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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62화 (6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62화

코코아엔터 사옥 1층 로비.

벽에 붙은 서준의 사진 밑에 ‘코코아엔터 배우 이서준’이라는 명패를 흐뭇한 얼굴로 매만지던 서은찬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홍보팀으로 향했다.

방음이 잘되도록 좋은 자재를 썼는데도 벽을 뚫고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각오한 일이지만, 장난 아니네.”

재수사 5화가 방송된 다음 날, 코코아엔터에 전화가 빗발쳤다. 검색 사이트의 인물 정보창에 서준의 소속사가 등록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은찬이 침을 꼴깍 삼키고 홍보팀의 문을 열었다.

전화벨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회사에 있는 모든 전화기가 울리고 회사 메일에도 메일이 쏟아졌다.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소리쳤다.

“사장님! MBS예요!”

“여긴 SBC요!”

여기저기서 드라마와 예능의 출연 섭외가 들어오고 있었다. 재수사에 카메오로 출연하기 전이 그냥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꽤 본격적이었다.

이미 편성이 난 드라마부터 이제 겨우 배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까지 달려들었다.

경쟁하듯 달려드는 방송사들의 모습에 모두 서준이 출연한다고 하면 이미 편성된 드라마를 빼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럴 린 없겠지만.’

또 예능 같은 경우에는 한 프로그램에서 다른 작가가 따로 연락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직원들은 인터넷을 살폈다. KBC의 홈페이지부터 회원 수가 많은 커뮤니티까지. 여기저기서 이서준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할리우드 아역 배우, 이서준’은 알고 있었다. 서준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보고 싶어 했다.

“재방송 시청률하고 다시 보기 조회 수가 엄청나요.”

“시청자 잡으려고 KBC에서 1화부터 5화까지 재방송 내보내고 있어요.”

“이서준 다시 출연 안 하냐는 글도 있습니다.”

“축구 했으면 좋겠다는 글도 몇 군데 있는데요?”

그중 재수사를 보고 서준이 나온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 KBC에서 보여준 악령을 보고 재수사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날로 높아지는 대중의 관심에 방송가도 바쁘게 움직였다. 전화벨 소리가 째랑째랑 울려 퍼졌다.

홍보팀장 김수련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할까요? 사장님!”

서은찬이 볼을 긁적였다.

“일단 드라마는 다 거절하죠.”

“네?!”

전화를 받고, 인터넷을 살피던 직원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골라잡기만 하면 탄탄대로인데, 드라마를 안 찍는다고? 아니, 새로운 영화 찍나? 할리우드? 한국?

직원들의 의문이 쌓여갈 때,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이서준 배우가, 연극이 하고 싶답니다.”

그 말에, 서은찬을 찾으러 온 남자의 손에서 새하얀 종이가 차르르르 쏟아졌다.

2주 동안 이서준에게 들어온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전부 읽고 감상문까지 써온, 이서준 매니저, 안다호가 열댓 장이 되는 오늘치 감상문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서은찬은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홍보팀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안다호가 보였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안다호의 시선에 서은찬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요. 다호 씨. 지금 시간 괜찮죠?”

사장의 말에 일개 직원인 안다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쪽은 안다호. 25살이야.”

“안녕하세요! 안다호입니다!”

제법 단단한 체격의 안다호가 꾸벅 인사를 했다.

사장님이 자신을 데리고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무려, 이서준 배우의 집이었다.

할리우드 영화까지 촬영한 이서준 배우라면 어디 부자 동네에 있는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 늠름한 개를 키우며 살 것 같았는데, 평범한 동네에 평범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안다호의 모습에 서은혜와 서은찬이 웃고 말았다.

서준도 자신의 매니저가 될 안다호를 살펴보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서준의 주위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서준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소문내지 않는 이웃사촌들. 사인과 사진만으로도 만족한 유치원 학부모들.

진짜로 우연이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선기의 영향이라면, 마기를 품게 된 지금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대충 예상이 가긴 하는데…….’

서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그 눈빛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안다호가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

마치 고양이처럼 빠안히 상대를 살펴보던 서준이 방긋 웃었다.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다호 형. 전 이서준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 안다호라고 합니다.”

서준이 작은 손을 내밀자 안다호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사장인 서은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안다호는 서준의 팬이었다.

2년 전, 영화관에서 윌리엄을 봤을 때 안다호는 영화관이 떠나갈 것처럼 엉엉 울었다.

홀몸이신 어머니의 짐이 되지 않게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인생이었는데, 그때,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를 서포터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 뒤로 열심히 일했다. 연예계에 관해서 공부하고 신생 매니저에 들어가서 잡일도 도맡아 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는데 갑질하는 배우의 매니저도 해보고 배우가 어떤 느낌으로 일하는지 궁금해 직접 엑스트라 연기를 해보기도 했다. 4번의 NG를 내고 그만뒀지만.

2년,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첫 직장이 망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코코아엔터에 입사하게 되었다.

브라운블랙밖에 없고, 다음 연습생도 아이돌 그룹일 것 같아서, 배우를 맡고 싶었던 안다호는 새로운 소속사를 찾는 중이었다.

그때 회사 내부에 소문이 돌았다. 이서준 배우가 코코아엔터와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실로 결론이 났다. 매니저를 찾는다는 공고가 났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쓰이진 않았지만, 이서준 배우가 코코아엔터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고 난 후의 매니저 모집 공고였다. 타이밍으로 봐서는 분명 이서준 배우의 매니저였다.

안다호는 당장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합격했다.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결국 그가 되었다.

안다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준의 손을 잡았다. 실제로 보니, 더 나이가 실감이 났다. 이 아이가 그런 연기를 했다니, 저절로 존경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 이서준의 연기에 안다호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잘할게요.”

진심이었다. 안다호의 진심을 느낀 서준이 활짝 웃었다. 커다란 덩치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에서 솔직한 마음이 느껴졌다.

“말 편하게 해요! 다호 형!”

두 사람이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은혜가 서은찬의 옆구리를 찔렀다.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는 것 같네.”

“다호 씨는 숨긴다고 숨긴 거겠지만, 서준이 팬인 거 다 티가 났어. 우리 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안다호가 한가득 가져온 보고서가 떠오른 서은찬이 한숨을 쉬었다.

몇 개만 골라서 분석해 오라니까, 안다호는 서준에게 들어온 대본은 거의 다 분석했다.

피곤한 얼굴로 서준이 지금 하면 좋은 역할, 내년, 몇 년 뒤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서준의 이야기만 나오면 피곤이 싹 풀린 얼굴로 이야기하는 안다호의 모습에 다들 깨달았다. 다호 씨, 서준이 팬이구나!

“그래도 공이랑 사는 잘 구분하고 일은 잘하니까. 좋은 매니저가 될 거야.”

그 모습에 장난삼아 진심 삼아 서준이랑 통화하게 해줄까? 은근슬쩍 물어도 민폐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던 안다호였다.

매니저 소개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곧 이민준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이번 기회에 이민준과도 인사도 나눌 겸 안다호는 서준이네에서 저녁까지 함께 먹기로 했다.

늦게까지 퇴근도 못 하고 잡혀 있는 안다호를 위해서 사장, 서은찬이 휴가를 하루 주었다.

서은혜의 심부름으로 장을 보러 간 서은찬,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서은혜의 모습에 거실에서 굳은 자세로 앉아 있던 안다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거실 테이블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학습지를 풀고 있던 서준은 어색하게 앉아 있는 안다호에게 말을 걸었다.

“형. 심심해요?”

“응? 아니. 괜찮아. 왜? 모르는 거 있어?”

“아니요.”

연필을 내려놓은 서준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대본 중에서 재미있게 본 대본들을 가지고 안다호에게 갔다.

“심심하면 이거 읽어요.”

“아, 고마워.”

서준은 오늘치 학습지를 풀고, 안다호는 대본을 읽어갔다. 드문드문 서준이 직접 적은 듯한 메모가 팬인 안다호의 마음을 울렸다.

[이거 해보고 싶다]

[이건 별로야]

[이거 대본이랑 영화랑 많이 다르네]

[중간에 감독 바뀜]

안다호는 수첩을 펼쳐, 서준이 해보고 싶은 배역의 특징과 영화의 장르를 정리했다. 또 별로라는 평이 달린 대본의 제목도 적어놓았다. 집에 가서 알아봐야겠다.

조용한 서준이네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와 탁탁 부엌칼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울렸다.

열심히 학습지를 풀던 서준이 고개를 돌려 안다호를 보았다. 대본에 빠져들어 읽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히죽 웃은 서준은 다시 학습지에 집중했다.

“매형이랑 같이 왔어.”

그 조용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서은찬과 이민준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준이 벌떡 일어나 이민준에게로 달려가 안겼다.

이민준이 활짝 웃으며 서준을 들어 올렸다.

“서준이 매니저분 오셨다며?”

“응! 다호 형이야!”

언제 편해졌냐는 듯 다시 기합이 바짝 들어간 안다호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다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서준이 아빠, 이민준입니다.”

이민준까지 도착하자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서준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이 열심히 호응해 주었다. 서준은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발표를 몇 번 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음악학원에서 다음 교재로 넘어가게 됐다.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서준의 모습에, 어디에서나 볼 것 같은 저녁 식사에 굳었던 안다호의 어깨도 점점 풀렸다.

서은찬이 사 온 후식까지 먹고 안다호와 서은찬은 서준의 집을 나섰다.

“어때요?”

“네?”

“서준이. 생각보다 평범하죠?”

“아, 네.”

운전대를 잡은 서은찬의 말에 조수석에 앉은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가 연기도 잘하고 또래보다 똑똑하긴 해도,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냥 동생처럼 돌봐주면 됩니다. 위험할 것 같으면 말리고. 서준이 하고 싶다고 하면 이유를 들어보고. 큰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시고.”

“아. 알겠습니다.”

“김희상이라는 형이 있거든요?”

“네?”

“그 형이 서준이에 대해서 잘 알아요. 매형이랑 누나도 서준이에 대해서 잘 알지만, 분야가 달라요. 매니저 일에 관해서는 아마 누나랑 매형보다는 희상이 형에게 조언받는 게 나을 거예요. 다음에 소개해 줄게요.”

“아, 감사합니다.”

“다호 씨.”

서은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안다호가 대답했다.

“네. 사장님.”

“우리 서준이 잘 부탁합니다.”

서은혜도 이민준도, 서은찬도 온종일 그렇게 말했다.

우리 서준이 잘 부탁합니다.

서준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긴 안다호가 다짐하듯 말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코코아엔터에 맡기긴 했지만, 서준과 서은혜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인터넷을 뒤졌다.

“이건 나이가 안 되네.”

“여기도 10살 이상만 되네.”

아이들이 나오는 연극은 적었다. 배역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키와 나이 제한도 있었다. 특히 8살인 서준은 나이 제한에 걸려 지금까지 오디션 신청서를 쓰지도 못했다.

“서준이, 꼭 연극 하고 싶어?”

“응!”

지석이 형과 함께 본 연극이 인상 깊게 남았다. 바로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가까운 관객석. 그 작은 극장이 서준의 마음에 콕 박혔다.

“엄청 가까이서 연기하는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내 연기를 직접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느낌일까?

촬영에 신경 써야 하는 스태프들과는 달리 온전히 내 연기를 봐줄 터였다. 편집도 흥행도 생각하지 않고 내 연기에만 집중해 줄 관객들.

영화도, 드라마도 좋지만 생생하고 직접적인 반응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반짝이는 서준의 눈빛에 서은혜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구나. 그럼 좀 더 찾아볼까?”

서준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서은혜는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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