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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5화 (5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5화

해가 지나고 서준은 8살이 되었다.

긴 설날 연휴를 지내고 나니, 쉐도우맨2의 홍보가 시작되었다.

레드본2의 쿠키 영상으로 나왔던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했고, 서준과 에반 블록이 환하게 웃으며 센트럴파크를 구경하는 모습이 편집되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에반 블록이 싸우는 장면과 금발의 여자가 나타나는 장면이 광고로 나오기도 했다.

-리첼 힐! 에반 블록! 하이틴 위드의 멤버가 이렇게 뭉치다니!

=하이틴 위드?

=하이틴 영화 ‘위드’임. 러브라인이 있던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같은 몸속에 있던 다중인격이었다는 희대의 작품ㅋㅋㅋ

=헐;;;

[쉐도우맨2, 3월 중순, 대개봉!]

[한국인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 출연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서준의 필모그래피를 알아보자!]

[갑론을박. 히어로냐, 빌런이냐!]

-그래서 히어로냐, 빌런이냐!

=천사님만 봐도 모르겠어?! 히어로지!

=저렇게 홍보하는 거 보면 모르겠냐! 빌런이지!

-근데 빌런이면 감정이입 안 될 듯. 자꾸 천사님 생각나서. 오늘도 기도하고 출근함.

=너 저번에 돈 봉투 주워주고 50만 원 받았다는 애지?

=ㅇㅇㅇㅋㅋ

인터넷에 의견들이 가득했지만 히어로 9 대 빌런 1의 비율로 대부분 서준이 히어로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쉐도우맨2에 대한 기대심을 감추지 않았다.

떠들썩한 인터넷상과 달리 서준이네는 평화로웠다.

“서준아. 이게 괜찮지 않아? 가볍고 때도 안 타고.”

이민준이 남색 책가방을 들어 보였다. 등이 폭신폭신해 보이는 남색 가방을 멘 서준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가방끈도 어깨에 잘 맞는 것 같고, 무게도 가볍고.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서은혜가 하늘색 책가방을 들어 보였다.

“이건 어때? 산뜻하니 보기도 좋고.”

“음.”

서준은 하늘색 가방도 멨다. 두 가방을 번갈아 메며 고민하던 서준은 아빠가 고른 책가방을 골랐다.

이민준은 만세를 부르며 카트에 남색 가방을 집어넣었다. 서은혜는 아쉬운 얼굴로 다시 진열장에 하늘색 가방을 올려두었다.

“다음은 필통이랑 연필. 지우개도 사야 하고 공책도 사야 하네.”

커다란 마트에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가득했다.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카트에 책가방과 필기구, 공책 등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랬다. 다음 달이면 3월.

신학기의 시작이며 새로 입학할 아이들의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었다.

8살이 된 이서준도 가까운 매실 초등학교로 배정받았다.

“필통은 희상이 삼촌이 만들어주기로 했어.”

이리저리 진열장을 둘러보던 서준이 불쑥 말했다.

“입학 선물이래! 가방에 달 수 있는 인형도 많이 만들어준대.”

문구류 판매대로 향하려던 부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걘 이제 문구류까지 진출하겠다는 건가?”

“인기는 많겠네. 그럼, 공책만 사면 되겠다.”

서준이 마음에 드는 표지의 공책을 고르고 초등학교 입학 준비가 끝났다.

그날 밤, 김희상이 집에 나타나 서준에게 상자를 하나 건네주었다.

“기본템으로 길쭉한 슬라임 필통. 다른 색으로 5가지가 있어. 이건 웨어울프 늑대 버전 필통. 곰 버전도 있고.”

“삼촌. 자이언트 웜은?”

서준의 말에 오렌지를 먹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쿨럭 기침을 했다.

자이언트 웜이라면 그 큰 지렁이?! 그걸 필통으로 만들겠다고?! 편견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렁이는 좀.

“그건 기획팀이랑 디자인팀에서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실패했어.”

서은혜와 이민준의 머릿속으로 사장에게 눈빛으로 있는 욕 없는 욕을 하고 있을 기획팀과 디자인팀 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아쉽다. 진짜 잘 어울릴 텐데.”

이제는 제법 현실과 타협한 서준과 김희상이었다.

* * *

3월 3일.

아직 좀 쌀쌀한 아침.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렸다.

매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서준도 엄마 아빠와 함께 초등학교로 향했다.

키가 큰 탓인지, 아니면 선기와 마기의 균형으로 평범해진 탓인지, 서준이 나온 유치원 친구들과 학부모 외에는 서준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잘생겼네. 모델인가.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소곤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반응에 부부와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당에서의 입학식은 짧은 아이들의 집중력에 맞추어 간단히 끝났다.

서준은 1학년 2반에 들어갔다. 교실 뒤에 자리 잡은 부모님들이 보였고 아이들은 이름이 적힌 책상에 앉아 있었다.

“서준아! 여기 앉아!”

“여기 여기.”

어디 이름이 적혀 있는지 찾아보고 있는데 서준을 부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안녕. 미나야. 지윤아.”

“안녕. 서준아!”

“지후랑 지오도 같은 반이네?”

운 좋게 처음 사귀었던 아기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같은 반에 자리도 가까웠다.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주제는 책가방에 달린 유니콘 인형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은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고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공지사항을 알려주었다.

“모두 내일 만나요!”

“네! 선생님!”

활기찬 인사로, 입학식이 모두 끝났다.

서준은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외가 친가 모두 모여서 서준의 입학을 축하하기로 했다.

할아버지 집에 가는 길에 휴대폰 가게에 들른 엄마 아빠가 스마트폰을 개통해 주었다.

김희상이 깜짝 선물로 준비한 여러 몬스터가 그려진 휴대폰 케이스까지 씌우자 완벽한 서준 전용 휴대폰이 되었다.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등록하면서 부부가 서준에게 말했다.

“연락 잘 받아야 해. 엄마 아빠가 걱정하니까.”

“위험하면 연락하고. 엄마 아빠가 안 받으면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 하고. 삼촌들한테 하고. 브라운블랙 형들 전화번호까지 등록해 놨어.”

“응!”

“바나나톡도 등록해 놨어. 메시지 보내볼까?”

“내가 할래!”

내 스마트폰! 서준이 어색하게 휴대폰을 잡고 메시지를 보냈다. 많은 사람 수만큼 많은 바톡방이 생겼다. 한국어로 영어로 모두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스마트폰 샀어요!

<제 전화번호예요! 등록해 주세요ㅇㅅㅇ :)

“미국 거 할까, 한국 거 할까 고민하다가, 두 개 다 했어!”

* * *

“우리 강아지가 벌써 학교에 가네!”

“이건 할아버지 선물이다.”

“이건 할머니 선물.”

서준이 선물 상자를 안고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가 속닥거렸다. 생일선물은 따로 주마.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한 게 미국까지 전해졌는지 많은 사람에게서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분명히 나라겠지.”

“나라가 조나단한테 전하고 조나단이 라이언 감독님에게 전하고 다들 알게 된 거겠지?”

“갠 언제 조나단이랑 친해진 건지.”

서은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들 입학 선물, 생일선물이랑 같이 보냈대.”

“와. 며칠 동안 택배 엄청 오겠는데?”

이민준의 예언처럼 미국 지인들에게서, 브라운블랙에게서 선물이 도착했다. 코코아엔터를 통해 이지석과 최대만 감독에게서도 선물이 전해졌다.

서준이 고개를 들어 거실 가득히 쌓인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전부 내 거야?”

“그래. 서준이 거야.”

부부는 거실 가득 쌓인 선물에 고맙기도 했지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특히, 나라와 케빈의 선물이 제일 겁이 났다.

“거기에 리첼 씨도 추가해야겠는걸.”

“……그러게.”

전문가용 바이올린과 기타를 보낸 케빈과 나라는 이제 적응됐다. 할리우드 배우 리첼 힐은 비싼 전자 피아노를 보냈다. 에반은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보냈다.

각자 개성이 묻어나오는 선물에 웃음이 나왔다.

“이 김에 악기도 배워볼래? 바이올린이랑 기타는 어려워도 피아노는 영상보고 배워도 괜찮을 것 같고.”

“아니면 학원 다녀도 되고.”

“음. 생각해 볼래!”

서준의 팬카페에서는 서준에게 생일선물을 보내는 대신 기부를 하기로 했다. 서준과 부부는 팬카페에 감사의 글을 올렸다. 다들 쉐도우맨2를 기대한다면서 댓글을 달았다.

* * *

아직, 날이 추웠다. 그렇지만 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3월 중순. 쉐도우맨2가 개봉되었다.

“포스터 멋진데?”

김희상은 벽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았다.

엄마와 아빠는 오랜만에 데이트. 서준의 그림을 볼 겸 김희상이 서준을 맡기로 했다.

굳은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쉐도우맨의 얼굴이 찍힌 쉐도우맨2의 포스터가 벽에 붙여져 있었다.

“서준아. 선물 어땠어?”

“뱀파이어 배지! 애들도 엄청 부러워했어.”

“이번에 금속공예에도 관심이 가서 만들어 봤어.”

“눈이 빨간 게 엄청 무섭대!”

친구들은 무섭기도 한데 반짝이는 게 멋있다고 했다. 김희상과 서준이 속닥속닥 농담을 나누었다. 왜냐하면, 여긴, 쉐도우맨2가 상영 중인 영화관이었으니까.

“서준이 정체 들키면 완전 난리 나겠다.”

“이히히히.”

서준과 김희상이 빈자리에 앉았다. 예매했던 쉐도우맨2 상영 시간은 아직 멀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서준이 김희상을 졸라 일찍 나온 것이었다.

“역시 히어로라니까? 에반 블록이랑 다정하게 촬영했다고 하잖아.”

“아니, 그렇게 대놓고 촬영을 했으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의외로 빌런인 건 아니야?”

“윌리엄이 빌런이다 쳐도, 쉐도우맨하고 다정하게 촬영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건 그렇지만…….”

다들 윌리엄의 포지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었다.

“난 그것보다는 이상 웜홀에 빨려 들어간 윌리엄이 어째서 지구에 있는지가 더 궁금하던데.”

“그건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짜 궁금하다!”

이내 청소를 끝낸 상영관의 문이 열렸다. 직원이 다음 관객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제4관! 쉐도우맨2를 관람하실 분들은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준과 김희상이 손을 잡고 상영관 안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뒤를 박성원이 따랐다. 많은 관람객 사이에서도 작은 키가 눈에 띄었다.

‘이런 어린애도 보러오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예매한 자리에 앉자 잡생각이 사라졌다. 2년이나 기다린 쉐도우맨2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광고가 끝나고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박성원은 어서 마린사의 로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저 로고일 뿐인데도 긴장이 되고 흥분이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박성원이 기대하는 화려한 로고는 나오지 않았고 화면은 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영화관 곳곳의 스피커에서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슴을 쿵쿵 내려칠 것 같이 무겁고 우울한 음악이었다.

훗날, 진 나트라의 OST로 쓰일 음악이었다.

새까만 화면이 밝아지고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뭉쳐졌다가 떨어졌다가 검은 불꽃처럼 활발히 움직였다.

-이런 것도 못한다고?

-역시 주워온 애는.

-쟨 우리 종족도 아니잖아.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영화관 안을 꽉 채웠다.

박성원은 침을 꼴깍 삼켰다. 뭐야? 잘못 틀었나?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누구 목소리인가 예상할 틈도 없이,

둥!

둥둥!

마린사의 로고가 나타났다.

오늘 맥의 아르바이트는 센트럴파크를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을 안내해 주는 일이었다. 부지런한 관광객들 덕분에 아침부터 나와 안내를 하던 맥은 한 아이를 만났다.

영화관 어디선가 ‘이서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관크에도 박성원은 스크린에 집중했다.

당황한 듯한 아이는 그 모습에서도 의젓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박성원은 그 모습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천사 사진이 떠올렸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히어로인가!

마침 아르바이트도 끝날 시간이고 아이도 오랜 시간 미아센터에만 있으면 심심할 테니 맥은 센트럴파크를 안내해 주기로 했다. 두 사람은 야구장, 동물원, 미술관을 구경하다가 한 전시관에 들어서게 되었다.

[추모관]

자막이 나오자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맥의 설명을 듣는 아이를 보았다. 여긴 이상 웜홀로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추모관을 돌던 두 사람이 그곳 앞에 섰다.

“헉.”

누군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조금만 몸에 힘을 빼면 소리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박성원도 입을 막고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거기에 윌리엄이 있었다. 맥이 사진과 아이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가 깨닫는 장면에서, 박성원과 관객들은 싸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도 어떻게 히어로가 될까 궁금했는데,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느낀, 그 느낌은 히어로가 아니었다.

박성원은 마음속으로 그 사실을 거부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착하던 애가……. 그리고 악령에서 보았던 신을 떠올렸다. 그것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그런 거야. 좀 더 지나면…….

그리고 벨이 나타나고 아이의, 진 나트라의 이야기가 드러났다. 그제야 처음 나왔던 화면이 떠오른 박성원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부드러웠던 아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를 잃어버린 부모와 나를 지키지 못한 히어로, 그리고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원인이라는 사랑하는 아버지까지.

천성이 착했던 아이는 고통을, 배신감을 견디지 못했다.

“당신이 나트라를 물리쳐야 했어. 그리고.”

엄마 아빠와의 행복한 일상을 잃은 아이가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나를 구해줬어야 했어요.”

끝까지 히어로를 포기하지 못했던 박성원은 그 순간 이해하고 말았다.

천천히 변하는 아이의, 진 나트라의 눈동자에서 악의를 느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에서 풍기는, 작지만 분명한 악의를 느꼈다.

맥이 외쳤다.

“돌아와! 윌리엄!”

모두의 머릿속으로 환하게 웃던 윌리엄, 울던 아기 무당, 축복 같았던 천사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맥을 등지고 있는 진 나트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등골이 오싹할 만큼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에 관객들 모두 넋을 놓았다.

“나는 진 나트라야.”

진 나트라는 맥을 뒤로하고 우주선에 올랐다. 우주선의 문이 굳게 닫혔다. 동시에, 하늘에서 우주선들이 나타났다. 나트라의 함선이었다. 진과 함께 진의 우주선에 올라탄 벨이 외쳤다.

“그 녀석들이야!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벨의 머릿속으로 낄낄 웃던 후보자들이 떠올랐다. 진 나트라를 싫어하고 끝내 없애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후보자의 우주선들이 열리고 진 나트라의 위치가 찍힌 센트럴파크를 공격했다.

문이 열리고 후보자들의 사병들이 땅 위로 떨어졌다. 그 난장판에 벨은 5년 전을 떠올렸다.

“난 가서 도와야겠어. 진. 넌 어떡할래?”

사색이 된 벨이 외쳤으나 진 나트라는 우주선 화면에 떠오른 쉐도우맨과 사병의 전투 장면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 뒤로 소풍을 나왔던 시민들이 울며, 피를 흘리며 대피하는 모습이 비쳤다.

머뭇거리는 진을 뒤로하고 벨 나트라가 자신의 사병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쉴 새 없이 흘러갔다.

그때, 진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즐겁게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왔던 아이였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놓친 것인지 그 전쟁통 속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진 나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의 위로 나트라의 우주선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걸, 모두가 눈치챘다. 진 나트라가 히어로가 될 마지막 기회. 다들 두 손을 꽉 쥐었다.

돌아가. 돌아가!

달려나가려던 진을, 누군가 붙잡았다. 쉐도우맨이었다. 진 나트라는 구해주지 못했던, 쉐도우맨이 모든 적을 이기고 추락하는 우주선 밑에 있던 아이를 구했다.

아이는 무사히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갔다.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의 품에서 환하게 웃었다.

그 감동적인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진 나트라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잘하잖아.”

그런데 왜.

진 나트라가 입술을 짓씹었다. 진한 붉은 피가, 한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여기, 슬픔 속에 새로운 악이 태어나고 있었다.

관객 중 아무도 천사 이서준을 떠올릴 틈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스크린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 왜!

“왜 나는 구해주지 않았어.”

차갑게 얼어붙은 진 나트라의 눈동자에 박성원은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천사 같던 이서준의 이미지는 새까만 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너무 많은 아픔을 감당하지 못한 아이는 그 한을 밖으로 내뿜기 시작했다.

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곰 인형. 관객들은 똑같이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나트라의 시간으로 벌써 5년이나 지난 곰 인형은 많이 낡아 있었다.

“윌리엄?”

전투를 마친 벨이 돌아왔다. 상처투성이였지만 환한 얼굴이었다.

“그 인형 이름이 윌리엄 아니야? 그 남자는 널 보고 윌리엄이라고 부르던데……. 기억을 잃기 전 네 이름이 윌리엄이었구나.”

진 나트라는 별말 없이 곰 인형을 바라보았다.

폐허가 된 센트럴파크 위에 쉐도우맨이 서 있었다. 그는 우주로 날아가는 진 나트라, 윌리엄이 타고 있을 우주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부서진 복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혼란스러운 맥의 얼굴이 보였다.

영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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