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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4화 (5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4화

세트장 한쪽에 설치된, 마린사 미술팀이 만들어놓은 나트라의 우주선이 보였다.

개폐가 가능한 우주선의 입구와 그 옆에 붙어 있는 외벽 일부뿐이었지만 실제 크기로 만든 모양인지 크기가 컸다.

군데군데 빈 곳은 크로마키로 둘러싸여 있었다.

“와, 멋지다. 사진 찍어도 될까?”

번쩍거리는 검은 우주선의 외관에 이민준과 서준이 감탄했다.

뒤는 텅 빈 구조물이었지만 앞모습은 진짜 쉐도우맨1에서 봤던 나트라의 우주선이었다.

이민준의 말을 들은 조나단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쉐도우맨2 찍고 나면 마린 기념관에 전시해 둘 거거든요. 저래 보여도 겉만 멀쩡하지 내부는 텅텅 비었어요. 내부 세트장이 따로 있거든요.”

“그래? 서준아, 사진 찍어서 엄마랑 삼촌한테 자랑하자!”

검은 우주선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두 사람을 조나단이 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어느새 분장을 마치고 촬영장에 나타난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사이 스태프들도 촬영 준비를 마쳤다. 카메라가 세트장을 향하고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라이언 감독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레디,

[(악)홀로 핀 꽃의 우울한 향기가 발동됩니다.]

서준이 천천히 숨을 쉬었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액션!

벨과 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맥은 진 나트라의 말을 떠올렸다.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맥이 입을 벙긋거리다가 덜덜 떨리는 입으로 토해내듯 말했다.

“네가…… 그…… 아이라고?”

진 나트라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뭐?”

맥이 소리쳤다. 그의 머릿속으로 쓰러져 울던 여자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눅눅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맥은 저도 모르게 울컥 소리를 질렀다.

“네 부모가 널 기다리고 있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몸으로?”

진 나트라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소리치려던 맥이 흠칫했다.

10살은 되어 보이는 듯한 아이. 나트라의 이상 웜홀이 일어난 것은 1년 전. 4살이었던 아이가 벌써 저만큼 자랄 리가 없었다.

“어떻게……?”

“나트라와 지구의 시간이 달라서 그래.”

벨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벨은 진 나트라의 어깨를 잡았다. 벨의 이끎에 진 나트라도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그래.”

두 사람이 우주선으로 향했다. 우주선의 입구가 내려와 땅에 닿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갑옷을 입은 나트라의 병사들이 우르르 나왔다.

“잠깐만!”

맥이 소리쳤다. 우주선으로 향하던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벨만이 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맥이 외쳤다.

“이해, 이해해 줄지도 몰라. 그렇게 널 사랑하는 분들인걸!”

“…….”

진 나트라는 활짝 열린 우주선을 보았다가 하늘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물기가 살짝 어린 눈동자로 우주선 안을 주시했다.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맥이 절절히 소리쳤다.

“돌아와! 윌리엄!”

“나는 진 나트라야.”

그리고 우주선의 문이 닫혔다.

-컷! OK!

* * *

“스턴트맨!”

서준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에반 블록과 그의 스턴트맨이 서준의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진짜 똑같다.”

똑같은 키는 물론이고 몸의 실루엣도 비슷했다. 둘 다 쉐도우맨의 복장을 하고 있으니 쉐도우맨이 두 명인 것 같았다.

전투 장면의 촬영이 시작됐다. 히어로들의 전투는 마린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빠질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전투 장면에 가장 많은 자본과 기술력이 쏟아졌다. 촬영일수도 가장 길었다.

라이언 윌 감독과 스턴트맨들이 촬영을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긴장한 스태프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갔다.

구경 온 서준과 리첼 힐은 간간이 전투 장면에 출연해 대사를 쳐야 하는 에반 블록과 모여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스턴트맨들의 합이 너무 잘 어울려 박진감이 있었다.

“나도 해보고 싶다!”

서준이 쉐도우맨을 따라 주먹을 뻗었다. 그 짤막한 길이에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위험한 장면은 안 찍는 게 좋아.”

“왜요?”

“레드본 2가 왜 개봉이 늦어졌는지 알아?”

“레드본 배우가 다쳐서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할 배우가 있을 때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같이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에 나올 배우들은 무엇보다도 몸을 조심해야 해.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우리가 맡은 역을 하는 건데, 다른 배우가 나온다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그렇구나.”

그래도 서준은 아쉽다는 듯이 스턴트맨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쉐도우맨이 적을 가볍게 처리하고 무언가를 던지는 시늉을 했다. CG 작업이 끝나면 쉐도우맨의 손에 그림자로 만든 창이 들려 있을 터였다.

“그래도.”

에반 블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언 감독의 말을 전하러 온 조나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위험하지 않은 장면이라면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지.”

조나단을 따라 촬영에 들어간 에반 블록이 자신의 스턴트맨과 자리를 바꾸었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게 안 위험한 장면이에요?”

에반 블록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적으로 분한 스턴트맨들과 합을 맞추었다.

분명 방금 장면보다는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크게 다칠 것 같은 액션이 이어졌다.

“에반은 옛날부터 액션 스쿨에 다녔거든. 각종 무술도 섭렵했고. 이제는 웬만한 스턴트맨보다 잘해. 게다가 최대한 안전하게 촬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저거 봐.”

리첼 힐의 말대로 에반 블록이 몸을 상하게 할 것들은 없는지 바닥을 점검하고 상대역을 해줄 스턴트맨들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가볍게 합도 맞춰보았다.

“저런 건 진짜 누가 실수하면 큰일 나는 거니까. 사실 에반은 자신이 다 찍고 싶을 거야.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그러다 큰 사고라도 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까, 그러지 않는 거야.”

서준의 눈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스턴트맨들. 배우들. 분장사, 그리고 CG 작업을 할 직원들까지.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준도 좀 더 영화에 참여하고 싶으면 운동이라도 배워둬. 지금부터 열심히 운동하면 에반보다도 더 많은 액션 장면에 참여할 수 있을 거야.”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태권도 학원 가야지!

* * *

예정된 촬영부터 추가 촬영까지. 쉐도우맨2의 촬영은 끝나지 않았지만 서준의 촬영은 모두 끝났다.

마지막 촬영 날, 마린사 홍보 직원이 미국에서 열리는 시사회에 참석 여부를 물어보았다. 시사회 날짜를 들은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촬영, 힘내요!”

“준도 잘 지내. 미국에 올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이건 내 전화번호랑 메일 주소. 별일 없어도 연락해.”

“앗. 나도!”

에반 블록이 언제 적었는지 단정한 글씨로 적은 종이를 서준에게 건넸다. 리첼 힐도 얼른 종이를 찾아 날아가는 글씨로 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두 종이를 받아 든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조심해서 촬영해요. 전투신 위험하니까.”

“걱정 마! 이래 보여도 엄청 튼튼해.”

“다음에 영화나 드라마 찍으면 알려줘. 꼭 볼게.”

촬영 기간 내내 붙어 있던 세 배우가 영 헤어지질 못했다. 결국, 서준이 잠들 시간이 돼서야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호텔을 떠났다.

“아빠.”

“응?”

나란히 커다란 침대에 누운 부자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여름 곰의 겨울잠]이 발동할까 봐 옆으로 누운 서준은 센트럴파크 촬영부터 세트장 촬영까지. 미국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틈틈이 여유가 있는 시간에 아빠와 놀러 다니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었어. 엄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서준이 입학하고 여름 방학 되면 엄마랑 같이 오자.”

만족스러운 듯 즐거움이 가득한 아들의 표정에 마주 보고 누워 있던 이민준이 낮게 웃었다.

“응. 아, 또 촬영하고 싶다.”

“그렇게 찍었는데 또 찍고 싶어?”

“응! 찬이 삼촌한테 좋은 대본 없냐고 물어봐야지!”

“그래. 그러자.”

똑바로 누운 서준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내일은 잭이랑 놀아야…….”

……지. 이민준은 잠이 든 아들의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다음 날, 자신보다 키가 큰 서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1살 연상의 형, 잭 스미스가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고 네가 밥을 잘 안 먹으니까 그렇지! 하고 엄마 아빠가 혼내자 바닥에 엎드려 엉엉 통곡했다.

그래도 곧 어째서 울었는지 잊어버리고 잭과 서준은 가까운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놀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서준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과 가장 가까운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러 온 서준을 본 사범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인부와 중고등부도 시간이 달랐고 서준의 유치원 친구들도 많이 다니는 학원이라, 학부모들도 다 서준을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오늘은 이거 배웠어!”

서준은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얍! 얍! 서은혜와 이민준은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서준의 얼굴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어때, 나 엄청 잘하지?”

“서준이가 최고야!”

“진짜 잘하네! 태권도 선수 해도 되겠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서준이 선수 시키시죠! 서준이 어머님!”

불과 이 주일도 안 돼 태권도 사범이 서준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작은 상담실 벽에 사범들이 전국체전에서 딴 메달들이 붙여져 있었다.

“선…… 수요?”

“서준이 엄청 잘합니다. 정말 잘해요! 한 번 가르쳐 준 동작을 정말 단번에 익혀요.”

“서준이가 조금 똑똑하긴 하죠.”

사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똑똑한 정도가 아닙니다! 힘이면 힘, 민첩성이면 민첩성! 유연성은 아직 어리니까 두말할 것도 없죠!”

서준은 사범님이 준 오렌지 주스를 쭙쭙 빨아먹었다.

[(선)황보세가 막내아들의 애완견-하급]

권법에 대한 흐름을 아주 조금 볼 수 있습니다.

황보세가의 권법을 재연할 수 있습니다.

제한 : 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서준은 황보세가의 막내아들의 애완견으로 무려 10년이나 살았다.

막내아들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황보세가를 활보하다가 언젠가부터는 혼자서도 막내아들의 권한이 통하는 곳은 언제든지 다닐 수 있었다.

누가 감히 황보세가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막내아들의 유일한 애완견을 함부로 대할까!

지루한 황보세가에서 제일 재밌는 일은 부엌 근처에서 간식을 얻어먹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간식 냄새를 풀풀 풍기며, 수련하는 세가인들의 앞에서 간식을 뜯어 먹는 것이었다.

열 받아 하는 세가인이 대부분이었지만 막내 도련님의 애완견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막내 도련님이 미안하다고 맛있는 것을 주기도 했기 때문에 곧 세가인들은 오늘은 도련님 개가 올까? 하고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것도 황보세가의 막내아들이 열다섯 살일 때 끝났지만.

급습이 있었다. 개는 적이 누구였는지도 끝이 어떻게 났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서준은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적은 마교였고 황보세가는 힘겹게 살아남았다.

눈으로 익힌 황보세가의 권법으로 적들을 막은 개는 결국 주인을 살리고 죽었다.

형제들이 모두 죽은, 이제 소가주가 된 막내아들은 자신을 구해준 개를 자신이 잠들 무덤 옆에 묻어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마교를 향해 복수를 곱씹었다.

‘개가 아니라면 황보세가의 권법은 못 쓰네. 하급이 그렇지 뭐.’

그래도 보는 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뭐든 정석과 자신의 차이를 알 수 있어야 잘못된 점을 고치고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능력을 사용한 서준은 시범을 보여주는 사범님보다도 더 정확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설득하려는 사범님에게 엄마는 아직 어려서 그럴 생각이 없다며 말했다.

아쉬워하는 사범님을 뒤로하고 서은혜와 서준이 학원을 나섰다.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선수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줄은 몰랐네.”

“나 엄청 잘해!”

진짜 무술이 가득한 무림에서 온 눈썰미로 습득한 태권도였다. 사범님이 가르쳐 주는 건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아들의 얼굴에 서은혜는 슬쩍 찔러보았다.

“그럼. 서준이 태권도 선수 할래?”

“아니! 아니! 아니!”

고개를 어지러울 정도로 휘휘 저으며 단박에 거절하는 아들의 모습에 서은혜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태권도 다 배우면 다음엔 검도 배울 거야! 합기도도 배우고!”

“그럼 엄마는 얼른 학원 알아봐야겠네.”

설마.

서준이 등록한 모든 학원에서 선수를 시키라고, 올림픽 금메달은 시간 문제라고 말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서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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