표정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만큼 상대방의 표정에 민감한 사람도 없었다.

서준은 김선곤 단장의 표정에서 피곤함과 지친 마음을 알아차렸다.

-저번에 말했지? 우리 이름으로 홍보를 하면 그만큼 안 좋은 일이 따라올 거라는 거.

“네.”

-그 안 좋은 일 중에 하나야. 김선곤 단장은 연기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이 있는 극단의 작품들도 좋아해.

서준이 소파에 앉아 이지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4월에 연극을 보고 지금이 6월이지? 거의 2개월 동안 자신들의 작품보다는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거야. 관객들은 처음 질문한다고 생각해도 듣는 사람은 벌써 2개월째면 얼마나 힘들겠어. 그것도 작품에 대한 질문도 아니고.

“네.”

-그리고 이번 일은 김선곤 단장이, 바람극단이 선택한 거야.

“선택이요?”

-그래. 자신의 작품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우리 이름을 내세워서라도 성공하고 싶었던 거야. 연극을 좋아하지만, 연극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 작품이냐, 성공이냐. 그 딜레마 속에서 성공을 택한 거야.

“그럼 언제까지 힘들까요?”

서준의 다정한 말에 이지석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변하는 법이라서 얼마 안 갈 거야.

이지석은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30분 만에 매진됐다는 첫날과는 달리 표가 매진됐다는 이야기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이제 슬슬 관객이 적어지는 때이니, 김선곤 단장이 방송 인터뷰에도 나온 것일 터였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터뷰 타이밍도 좋았다.

이제 방송을 본 일반인들이 연극을 보고, 또다시 서준과 이지석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질린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터였다.

연예뉴스 게시판에 별말이 없는 걸 보니, 서준만 알아차린 모양이고.

‘눈도 좋아.’

피식 웃은 이지석이 말을 이었다.

-괜찮아. 아직도 우리 동네를 무대에 올리는 걸 보면, 여력이 남아 있는 모양이고. 정 힘들면 새 작품 올렸을 거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우리가 본 연극이니까.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고맙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인공…….”

서준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남았다.

지금까지 항상 관심을 받아왔지만, 주인공이 아닌 기분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건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관계없이 조금 지치는 기분이었다.

아니, 관계없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아닌 그 상황은, 천천히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잠식해간다.

어떻게 해서도 관심을 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가려진 상황에서 누가 마음 편히 연기에 몰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연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

재능을 탓하고 자신을 탓하다 결국 연기를 그만둬 버린다.

정말로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서준의 차기작 찾기는 계속됐다.

“이건 대사가 하나도 없긴 한데. 어때?”

안다호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역 배우의 비중이 없기는 했지만, 작년에 나름 흥행했던 연극이었다. 올해는 다른 배우들로 무대에 올린다고 했다.

“음. 다른 건 없어요?”

“그래. 더 찾아보자.”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바로 대본을 내려놓았다. 안다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역 배우가 나오는 연극은 별로 없는데, 그중에 서준의 마음에 드는 연극이 있을까? 회사에 더 찾아보라고 해야겠다.

서준과 안다호는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대본들을 살폈다.

그때, 띵동- 벨이 울렸다.

일어나려는 서준을 말리고 안다호가 일어나 인터폰으로 향했다. 잠시 대화가 이어지고 현관문이 열렸다.

“희상이 삼촌!”

김희상이 집에 찾아왔다. 서준이 웃으며 김희상을 반겼다. 서준을 안아주고 어색하게 서 있는 안다호에게 김희상이 손을 내밀었다.

안다호가 얼른 손을 마주 잡았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삼촌 김희상입니다. 서준이 매니저님이시죠?”

“네. 이서준 배우 매니저, 안다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우리 서준이, 잘 부탁합니다.”

서은찬의 소개도 없이 만나게 되었다. 인사를 나눈 김희상은 익숙하게 거실 바닥에 앉고 서준과 안다호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근데 무슨 일이야?”

“새로운 디자인 없나 싶어서.”

“응! 스케치북 가지고 올게!”

서준은 틈틈이 놀면서 그린 몬스터 그림이 가득한 스케치북을 김희상에게 주었다. 김희상이 천천히 스케치북을 보기 시작하자, 서준과 안다호도 다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불가, 불가, 가능.

서준의 그림 실력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너무 현실감 있게 그려서 제품 디자인으로는 탈락한 그림이 많았다.

단순화하면 좋을 것 같은 그림을 다시 살펴보고 고개를 드니 대본에 푹 빠져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확실히 그림은 금방금방 볼 수 있어서 속도가 빨랐다. 할 일을 끝낸 김희상이 쌓여 있던 대본 중 하나를 꺼내 보았다.

“이건 뭐야? 드라마? 영화?”

“아니, 연극 대본!”

“연극?”

김희상이 고개를 갸웃하고 대본을 들어 읽어보았다. 새하얀 종이 위에 새까만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몇 장 차르르 넘기니 형관 펜으로 줄 그어진 대사들이 있었다. 대본 한 부를 읽어도 열 줄 될까 말까.

“이게 아역 배우 파트지? 되게 적네.”

“적은 건 상관없는데. 재미있는 게 없어.”

서준이 테이블 위로 축 늘어졌다. 손과 눈은 여전히 대본을 향해 있었다.

아아, 뭘 하면 좋을까? 여기서 그나마 나은 걸 찾아야 하나? 그러면, 이거랑. 이거랑.

대본을 읽던 김희상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넷에 공고 올라온 건 없어?”

“으응. 엄마랑 대충 찾아봤는데 그쪽은 나이 제한이 걸려서. 다호 형이 나이 상관없는 연극들을 골라준 거야.”

“그래?”

“네. 2팀에서 팀원들과 함께 최대한 흥행할 수 있는 연극들로 골랐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축 늘어져 있던 서준과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있던 김희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놀란 기색이 가득한 두 사람의 시선에 안다호가 화들짝 놀라 안절부절못했다.

“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흥행이요?”

“흥행?”

서준과 김희상의 말에 안다호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에. 이서준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위해서, 최대한 흥행 가능성이 있는 연극들을 모았습니다. 좋은 배우, 이름 높은 연출가, 유명한 작가까지 모든 조건을 고려해서…….”

점점 안 좋아지는 두 사람의 표정에 안다호가 말끝을 흐렸다.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그렇구나아.”

서준은 힘이 빠진 얼굴로 벌써 3번씩 읽은 대본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예전에 나왔던 연극의 리메이크작이나 외국의 유명한 연극의 번역작이 많다 싶었다.

축 늘어진 서준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는 안다호를 보며 김희상이 웃었다. 아직 서준에 대해서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호 씨, 사장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사장님이요? 그냥, 서준이가 연극을 하고 싶어 하니 적당한 대본을 찾아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설명이 부족했다.

아마 배우 이서준 전담팀인 2팀은 쉐도우맨 1, 악령, 쉐도우맨 2를 이을 흥행작을 원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김희상 같아도 저런 필모에 망할 것 같은 작품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난 흥행 같은 거 신경 안 써요. 다호 형.”

안다호가 깜짝 놀라 서준을 보았다.

“흥행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다음엔 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본은 다 주세요.”

서준의 말을 들은 안다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대답했다.

“알았어. 미안해.”

“아뇨! 미안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난 흥행에 상관없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거예요. 물론 진짜 망할 것 같은 대본은 빼주시고요!”

“그럼 이건 어때?”

김희상이 서로 사과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김희상이 내민 휴대폰 화면에 알록달록한 공고가 보였다. 안다호의 시선이 떨떠름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 배우를 대상으로 하는 연극이래. 성인 배우는 한 명도 안 나오고, 공연은 여름방학 동안만 하고. 나이도 상관없네.”

“그건 저도 봤는데, 서준이가 나갈 만한 연극은 아닌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급’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대본은 있어?”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서준을 보았다.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 진짜 흥행이랑 상관없다고? 안다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여기 올라와 있어. 대사량을 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원서에 적어 내래.”

“삼촌, 뽑아줘!”

“알았어.”

김희상이 익숙하게 거실 한쪽에 설치된 프린터기로 향했다. 서준은 김희상의 옆에 서서 얼른 대본이 나오길 기다렸다.

안다호는 생경한 기분이었다.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항상 흥행이 될 것 같은 작품만 찾던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면 +, 신인 배우가 주연이면 -. 좋은 감독이 연출하면 +, 신인 감독이 연출하면 -. 작가도, 제작사도 다르지 않았다.

코코아엔터의 2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 +로 가득한 대본만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저런 연극도 괜찮았던 걸까?

지이잉

프린터기에서 대본이 인쇄되어 나왔다. 대본이 나오자마자 서준은 서 있는 그대로 한 장 한 장 대본을 읽어갔다.

손을 뻗어 프린터기에서 나오는 종이를 차곡차곡 모으면서도 대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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