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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8화 (5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8화

“냉면 맛있네.”

“그죠?”

“그러게요. 만두도 맛있었어요.”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세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서준과 이지석이 모자를 꾹 눌러쓰고 윤성오까지 있으니 아무도 알아보질 못했다.

“이 정도면 그냥 밖에서 만나도 되겠는걸?”

“그러게요.”

서준과 이지석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자 윤성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알아볼 사람이 없어서 모르는 것 같은데.

윤성오의 생각처럼 길거리는 개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저 이 길을 이용해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듯 바쁘게 발을 놀리고 있었다.

음. 큰길 건너편에 무슨 무슨 길이 생겼다던데, 다들 그쪽으로 간 모양이었다. 윤성오가 볼을 긁적거렸다.

“저기…….”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에 세 사람이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그에 말을 걸었던 남자도 덩달아 놀라버렸다.

윤성오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앞을 막으며 물었다. 그 모습에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탑배우의 매니저!

다음에 서준의 매니저를 소개해 주겠다던 찬이 삼촌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일까! 저렇게 멋졌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시죠?”

조금 냉정한 듯한 목소리에 남자가 목을 움츠렸다. 실실 웃기만 하던 윤성오의 변화에 서준이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아, 저기. 시간 괜찮으시면 연극 한번 보지 않으실래요? 아이도 볼 수 있어요.”

“연극이요?”

연극.

그 단어에 이지석과 서준이 반응했다.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라면 온종일 할 수 있는 두 배우였다. 연극 또한 빠질 수 없었다.

굳어 있던 윤성오의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 그 변화를 느낀 것인지 남자가 뚜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가까운 소극장에서 합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다들 연기도 잘해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

남자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윤성오가 받아 이지석과 서준에게 주었다.

[우리 동네]

음. 제목만 보니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지석이 서준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서준이 고개를 들자 이지석이 눈을 찡긋거렸다. 볼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연극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한테 표 사시면 20퍼센트, 아니, 40퍼센트 할인해 드려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지석의 말에 열심히 영업하던 남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벌써 몇 번째 거절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이러다 관객 한 명도 없는 거 아니야? 아닌 척하면서도 실망할 단원들을 떠올린 남자가 다른 관객을 찾기 위해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이지석의 목소리가 남자의 귀에 꽂혔다.

“저희 연극 좋아하거든요. 정가 받으셔야죠. 얼마죠?”

이지석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활짝 폈다.

* * *

소극단 ‘바람’의 배우들이 모두 모였다. 몇몇은 다른 극단에서 왔고 몇몇은 이 극단이 처음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작고 허름한 이 소극장을 빌렸는데 무대를 관리하고 제작하는 스태프는 따로 없었다.

다 배우가 만들고 배우가 움직였다.

겨우 7명. 모두 연극과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아. 몇 장 팔렸어요?”

“성우 쪽에 3장. 아이 하나 어른 둘.”

“다행이네요. 우리 연극이 전체관람가라서. 아니면 세 장도 못 팔 뻔했어요.”

여주인공 역을 맡은 한지아의 말에 다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슈퍼 사장역의 김성우에게서 전화를 받은 이장역의 단장, 김선곤이 입을 열었다.

“웃을 때가 아니야.”

“네? 왜요?”

“정가 주고 사셨대.”

“……네?”

“그분들이 연극을 좋아하신다고, 40퍼센트 할인해 준다는 걸 정가를 주고 사셨대.”

김선곤의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연극을 좋아한다고. 그 한마디가 그들의 가슴에 박혔다.

“아니, 성우 걔는 뭘 40퍼센트까지 할인해서 팔아? 대관비도 안 나오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할인해 준다는 걸 왜 정가에…….”

타박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울컥한 모양인지 한지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텅 빈 관객석만 바라보긴 벌써 사흘째. 겨우 연극을 좋아한다는 한마디였지만, 겨우 몇천 원 차이였지만 무언가 북받쳐 올라왔다.

김선곤이 짝짝 박수를 쳤다.

“다들 정신 차려! 연극 좋아하신다고 정가에 티켓 사주신 분들이야! 그만한 가치의 연극을 보여줘야지!”

“네!”

오랜만의 관객이었다. 겨우 3명이었지만 다들 기합을 바짝 넣었다.

* * *

“안녕하세요! 연극 보러 오셨어요?”

아이 하나, 어른 둘. 이 사람들이다! 한지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세 사람을 반겼다.

소극장의 입구를 찾던 세 사람이 한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는 이쪽이에요. 2층이라서 올라가셔야 해요. 표는 저한테 주시면 돼요.”

“아, 감사합니다.”

한지아가 세 사람의 표를 받아, 반을 찢어주었다. 한지아의 안내로 서준과 두 사람은 좁은 계단을 올라 소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은 작았다. 무대와 객석도 엄청 가까웠고 객석도 적었다.

극장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세 사람의 모습에 한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 데나 앉으시면 돼요. 넓게 잘 보고 싶으면 가운데가 좋고, 배우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으면 앞자리가 좋아요.”

“어디 앉을래?”

극장이 작아 가운데든 앞자리든 별 차이는 없었지만, 서준은 신중하게 자리를 골랐다.

“가운데에서 볼래요.”

“네. 그럼 여기 앉으세요. 여기가 제일 잘 보여요.”

서준의 대답에 환하게 웃은 한지아가 명당을 알려주었다. 관객석에 아무도 없어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세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시간 되면 시작할 거예요. 재밌게 보세요.”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한지아가 자리를 뜨고, 이지석과 서준이 모자를 벗었다.

“아, 땀난다!”

“그래도 여긴 시원하네.”

“그렇게 홀랑 벗지 말라니까요. 두 사람 다.”

“괜찮아. 괜찮아. 보는 사람도 없는걸.”

태평한 이지석의 말에 윤성오가 한숨을 쉬었다. 서준이 고개를 휘휘 저어 소극장을 구경했다.

자리에 앉으니 작은 무대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배우 땀까지 보일 것 같은데?

“근데 진짜 작아요.”

“소극장 중에서도 제일 작은 거 같네. 대관비가 싸겠어.”

“근데 사람이 없어서……. 그것도 못 벌겠는데요? 아무래도 우리가 전부인가 봐요.”

윤성오의 말에 이지석과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빈 객석에 서준과 이지석이 조금 슬퍼질 정도였다.

* * *

“안 갈 것 같아요!”

한지아가 뛰어들어왔다. 김선곤이 이마를 짚었다.

“넌 주인공이 손님 안내를 하면 어떻게 해!”

“어차피 옷도 평상복이잖아요. 분장할 것도 없고! 그것보다 세 분, 안 갈 것 같아요. 관객이 별로 없다면서 돌아가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는 일행이 5명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래. 그래. 무대 준비나 해.”

“네에!”

오랜만의 관객에 들뜬 한지아와 배우들이었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무대의 막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렸다. 김선곤이 박수를 쳤다.

“다들 너무 들떴어. 진정하고.”

“네에!”

김선곤이 가운에 손을 놓자 다들 손을 뻗어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평소와 같은 모습. 그렇지만 오늘은 관객이 있었다. 다들 두근대는 가슴으로 구호를 외쳤다.

“우리 동네!!”

“화이팅!!”

“다 들려요.”

“아하하하. 여긴 다른 곳보다 방음이 부족하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화이팅!’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두 배우와 매니저는 유쾌한 연극배우들의 목소리에 웃고 말았다.

어떤 내용의 연극일지, 어떤 연기를 할지 더욱 기대되었다.

곧 세 명만이 앉아 있는 관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조명이 비쳤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이지석과 서준의 표정이 변했다.

윤성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기와 관련되면 순식간에 변하는 배우들이었다. 이지석이야 5년이나 겪어봤지만, 서준이까지. 저 정도가 되어야 어린 나이에도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은 자기 연극을 보고 있는 사람이 이지석과 이서준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알 리가 없지.

곧 윤성오도 무대에 집중했다.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연극이 시작되었다.

형사인 여주인공이 동네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오해와 착각이 어우러지면서 웃음을 끌어냈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결국 범인을 잡았지만, 형사는 끝까지 동네 사람들의 오해를 풀지 못했다.

“나 진짜 부동산 업자 아니라니까요! 형사예요! 형사!”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어른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무대와 관객석을 살피고 있던 김선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생생한 반응. 역시, 연극이 좋았다.

“선배! 선배 나갈 차례에요!”

“알았어!”

한지아도, 다른 배우들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야. 그렇게 웃으면 연기가 안 되잖아! 넌 슬퍼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선배! 선배도 지금 엄청 진지해야 하는데 완전 웃고 있거든요!”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뜨거운 조명에 뛰어다니는 연기까지 하느라 옷이 땀에 젖고 화장도 지워지기 직전이었지만, 좋았다.

이래서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였다.

“자, 얼른 나가요!”

유쾌한 웃음으로 연극이 끝났다.

윤성오가 실실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진짜 재밌네요!”

“그러게. 그다지 기대는 안 했는데. 다들 잘하고 내용도 재미있었어. 그렇지, 서준아.”

“네.”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조그마한 두 손으로 열심히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

“다들, 엄청 잘했어요.”

분명 서준의 눈에 단원들의 연기는 부족했지만, 그건 서준의 눈이 워낙 높은 탓이었다. 서준도 그걸 알고 있었다.

‘상대역이 지석이 형에, 에반에 리첼이면 높아질 수밖에 없지.’

게다가 연기 공부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한 드라마와 영화들도 서준의 연기에 대한 기준을 한껏 높여놓았다. 일반인들이 보면 잘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서준의 기준으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좋았다. 그들이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고 좋아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첫 생의 그처럼.

서준은 그들의 마음에 더 큰 찬사를 보냈다.

작지만 큰 박수 소리가 소극장을 울렸다. 커튼 뒤에 서 있던 배우들은 박수 소리를 듣고 끝내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야. 울면 안 되지. 아직 사진도 못 찍었는걸.”

“네. 근데, 계속 나와요.”

“열심히 닦아봐.”

티켓을 팔고, 무대 위에 올랐던 김성우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때,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흐릿한 시야로 기뻐하는 단원들이 보였다. 정말로 다행이야.

다들 눈물을 그치고 빨간 눈가로 손을 잡고 무대 위에 섰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니, 다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배우들하고 같이 사진 찍으실래요?”

눈가가 조금 빨개진 김선곤의 말에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이 모자를 쓴 아이와 남자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어깨를 으쓱하고 모자를 쓴 남자가 작게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정말 재밌었으니까.”

“나도 좋아요!”

“난리 나겠네요.”

윤성오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배우들 앞으로 안내했다. 그 모습이 마치 경호원 같아서, 배우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우야. 뭐 하는 사람들이야?”

“몰라요. 저 앞에 냉면집에서 나오던데요.”

“지아야. 쉿.”

소곤소곤거리던 한지아와 김성우가 입을 다물었다. 소극단, ‘바람’의 단장. 유선곤이 환하게 웃으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잘 보셨습니까?”

“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감사합…….”

꾸벅 인사를 하려던 유선곤이 말을 멈추고 말았다. 이지석이 깊게 눌러썼던 모자를 벗은 탓이었다.

밝아진 관객석의 조명에 이지석의 잘생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선곤을 시작으로 무대에 올랐던 모두가 그의 얼굴을 확실히 보았다.

“헉!”

“이지석!?”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었던 김성우가 입을 막았다. 이지석이 눈인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서준이도 잘 봤대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서준도 모자를 벗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뭐? 뭐? 누구?

잠시 잠깐의 침묵이 소극장에 가라앉았다.

이지석과 이서준을 이제야 머리에서 인식한 듯, 연극배우들 사이에서 으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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