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52화
센트럴파크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세트장 촬영 날이 되었다.
라이언 감독의 허락을 받아 서준은 아빠와 함께 완성된 실내 세트장에 발을 디뎠다. 조나단이 안내역을 맡았다.
영화 세트장을 처음 본 이민준과 서준이 연신 감탄했다.
정말 어딘가에 있는 전시관 한구석을 그대로 떼어 온 것처럼 완벽했다. 벽에는 사람들의 사진과 안내문이 적혀 있었고 중앙의 유리 전시대에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남긴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진짜 전시관 같아요. 조나단 형.”
“미술팀이 만드느라 고생했어요. 저도 조금 도왔고요.”
조나단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걷던 서준이 여러 가지 언어로 쓰인 안내문에서 한글로 된 안내문을 읽었다.
“……외계의 침공으로 전 세계에 이상 웜홀이 발생. 사진은 당시 행방불명된, 고등학생 레이 카스만. 이런 것도 다 적어요?”
“요즘 사람들은 한 컷 한 컷 다 찍어서 배경까지 분석하더라고. 이것도 전부 번역가들한테 맡긴 거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적으면 난리가 날걸?”
“와.”
여기 붙은 사진만큼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다. 작가님들, 대단해. 서준과 이민준은 천천히 세트장을 구경했다.
조나단은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이상 웜홀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정말로 그들의 가족들에게서 받은 사진처럼 오래된 사진부터 최근 사진까지, 추억이 가득한 사진들이었다.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니, 한 사진이 두 사람의 눈에 보였다.
“내 사진!”
“윌리엄이네!”
라이언 윌 감독이 서은혜에게 보내달라던 사진이 여기에 붙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4살의 서준이 거기에 있었다. 사진을 보는 이민준의 눈이 흐릿해졌다.
이런 곳에서 아들의 사진을 보니, 정말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추모관이 너무 잘 구현되어 있어서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엄청 어렸네!”
“풋. 너 지금도 어려.”
“헤헤.”
그것도 곧 서준의 말에 웃음으로 바뀌었지만.
서준이 윌리엄 사진 옆에 붙은 안내문을 보았다. 평범한 안내문과 함께 윌리엄의 부모가 윌리엄에게 보내는 편지가 붙여져 있었다.
서준과 이민준이 천천히 편지를 읽었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의 편지였다.
“원래 시나리오 작가님이 쓴 편지가 있었는데, 쉐도우맨1에서 멜리사씨의 연기를 보고 다시 쓰셨대요. 전의 편지보다는 이게 더 좋다면서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고요.”
조나단이 설명했다. 이민준과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 편지가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편지도 충분히 마음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이 외쳤다. 추모관을 찾아온 희생자들의 지인역을 맡은 단역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에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은 센트럴파크 때와 같았고, 신발도 그대로였다.
에반 블록과 서준은 추모관 입구에 섰다.
모니터를 살피던 라이언 윌 감독이 소리쳤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두 사람을 향했다.
단역 배우들은 자신의 대사를 되새기고 스태프들은 숨을 죽였다.
-레디,
서준은 발로 바닥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선)고양이 남작의 우아한 발걸음이 발동됩니다.]
-액션!
맥과 아이는 센트럴파크 내에 있는 한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활기 넘치던 센트럴파크의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은 아주 조용하고 침묵이 가득한 곳이었다.
누구는 무뚝뚝한 얼굴로, 누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그 숙연함에 맥이 목소리를 죽였다.
“여기는 추모관이야. 1년 전에 이상 웜홀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과 행방불명된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어.”
“이상 웜홀?”
“넌 아직 어려서 기억 못 하겠구나. 1년 전 이맘때,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했거든.”
아이는 눈을 끔벅였다.
“자신들을 나트라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반역자를 찾겠다며 지구를 공격했지.”
맥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걸까? 결국은 이겼지만, 많은 상처가 남았다.
아이가 멍하니 내뱉었다. 왜 그 단어가 여기서 나오는 걸까?
“……나트라.”
“그래. 이 사람은 그날 결혼식이 있었어. 신랑 신부가 서 있던 단상 위에 이상 웜홀이 생겨 신부를 삼켜 버렸지. 이건 그날 신부가 가지고 있던, 부케야.”
맥이 가리키는 곳에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여자와 남자의 사진이 있었다.
맥이 천천히 사진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 그날의 사연과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유품 같은 물건들. 바짝 마른 부케가, 떨어진 꽃잎이 남은 가족들의 모습 같았다.
“난 그 남자도 잘못했다고 생각해.”
축구공을 들고 웃고 있는 남자의 사진 앞에 계속 서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 살벌한 목소리가 조용했던 추모관을 울렸다.
“그 남자, 뭐라고 했지? 쉐도우맨? 왜 처음부터 외계인들을 물리치지 않은 거야? 이상 웜홀을 만들어내기 전에 해치워 버렸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잖아!”
“진정해. 팀.”
같이 왔던 친구가 그를 달랬다. 그는 베스트 프랜드를 눈앞에서 잃었다.
그가 제안한 여행지에서 이상 웜홀이 생겨났다. 이상 웜홀 속으로 사라진 친구의 사진과 유품이 여기 추모관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친구의 생일이었다. 그는 울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 외계인들이 찾던 반역자가 사실 쉐도우맨인 거 아니야? 이상한 능력을 쓰던데! 그 남자만 없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수도 있잖아! 히어로라면서! 왜! 왜, 내 친구를 구하지 못한 거야!”
친구는 엉엉 우는 그를 이끌고 추모관 밖으로 나갔다. 맥과 아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맥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트라가 침공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1년 내내 고민했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만 없었으면……. 정말 나만 없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내가 정말 그들이 찾던 반역자인가.
두 눈을 질끈 감은 맥을 깨운 것은 아이였다.
“저건…….”
“아. 저건 그날 이상 웜홀 속으로 사라진 아이야.”
아이는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다. 검은 눈의 검은 머리칼을 가진 아기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기시감이 든 맥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멍하니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과 아이를 보던 맥이 고개를 갸웃했다. 닮은 것 같은데? 사진 속 아이가 5, 6년만 지나면 이 아이처럼 자랄 것 같았다.
아이는 한순간도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라고 적힌 거야?”
“음.”
맥이 천천히 안내문을 읽었다. 1년 전 맥이 직접 보았던 피해자의 가족이었다. 죽을 듯이 울던 여자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윌리엄에게……. 그렇게 한순간 네가 사라질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어. 어째서 더 빨리 달려가지 않았을까, 어째서 너와 함께 있지 않았던 걸까. 매일 후회하고 후회한단다. 살아만 있어 주렴.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게 살아만 있어 줘.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도, 네가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거야. 행복할 거야. 엄마와 아빠는 언제까지고 널 기다릴 거야. 네가 오는 날이 언제든 우리 집에서 기다릴게. 언제든 돌아오렴. 사랑한다. 엄마·아빠가.”
“‘윌리엄’.”
그 단어에, 아이의 눈이 커졌다. 아이는 목에 걸려 있던 펜던트를 손에 꼭 쥐었다. 기억나는 시절부터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한 단어.
윌리엄.
아이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저게 나구나. 나에게 가족이 있었구나.
울컥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아이의 머릿속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던 가족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센트럴파크의 모두가 그런 표정이었다.
나도,
나도 여기서,
나도 여기서 그렇게 살 수 있었어.
아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행복할 수 있었어!
벽에 걸린 사진을 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했다.
서준은 [엘프의 기초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인의 기초 호흡]을 시작했다. 동시에 능력을 사용했다.
[(악)홀로 핀 꽃의 우울한 향기가 발동됩니다.]
[(악)홀로 핀 꽃의 우울한 향기-최하급]
반경 10m에 오직 이 꽃만이 피어 있습니다.
잡초와 비슷하게 생겨 누구도 그게 꽃이란 사실을 모릅니다.
꽃의 향기를 맡으면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서준의 몸에서 사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서준은 악 성향의 도서관의 문을 열고 난 뒤에 많은 실험을 했다.
그리고 몸속에 마나에 여유가 있을 때, 선의 스킬을 쓰는 동시에 악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호흡법’으로 두 가지의 능력 중 더 드러내고 싶은 능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선)고양이 남작의 우아한 발걸음]과 [(악)홀로 핀 꽃의 우울한 향기]가 함께 발동되었다.
[마인의 기초 호흡]의 시너지로 서늘한 마기가 서준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천사 같기만 하던 아이가 순식간에 변했다. 그저 평범하게 변했던 센트럴파크 때와는 달랐다. 온몸을 오싹하게 하는 서늘함. 차가움.
그 순간적인 변화에 맥, 아니, 에반 블록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괴상하게 변하고 말았다. 대본에는 ‘아이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컷! NG!
당연히 촬영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조용히 구경하고 있던 스태프들과 단역 배우들이 감탄을 표했다. 그들도 순간적으로 변한 서준의 분위기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우와. 저게…….”
“천재라고는 들었지만, 진짜 상상 이상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소곤소곤 대화한다고 하지만 그런 무리가 열이 넘어 곧 소음으로 변했다.
카메라 감독도 조감독도 감탄하기에 바빠 결국, 라이언 윌 감독이 소리쳤다.
“모두 조용!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에반 블록!”
“아, 죄송합니다!”
다시 평범해진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에반 블록이 라이언 윌 감독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알면 알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재능이었다. 이 정도가 끝이겠구나 생각하면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는 아이, 아니, 배우였다. 이 배우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어쩌면 한 권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그 어떤 대단한 배우라도 한 권을 넘은 적이 없었는데. 에반 블록은 실실 웃으며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NG는 처음인데.’
서준은 신기한 기분이었다. 바스트 샷, 클로즈업샷을 찍기 위한 촬영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도 아니었지만, NG는 처음이었다.
‘아마, 마기 때문에 놀란 거겠지?’
다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감탄만 하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 좋은걸!’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확실히 보여주었다. 힘들게 얻어낸 마기의 효과를.
‘영화를 볼 사람들도 이런 표정을 짓겠지?’
확 바뀐 자신의 모습에 얼이 빠질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라 서준은 실실 웃고 말았다.
좋아. 좀 더 힘내서 찍어볼까! 서준은 기합을 잔뜩 넣고 촬영에 들어갔다.
“NG! 준! 너무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맥이 알아차려 버릴 거다! 살짝만 내보여야지!”
“죄송합니다!”
아까보다 더욱 사늘한 서준의 분위기에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다시 한번 놀랐지만, 라이언 감독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인생 첫 NG가 의욕 과다라니.
서준이 입술을 삐죽이고 재촬영에 들어갔다. 세팅된 머리를 쓰다듬을 수는 없어 에반 블록은 기운을 내라며 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행히 OK를 받아 클로즈업샷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